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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님의 서재입니다.

천외천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팔복
작품등록일 :
2014.01.22 13:19
최근연재일 :
2016.04.15 13:39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80,662
추천수 :
4,542
글자수 :
258,503

작성
16.04.11 11:47
조회
794
추천
23
글자
8쪽

혈채(血債) 1

DUMMY

일제히 커지는 세 쌍의 눈동자들.


제갈청광을 제외한 장로들의 연배는 모두 백호궁을 경험해 보았던 세대다.


그들의 젊은 시절에 서천신권 백강호의 명성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백호궁이 건제할 당시 백호궁 오대고수로 꼽혔던 백강호는 무학의 천재로 이름 높았다.


불과 약관을 조금 넘긴 나이에 백호궁 오대무학 중 백호신투(白虎神鬪)를 대성하면서 혜성 같이 강호에 나타난 백강호는 강남무림의 숱한 절정고수들을 연파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름이 높았던 하북팽가의 무상도군 환보다도 오년이나 먼저 무림백대고수에 적을 올리기까지 한 그는 차기 천하제일권으로 평가 받았다.


만일 백호궁이 군웅회의 그날 때문에 멸문하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살아 있었다면 권천(拳天)의 이름을 가져갔으리라는 평가가 한결 같았던 시대의 영웅이었다.


하나 이미 그 이름은 은퇴를 눈앞에 둔 백발이 성성한 노강호들이나 기억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제는 그들마저 잊어버린 이름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격정은 벼락이 내리친 것처럼 전신을 타고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그런...!"


판검대인과 세 명 장로들의 말과 반응으로 사태를 짐작한 제갈청광이 놀란 눈으로 백호신마를 바라보았다.


죽었다는 백호궁의 소궁주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을 오현장로 중 한 사람이 확인했다.


이보다 더한 증거가 무엇이 있는가. 사람이 남아 있었다면 그것도 소궁주가 살아 있었다면, 백호궁의 이름이 없더라도 저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은원이 이어진다.


가면을 벗어버린 백호신마는 이어서 입고 있던 상의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쫘아아악!


단숨에 찢어지는 무복 밖으로 무수한 상흔이 가득한 강철 같은 무인의 육체가 드러났다.


"... 사해영웅기는 불타버렸고 백호영웅건은 빼앗겼다."


찢어버린 무복을 등 뒤로 던지고 돌아서는 백호신마. 그의 등은 한 폭의 맹호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맹호도.


제갈청광은 그것은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보았고, 해서 더욱 놀랐다.


"하지만...본궁의 진정한 신물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는 잃지 않았다. 보라! 이것이 너희가 그토록 원하는 증거다!"


백호궁의 개파조사가 말년의 깨달음을 담아 일합에 그렸다는 호왕군림도다.


오대절기의 시작인 호왕군림무가 이 한 폭의 그림 속에 있고, 조사는 이를 백호궁의 신물로 삼았다.


군웅회의 사해영웅기도 지금은 무림맹주의 신물 중 하나가 되어 버린 백호영웅건도 바로 이 호왕군림도의 위제품에 불과할 뿐이다. 허나 세상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 진 호왕군림도가 당시 궁주였던 호안존자(虎顔尊子) 백무량에 의해서 소궁주였던 백강호의 등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호왕군림도는 그렇게 지켜질 수 있었다.


"호왕...군림도!"


살아 있는 듯한 맹호도는 기묘한 마력이 있어 시선을 빼앗고,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품게 만든다.


천하에 하나 밖에 없는 기물 중에 기물이다.


"제갈 장로님. 저 그림이 진품이 맞습니까?"


"맞..소. 호왕군림도가 맞소."


조부이신 제갈효를 통해 백호영웅건을 견식한 적 있는 제갈청광이다.


백호영웅건의 호왕군림도에도 이러한 마력이 있었다. 그러나 백호영웅건의 그것과 지금 눈앞의 그림은 수준이 달랐다.


지금 눈앞의 저것이야 말로 진정한 호왕군림도다.


이 순간, 제갈청광은 지금껏 머릿속으로 세우고 계획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 듯 했다.


"내가 있다. 그리고 호왕군림도가 있다. 더 이상의 증거를 원하는가?"


또 다시 울려 퍼지는 육합전성이다.


지금껏 증거를 요구하던 군웅들의 목소리가 칼로 자른 듯 멈췄다.


침묵 가운데 백호신마의 흐름만이 있었다.


"육십 년 전의 그 날 밤. 나는 수많은 형제들을 내 마음속에 묻었다."


지금도 잊지 않은 그들의 이름을 떠올린 탓인가. 짙은 살기가 백호신마에게서 피어올랐다.


"그 긴 세월을 내가 어찌 보냈는지 아는가?"


복수의 칼날을 갈았지만 한편으로는 하늘이 그들을 벌하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파와 마교로 귀파(歸波)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파로 남아 있는데도 무림맹 전체가 침묵한 것을 보니 웃음이 멈추지 않더군."


백호신마가 입을 열 때마다 제갈청광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군웅회가, 백호궁이 그리도 꼴 보기 싫었더냐!"


