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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제발좀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아빠는 천재 커브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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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誠衍)
작품등록일 :
2024.08.05 21:51
최근연재일 :
2024.09.06 16: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9,350
추천수 :
892
글자수 :
164,780

작성
24.08.06 08:30
조회
2,525
추천
41
글자
12쪽

투수 한번 해 볼래?(2)

DUMMY

3. 투수 한번 해 볼래?(2)


6위 팀 서울 드래곤즈는 4년 전까지만 해도 정규 시즌 2위를 했던 강팀이었다.

강팀이었다는 과거 시제처럼 서울 드래곤즈의 최근 3년 성적은 5위, 7위, 7위.


사람들은 말한다.

윤재성이 빈볼을 맞고부터 드래곤의 날개가 찢겼다고.


하지만 드래곤즈의 투수 코치 이진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 역시 윤재성의 입스가 드래곤즈의 추락에 큰 기여를 한 건 인정하지만.


같은 시기.

에이스 투수 이희성의 메이저리그 진출.

드래곤즈 두 번째 펀치 곽민기의 FA 이적.

용의 꼬리, 마무리 투수 우민용의 은퇴.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드래곤즈 프런트가 떠난 투수들의 빈자리를 메꾸지 못한 게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진호는 믿고 있다.


“아니, 대곤아. 공 뽑을 때 뒤로 더 당기라니까.”

“재우야 시선! 던질 때 시선을 어디다 두라고 했어?”

“헤이 페드로! 체인지업은 바닥에 꽂는다고 생각하고 던지라고! 또 높게 던져 봐. 내가 널 내다 꽂을 테니.”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성공했던 이진호.

그가 드래곤즈 투수진을 어떻게든 정비해 투수 성적만큼은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에이스 투수의 부재는 정비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에이스 투수는 신이 점찍어 주는 재능의 영역이니까.


서울 드래곤즈엔 용의 머리, 에이스가 몇 년째 부재중이다.

내년에는 나타나겠지, 내년에는 다르겠지 기대하던 이진호도, 내년에도 기름칠하고 조이자는 마인드로 체념한 지 오래.


어쨌든 오늘도 이진호는 조이면 풀리는 투수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때.


“커브. 낮은 코스로 낚을 거야.”

“옙! 포수 박재호! 낮은 커브 대기 중!”


이진호의 눈에, 한때 드래곤즈의 날개라 불렸던 윤재성이 커브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커브라. 커브도 재능의 영역이지.’


커브.

모든 브레이킹 볼 중, 유일하게 탑스핀이 걸리는.

브레이킹 볼 중에서도 수직 각이 가장 크지만, 아주 느린.

제대로 맞으면 장타 확률이 극히 높은.

릴리즈보다 높게 떠오르며 타자에게 간파당하기 쉬운 구종.


프로에서 커브로 활약하려면 생각한 대로 커맨드할 수 있는 정밀한 제구력도 중요하지만,

볼과 스트라이크, 타자의 머릿속에 두 가지 선택지를 심어 줄, 큰 낙차가 포인트였다.


워낙 완성 난도가 미쳤기에 현대 야구에서 커브볼러를 찾기 힘들며, 요즘은 커브를 장착한 투수들도 경기에서 2~3개 섞어 쓸 정도.

그것이 이진호가 ‘커브는 재능의 영역이다’라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천재 타자 윤재성이 커브를 던진다라. 재밌겠는데.’


누가 던지느냐에 따라 낙차와 무브먼트가 천차만별인 커브.

이진호는 윤재성을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지켜봤다.


윤재성이 불펜에서 몸을 푸는 모습은 예전부터 많이 봐 왔다.

경기 전 피칭을 하는 것은 그의 타격 루틴이었으니까.


평소에 이진호가 생각하던 윤재성의 투수 실력은, 투수가 아닌데도 꽤 괜찮은 자세와 괜찮은 빠른 볼을 던질 줄 안다는 정도.


‘커브까지 완벽하게 구사할 줄만 알면··· 내가 손을 조금 봐서··· 하, 나도 참 무슨 생각을.’


이진호가 드래곤즈 투수들에게 얼마나 데였으면, 타자인 윤재성에게 그런 기대를 할까 자책할 때였다.


윤재성의 피칭이 시작됐다.

그의 오른손을 빠져나가 꽤 괜찮은 포물선을 그리는 공.


