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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쑤심 님의 서재입니다.

멈춰버린 시계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천명쑤심
작품등록일 :
2021.03.11 16:08
최근연재일 :
2021.10.0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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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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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22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현재 겨울이 된 대륙 동부와 달리 서부의 여름이 만들어내는 바람은 한겨울과 비교 했을 때 너무나도 포근했다.




바람은 이곳, 왕국 페이서스의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둘러싼 기다란 발란카르 산맥을 걷는 여행자들에게 지친 몸을 감싸주는 힘이 된다.




소년은 힘 있게 고개를 들었다. 이 바람은 친숙했다. 삼 년이 지났지만 그의 몸은 고향에서 불던 바람을 기억하고 있다.




소년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변함없이 아름다운 고향의 하늘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러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스승을 만나 암살단으로 들어간 후로 단 한 번도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소년은 ‘무표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 뒤에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기쁨을 드러냈다.




소년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앞서가던 한 사내는 뒤따라오는 소년의 들뜬 마음을 알아채고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사내가 말했다.




“고향에 오니 좋지?”




사내의 말에 소년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스승에게는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면을 벗었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람에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가다듬으며 사내가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오던 소년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사내는 매서운 눈으로 정면을 쏘아보고 있었다. 소년은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란히 선 소년은 사내를 한 번 올려다본 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산은 아주 익숙했다. 다만 소년이 기억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저 산은 여름에 나무가 울창해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산은 나무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둬라, 알타이르. 저건 초월기에 의한 흔적이란다.”




알타이르가 사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사내는 그런 알타이르를 보며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곳이 초월기가 발현된 장소구나. 저곳에서 시작된 불길이 산을 먹어치웠어. 저런 위력의 초월기는 흔하지 않지. 더군다나 휩쓸고 간 땅이 죽어버릴 정도로 ‘악질적인 불’의 힘인 걸 보니, 에반스 그 친구가 한바탕 치룬 모양이야. 벽에서 복귀했다더니, 사실이었나? 사람이 줄어서 그분들께서 고생깨나 하시겠는 걸? 어디보자. 대폭발에서 경화염으로······, 굉장히 수비적으로 움직였구나. 상대를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어. 왜 그랬을까?”




사내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알타이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알타이르는 스승의 시선을 마주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빤히 쳐다보니 부끄러웠다. 알타이르가 말했다.




“친구······였을 까요?”




“글쎄다. 물론 내가 에반스랑 그렇게 친하지는 않아 많은 기술은 못 봤다만, 나한테는 이것저것 막 쏟던 걸? 상대가 약하던 강하던 그 친구는 전력을 다하지. 그게 설령 대련이라고 해도.”




“그렇담······.”




사내가 알타이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타이르는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렸다.




“제자겠지. 빽 소리 지르면서 제자 안 키운다고 난리치더니만······.”




사내는 알타이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렸다.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산을 바라보았다. 사내가 산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알타이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활짝 펼친 손에 힘을 주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사내는 대견하다는 얼굴로 알타이르의 손을 바라보았다. 알타이르가 에반스가 태워버린 산을 쳐다봤다. 그는 에반스와 자신의 힘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내저었다. 사내가 말했다.




“어떠냐?”




“너무 멀게 느껴지네요.”




사내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알타이르는 답답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직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격차가 나는 상대가 스승 말고도 더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단다. 위대한 벽에는 저 에반스와 이 스승 같은 사람들을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분들이 있단다.”




“정말인가요, 스승님?”




사내는 정말 보기 드문 알타이르의 놀란 얼굴에 주목했다. 저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알타이르는 나이에 맞는 아이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전혀 아이 같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내는 알타이르의 붉은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너도 벽에 가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러려면 단독행동이 가능한 ‘암살의 대가’가 되어야 해.”




“그걸 위해 이 먼 길을 돌아 ‘외로운 산’으로 향하는 건가요?”




“너에게 숨겨봤자 뭐하겠니. 그래. 널 외로운 산으로 데려가는 건 ‘암살의 대가’로 만들기 위함이란다. 하지만 알타이르,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거라. 단독행동을 할 수 있는 ‘암살의 대가’라는 건 단순히 네가 암살자들 중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란다.”




“그럼 무엇인가요?”




사내는 알타이르의 물음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알타이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스승의 미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는 그런 알타이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하던 말들을 잘 곱씹어 보거라. 그러면 알게 될 거란다.”




알타이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늘 그렇게 수수께끼처럼 말씀하시죠. 그러니까 주변에 친구가 없는 거예요.”




“하하하! 이놈 봐라? 아르테미시아를 닮아가네? 하핫! 예끼 이놈아! 그 요망한 것한테 물들면 안 돼요. 알겠죠?”




“아르테미시아 님은 스승님 닮지 말라던데요.”




“이걸 그냥 콱······.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아르테미시아 님도 아직 성인은 아닌데······.”




“아이고! 코흘리개 제자 놈 하나 받아놨더니 스승 배신하는 것 좀 봐! 아이고, 아이고!”




