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명쑤심 님의 서재입니다.

멈춰버린 시계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천명쑤심
작품등록일 :
2021.03.11 16:08
최근연재일 :
2021.10.08 21:48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2,652
추천수 :
18
글자수 :
493,087

작성
21.08.10 12:09
조회
28
추천
0
글자
17쪽

epilogue. 피와 철의 사냥꾼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여자는 추위를 느꼈다. 그녀는 커다란 솥을 올려놓은 모닥불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추위는 여전했지만 손과 얼굴이 따뜻해져 한결 낫다는 느낌을 준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올라온다. 대륙의 서부와 달리 동부는 겨울이 한창이었다. 여자는 돗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돗자리 밑에 깔려 있는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낸다.




여자는 솥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앞을 가릴 정도로 피어올랐다. 그녀는 숟가락을 들어 끓고 있는 스튜를 떴다. 입이 데지 않게 바람을 불어 식힌 뒤 스튜를 먹었다. 밋밋하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었지만 먹지 못할 건 아니었다. 여자는 검지와 엄지를 맞닿은 채 입안에 넣었다.




휘파람 소리가 눈으로 가득한 숲속에 울려 퍼졌다. 두 번에 걸쳐 긴 휘파람 소리를 낸 그녀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듯한 크기의 마대자루를 끌고 왔다. 그녀가 자루를 풀기 시작했을 때 눈 쌓인 숲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형체가 달려왔다.




웬만한 늑대보다 두 배는 족히 넘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늑대들이었다. 그들은 눈과 같은 하얀 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리는 파란 눈을, 다른 한 마리는 녹색 눈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귀를 세운 채 여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여자는 마대자루에서 큼지막한 짐승의 다리를 각자에게 하나씩 던져주었다. 늑대들은 자신의 몫을 입에 문 채 여자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늑대들이 고기를 씹는 모습을 보며 여자는 국자를 들었다. 누군가가 재미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그릇에 스튜를 담던 여자의 어깨 위로 깃털 하나가 떨어졌다. 어떤 새의 깃털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깃털이다.




여자의 팔뚝만한 길이의 깃털의 주인은 그녀가 두 번째 그릇에 스튜를 담으려 했을 때 모습을 드러냈다.




날갯짓만으로 돌풍이 불어온다. 늑대들은 서로의 몸으로 돌풍을 막았다. 그들이 돌풍을 막아주었기에 스튜가 든 솥과 그릇은 날아가지 않았다. 여자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검독수리를 향해 고기를 던져주었다. 그녀가 검독수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는?”




검수리는 고개를 갸웃(여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거렸다. 그녀는 스튜 그릇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오빠가 있을 법한 나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허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제법 멀리 나가있는 듯했다.




“어딜 처 싸돌아다니는 거야, 이 병신은?”




한가득 짜증을 낸 그녀는 집으로 걸어갔다. 잘 만들어진 목가적인 풍경의 나무집은 그녀의 오빠의 집이다. 그녀가 기억하던 오빠의 손재주는 벌레의 꿈틀거림 이하였다. 그렇기에 이 건물은 전문적인 업자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러던 중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편지는 발신인에 칼리모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편지를 챙겼다. 오빠가 돌아왔을 때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면 편지를 챙겼다가 넘겨주는 게 낫다.




편지를 챙긴 그녀는 곧 병장기가 가득한 방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오빠의 활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여러 개의 진열대에 하나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활이 들어차 있다. 그녀가 진열대에 다가갔다.




시선을 사로잡는 활 하나가 있었다. 활이라고 부르기에 실례가 아닐까 생각되는 생김새의 것이었지만 활의 구조는 다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대체 이게 뭐기에 이렇게 진열까지 해놓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건······, 나무의 혼······?’




투박하게 생긴 활은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다른 활들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이건 영혼의 강철······, 저건 흑철이고······, 하늘의 기둥······, 뾰족가시······, 그리고 이건 아케이나일? 저건 또 뭐야? 발레리안에 천년살이? 와, 씨. 저건 또 뭔데? 철의 피? 허! 뭐야, 이 미친 새끼는? 이러고도 십 몇 개가 더 있네? 정신병자 새낀가?”