'이, 이렇게 되면 무림맹의 명성이...본가의 명예가...'


설마 이렇게 일이 진행되어 버릴 줄이야. 백호궁의 후신임이 증명 된 순간, 예상하고 계산했던 수많은 선택지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와서 육십 년 전의 은원들을 정리하겠다고 하면, 그에 해당하는 문파들은 그저 처분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 소위 정파의 명문이라 불리는 곳 중에 얽히지 않을 곳이 없다.


제갈세가도 그 때 얼마나 불명예스런 거래를 하였던가.


머릿속의 계산들이 전부 무너지고, 제갈청광은 무림맹을 떠나기 전, 조부 제갈효의 말을 떠올렸다.


-청광아. 만일 저들이 정말로 백호궁의 후신이 맞다면 고개를 숙이거라. 그들이 흘렸던 핏값은 더 이상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이란다. 그게 옳은 게야.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당신은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유일하게 시신을 찾지 못했던 백호궁의 소궁주가 살아있음도, 그런 소궁주가 어떻게 해서든 호왕군림도를 지켜내었음을, 백호궁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전부 알았으리라.


그렇기에 저 서찰에 그와 같은 내용을 담았을 것이다. 당연히 증거를 보여주고 스스로를 입증하도록 당신이 도운 것이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제갈청광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옳은 결단인지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구나.'


머리가 한층 맑아지고 조부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어려울 게야. 짐으로서 이기는 법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 하나 너라면 알 수 있을 게다.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말이야.


'소손. 이제야 알았습니다.'


털썩.


제갈청광의 무릎이 땅과 맞닿았다. 허리는 숙이고 양손은 가지런히 모아 이마와 함께 땅을 짚었다.


배(拜). 호왕군림도를 향해, 백호신마를 향해 제갈청광은 절을 했다.


"제, 제갈 장로?!"


"처, 청광아?!"


"...!"


순간,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


독사신마 마저도 당혹감에 처음으로 평정심이 깨졌다.


'이런...!'


"제갈세가의 자손, 제갈청광이 백호궁의 후신께 정식으로 예를 올립니다."


절을 마친 제갈청광이 상반신만을 들어 포권을 취했다.


"제갈세가는 육십 년 전, 백호궁의 멸문에 대해 침묵하며 공백이 생긴 상권을 차지하고 군웅회의 배신자들, 군웅지적(群雄之敵)들이 귀파하고 세를 불리는 것에 눈을 감았습니다. 그것은 정파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었던 일. 이제라도 그 죄를 자복합니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


세가의 더러운 죄를 고백하는 제갈청광은 그 상황에서 오히려 빛이 났다.


작가의말

생일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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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채(血債) 1 +1 16.04.11 795 23 8쪽
65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4 +1 16.04.08 930 22 7쪽
64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3 +1 16.04.04 987 19 8쪽
63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2 +1 16.04.01 968 22 9쪽
62 호왕군림도(虎王君臨圖) 1 +1 16.03.28 1,124 20 12쪽
61 사천집합(四天集合) 5 +1 16.03.25 887 25 9쪽
60 사천집합(四天集合) 4 +1 16.03.21 1,090 25 9쪽
59 사천집합(四天集合) 3 +1 16.03.18 1,187 20 9쪽
58 사천집합(四天集合) 2 +2 16.03.14 1,150 29 11쪽
57 사천집합(四天集合) 1 +1 16.03.11 1,180 22 12쪽
56 백호신마(白虎神魔) 5 +2 16.03.07 1,192 23 10쪽
55 백호신마(白虎神魔) 4 +2 16.03.04 1,081 28 7쪽
54 백호신마(白虎神魔) 3 +2 16.02.29 1,309 35 10쪽
53 백호신마(白虎神魔) 2 +2 16.02.26 1,122 32 8쪽
52 백호신마(白虎神魔) 1 +1 16.02.22 1,511 32 8쪽
51 뇌서신마(腦鼠神魔) 4 +1 16.02.19 1,301 30 8쪽
50 뇌서신마(腦鼠神魔) 3 +1 16.02.15 1,349 30 9쪽
49 뇌서신마(腦鼠神魔) 2 +1 16.02.14 1,439 40 8쪽
48 뇌서신마(腦鼠神魔) 1 +2 16.02.13 1,467 40 8쪽
47 과거지연(過去之緣) 3 +1 16.02.12 1,469 45 10쪽
46 과거지연(過去之緣) 2 +1 16.02.11 1,481 41 7쪽
45 과거지연(過去之緣) 1 +2 16.02.09 1,468 38 7쪽
44 추격전(追擊戰) 1 +1 16.02.08 1,328 38 9쪽
43 무림집회(武林集會) 2 +1 16.02.07 1,430 37 9쪽
42 무림집회(武林集會) 1 +1 16.02.06 1,483 43 7쪽
41 비정무천(非停舞天) 2 +1 16.02.05 1,589 40 9쪽
40 비정무천(非停舞天) 1 +1 16.02.04 1,812 4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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