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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제발좀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아빠는 천재 커브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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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誠衍)
작품등록일 :
2024.08.05 21:51
최근연재일 :
2024.09.06 16: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9,335
추천수 :
892
글자수 :
164,780

작성
24.08.16 11:44
조회
1,662
추천
25
글자
12쪽

청백전(2)

DUMMY

13. 청백전 (2)




“형님?”


사인 교환을 끝낸 이호령은 마르티네스의 몸쪽, 정강이 높이에 미트를 댔다.

하지만 윤재성이 공을 던졌을 때, 커브의 포물선은 미트보다 훨씬 높은 곳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고. 이래서 커브가 어렵다는 건데.’


그렇게 이호령이 미트를 조정하려고 들어 올리는데.


― 너. 지금 집중하지 않으면 후배들 앞에서 쪽을 팔게 된다.


그건 포수의 직감이었다.


이호령의 경험상, 경력이 만든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호령은 일단 바짝 집중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일단 등골이 서늘했으니까.


그 서늘함의 정체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급경사를 만드는 미친 커브를 마주했거든.

그 모습은 마치 1차 추진기가 힘을 다하고 2차 추진기로 도약하는 로켓 같았다.


뻑.


동체 시력과 경험을 이용해 포구에는 성공한 이호령.

덮밥 기술을 활용해 편하게 받은 척 연기는 했지만, 포구한 위치가 요구한 위치보다 아래에, 그리고 뒤쪽으로 밀려 있었다.


경험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천하의 이호령도 커브를 놓쳤을지 모른다.


“형님!”

“왜 인마?”

“공 주셔야죠.”

“아 맞다.”


이호령은 윤재성에게 공을 넘겨 주며 씩, 미소 지었다.


미트도 감을 잡기 어려운 커브다.

그보다 무겁고 긴 야구 방망이는 어떻겠는가?


‘이 커브. 진짜 물건인데?’


그러나, 아직은 섣불렀다.

열 개 중에 하나만 잘못 던져도 담장을 넘어갈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거지 같은 커브의 숙명.

첫 커브는 완벽했지만, 실수가 없어야 ‘세컨드 피치’로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던질 공은 많이 남았다.

차차 확인하면 된다.


뻐어어억―!


낮은 커브 이후, 높은 코스로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이 미트를 때렸다.

오전에도 느꼈지만, 이호령이 직접 받아 본 포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요놈 봐라. 미트 속에서도 꿈틀대네.’


다른 건 몰라도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커브도 그렇고 공에 회전 먹이는 게 다른데? 저 좋은 손가락으로 왜 슬라이더는 못 던진다는 거야?’


그런 의문도 들었지만.

어쨌든 이호령은 지금, 이 청백전 참가 의사를 번복한 걸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투수의 공을 보고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거든.


‘어쩌면.’


다 타 버려 재가 된 줄 알았던 이호령의 가슴에 화륵, 무언가가 점화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호령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쳤다.


“야! 이번에 느린 커브 하나 던져 봐!”

“마르티네즈 듣고 있는데요 형님.”

“괜찮아! 얘 한국어 잘 몰라.”

“예. 근데 커브는 영어 아닌가요?”

“호령. 커브. 들었다.”

“얘 말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해! 미트 보고 제대로 던져라! 엉덩이 차이기 싫으면!”

“예 형님!”


* * *


[Live! 드래곤즈 자체 청백전!]

└ 미친···

└ 커브;;; 미쳤네 진짜;;

└ 커브도 놀랍지만 진짜 153을 찍는 게 ㄹㅈㄷ ㅋㅋ

└ 얜 재능이 다르다 씹 ㅋㅋㅋㅋㅋ

└ 커브 저거 안 잡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나오는 거 아니냐?

└ 나 지금 서울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기 중이다. 장로 드래곤 하나만 바운드 ㄱㄱ

└ ㅗ

└ 여기가 공 7개 모으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드래곤즈인가요?

└ 아닙니다. 돌아가 주세요.


* * *


“코치님. 반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슨 일이냐뇨.”


멍청한 표정으로 청백전을 보고 있던 투수 코치 박성균이 이진호에게 물었다.


윤재성은 예고한(?) 93km/h 슬로 커브로 마르티네즈를 삼 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걸로 모자라, 부산에서 트레이드로 온 2루수 조성훈을 152km/h 빠른 볼로 삼진을 잡아냈다.

별생각 없이 보면, 투수가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은 흔할 일이었지만.


안정감이 돌아이급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어떤 스포츠든 ‘결과’를 만들어 주는 ‘과정’이란 게 있다.

같은 두 타자 연속 삼진도 불안불안한 제구력, 잘 맞은 파울 타구 등등, 힘에 부치는 느낌을 주며 타자를 잡아내는 투수가 있는 반면.

