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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제발좀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아빠는 천재 커브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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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誠衍)
작품등록일 :
2024.08.05 21:51
최근연재일 :
2024.09.06 16: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9,453
추천수 :
892
글자수 :
164,780

작성
24.08.06 08:29
조회
2,832
추천
40
글자
12쪽

투수 한번 해 볼래?(1)

DUMMY

2. 투수 한번 해 볼래?(1)




토요일 낮 경기.

타격 코치가 윤재성에게 다가왔다.

윤재성은 무릎 위에 놓인 장갑을 쥐었다.


“대타다 재성아. 승훈이 차례에 교체할 거야.”

“예.”


대타 윤재성.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윤재성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참 낯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윤재성이란 야구 선수는.


―드래곤즈 1라운드 지명하겠습니다. 굴곡고 내야수 윤재성 선수.


204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드래곤즈에 지명됐고.


―대타자로 데뷔전을 치르는 윤재성. 투투에서― 칩니다―! 우중간으로 뻗는 타구! 타구가! 담장을―! 넘어― 갑니다―! 윤재성의 역전 투런포!


역전 투런포로 임팩트 넘치는 데뷔전을 쏘아 올렸으며.


“2041 KBO 신인왕은―!”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윤재성 선수입니다.”

“윤재성 선수, 축하합니다.”


데뷔 해 신인왕과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악명 높은 프로 2년 차는 어땠는가.


―또 갑니다―! 윤재성! 윤재성이―! 또 넘겼어요! 윤재성의 시즌 39호와 40호가 한 경기에 연달아 나옵니다! 이렇게 홈런 단독 선두가 되는 윤재성!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웃듯 41홈런을 치며, 그 어렵다는 유격수 홈런왕이 됐고.


―윤재성이 칩니다―! 타구가! 타구가―! 유격수 정재명을― 뚫어냅니다! 이제 3할 5푼 7리! 타율 1위를 탈환하는 윤재성!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윤재성은 타율! 타점! 안타! 득점! 홈런! 출루율! 장타율! 도루 부문까지! 무려 타격 8관왕이 확정됩니다!

―스윙 삼진! 이렇게 경기 종료! 서울 드래곤즈는 2위 확정! 윤재성은 전무후무한 타격 8관왕! 오늘 드래곤즈에 겹경사가 생긴 날입니다.


3년 차에는 타격 트리플과 플레이오프 직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그런 윤재성이 누군가의 ‘대타’라니.

어색할 수밖에.


“스트라이잌― 투!”


어느새 카운터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쐐애액―!

대타자 윤재성의 몸쪽으로 밋밋하게 파고드는 패스트볼.

타격 8관왕 윤재성이었다면, 완벽한 타이밍에 우측으로 당겨 투수의 무릎을 꿇렸겠지만.

지금의 윤재성에게 몸쪽 공은, 생각하기 싫은 주마등부터 보여줬다.


퍽!


―시발! 미친 새끼들아!

―앰뷸런스! 앰뷸런스!


플레이오프 4차전.

자칫 실명으로 이어질 뻔했던 안와골절.


날아오는 공에 윤재성의 안면이 욱신거렸고, 몸이 뻣뻣해졌다.


뻑!

빠른 볼은 윤재성을 지나 미트에 박혔고, 구심이 가차 없이 주먹을 쥐었다.


“스트라이잌― 배터 아웃!”


삼진을 당한 윤재성은 벤치의 눈치부터 살폈다.


답답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흔드는 감독.

시선을 피하는 동료들.


그런 벤치를 보며 윤재성은 느꼈다.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 * *


후.

남모를 감정 소모 때문일까?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투수들은 몸쪽 코스를 집요하게 노렸고.

나는 몸쪽 코스에 꼼짝하지 못했다.


입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그것도 벌써 3년째다.


내 나이 스물일곱.

이번 시즌도 윤재성의 부활은 없었다.

1군에 합류한 것도 9월 확장 로스터가 다였던 올해.

얼마 전에 만났던 단장님은 천천히 기다려 주겠다며 나를 격려했지만.

이대로 간다면...


―4층.


야구를 하면서, 지금이 가장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다.

아마 윤재성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성격상 벌써 때려치웠을 거다.

그러니까 내게 어른스러움을, 그리고 책임감을 알려준 건.


― 문이 열립니다.


긴 안내 멘트를 지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삑삑삑 띠리리링♪


꼭 한 번은 틀리는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서 와요.”

“아빠!”


미소가 너무 예쁜 아내와, 펄쩍 뛰며 나를 반기는 예쁜 우리 딸.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현관에서 날 반긴다.

