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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쑤심 님의 서재입니다.

멈춰버린 시계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천명쑤심
작품등록일 :
2021.03.11 16:08
최근연재일 :
2021.10.0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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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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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경계. 6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이래서 서로 편 갈라 싸우는 건 야만적이라니까.”




녹색 머리의 여자는 왼쪽 눈의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이마부터 광대 아래까지 이어진 긴 상처는 아물지 않아 그녀의 눈동자 같은 붉은 핏물이 맺혀 있다.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황머리의 사내는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사내는 여자의 상처를 만져보고 싶었다. 물론 그랬다간 눈앞의 여자는 레큐런스와 인화 못지않게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의 분노는 저들처럼 으르렁거리는 걸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사내는 엄지와 가운데손가락을 비비적거렸다.




“글쎄······. 꼭 그렇지만도 않잖아.”




카스라딘의 말에 엘렌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녀는 카스라딘을 쳐다보았다. 엘렌은 상처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머리카락이 상처를 파고든 덕분이었다. 엘렌은 녹색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카스라딘은 자신의 주황색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소파에 걸치고 있던 손을 펼쳤다. 그러자 술잔이 소리 없이 날아왔다. 엘렌은 꿀을 잔뜩 바른 가래떡을 먹었다.




“뭐가?”




카스라딘은 술잔을 공중에 띄워놓았다. 그가 삐딱한 시선으로 엘렌을 쳐다보았다.




“아니, 뭐······.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반의 수은 자리에 앉아 있던 네 입에서 나온 말이라 신뢰가 안 간다고나 할까······.”




엘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피로에 찌든 눈을 비볐다.




“여전히 말하는 본새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좀 더 확실하게 말해줄래? 맨날 그렇게 말끝을 흐리니까 여기저기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놈의 수염도 좀 자르고! 왜 그 잘생긴 얼굴에 너저분한 수염을 덕지덕지 처발라 놓은 거야? 지저분하게.”




카스라딘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멋쩍게 헛기침하고 말했다.




“아니······, 저번에 셀브림이 인상이 너무 순해 보인다고 수염 좀 길러보라고 해서······.”




엘렌이 깊은 한숨과 함께 손을 내저었다.




“너네 무슨 부부야? 뭘 그렇게 서로한테 오지랖이야? 너희가 그렇게 서로 물고 빨고 해대니까 맨날 욕 처먹는 거 아냐?”




카스라딘은 잔뜩 삐진 얼굴로 천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치켜든 턱 아래 보이는 목에는 목이 졸려 생긴 듯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멍이 아닌 문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엘렌은 삐진 카스라딘을 무시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카스라딘에게 숟가락을 집어던진 엘렌은 국수를 먹었다. 문득 그녀의 눈에 카스라딘의 눈동자와 같은 하늘색 머리를 가진 여자가 들어왔다. 엘렌은 입 안 가득 국수를 채워 우물거리며 하늘색 머리의 여자를 불렀다.




“선배한테 아는 척도 안 하네, 이제?”




“겍······, 수은······.”




제국 실반의 제3작사 부사령관, 리산드라는 쳐다보기 싫은 흉물을 보는 눈으로 엘렌을 주시했다. 엘렌이 국수를 빠르게 넘기고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쳐다보면 나 상처받는다구.”




리산드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렌은 숨을 곳을 찾는 리산드라를 재밌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결국 피할 곳을 찾지 못한 리산드라는 엘렌의 손짓을 따라 그녀의 곁으로 가 앉았다. 리산드라는 잔뜩 얼굴을 구긴 채 푸딩을 먹었다. 리산드라가 말했다.




“······일 그만두고 당분간 논다며? 뭐하는 짓거리야, 너?”




신경질적인 리산드라의 반응에 엘렌은 리산드라의 푸딩을 훔쳐먹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엘렌은 이마에 핏대가 선 리산드라의 모습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식탁에 다리를 올렸다. 카스라딘이 다시금 인상을 썼다.




“저기······, 엘렌.”




“응?”




“식탁에 발을 올리는 건 좋지 않다고 할까······, 굉장히 지저분한 행동이라고 할까······.”