윤재성은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스테이크를 써는 것처럼, 아주 느긋하고 편안하게 삼진을 잡아내고 있다.


마운드에서 보이는 안정감도 투수의 역량이다.

벤치가 지레 불안해 투수 교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투수 교체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그날 팀의 경기를 망치는 데에 충분히 관여하니까.


“이제 막 마운드에 오른 신인 놈이 저게 말이 됩니까?”

“저게 왜요?”

“왜라뇨? 굳이 따지면 신인은 아니지만, 이 코치님도 투수 해 봐서 알잖아요. 1년 차 투수가 10년 차 베테랑처럼 하는데 안 놀랍습니까?”


박성균도 현역 때는 투수였다.

아무리 청백전이라도, 투수가 마운드에서 저 정도 여유를 갖기 쉽지 않다.

저건 소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니까.


그런데 투수 코치의 질문에 이진호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코치님. 저도 신인 때는 저렇게 했는데요.”


투수 코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캠프에 와서 이야기를 몇 번 나눠 봤지만, 야구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리고 저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도 신인 때 저랬다니, 윤재성 역시 궁합이 맞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재성이는 코치님이 계속 맡아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스트라이잌― 투!”


스윙 스트라이크.

커브를 노리고 들어갔는데도 파울이 아닌, 헛스윙이 됐다.


그리고 윤재성이 상대한 세 명의 타자는 모두 1군 선수.

KBO 1군 타자들이 커브를 노리고 들어갔는데도 맞히질 못한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처음 상대하는 투수와 각이라도 이건···’


― Park. 재성은 클로저로 쓸 거야.


감독님은 윤재성을 마무리 투수로 쓸 생각이신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박 코치는, 투 피치에 커브가 세컨드 피치인 투수에게 무슨 마무리를 시킬까 싶었지만.


“스트라이잌― 배터 아웃!”


이 정도 결정구와 빠른 볼이라면, 공략집이 생기지 않는 이상 마무리 투수로 충분히 먹힐 만한 내용이었다.


그나저나.


‘뭐 하는 거야. 정신 사납게.’


투수 코치의 눈에 아까부터 주변을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하는 백팀 투수 장범준이 보였다.

투수 코치는 장범준을 불렀다.


“마침 잘됐다. 너도 불펜으로 가 있어라.”

“알겠습니다. 근데 코치님.”

“응?”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 그래?”


질문을 하겠다면 장범준은 아까와 같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장범준은 마음을 먹은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 저랑 재성이가 라이벌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뭐? 당장 불펜으로 안 꺼져?!”


드래곤즈엔 박 코치의 상식 밖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다.

투수 코치는 사직서를 준비할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로 했다.


* * *


“Yun. 더 던질 수 있지?”

“예.”


감독님은 내게 5회도 맡겼다.

그리고 나보고 리드를 하라던 이호령은.


‘커. 브. 해!’


저렇게 같은 사인을 두 번씩, 삿대질하는 것처럼 내는데, 어떤 투수가 고개를 안 끄덕이고 배기겠는가.


그렇게 5회부터 강압적인(?) 커브 사인이 많아졌다.


우상단 유인구, 좌하단 승부구, 우하단 유인구, 상단 유인구.

생각해 보니 같은 코스가 한 번도 없다.


마치.


‘여긴 어때?’

‘이번엔 쉽지 않을걸?’

‘이 코스도 가능해?’


내 커브 제구력을 시험하는 듯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트라이크존, 우타자의 아웃로우 코스에 미트가 들어가 있다.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유인구도 아닌 커브로 승부구.

나는 형님이 원하는 대로 그곳에 정확히 슬로 커브를 꽂아 넣었고, 타자는 유인구라 생각했는지 서서 지켜봤다.


“스트라이잌― 배터 아웃!”


청백전의 5회가, 내 임무가 끝난 거다.


그렇게 청백전은 백팀의 승리로 끝났고, 내 청백전 성적은 2이닝 4K, 하나의 땅볼과 하나의 파울 플라이가 있었다.


성적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도 만족스럽다.

지난 9월 등판에서 부족한 실력을 수 싸움에 기대어 극복해 냈다면.

오늘은 수 싸움을 받쳐 줄 실력, 공으로 압도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


이대로만 정진하자 윤재성.

할 수 있다.


만족스러운 일과가 끝나고 퇴근을 하는, 오늘 2타수 무안타의 이호령이 보였다.


“형님, 사케 드시러 가십니까?”

“넌 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오키나와만 오면 사케 마시는 사람이요. 적당히 드세요. 무릎도 안 좋은 양반이.”


이호령은 ‘그래, 다 내 업보다’라는 말을 한숨으로 대신했다.


“스윙하러 간다 인마. 그때 못 했던 우승, 이번에는 해야 할 거 아니냐.”

