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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꿀주먹 님의 서재입니다.

전직 영업사원의 싱글벙글 연예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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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꿀주먹
작품등록일 :
2022.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2.11.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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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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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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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 포스터 속의 그녀

DUMMY

(12) 포스터 속의 그녀


살면서 뇌리 속에 깊게 각인된 장면이 다들 하나씩은 있을 거다. 평소에는 까먹고 살지만 작은 계기라도 있으면 마치 어제 겪은 일마냥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나도 그런 기억 몇 개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장 인물의 옷차림으로 시기를 추정해보면 아마 늦가을쯤 되었을까? 제대 후 한창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나는,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나와 지하철 역 쪽으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반대방향에서 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녀 한 쌍이 서로 키스를 하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집 – 학교 – 알바 루틴만 돌던 나에게는 정말 큰 충격을 줬던 기억이다.


이 정도로 머리 속에 기억이 강렬하게 남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니라고? 그럼 여기서 간단한 테스트를 하나 해보자. 출근하면서 탔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사람 인상착의를 한번 생각해 봐라. 아마 이걸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걸?


교양수업에서 주어 들은 건데,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인류는 원래 이런 식으로 진화를 해왔다고 한다. 진짜 중요하다고 뇌가 판단을 내린 기억들은 오래 가지만, 쓰레기 정보들은 거의 보자마자 까먹는 방식으로 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지금 이 소리가 왜 나왔냐 하면 지금 내가 비슷한 경험을 또 하고 있어서 그렇다.


2년쯤 전이었나? 구내식당 메뉴가 한 세 바퀴쯤 돌아서 모두가 슬슬 질려가던 참이었다. 사무실에 남아있던 영업팀 직원 몇 명과 의기투합해서 간만에 밖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분기 실적은 대부분 채운 상태라 맘 편하게 사무실을 나와 건물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1층 화장품 가게에 다른 포스터가 걸려 있었는데, 오전에 교체 작업을 했는지 화사한 뉴페이스가 포스터 안에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반쯤 영혼이 나간 채로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어깨를 치지 않았으면 언제까지고 거기 서 있지 않았을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뭐야. 유진씨 안 그런 거 같더니 아이돌 좋아했어?”

“···네? 뭐라고 하셨죠?”

“아니 저 뷰티 브랜드 광고. 이번에 메인 모델이 트리니티 멤버로 바뀌었잖아. 그래서 오늘부터 포스터 싹 바꾼다고 하던데.”

“하하하. 아니요. 근데 역시 정보가 빠르시네요.”

“내가 저 매장 단골이라서 그래. 점장이 저번 주에 미리 알려주더라고.”


그래. 트리니티란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이때 들어봤구나. 아무튼 바로 지금 내 눈앞에 과거의 그 포스터 속 얼굴이 있다.


‘음. 정확히 말하면 완전 똑같지는 않네.”


그때랑 머리 색이랑 스타일도 다르고, 화장도 훨씬 연하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하긴 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365일 내내 화보 촬영 때 모습으로는 못 다닐 거다. 그래도 확실히 일반 사람이랑은 뭔가 다른 게 느껴진다. 이게 소위 말하는 아우라? 뭐 그런 건가 보다.


“수현씨 왔어요? 이리 와서 봐요.”

“우와. 언니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 맞죠?”


그래. 이름이 수현이었지. 아무튼 수현씨 -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 는 직원 중에 한 명이랑 안면이 있는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긴 지금 잘나간다고 해도 연습생 시절은 있었을 거고 아마 그때 인연이겠지? 근데 트리니티는 5인조 걸그룹 이라고 들었는데 여긴 혼자 온 건가.


“스케줄 바쁜데 어떻게 시간이 났네요?”

“오후에 촬영 하나 있어서 조금만 보다가 가봐야 해요.”

“혼자 왔어요?”

“일단 저만 좀 일찍 왔어요. 지은 언니랑 유나 언니는 곧 올 거에요.”


직원과 수현씨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연습생들 잠깐 길 좀 내주실 게요.”


톤이 좀 다르긴 한데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던 목소리다. 누구지?


“지은씨. 유나씨. 들어가실 게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자 두 명과 누가 봐도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홍콩 입국할 때 짐 싣고 가던 그 사람이네?’


옷차림은 그때랑 다르지만 분명히 홍콩에서 봤던 그 사람이다. 근데 저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건 그때 컨베이어 벨트 근처에서 봤던 덩치도 삼합회가 아니라 넘버스 소속이었다는 건데.


“한수야. 우리가 지금 스케줄 왔니? 그냥 회사 온 건데 말투가 그게 뭐니.”


귀신도 자기 이야기하면 나타난다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네.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아주 인상 깊었던 그 사람이 바로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때는 나름 비즈니스 표정을 장착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는 편한 자리라서 그런가 먼저 들어온 매니저를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한팀장님 오셨어요?”

“아. 네 수고들 하십니다.”


제법 직급이 높은지 주변 직원 모두 한팀장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직원들 대부분 몸이 좋은 거 봐선 절대 한팀장이 무서워서 인사를 하는 거 같진 않다. 근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여기는 직원들도 다 운동시키는 건가? 사무직이면 원래 배 나오고 팔다리 얇은 게 국롤 아니었나.


아무튼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한팀장과 같이 들어온 두 명에게로 향했다. 정황상 둘 다 트리니티 멤버겠지?


“수현아. 같이 가지 뭘 그렇게 혼자 빨리 가.”