여자는 무기고를 가득 채운 활들이 하나같이 비싸고 강력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걸 깨닫고 어이가 없었다. 당장 여기 있는 활들만 내다 팔아도 웬만한 거상들의 돈 따위는 우습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재력이 생긴다. 그녀는 세계 각지의 신박한 재료로 활을 만든 오빠를 욕하면서도 평소에 써보고 싶었던 ‘천년살이 풀’로 엮어 만든 활을 집었다.




너무 가볍다. 활을 들고 있는데 없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녀는 활의 시위를 튕겨보았다. 시위의 탄력이 어마어마하다. 그녀는 시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무슨 재료로 만든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만한 탄력이면 이것도 평범한 건 아니겠지. 여러 개 엮은 것도 아니고 딱 하나 있는데.’




문득 집 밖에서 늑대 한 마리가 울부짖었다.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활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야! 에렌디아! 스튜 간이 뭐 이따위야? 밍밍하잖아!”




익숙한 목소리다. 그녀는 어느새 솥단지 앞에 앉아 스튜를 떠먹고 있는 루벤가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집 놔두고 어딜 처 싸돌아다니다가 이제 오냐?”




“내 집이지 네 집이냐? 어딜 돌아다니던 내 맘이지.”




“그거 내가 한 거니까 처먹지 마, 그럼.”




루벤가드가 숟가락을 들고 스튜를 떠먹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그는 에렌디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생각하던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사랑스러운 내 동생! 하나뿐인 여동생아!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이 오라버니가 너무나도 주린 배를 참을 수가······.”




“아, 꺼져! 지랄하지 말고 처먹어 그냥!”




루벤가드는 큰 소리로 웃었다. 에렌디아는 루벤가드가 하는 짓이 영 꼴사나웠다. 그녀는 그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스튜 그릇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의아해하는 사이 루벤가드가 빈 그릇을 던져주었다. 그녀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뭐냐 이게?”




“네 밥그릇이란다.”




“근데 왜 비어있지?”




루벤가드는 짐짓 놀란 표정을 해보였다. 그는 왜 비어있는지 정말 모르냐는 투로 에렌디아를 쳐다보았다. 에렌디아는 화가 났을 때 양쪽 눈꼬리에 특유의 핏대가 돋아난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꼬리에 핏대가 섰다. 루벤가드가 말했다.




“정말 모르겠니? 그거야 당연히 내가 먹었기 때문이지 우둔한 동생아!”




“그럼 채워 넣던가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개새끼야아아!”




루벤가드는 화를 내는 에렌디아를 피해 스튜를 떠먹으며 자리를 피했다. 한참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씩씩거리던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앙상한 나무 뒤에 숨어 스튜를 떠먹는 루벤가드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녀는 자신의 그릇에 스튜를 담았다.




어느새 곁으로 온 루벤가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허겁지겁 스튜를 떠먹던 그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때린 루벤가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야, 물은?”




“알아서 처 드세요.”




루벤가드는 무척 실망했다는 얼굴로 에렌디아를 바라보았다. 에렌디아는 눈꼬리에 핏대를 세우며 그를 쏘아보았다. 루벤가드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서 놀고 있는 검독수리와 늑대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헛기침하고 말했다.




“으, 음. 그······, 왕국 생활은 어때? 할만 해?”




“뭐, 그냥저냥. ······너는? 용병, 지금도 하지?”




“지금도 하지. 나도 뭐 그냥저냥.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지.”




에렌디아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나한테 부치지 말고 네가 써 좀······.’




그녀는 여전히 동물들을 바라보는 루벤가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숟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스튜는 숟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소용돌이가 되어갔다. 에렌디아는 지금껏 망설였던 말을 꺼내기로 했다.




“오빠, 너도 왕국으로 와.”




루벤가드는 에렌디아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벤가드가 동생을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실력이 안 돼서 왕국에 못 들어가는 걸 몰라서 그래? 나도 갈 수만 있으면 가고 싶은데 실력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




“야, 너 내가 모를 줄······!”




“오! 이거 뭐야? 양파인가? 맛있네.”




에렌디아는 의도적으로 질문 자체를 피하는 루벤가드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평소처럼 바보같이 웃으며 대답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 에렌디아는 루벤가드가 거짓말을 참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데리고 온 세 마리의 동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중 그리핀 못지않게 거대한 덩치를 가진 검독수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는 깃털을 가진 검독수리의 눈은 새까맣다. 평범하게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 검독수리의 부리까지의 길이는 루벤가드의 키보다 높다. 만약 저 검독수리가 두 날개를 편다면 그 길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아퀼라’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검독수리는 원래 루벤가드의 것이다. 아니, 루벤가드다.