“아니, 스승님 그게 아니고······.”




알타이르는 설움에 못 이겨 흐느끼는 스승을 어떻게 하면 달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알타이르는 스승이 알아서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내는 눈물을 훔치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걱정하지 말거라. 저 벽 너머에는 이 말주변 없는 스승을 달가워하는 친구들이 많단다.”




그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은 일 년은 이런 급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터라 알타이르는 아무 거리낌 없이 순응하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진짜 있어.”




“누굽니까, 그게?”




“벤 로데스트라고 있단다.”




“몇 명 있다더니 한 명이잖아요.”




“그러는 너도 주변에 친구 없잖냐? 하도 성격이 괴팍해서.”




“있어요. 적어도 스승님보다 두 명은 더 많습니다. 심지어 둘은 아직 여기서 살고 있을 거고요. 그리고 성격 괴팍한 건 다 스승님 탓인데요.”




“쳇.”




사내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더니 피식 웃었다. 알타이르는 스승의 웃음이 불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사내가 말했다.




“제자의 친구라······, 좋아. 어차피 가던 길이었으니 얼굴이나 보고 가야겠다.”




“······네?”




“어디보자, 저 산 아래 마을이구나. 널 처음 만났던 마을 말이야.”




사내는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알타이르는 멀어져가는 스승의 뒷모습을 넋 놓고 쳐다보다가 허겁지겁 뒤따랐다.




천천히 걷는 게 분명한데 웬만한 성인 남성이 빨리 걷는 것보다 빨랐다. 덕분에 뒤쫓는 알타이르는 때 아닌 체력단련을 해야 했다. 울상을 지은 채 알타이르는 스승과 함께 산을 내려왔다.




마을까지 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타이르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파악해버리는 스승이 무섭다고 느꼈다. 사내는 마을을 향하며 한마디 던졌다.




“저 소년이구나.”




알타이르는 스승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




왕국 페이서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 같은 소년과 백금을 실로 뽑아낸 것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알타이르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사내는 기뻐하는 제자를 내버려뒀다. 잠시 후 사내는 알타이르의 마음을 건들지 않으려 조심하며 물었다.




“가보지 않아도 되겠느냐?”




알타이르는 하얀 예복의 후드를 푹 눌러썼다. 알타이르의 붉은 눈을 통해 감정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환한 미소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소년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알타이르는 몸을 돌렸다. 사내는 후드가 가려버린 제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알타이르가 말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됐죠, 뭘. 그리고 지금 저 둘을 방해했다간 테아가 절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럼 네가 신세지던 에히놀이란 사람을 만나러 가볼까?”




알타이르가 고개를 들었다. 스승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헤어지기 전 에히놀은 어엿한 강자가 돼서 얼굴을 비추라 말했다. 알타이르는 아직 강하지 않다. 지금 그를 만난다면 예전처럼 꾸지람을 들을 것이 분명하다.




“아뇨. 지금 가면 쓴 소리 좀 들을 걸요.”




고개를 내젓는 알타이르를 보며 스승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에히놀이란 남자의 성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대범하면서 자신의 주장은 확실한 이다. 그의 밑에서 자라다시피 한 알타이르 또한 그러한 성격이 묻어난다. 스승은 얼굴의 문신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그럼 가던 길을 마저 가자꾸나. 아직 갈 길이 멀었잖니?”




“광활한 땅을 가로질러야하니 한참 남았죠.”




“그렇다고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일 필요는 없어.”




“······언제나 여유로움을 가지라는 말 이젠 지겨워요.”




“삶에 여유가 없다면 참 안타까운 일 아니겠니?”




스승과 알타이르는 피식 웃었다. 그들은 아달탄 마을을 뒤로하고 광활한 땅을 향해 걸었다.








*








길고 긴 겨울이 끝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수년 동안 내리는 눈이 멎자 이제 비를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해가 뜬 날을 제외하고 좋아하는 날씨가 없는 클라이프는 뚱한 얼굴을 해보였다.




“날씨 좋네.”




클라이프는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클라이프의 비꼬는 말투에 곁에 누워 있던 엘사는 킥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클라이프는 엘사를 못마땅한 눈을 한 채 쏘아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을 게슴츠레 떠 그를 마주보았다.




그녀의 평소 무뚝뚝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무척이나 도발적인 표정이었지만 클라이프는 못 본 채 하며 신경질적으로 엘사가 덮고 있던 이불을 빼앗았다. 어이없어하는 엘사를 뒤로하고 클라이프는 이불로 자신의 몸을 둘둘 말았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클라이프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넋을 되찾아온 엘사가 한쪽 눈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뭐하시는 거예요?”




클라이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불을 더 끌어당겼다. 엘사는 대체 이 인간이 뭐하는 짓인지 고민했다. 도통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문득 요 며칠 비가 내려 쌓인 한기가 몸을 먼지 털 듯 휩쓸고 가자 이불을 뺏겼다는 것에 짜증이 난 엘사는 표정을 굳혔다.