난 딸 새벽이와 아내를 평소보다 깊고 또 진하게 포옹을 했다.


그런 나를 귀찮은 내색 없이 받아주는 아내.

내가 꼬옥 안자, 병아리 손으로 내 바지춤을 앙증맞게 쥐는 내 금쪽이.

이들이 바로 내게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사랑을 알려준 내 가족이다.


방전된 배터리가 빠르게 충전됐다.

오늘 받았던 스트레스가 싹 녹아내렸다.


얼마나 안고 있었을까?

아내는 내 등을 토닥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내일 저녁에 한잔할까? 월요일엔 경기 없잖아.”

“술? 당신 술 안 좋아하잖아.”

“누나가 윤재성 넋두리 좀 들어 주려고 그러지.”

“갑자기?”

“퇴근하고 아무 말 없이 몇 분씩이나 안고만 있는데 갑자기는 무슨. 이 누나가 해결은 못 해 줘도 무슨 일인지는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


아내의 이름은 장원영. 나보다 한 살이 많다.

그래 봤자 28세로 어린 나이지만.


회전고 야구부에 입단했을 때 한 학년 선배였던 원영이는 야구부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내는 항상 전교 3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했고, 잘생긴 선배들에게 심심치 않게 고백받을 정도로 예뻤다.

잘생긴 선배들뿐이겠는가? 야구부엔 원영이를 짝사랑하는 남정네들뿐이었다.


‘저런 여자가 나를 좋아할 리 없지.’


누구보다 내 분수를 잘 알았기에. 나는 그녀에게 빠지지 않고 야구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그림에 떡이 어느 청춘 로맨스 영화처럼 나를 학교 옥상으로 부르더니.


―재성아. 누나는 야구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좋더라.

―누나···

―재성아.

―저도요. 요즘은 돌핀스의 황석현이 그렇게 잘 치던ㄷ, 으억!


띨빵하게 대답하다 등짝 스매싱을 맞았었지.

어쨌든 말해 뭐 해.

여신님이 좋다는데 나도 좋지 않고 배기겠는가.


우리는 다른 커플들처럼 설레는 미래를 그렸다.

나는 원영이의 이상형인 지구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원영이는 그런 남자친구에 맞는 여자친구가 되겠다며, 스포츠 재활학과에 가겠다는 꿈을 키웠다.


나는 참 나쁜 놈이다.

안와골절로 입원해 있을 때, 매일같이 간호하러 오는 원영이가 너무 예뻐 청혼해 버린 것도 모자라.

새벽이라는 최고의 예물까지 준비해 버려 원영이의 꿈을 언제까지고 미루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원망 한마디 하지 않고 잘 따라와 준 원영이.

그녀에게만큼은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아내는 신발을 신더니 새벽이가 들리지 않게 말했다.


“그럼 장 좀 봐야겠는데? 갔다 올게. 세일 오늘까지거든.”

“같이 갈까?”

“새벽이 데려가면 힘들어지는 거 당신도 알잖아. 새벽이랑 놀아줘요. 누나 빨리 갔다 올게요.”


아이 달래듯 내 궁둥이를 툭툭 치는 아내.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댔나.

새벽이는 금새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새벽이도! 새벽이도 가꼬야.”

“엄마 쓰레기 버리고 오는 거야.”

“치! 고짓말.”

“진짠데. 우리 예쁜 공주님은 아빠랑 야구 놀이 하면서 놀자.”

“야구 놀이?”

“응 공주님이 좋아하는 야구 놀이.”

“흥! 새벽이가 공주님이니까 넘오가 주는 고야.”

“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예쁜 공주님.”


하루가 갈수록 말이 늘어가는 새벽이.

나는 새침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새벽이가 너무 예뻐, 뽀뽀 세례를 날렸다.


* * *


아내가 장을 보러 가고 나는 새벽이를 맡았다.

원영이를 닮아 어딜 가나 예쁘다고 주목받는 천상 공주님이지만.

또 내 딸이라 그런지 체력도 좋고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한다.

또래 여자아이들이 소꿉놀이 같은 걸 좋아한다면, 새벽이는 요즘 투수 놀이에 꽂혔다.


“히히.”


야구 모자를 쓴 새벽이가 배시시 웃으며, 자기 주먹만 한 플라스틱 공이 든 망을 질질 끌고 왔다.

이 공으로 방문에 걸린 표적지에 공을 던지며 노는 것이 바로 투수 놀이다.

물론 윤새벽 투수가 지칠 때까지 말이다.


“투수 윤새벽. 던집니다!”


새벽이가 자세를 잡으면 나는 오늘도 새벽이만의 해설 위원이 된다.


“던집미닷!”