이 세상에는 특이한 힘이 있다. 초인의 힘이 바로 그 대표이며, 그보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초월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초월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부분이 그 초월기를 발동할 때 필요한 조건에 맞춰 분류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에렌디아의 초월기가 그렇다.




그녀는 많은 초월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 태어날 때부터 사용할 수 있던 초월기가 하나 있다. 바로 저 두 마리의 늑대, 커암과 미카가 그것이다. 이렇게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초월기를 ‘고유 초월기’라 부른다. 에렌디아의 성 ‘리슬렙’의 핏줄에 대대로 전해지는 초월기이기도 하다.




에렌디아의 고유 초월기이자 리슬렙의 고유 초월기는 ‘영원한 동반자.’ 말 그대로 영원한 반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일 수도, 짐승일 수도, 식물일 수도 있으며 무생물일 수도 있다.




이 반려들은 사용자의 삶과 죽음 그리고 소멸을 공유한다. 일방통행이기에 반대의 상황은 공유하지 않는다. 에렌디아가 살아 있는 한 커암과 미카는 머리가 잘려도 몸이 가루가 되도 죽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다. 그들은 에렌디아의 의지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또한 그들은 사용자의 힘 그 자체임과 동시에 그 힘을 증폭한다. 그 증폭률은 개체수가 아닌 에렌디아의 성장에 달렸다.




그녀의 동반자는 두 마리의 늑대다. 이들은 그녀의 의지대로 모든 걸 행한다. 허나 저 검독수리는 그녀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에렌디아란 존재에게 귀속되어 그녀의 힘을 증폭시켜주며 곁을 지킨다. 그리고 그 증폭률은 그녀의 늑대들과는 별개로 존재한다.




검독수리는 그녀가 세 살이 되던 날, 심하게 아팠을 때 루벤가드가 선물이라며 데려왔다. 그때는 지금처럼 거대한 모습이 아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듯한 참새라고 착각할 법한 작은 검독수리였다. 그 이후 열두 살이 되던 해 에렌디아는 자신의 고유 초월기를 깨달았다.




그녀는 루벤가드의 희망으로 왕국 기사단에 들어갔다. 루벤가드가 전장을 구르며 기사단의 훈련을 위한 모든 돈을 대주었다. 그리고 늑대와 검독수리가 가져다주는 힘으로 그녀는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루벤가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철혈, 에렌디아 리슬렙.




철혈의 왕국, 솔츠의 최강자만이 가지는 이명.




그런 그녀도 저 검독수리가 루벤가드의 고유 초월기라는 걸 깨닫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루벤가드는 자신의 반쪽 이상을 떼 동생에게 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를 위해 계속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그가 강해지면서 검독수리는 에렌디아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하고 있다.




에렌디아는 스튜를 먹었다. 루벤가드는 지금도 자신이 버는 돈의 태반을 동생에게 부친다.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 통에 에렌디아는 오빠를 말리는 걸 포기했다. 저 검독수리도 마찬가지다. 절대 다시 데려가지 않을 테다.




‘아마 모르쇠로 일관하겠지.’




그녀는 신음을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마자 루벤가드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목 언저리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야, 너 뭐야? 어디 아파? 열은 없는 거 같은데······.”




“아니야! 그냥 좀······, 아 몰라! 떨어져!”




갑자기 짜증을 내는 그녀를 보며 루벤가드가 피식 웃었다. 에렌디아는 그런 루벤가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그녀는 담배를 꺼냈다. 루벤가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대체 언제 끊을래?”




“시끄럽고, 이거나 받아.”




에렌디아는 편지를 꺼냈다. 루벤가드는 불을 붙이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쳐다본 뒤 편지를 뜯어보았다.




루벤가드는 칼리모스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한 반듯한 글씨체를 보며 감탄했다. 그는 칼리모스의 편지를 읽다가 말했다.




“야, 너 언제 가냐?”




파란 눈을 가진 늑대, 미카를 불러 등받이로 쓰던 에렌디아는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루벤가드를 흘겼다.




“뭐? 복귀? 좀 남았는데, 왜?”




“그니까 언제냐고 그게.”




“한 달 정도. 내가 원하면 더 늘릴 수도 있고. 난 시간에 구애 받지 않아. 난 철혈이야, 철혈! 솔츠에서 나한테 딴죽 걸 놈 없는 거 오빠도 알잖아?”