‘높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낙구지점을 예상해 볼 때 포수의 미트보다 한참은 높은 스트라이크 존에 꽂힐 궤적이었다.

이진호의 말을 고증하듯, 포수 역시 정강이에 뒀던 미트를 몸통까지 들어 올렸다.


코스와 각, 이진호의 눈에는 저 커브가 담장도 모자라 사직구장을 넘어갈 공으로 보였다.


그렇게 눈을 돌리려던 순간.


훽.


“어?”


다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쯤 고개를 바닥으로 비집는 공.

마치 그라운드에 묻힌 수수께끼의 자력이 야구공을 잡아당기듯, 미친 각을 그리며 떨어졌다.


포수가 들던 미트 위치를 다시 조정했는데.


벅.

커브가 미트를 맞고 바닥에 굴렀다.


“···”


데굴데굴.

등골이 오싹해지는 커브에, 불펜에 있던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바닥에 구르는 공을 봤다.


숨 막히는 정적이 불펜을 휘감았고.

포수 박재호가 구르는 공을 미트로 포개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제가 어제 잠을 푹 못자서. 죄송합니다.”


그 커브 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불펜의 시간은 다시금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의 시간이 지금도 멈춰 있다.

처음부터 윤재성의 피칭을 지켜본 이진호 투수 코치였다.

그는 입만 떡 벌린 채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포수가 처음 원했던 낮은 코스에 정확히 커맨드 한데다가.

절대적인 재능의 영역인 천재적인 낙폭까지.


전설 최대원 선배의 커브.

한때 이진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클레이튼 커쇼.

시즌 피안타율 7%를 찍었던 커브 마스터 타일러 글래스나우.


마구 같은 커브를 던졌던 수많은 커브볼러가 이진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이진호는 윤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성아! 커브 몇 개만 더 던져 볼래?”


* * *


“투수요?”


너무 자연스럽게 제안해 와서 하마터면 ‘예’ 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래 투수!”


눈을 반짝이며 내게 투수 전향을 제안한 건 이진호 투수 코치였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현역 때 160km/h에 육박하는 빠른 볼과 148km/h 발칸 체인지업으로 뉴욕 메츠에서 레전드를 썼던 남자다.

가끔 승부욕 때문에 배팅볼 던지다가 150km/h가 넘는 패스트볼을 던지는 미친 짓도 하지만.

모나지 않고 낯 가리지 않는 성격 덕에, 나와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어쨌든, 뜬금없이 투수 전향이라니.

그때까지만 해도 이진호가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농담을 던지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너 재능 있어. 특히 커브가 미쳤다고.”


나도 각을 잡고 커브를 던진 건 처음이었다.

현대 투수들은 변화구로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선호하고 있고, 투수를 병행하던 학생 때는 나쁘지 않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연마하는 데 집중했으니까.


나도 생각보다 많이 떨어져서 놀라긴 했지만.

몇 개 던져 본 건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확신하며 달려들까 싶다.


“그냥 얻어걸린 거예요 형님.”

“재성아 커브는 재능이다. 내가 이래 봬도 야구 장인이잖냐. 메츠의 호우(현역 시절 이진호의 별명)가 보증하마. 네 커브, 무조건 먹혀.”


이 형답지 않게 너무 진지해서 없던 마음도 생길 판이다.


나도 답답한 마음에 투수 전향을 생각해 본 적 있다.

하지만 내가 만약 투수를 선택했다면 상이란 상은 휩쓸던 천재 유격수, 타격 8관왕 윤재성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거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내 입스를 치료하기 위해 구단도 포기하지 않고 있고.

언젠가는···


나는 이진호가 제안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거절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노련한 투수 이진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새벽이가 지금 몇 살이지?”

“4살이요, 내년에 유치원 들어갑니다.”

“돈 많이 들 때네.”


안 그래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새벽이가 태어났을 때는, 분유와 기저귀를 졸업할 때가 되면 여유가 생길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개월마다 필요한 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옷감도 적게 드는 유아복은 왜 그렇게 비싼지.

새벽이가 커 갈수록 드는 돈은 곱하기가 아니라 제곱이 되더라고.


내년에는 유치원을 갈 거고, 그에 따른 부수적인 돈은 더 들 거다.

또 휴학한 아내도 언제까지고 새벽이 때문에 꿈을 미룰 수도 없는 노릇.