본 건 많아서 와인드업에 키킹까지 하는 새벽이.

누가 야구 선수 딸 아니랄까 봐 자세가 꽤 그럴싸하다.

자세뿐만이 아니다.

네 살 아이가 정확히 던져 맞추기에 꽤 거리에 있는데도, 고사리손으로 던진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표적 중앙에 정확히 꽂혔다.


“스윙 삼진―! 사나바 왕국의 호롱이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윤새벽 선수!”

“와아―!”


더 신기한 건 새벽이가 던지는 공은 모조리 커브 회전이 걸린다는 거다.

회전뿐만이 아니다. 던지는 그립과 던지는 기술까지 커브다.


그렇게 던지면 정확도와 속도 면에서 떨어진다고 몇 번이나 새벽이의 그립을 고쳐 줬지만.

고쳐지긴커녕, 오히려 새벽이의 짜증만 부추기더라고.

놀이인데 미안하기도 하고 또 크면 저절로 바뀌겠지 싶어 지금은 그냥 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항상 던지는 곳이 표적지 중앙이기 때문에 잘 던지는 게 아닐까 하는.


나는 만세를 하며 좋아하는 새벽이에게 말했다.


“윤새벽 투수. 이번에는 여기로 던져 볼까?”

“응. 조아.”


나는 새벽이에게 항상 던지던 표적지 중앙이 아닌 한참 아래쪽을 가리키며 커브를 주문했다.


“얍!”


새벽이의 앙증맞은 기합과 함께 커브가 긁힌다.

아무리 속 빈 플라스틱 공이라지만.

이 낙차와 컨트롤은.


턱.


“와···!”


4살짜리 아이가 알려 주지도 않은 커브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아빠라는 팔불출 자리를 빼고 봐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커브에 재능이 있다.

남자였다면 당장 야구를 시켰을 텐데, 아쉬움이 들 정도로.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과열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커브로 삼진을 잡는 윤새벽! 이걸로 여덟 번째 삼진!”

“사암진―! 흠흠!”


허리에 손을 올리며 콧김을 부는 새벽이.


너무 귀엽다. 너무 사랑스럽다. 깨물어주고 싶다.

내 보물 새벽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아깝지 않다.


“히히. 뽀뽀 그만해. 까륵.”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 * *


다음 날.

나는 피닉스와의 3차전을 앞두고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출전할 확률은 희박하지만, 출전했을 때 만전인 상태여야 기회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는 나만의 특별한 몸 풀기 루틴이 있다.

그것은 바로 피칭.


뻐어억―!


나는 경기 전에 빠른 볼 20개를 던지고 경기에 들어가야 하는 징크스가 있다.

그러면 훈련하고 남은 묘한 찌뿌둥함도 사라지고, 경기에서도 방망이가 잘 돌아가더라고.


뻐어억―!


던진 공이 맛있게 꽂히자, 공을 받은 후배 포수가 엄지를 들었다.


“143? 144? 재성이 형님 오늘 폼 미쳤는데요?”

“그렇지? 오늘 좀 감기긴 하네.”

“하하, 투수 해도 되겠어요.”


투수라.

생각해 보면 투수도 나쁘지 않게 했었다.

타격과 수비 재능이 100년에 한 번 나올 인재라는 극찬을 받아서 그렇지.

언론, 감독, 스카우트, 해설 위원 등등, 만나는 전문가들마다 내게 타자를 적극 추천했고, 그래서 잴 것도 없이 타자의 길을 걸었었다.


어느새 던진 공은 19개.

마지막 공 하나를 남기고 후배가 묻는다.


“형님, 마지막 공은 변화구 어떠세요?”

“변화구? 오랜만에 그럴까?”

“슬라이더? 체인지업? 뭐 던지실래요?”

“슬ㄹ.”


내가 슬라이더라고 말하려던 찰나.


―다시 한번 커브로 삼진을 잡는 윤새벽.

―삼진! 흠흠!


왜였을까?

새벽이가 던진 커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나도 한번 던져 볼까?


“커브. 낮은 코스로 낚을 거야.”

“옙! 포수 박재호! 낮은 커브 대기 중!”


나는 새벽이가 쥐었던 커브 그립을 잡았고.

머릿속에 있는 커브 이론을 모두 끄집어 그대로 몸에 실었다.


촤륵.

확실히 다른 브레이킹볼보다 손가락에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이 정도면 대충 커브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궤적이 나올 것 같다.


그렇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벅!

포수의 미트를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


공을 받은 포수도.


“응?”


동료 투수들도.


“···?”


지도하던 코치까지.

소란스럽던 불펜에 적막이 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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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작(2) +1 24.08.11 2,005 3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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