미카의 몸에 비스듬하게 누워 눈을 감은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엄지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는 에렌디아는 무척 시건방져보였다. 루벤가드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담배에 대한 못마땅함, 에렌디아의 넘치는 자신감에 대한 만족감, 건방진 자세로 콧방귀를 뀌는 귀여운 동생에 대한 기분 좋은 짜증. 그가 피식 웃었다.




“잘났다. 잘났어. 한 달이면 충분하네.”




에렌디아가 눈을 떴다.




“뭔 일 있어?”




“용병이 뭐 하겠냐, 일이지.”




“위험해?”




“너나 걱정해.”




“무슨 일인데?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




“아냐, 암살이야.”




“응? 누구?”




루벤가드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을 한 채 동생을 마주보았다. 에렌디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루벤가드가 동생의 이마에 꿀밤을 때리며 말했다.




“아!”




“아무리 내가 널 사랑한다지만, 일에 대한 건 공유할 수 없단다. 꼬마 숙녀님.”




“나 꼬마 아냐!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게! 맨날 꼬마래. 미치셨어요?”




“너 올해 제국 나이로 몇 살?”




“서른셋.”




“나 몇 살?”




“······마흔?”




“이게 이젠 지 오빠 나이도 모르네? 마흔둘이다. 아홉 살 차이나네? 야, 네가 아장아장 걷고 있을 때 이 오빠는 뛰는 것도 모자라 활 쏘고 다녔단다.”




에렌디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의 오빠가 마흔이 넘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생긴 것만 보면 여전히 서른 초반에 보던 그 얼굴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야, 나도 너처럼 아직 안 늙어 보이지?”




“뭔 개소리야? 네가 아직도 파릇파릇한 스무살 숙녀인 줄 아냐? 너 할망구야 할망구. 다 늙어가지고 살 처지고 주름 득실득실하고만.”




“뒤진다 진짜.”




“동생아. 사실을 받아들여. 너 이제 늙었어. 언제까지 발랄한 소녀인 척 할 거야? 다 늙어가지고.”




에렌디아는 비명을 지르며 루벤가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가에 핏대가 돋았다. 루벤가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에렌디아가 있는 힘껏 루벤가드를 흔들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의 화 때문에 지친 그녀가 손을 놓았다. 에렌디아는 여전히 치미는 짜증을 억눌렀다. 진정된 그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루벤가드를 바라보았다.




에렌디아는 기침을 하는 루벤가드의 뒷목을 붙잡았다.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빠, 너 일 갈 때 초월기 빌려줄까?”




루벤가드는 잔뜩 겁먹은 채 답했다.




“전혀 호의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데?”




“이 에렌디아. 고작 이런 일로 보복하려 한다거나 하지 않아요. 알지? 어?”




“······몇 개 있지도 않는 게 나보다 좀 세다고 까불긴.”




“좀 쎈 게 아니라 엄청 쎈데? 오빠 백 명이 있어봐야 나한테 상처도 못 내. 아시나 모르겠네?”




“으휴! 이걸 그냥! 헛소리 말고 옷이나 사러 가자. 옷이 그게 뭐냐?”




에렌디아는 자신의 옷을 살펴본 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뭐가? 옷 멀쩡한데?”




“꼬라지가 산적인데 멀쩡은 개뿔. 그래서 어떤 놈이 너 좋다고 따라다니겠냐?”




“허. 그러는 너는? 여자 있고?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장가도 못 가고?”




“동생아. 우리 서로 상처만 남을 거 같은 대화는 이쯤에서 그만할까?”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이 돌대가리 새끼야.”




이마를 짚는 루벤가드를 보며 에렌디아는 큰 소리로 웃었다. 담배연기가 짙게 퍼진다.




만약 왕국 솔츠에서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이 루벤가드와의 대화를 지켜봤다면 놀랐을 것이다.




그들이 아는 에렌디아는 감정이 없는 괴물이다.




그녀는 아군에게도 적에게도 ‘철혈’이란 이명처럼 똑같이 냉정하며, 무자비하다.