반해, 내 연봉은 갈수록 줄고 있다.

원영이가 허리띠를 졸라맨 덕에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지만.

내년에도 연봉 삭감은 당연한 일이고, 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니까 이진호에게 정곡을 제대로 찔린 거지.


“재성아.”

“···예.”

“너나 나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인데,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는 키워야 할 거 아니냐.”

“···.”

“하하··· 그런 표정 지으라고 한 말은 아닌데.”

“압니다 형님.”

“크흠. 그러니까 윤 사장 재능이랑 내 실력이면, 이거 완전 솨라 있는데~.”


이진호는 내 기분을 읽었는지, 평소처럼 밉살스럽게 영화 명대사를 따라 했다.

그러고도 내 표정이 풀리지 않자,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은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충분히 생각해 봐.”


* * *


레드 와인과 치즈 플래터, 올리브유로 튀긴 닭.

새벽이를 재우고 오랜만에 원영이랑 오붓한 자리를 만들었다.


“하하, 진짜? 성태 씨 그런 캐릭터 아닌 줄 알았는데 재미있네.”

“그런데 걔가 또.”


육아에 지쳐 이런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었는데.

가끔은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말랑말랑하다.


그렇게 아내의 얼굴이 와인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쯤, 원영이가 말했다.


“요즘 많이 힘들지?”

“그렇지 뭐.”

“두고 봐. 내가 아는 윤재성은 반드시 이겨내니까.”

“하하, 당연하지.”

···


묘한 표정, 묘한 분위기.

나는 마른 목을 축이려 와인 한 모금을 넘겼다.


그러자 원영이가 내 눈치를 본다.

표정이 너무 굳었나.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돼.”

“응? 뭐를?”

“야구, 말이야. 당신도 나도 건강하니까 돈이야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그래. 우린 젊고 두 사람이 벌면 어떻게든 될 거다.

근데 그건 내가 싫다.


나라는 사람을 믿고 결혼을 선택했던 원영이.

지금까지 못난 남편 뒷바라지만 했던 원영이다.

맞벌이를 시작하게 되면 원영이의 꿈은 영원히 접힐 거다.


“원영아.”

“응?”

“새벽이 유치원 가면 다시 복학하자. 돈은 걱정하지 말고.”


내 말에 손사래를 치는 아내.


“아니야 아니야. 복학해도 되겠다 싶으면 내가 먼저 이야기할게.”


그녀가 조금은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내 꿈은 처음부터 윤재성에게 맞춘 꿈이었잖아.”

“아···”


지구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사람이 되겠다던 나.

그런 내게 어울리는 여자친구가 되겠다며, 물리 치료사를 목표로 했던 원영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원영이의 꿈에는 지구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남편이 없다는 것을.

정말 원영이한테는 미안한 것뿐이네.


“아니아니. 자기야 그런 뜻이 아니라.”


원영이는 내가 오해를 했다고 착각했는지 아까보다 바쁘게 손을 흔들어 댔다.


물론 그녀의 말을 오해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한 말이었다는 것도 안다.

그냥 그 마음이 너무 예뻐, 그녀에게 더 미안할 뿐.


한때 레전드였던 투수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내색은 안 했지만 너무나도 끌렸던 그 말이.


―재성이 너 투수 한번 안 해 볼래?

―메츠의 호우가 보증할게. 네 커브, 무조건 먹힌다.


과연 윤재성은 다시 타자로 부활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희박한 확률로 부활한다고 해도 천재 유격수 윤재성은 없을 거라는 걸.

과거의 영광 때문에 미련이 남은 거라는 것도.


“재성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뭐냐면 말이야.”


사랑하는 내 아내의 얼굴을 보니 확신이 섰다.


그래, 어차피 밑져야 본전.

타자가 안 된다면 투수로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내 꿈만큼이나 소중한, 원영이 꿈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약속할게. 세상에서 가장 야구 잘하는 남자친구가 되겠다고.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 내가 원영이에게 했던 지키지 못한 약속.


“약속할게.”

“응?”


면목은 없지만, 술기운을 빌어 다시 한번 아내에게 약속하려 한다.


“새벽이와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지구에서 가장 멋진 야구 선수가 될게.”


이번에는 지킬 수 있는 약속으로 말이다.

원영이는 한층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대답했다.


“사랑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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