“···”


생각해 보니 이 형님과 내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2043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꿈을 잃었다는 거다.

그 아픈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형님의 단어 선택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근데 너 슬라이더 진짜 엉망이더라. 개막까지 무조건 완성시켜 놔라. 나한테 엉덩이 차이기 싫으면.”

“형님 스윙보다는 나았던 거 같은데.”

“하! 많이 컸다 윤재성.”

“악! 아파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억울하게 잃었던 그날의 꿈을 여섯 시즌 만에 되찾으려 한다.

이번에도 못 이룰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싸워 볼 생각이다.


* * *


“또! 또 보꾸야!”

“또 본다고? 인제 그만 보자.”


서울 드래곤즈의 자체 청백전이 있던 날.

재성의 딸 새벽이는 본 방송으로 모자라, 하이라이트만 정확히 열 번을 시청했다.


“시러! 볼 거야! 틀어 조!”

“어쩔 수 없지.”


보름 넘게 아빠를 못 본 탓일까?

오늘따라 칭얼거림도 많고 떼도 많이 쓰는 새벽이었다.


“아빠 선슈, 던집니닷! 꺄! 삼지인―!”


재성만 나오면 좋아하는 보며, 원영은 괜히 새벽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11번째, 윤재성 하이라이트를 시청하고 있는데.


빼애에―

갑자기 새벽이가 우는 게 아닌가.


“엄마― 아빠아 언제 와?”

“새벽아. 아빠 다섯 밤만 자면 올 거야.”

“디인―짜?”

“그럼.”

“으아앙. 아빠아―”


또래보다 어른스럽다지만, 새벽이도 어쩔 수 없는 다섯 살.

오늘따라 아빠의 빈자리에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거실이 한바탕 눈물바다가 되고 있을 때였다.


[딸 바보♥]


재성에게서 화상 전화가 걸려 왔다.


“새벽아. 아빠 전화 왔네.”

“아빠? 아빠다! 엄마― 잠시마안.”

“응?”


딸 새벽이가 옷깃으로 눈물과 콧물을 어설프게 훔치더니 꽤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벽이 준비됐오.”

“자 그럼 아빠 전화 받아 볼까?”

“응!”


원영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재성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아빠아―!”

― 공주님―!

“아빠 선수. 오늘 잘 던졌오요.”

― 우리 공주님. 아빠 던지는 거 봤어요?

“응! 아빠 선수 엄―청! 잘 던져쏘―! 공이 이로케 날아서! 빵!”

― 빵!

“헤헤.”

― 하하.


사랑이 넘치는 부녀의 통화에, 보다 못한 원영이 끼어들었다.


“아이고― 눈물겹다 눈물겨워. 누가 보면 1년은 떨어트려 놓은 줄 알겠네.”

― 에에. 엄마가 새벽이한테 질투한대요.

“치.”


그런데 갑자기 잘 통화 중이던 새벽이가 안절부절못해했다.

그러더니.


“새벽이 안 울었거등. 눙물 안 흘려쏘.”


원영의 말에 제 발 저린 새벽이가 실토 아닌 실토를 한다.


― 어? 그러고 보니까 새벽이.


다섯 살 아이가 눈물을 닦아 봤자 얼마나 잘 숨기겠는가.

화면을 유심히 보던 재성.

새벽이가 울었다는 걸 알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연인지, 아빠의 표정을 읽었는지, 새벽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공주님은 씩씩하게 잘 이쓰니까, 아빠 선수도 울면 안 돼요 알아찌?”

― 으, 응! 아빠 안 울어요.

“아빠 파이팅!”

― 응 파이팅!


아빠 앞에서는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새벽이와의 통화가 끝났고, 타이밍 좋게 재성이 묵고 있던 숙소 문이 열렸다.


“재성이 형님. 진규 형님이랑 범준이 형님이 요 앞에 맛있ㄴ···”

“흑. 새벽아아― 아빠가 열심히 할게.”

“어··· 형님. 재성이 형님은 못 갈 것 같은데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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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백전(2) 24.08.16 1,663 25 12쪽
12 청백전(1) +1 24.08.15 1,692 25 12쪽
11 스프링 캠프(3) +2 24.08.14 1,807 26 12쪽
10 스프링 캠프(2) +1 24.08.13 1,910 30 11쪽
9 스프링 캠프(1) +2 24.08.12 1,978 29 12쪽
8 시작(2) +1 24.08.11 2,002 32 10쪽
7 시작(1) +3 24.08.10 2,121 33 12쪽
6 커브의 피가 흐른다 +3 24.08.09 2,259 33 13쪽
5 커브의 스승(2) +4 24.08.08 2,357 39 16쪽
4 커브의 스승(1) +3 24.08.07 2,386 43 16쪽
3 투수 한번 해 볼래?(2) +5 24.08.06 2,525 4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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