엘렌이 씩 웃었다.




“어쩔까나······? 리산드라 양? 발을 내릴까요, 말까요?”




“어쩌라고? 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내 푸딩 그만 처먹고.”




엘렌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여전히 리산드라의 푸딩을 먹으며 리산드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리산드라는 점점 없어져가는 푸딩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허나 잠시 후 그녀는 토악질이 밀려온다는 얼굴로 엘렌의 팔을 쳐냈다.




엘렌은 국수에 푸딩을 말아 먹었다. 그 모습에 리산드라는 경기가 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카스라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스라딘의 표정도 리산드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푸딩을 섞어 먹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한 엘렌이 국수에 꿀을 부었다. 참지 못한 리산드라가 빽 소리를 질렀다.




“미친년아!”




“누구? 나? 응? 왜?”




엘렌은 리산드라가 소리를 지른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마주했다. 리산드라는 퍽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짚었다. 카스라딘도 엘렌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리산드라의 기세에 눌려 잠자코 있었다. 카스라딘이 헛기침했다. 카스라딘은 리퍼를 가리키며 말했다.




“흠, 흠. 저기······, 근데 리산드라. 저놈 왜 저렇게 얌전해? 너 혹시 쟤한테 약이라도 먹였다든가······?”




짜증이 폭발한 리산드라는 옆 테이블에 있던 케익을 엘렌의 얼굴에 처박았다. 리산드라는 케익 범벅이 되어서도 호탕하게 웃고 있는 엘렌을 불편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리산드라가 사색이 된 카스라딘의 말에 답했다.




“언제 내가 하는 말을 들어 처먹기나 했냐, 저놈이? 언제나 제멋대로지. 흥. 지가 암만 고상한 늑대인 척 해봐야 저 1세대 괴물들이랑 영웅 앞에선 꼬리 마는 거 말곤 할 줄 없는 동네 똥개새끼일 뿐이지.”




리산드라가 눈을 치켜뜨며 리퍼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팔짱을 꼈다. 카스라딘은 리퍼를 돌아보며 볼을 긁적였다. 세프로스와 유리아는 리퍼를 쳐다보았다. 리퍼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리산드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또 듣네. 하여튼 똥개가 귀는 좋아요.”




“너무 그렇게 쪼아대면 저놈 또 삐진다?”




엘렌은 믿음으로 기적을 일으켜 얼굴을 뒤덮은 케익의 잔해를 치웠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카스라딘이 마시고 있던 술을 빼앗았다. 카스라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엘렌이 카스라딘의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산드라가 말했다.




“저 멍청이는 뭘 하든 알 바 아니고, 넌 언제 돌아올 거야? 그나마 말 통하는 사람이 넌데.”




“안 가.”




“네 자리가 비어서 다른 놈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야. 당장 저거 리퍼 멍청한 새끼랑 채 현이랑 오기 전에도 한판 했어. 레노어 집 근처 아니었으면 진짜 또 지도 다시 만들어야 했어. 그러니 제발 안 온다는 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와서 수은 자리 맡아. 우리 같은 3세대는 2세대 깽판 감당하기 힘들어. 같은 2세대가 끼어야 뭘 하든 하지. 중재기구인 철신과 수은이 제대로 안 돌아가잖아. 철신은 3세대고 수은 자리는 비어서 쟤들 통제가 안 돼.”




엘렌은 자세를 삐딱하게 바꿨다. 엘렌은 한쪽 눈을 감았다.




“철신이고 수은이고 나발이고, 다시 돌아갈 생각 없어. 애초에 로렌크로스가 철신 관두고 나간 시점에서 같은 1세대인 레노어나 알스트레일이 맡았어야지. 왜 너 같은 3세대 꼬맹이를 철신 자리에 앉힌 거야? 쟤랑 레노어는 뭐했어?”




리산드라가 신경질적으로 소파에 뒷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그녀가 짜증을 냈다.




“둘 다 안 한다잖아! 2세대 애들도 안 한다고 빼니까 별 수 있냐? 3세대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맡는 수밖에.”