“지은 언니. 수현이가 원래 성격 급하잖아요.”


유나라는 사람 말하는 게 네이티브 한국인 말투가 아니다. 얼굴만 보면 완전 귀여운 한국인 여자아이인데 교포인가? 단발머리에 키는 한 60중반 정도 되는 거 같고, 날씬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한 몸이다. 저 정도면 어지간히 운동 열심히 한 남자보다 체지방 수치가 적을 거 같다.


그리고 옆의 지은이라는 사람. 수현씨랑 같은 브랜드 모자를 눌러쓰고 있고 키는 눈짐작으로 봤을 때 160을 넘을까 말까 정도로 작다. 넘버스 들어오고 본 사람 중에서 제일 마른 거 같다. 그래도 여기 커리큘럼 상 운동을 아예 안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라도 코어는 좋지 않을까?


선천적인 신체능력 차이가 있으니 아마 남자애들처럼 운동량을 가져가진 못할 거다. 그래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직원들 몸이 저렇게 잘 관리되고 있는데, 현직 아이돌 같은 경우는 오죽하겠어? 나중에 운동하다가 스티브에게 어떻게 굴리는지 슬쩍 물어봐야겠다.


여하튼 운이 좋게도 트리니티 멤버 중 무려 세 명을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직접 실물을 보니 확실히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기본적으로 비율이 지금 나처럼 좋고, 전문가들의 관리를 꾸준히 받아서 그런가 옅은 화장을 했는데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


광고 회사를 다녀서 심심하면 연예인들을 한번씩 볼 수 있었던 대학 동기 녀석이, 그렇게 술자리에서 관련 썰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허세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직접 실물을 영접하고 나니 주접을 왜 그렇게 떨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좀 가기 시작한다.


근데 원래 데뷔하고 나서도 연습생 월말평가 같은 걸 보러 오는 건가? 졸업생이 재학생 대상으로 리쿠르팅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진짜 졸업하고 모교 처음 끌려갔을 때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아는 거는 쥐뿔도 없는데 어떻게든 시간 채우려고 열심히 입을 털었었는데.


“자. 연습생 분들! 3분 후에 월말평가 시작합니다. 1, 2, 3번 순서인 사람들은 준비해 주세요.”


드디어 시작이다. C반 애들 실력은 수업 중에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상위 클래스들이 춤추고 노래하는걸 보는 건 처음이다. 다들 얼마나 잘할지 궁금하다.


///


“널 사랑하지~ 않아~”

“Sugar, Yes please~ Won’t you come and put it down on me~”


장르는 팝부터 가요까지 다양했다. 원래 음악을 잘 안 들었던 나도 멜로디나 가사 정도는 어디 지나가다가 한번쯤은 들어본 곡들이다. 노래에 강점이 있는 사람은 보컬곡 위주로, 춤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주로 댄스라이브를 했다. 가슴 앞에 큰 이름표를 달고 무대를 하는데, 확실히 C반과 B반은 실력 차이가 제법 났다. 그럼 A반은 얼마나 잘하는 걸까?


아 이건 좀 나중에 안 사실인데 클래스를 나누는 기준은 이렇다고 한다. 들어온 지 얼마 안 지난 연습생은 무조건 나처럼 C반이다. 그리고 월말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거나 트레이너들의 강력한 추천이 있으면 B반으로 승급 가능. 그리고 대망의 A반은 거의 바로 데뷔가 가능할 정도 수준인데, 단순하게 춤과 노래 잘하는 것만으론 못 올라간다고 한다.


몇 없는 B반 이름표 달고 있는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는 것 만으로도 자극이 된다. 춤만 따로 놓고 보면 나도 비슷한 레벨로 소화하는 게 가능할 것도 같다. 근데 저런 격한 춤을 추면서 라이브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하는 건 지금 내 수준에선 무리다.


집중해서 보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연습생들 대부분 심각한 표정이다. 의외로 트리니티 멤버들도 직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무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냥 놀러 온건 아닌가 보네.


“13, 14, 15번 무대 준비해주세요.”


드디어 내 차례다. 수업 때 말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추는 건 처음이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대기실로 향했다.


작가의말

비축분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가네요. 큰일남 ㅠㅠ


주7일 연재하는 분들은 다들 괴물인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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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월말 평가가 모두 끝나고 나서 22.10.19 137 2 11쪽
32 (32) 두 번째 월평, 시작 22.10.14 151 2 11쪽
31 (31) 예지몽은 아닌 거 같은 개꿈 22.10.11 164 3 11쪽
30 (30) 3인 연습, 첫날 22.10.07 16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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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조별과제는 역시 버스 타는 게 꿀이다 22.09.26 231 3 11쪽
26 (26) 월말평가 대격변 22.09.23 25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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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너가 여기서 왜 나와! 22.09.16 278 6 10쪽
23 (23) 넘버스의 왕자님 22.09.14 282 6 11쪽
22 (22) B반 승급! 22.09.08 281 5 11쪽
21 (21) 토요일 끝 22.09.05 292 5 10쪽
20 (20) 개꿈 22.07.01 341 9 9쪽
19 (19) 중간고사 끝! 22.06.27 357 9 9쪽
18 (18) 새로운 도전 22.06.15 366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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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잠깐 쉬어가기 22.06.07 391 15 10쪽
13 (13) 첫 무대 +1 22.06.02 436 14 10쪽
» (12) 포스터 속의 그녀 22.05.31 463 1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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