지금 연재하는 게 끝나고 새 작품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멈춰버린 시계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기억해주시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네요 21.03.11 92 0 -
72 경계. 10 21.10.08 28 0 16쪽
71 경계. 9 21.10.08 29 0 15쪽
70 경계. 8 21.10.06 30 0 18쪽
69 경계. 7 21.10.06 34 0 21쪽
68 경계. 6 21.10.06 30 0 20쪽
67 경계. 5 21.10.02 29 0 20쪽
66 경계. 4 21.09.07 32 0 14쪽
65 경계. 3 21.09.06 31 0 17쪽
64 경계. 2 21.09.05 33 0 13쪽
63 경계. 1 21.09.03 31 0 20쪽
62 epilogue. 여명 21.08.19 35 0 20쪽
61 epilogue. 암살의 대가 21.08.16 31 0 12쪽
60 epilogue. 루브타스의 경계 21.08.14 31 0 17쪽
59 epilogue. 게오르그 21.08.13 43 0 23쪽
58 epilogue. 강철 21.08.11 30 0 13쪽
» epilogue. 피와 철의 사냥꾼 21.08.10 29 0 17쪽
56 epilogue. 붉은 달 21.08.09 28 0 10쪽
55 잿더미. 33 21.08.09 29 0 18쪽
54 젯더미. 32 21.08.07 33 0 22쪽
53 잿더미. 31 21.08.05 28 0 17쪽
52 잿더미. 30 21.08.03 34 0 14쪽
51 잿더미. 29 21.08.01 32 0 19쪽
50 잿더미. 28 21.07.31 34 0 12쪽
49 잿더미. 27 21.07.24 32 0 24쪽
48 잿더미. 26 21.07.24 31 0 20쪽
47 잿더미. 25 21.07.12 31 0 14쪽
46 잿더미. 24 21.07.12 30 0 9쪽
45 잿더미. 23 21.07.05 31 0 10쪽
44 잿더미. 22 21.07.03 30 0 18쪽
43 잿더미. 21 21.06.27 31 0 15쪽
42 잿더미. 20 21.06.25 31 0 14쪽
41 잿더미. 19 21.06.24 29 0 12쪽
40 잿더미. 18 21.06.22 32 0 14쪽
39 잿더미. 17 21.06.18 30 0 17쪽
38 잿더미. 16 21.06.17 32 0 16쪽
37 잿더미. 15 21.05.30 41 0 14쪽
36 잿더미. 14 21.05.23 40 0 15쪽
35 잿더미. 13 21.05.21 38 0 14쪽
34 잿더미. 12 21.05.17 37 0 15쪽
33 잿더미. 11 21.05.11 34 0 17쪽
32 잿더미. 10 21.05.08 34 0 16쪽
31 잿더미. 9 21.05.06 40 0 14쪽
30 잿더미. 8 21.04.27 58 0 12쪽
29 잿더미. 7 21.04.23 34 0 19쪽
28 잿더미. 6 21.04.21 35 0 20쪽
27 잿더미. 5 21.04.18 35 0 16쪽
26 잿더미. 4 21.04.16 36 0 14쪽
25 잿더미. 3 21.04.12 47 0 15쪽
24 잿더미. 2 21.04.11 36 0 17쪽
23 잿더미. 1 21.04.10 39 0 13쪽
22 겨울. 22 21.04.04 37 0 11쪽
21 겨울. 21 21.04.01 39 0 12쪽
20 겨울. 20 21.03.30 37 0 12쪽
19 겨울. 19 21.03.27 42 0 13쪽
18 겨울. 18 +1 21.03.26 39 1 12쪽
17 겨울. 17 21.03.25 33 1 12쪽
16 겨울. 16 21.03.24 37 1 13쪽
15 겨울. 15 21.03.22 48 1 14쪽
14 겨울. 14 21.03.19 42 1 11쪽
13 겨울. 13 21.03.14 42 1 11쪽
12 겨울. 12 21.03.13 41 1 11쪽
11 겨울. 11 +1 21.03.13 35 1 11쪽
10 겨울. 10 21.03.13 40 1 18쪽
9 겨울. 9 21.03.13 35 1 13쪽
8 겨울. 8 21.03.12 36 1 12쪽
7 겨울. 7 21.03.12 36 1 14쪽
6 겨울. 6 21.03.12 41 1 18쪽
5 겨울. 5 21.03.12 42 1 12쪽
4 겨울. 4 +1 21.03.12 39 1 14쪽
3 겨울. 3 21.03.11 38 1 11쪽
2 겨울. 2 21.03.11 51 1 13쪽
1 겨울. 1 +1 21.03.11 140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