“오잉? 1세대들이야 워낙 내키는 대로 하니까 그렇다 치고, 철 금하은이랑 벨타레스, 카스타콰르는 왜? 걔들 철신철신 노래 부르고 다녔잖아?”




“아 몰라. 3대 철신이 2대 잡고 그 자리 올라간 것처럼 4대도 그렇게 올라갔다가 갑자기 그만두고 미친 공작이랑 잿더미 왕 밑으로 갔잖아. 걔들은 지들이 로렌크로스 잡고 철신 올라가는 게 목적이었지 텅 빈 자리 오르려고 지랄한 게 아니라고 염병을 그냥. 병신들! 로렌크로스한테 처 찢길까봐 대들지도 못한 놈들이 말만 아주그냥 청산유수야.”




엘렌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로렌크로스는 많이 무서우니까. 응응. 조용하게 화내는 사람의 정석이라고 할까?




리산드라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리산드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엘렌은 남 일이라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험악해지는 리산드라를 보며 카스라딘은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








델리아는 바쁘게 뛰어다니는 바네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델리아는 잘게 썰린 사과가 가득 든 접시에 포크를 가져갔다.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그녀는 제국 발라의 8군단 부군단장 아즈리엘이 주는 사과 음료를 받았다. 아즈리엘은 델리아의 곁에서 얼굴에 책을 덮은 채 자고 있는 10군단의 부군단장인 데메르페일을 쳐다보며 말했다.




“바네사는 왜 저렇게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거야?”




델리아는 아즈리엘의 은색 머리와 붉은 눈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분명 예전 아즈리엘은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이었다. 델리아는 자신의 금색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녀가 말했다.




“그보다, 너 누구야?”




아즈리엘은 콧등을 긁적였다. 델리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지금은 이라세온이지.”




채 한원은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그는 아즈리엘과 델리아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델리아, 넌 이라세온이랑 만난 적 없던가?”




“얼간이 하나의 몸에 사는 다른 얼간이들까지 알 필요 없잖아. 집주인만 알면 되지 세들어 사는 놈들까지 일일이 기억하는 건 낭비야.”




한원은 밝게 웃으며 아즈리엘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그는 입을 닫고 있는 아즈리엘을 쳐다봤다. 아즈리엘이 자신의 여러 인격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 판단한 한원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데메르페일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델리아 네가 웬일로 로엔델 님을 따라왔네? 평소에는 말도 섞기 싫어했잖아. 무슨 바람이 부신 걸까?”




델리아는 포크로 집은 사과를 먹으려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한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포크째로 사과를 한원의 얼굴에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다.




“안 그래도 저 광신도 사이비 놈이랑 오고 싶은 마음 없었어. 난 ‘하늘보루’ 형제님이랑 오고 싶었어. 큰언니가 같이 가라고 성화를 부려서 온 거뿐이야. 이스럽트 자매님이랑 힐라 언니가 거드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누가 좋아서 저런 병신이랑 어울리는지 아냐?”




“그 하늘보루, 브리나웨 님은 로엔델 님과 굉장히 사이가 좋잖아?”




“저 광신도 사이비 놈은 하는 짓이 꼴사납잖아.”




한원은 피식 웃었다.




제국 페스벤은 유일신을 추앙하지 않는다. 그곳은 모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곳이다. 그들은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배척하지 않는다. 다만 로엔델이라는 남자만은 사이비라 부르며 꺼려한다. 온갖 종교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페스벤에서도 로엔델이 말하는 신이란 퍽 특이한 존재를 일컫기 때문이다.




짜증을 내는 델리아의 곁으로 붉은 머리와 붉은 눈을 가진 흰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델리아를 뒤에서 껴안았다. 델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연 유화는 델리아의 머리에서 나는 달콤한 사과향을 음미했다. 델리아는 들러붙는 유화를 밀어내며 말했다.




“아, 쫌! 징그럽게 왜이래 얘는?”




“다른 분들이 손대지 못하게 영역표시 하는 거랍니다, 델리아 양.”




음흉한 표정을 짓는 유화를 보며 한원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유화는 한원의 시선을 받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자고 있던 데메르페일이 얼굴에 덮어두었던 책을 치우며 말했다.




“도대체가 왜 본인 자는 곳에 모여서는 정신 사납게 난동입니까? 미치셨습니까, 님들? 여기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저기 인화 님이랑 레큐런스 님 곁으로 가시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안 그러면 강제로 보내드리는 게 님들 취향이 맞는 겁니까?”




데메르페일은 부릅뜬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실핏줄이 안구는 물론이고 얼굴 전체를 뒤덮은 모습은 흉측했다. 하지만 그의 곁에 모인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왜 조용히 있는데 와서 지랄들이야? 다 꺼져.”




“미치셨습니까? 님이 제일 문제입니다. 여긴 원래 본인만의 안전가옥이었습니다. 이 사단이 난 건 님이 먼저 와서 주의를 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 안 드십니까?”




델리아는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해보였다. 그러자 한원과 유화는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마침 내면의 인격들과 대화가 끝난 아즈리엘이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 바네사는 왜 저렇게 돌아다니는······, 얼라? 어디 갔데?”




아즈리엘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한원과 유화의 모습을 보곤 화들짝 놀랐다. 아즈리엘이 말했다.




“엄마야, 너흰 언제 왔어? 아까 우리가 팬케이크 얘기할 때 온 듯? 말하는데 좀 끼어들지 마라, 이라세온. 내가 뭘 끼어들어? 가만히 있었는데 나한테 지랄이야? 아니, 미친놈들아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짓이 끼어든다는 말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시끄러워 레세라마. 넌 그냥 계속 잠이나 퍼질러 자지 왜 일어나서 정신없게 해? 정신없는 건 우리가 아니라 쟤들이지. 아, 거 새끼들 조용히 좀 해라. 동창회 왔냐? 넌 또 왜 일어났어? 아주 지랄들을 해서 밑에 있는 애들 다 일어나잖아!”




아즈리엘을 제외한 네 사람은 혼자서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진풍경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혼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즈리엘을 뒤로하고 델리아가 귀를 파며 데메르페일을 바라보았다. 데메르페일은 왜 날 보냐는 얼굴로 델리아를 마주했다. 델리아가 말했다.




“너네 발라 쪽 애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없냐, 왜.”




데메르페일은 눈에만 실핏줄이 가득 올라온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에 안약을 넣었다. 안약이 들어간 눈을 깜박이며 데메르페일이 말했다.




“모란님들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세프로스 님과 본인을 저 님들과 같은 취급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저 님들은 알아주는 미친 님들이잖습니까? 그리고 비교하려면 시체 매 님이나 다른 님들도 많지 않습니까? 왜 본인들을 가지고 그런 소릴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델리아에게 비비적 대고 있던 유화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시체 매도 그대와 같은 발라의 군단장 아닌가요, 페일 군?”




데메르페일은 침묵했다. 그가 다시 안약을 집어 넣었다. 마치 안약을 넣는 중이라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한원은 웃음을 흘렸다.




델리아는 들러붙는 유화를 귀찮아하면서도 그녀의 끈질김에 밀어내는 걸 포기했다. 델리아는 굉장히 불편함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유화는 멈추지 않아 델리아의 짜증을 가중했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유화의 손을 쳐내고 이마를 때린 델리아가 한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왜 네 남자 놔두고 나한테 집적대? 미쳤어? 쟤 눈깔 좀 봐! 나 잡아먹으려고 하잖아!”




“아하하······, 그게······.”




유화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인화의 눈치를 살폈다. 한원은 팔짱을 꼈다. 그는 담배를 피러 간 현의 모습을 찾았다. 두 사람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델리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데메르페일이 말했다.




“현 님이랑 인화 님이랑 사이 안 좋은 거 뻔히 알면서 그러십니까? 저 두 님들은 애초부터 물과 불이라 성격적으로도 안 맞습니다. 본인들이 아르레데나겐이 되기 전부터 으르렁대던 사이 아닙니까?”




델리아가 인상을 썼다.




“뭐라는 거야? 저 둘이 싸우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저거 현이랑 인화랑 물이랑 불이라 사이가 안 좋은 거면, 유화 너랑 한원 너도 사이 안 좋아야 맞지. 너희도 불이랑 물이잖아?”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특히 님 같이 사랑의 사 자도 모르는 불쌍한 님이라면 말입니다. 아무튼 한원 님과 유화 님은 소위 말하는 금단의 사랑, 이란 겁니다. 님은 모르겠지만.”




“개소리를 참 멋들어지게 하네. 안 보는 곳에서 물고 빨고 지랄들을 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을 텐데. 그리고 누가 사랑을 몰라? 나도 알아. 물고 빨고 하는 거 아냐? 나도 해봤어. 사랑.”




인화와 한원은 헛기침을 하며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데메르페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님은 그냥 평생 쌈박질이나 하다가 소멸하십쇼.”




델리아는 데메르페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데메르페일은 맞은 곳을 쓰다듬었다. 한원은 담배를 피러 갔던 현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화제를 돌릴 필요를 느꼈다. 그가 말했다.




“크흠. 아······까부터 유성 님을 찾던 바네사가 회장에 안 보이는 보면 찾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유화가 맞장구쳤다.




“글쎄요? 워낙 신출귀몰한 분들이라 확신하긴 어려운 걸요.”




“바네사 님이 유성 님을 찾았으면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을 건데, 조용한 거 보면 아닐 겁니다. 아마 회장 밖으로 나가서 찾고 있을 겁니다.”




“야, 니들 왜 갑자기 말 돌리냐?”




“거 델리아 님. 눈치가 좀 있어 보십쇼. 님은 어찌 그리도 둔합니까?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 잘 빗은 얼굴값만 해도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너 왜 자꾸 나만 가지고 그러냐?”




“본인은 생리적으로 멍청한 님이랑 같이 있으면 두드러기가 나서 그렇습니다.”




델리아는 누워 있던 데메르페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던 데메르페일은 델리아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한원과 유화는 델리아가 데메르페일을 집어던지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나서야했다.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은 델리아는 여전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아즈리엘을 보며 턱을 괴었다.




“유성을 만나는 거야 벽에 가면 어련히 만나게 될 건데, 바네사 그 녀석도 참 한결 같아. 유성은 전혀 신경도 안 쓸 텐데 말이야.”




“이러니까 님이 사랑을 모른단 소리나 듣는 거 아니겠습니까?”




“너 진짜 죽을래?”




“혹시 모르지! 바네사도 유블락이랑 세트리마처럼 이블레이가랑 이어질······. 우리 거미여왕님을 그 추잡한 아가리에 담지 마라! 찢어버린다! 야, 아즈! 이 새끼 왜이래? 급발진하잖아! 빨리 들어와! 뭐? 갑자기 왜? 세트리마는 이시니엔 저 새끼 마음속의 우상이잖아. 그 아가리에 고귀한 이름을 담지 마라, 벌레들아! 거미가 벌레 아니냐? 죽여버린다 이라세온! 쟤 소멸하면 우리 다 같이 나가리 되는 거야 등신아. 야, 이라세온. 거미는 동물이야. 아 그래? 암만 봐도 벌레 같은데. 죽일 거야! 이거 놔! ······지랄한다. 진짜. 아즈, 빨리 와! 야, 밑에 다 깨워!”




데메르페일은 시끄럽게 떠드는 아즈리엘을 향해 빈 안약 통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데메르페일을 한 대 쥐어박을 기세였던 델리아 또한 아즈리엘에게 포크를 집어던졌다.




시끌벅적한 상황을 지켜보며 재미있어 하던 유화는 한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한쪽에 고정되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한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한원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의 눈에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원은 유화를 바라보며 윙크했다. 유화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집게와 엄지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보였다.




지금 연재하는 게 끝나고 새 작품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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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 6 21.10.06 30 0 20쪽
67 경계. 5 21.10.02 29 0 20쪽
66 경계. 4 21.09.07 32 0 14쪽
65 경계. 3 21.09.06 31 0 17쪽
64 경계. 2 21.09.05 32 0 13쪽
63 경계. 1 21.09.03 31 0 20쪽
62 epilogue. 여명 21.08.19 35 0 20쪽
61 epilogue. 암살의 대가 21.08.16 30 0 12쪽
60 epilogue. 루브타스의 경계 21.08.14 31 0 17쪽
59 epilogue. 게오르그 21.08.13 43 0 23쪽
58 epilogue. 강철 21.08.11 30 0 13쪽
57 epilogue. 피와 철의 사냥꾼 21.08.10 28 0 17쪽
56 epilogue. 붉은 달 21.08.09 28 0 10쪽
55 잿더미. 33 21.08.09 29 0 18쪽
54 젯더미. 32 21.08.07 33 0 22쪽
53 잿더미. 31 21.08.05 28 0 17쪽
52 잿더미. 30 21.08.03 34 0 14쪽
51 잿더미. 29 21.08.01 32 0 19쪽
50 잿더미. 28 21.07.31 34 0 12쪽
49 잿더미. 27 21.07.24 31 0 24쪽
48 잿더미. 26 21.07.24 31 0 20쪽
47 잿더미. 25 21.07.12 30 0 14쪽
46 잿더미. 24 21.07.12 30 0 9쪽
45 잿더미. 23 21.07.05 31 0 10쪽
44 잿더미. 22 21.07.03 30 0 18쪽
43 잿더미. 21 21.06.27 31 0 15쪽
42 잿더미. 20 21.06.25 30 0 14쪽
41 잿더미. 19 21.06.24 29 0 12쪽
40 잿더미. 18 21.06.22 32 0 14쪽
39 잿더미. 17 21.06.18 30 0 17쪽
38 잿더미. 16 21.06.17 32 0 16쪽
37 잿더미. 15 21.05.30 40 0 14쪽
36 잿더미. 14 21.05.23 40 0 15쪽
35 잿더미. 13 21.05.21 38 0 14쪽
34 잿더미. 12 21.05.17 37 0 15쪽
33 잿더미. 11 21.05.11 34 0 17쪽
32 잿더미. 10 21.05.08 34 0 16쪽
31 잿더미. 9 21.05.06 40 0 14쪽
30 잿더미. 8 21.04.27 58 0 12쪽
29 잿더미. 7 21.04.23 34 0 19쪽
28 잿더미. 6 21.04.21 35 0 20쪽
27 잿더미. 5 21.04.18 35 0 16쪽
26 잿더미. 4 21.04.16 36 0 14쪽
25 잿더미. 3 21.04.12 46 0 15쪽
24 잿더미. 2 21.04.11 36 0 17쪽
23 잿더미. 1 21.04.10 39 0 13쪽
22 겨울. 22 21.04.04 37 0 11쪽
21 겨울. 21 21.04.01 39 0 12쪽
20 겨울. 20 21.03.30 37 0 12쪽
19 겨울. 19 21.03.27 42 0 13쪽
18 겨울. 18 +1 21.03.26 39 1 12쪽
17 겨울. 17 21.03.25 33 1 12쪽
16 겨울. 16 21.03.24 37 1 13쪽
15 겨울. 15 21.03.22 48 1 14쪽
14 겨울. 14 21.03.19 42 1 11쪽
13 겨울. 13 21.03.14 42 1 11쪽
12 겨울. 12 21.03.13 41 1 11쪽
11 겨울. 11 +1 21.03.13 35 1 11쪽
10 겨울. 10 21.03.13 40 1 18쪽
9 겨울. 9 21.03.13 35 1 13쪽
8 겨울. 8 21.03.12 36 1 12쪽
7 겨울. 7 21.03.12 36 1 14쪽
6 겨울. 6 21.03.12 41 1 18쪽
5 겨울. 5 21.03.12 42 1 12쪽
4 겨울. 4 +1 21.03.12 39 1 14쪽
3 겨울. 3 21.03.11 38 1 11쪽
2 겨울. 2 21.03.11 51 1 13쪽
1 겨울. 1 +1 21.03.11 14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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