그녀는 클라이프가 빼앗아간 이불을 붙잡고 힘을 줬다. 하지만 클라이프의 완력과 악력은 엘사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삼기 투사의 완력은 오러 투사인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엘사는 뜻대로 되지 않자 짜증을 냈다.




“이 인간이 진짜 왜 이래? 춥다구! 이불 내놔요! 당신은 이불 없어도 되잖아요!”




클라이프가 들은 채도 하지 않자 엘사는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하는 짓을 보면 도통 누가 애인지 모르겠다니까.”




짜증을 내는 엘사를 흘끗 쳐다본 클라이프는 피식 웃더니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를 뚱한 얼굴로 마주한 뒤 잠을 청했다.




엘사는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는 클라이프를 발로 찼다. 클라이프는 고통을 호소하며 액체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쉰 엘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클라이프와 달리 엘사는 비오는 날을 좋아했다. 빗물에 떨어져 만드는 잔잔한 소리는 우울한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곤 했다. 엘사는 잔에 미리 끓여둔 석류차를 담았다. 그녀는 차를 마시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페아르가 한 집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집을 한 채 더 지었다. 물론 건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엘사와 갈라테아를 대신해 마을 사람들이 고생했다. 클라이프도 그쪽으로는 전혀 지식이 없었기에 증축이 시작된 뒤 여러 사람에게 핀잔을 들었다.




좋은 말로 해서 핀잔이다. 게럴드는 클라이프가 옮겨 놓은 자재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거 방해하지 말고 좀 꺼지쇼.”라고 했고, 딘은 “클리프. 넌 정말 예나 지금이나 모자란 데가 있구나.”며 혀를 찼다. 그중 가관은 에히놀이었다.




“대체 넌 나보다 나은 게 뭐냐? 아니 그보다 할 줄 아는 게 뭐냐? 나보다 힘도 약해, 심지어 지금도! 거기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심지어 지금도! 그리고 돈도 없지, 심지어 나보다! 대체 왜 사냐? 아, 제발 그 불쌍하다는 표정 좀 그만 지어. 일도 못하는 게 방해나 하지 말고 애들 쉴 때 먹게 가서 차나 끓여와. 뭐해? 빨리 안 가고? 야야! 발 보이지? 안 뛰냐?”




엘사는 피식 웃었다. 클라이프가 유일하게 대들지 못하는 사람이 에히놀이다. 당장 기사단에 있을 때 기사장은 클라이프였지만 그건 단순히 에히놀이 귀찮은 일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통솔, 무력 모든 면에서 에히놀은 클라이프를 앞섰다. 심지어 성격도 많이 달랐다. 클라이프가 순응하자는 주의였다면 에히놀은 압제에의 저항이었다.




에히놀은 다른 기사들과 달리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불합리하다 판단한 건 무조건 저항했다. 그는 병사들에겐 무한한 신뢰를 얻었지만 윗선에서는 눈엣가시였다.




‘그렇기에 기사단에 등을 돌렸을 때 수많은 병사들이 에히놀 단장을 따라나선 거겠지.’




엘사가 기지개를 켰다.




증축이 끝나고 집은 세 식구가 살 때보다 배는 넓어졌다. 하지만 식구가 한 명 늘어 크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엘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스웨터를 끌어당겼다. 페아르를 갈라테아의 수호기사로 택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결정에 회의적이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페아르 딜워드. 출신을 알 수 없는 고아이며, 평범한 다갈색 머리카락과 매력적인 고동색 눈동자를 가졌다. 단짝으로는 같은 고아인 게오르그와 알타이르라는 이름의 소년들이 있다. 현재 두 소년은 어딘가로 떠나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클라이프가 에반스에게 주지 못했던 ‘발라카스의 불’을 계승한 소년이며 공간을 잘라버리는 초월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 부정시공의 초월기가 가진 힘은 클라이프도 두려워할 정도로 강인하다.




처음에는 출신을 알 수 없는 고아라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검은 숲’이 보낸 암살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늘 경계했다. 모습을 아이로 바꿔 접근할 수 있는 자가 귀한 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암살자를 보낼 정도로 해박한 상태였다면,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질질 끌 필요는 없다.




또한 그들은 암살자를 보내는 것보다 직접 오는 것을 선호할 테다. ‘그게 확실하니까.’ 그녀의 불안함은 그저 기우였을 뿐이다. 클라이프가 그리고 그를 가르친 에반스가 인정했다. 페아르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아이일 뿐이다. 엘사는 차를 한 모금 입에 담았다.




그들이 쫓기 시작한 지 햇수로 12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조금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갈라테아와 외출한 페아르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었다.




‘성격도 좋고······, 꽤 남자답게 생기기도 했고.’




엘사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녀는 차를 다 마시고는 클라이프가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그녀는 클라이프가 강탈해간 이불 속에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던 클라이프는 파고드는 엘사를 막아섰다. 그러나 곧 저항을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 오는 날 싫어.”




엘사는 아이처럼 투덜거리는 클라이프의 몸을 껴안았다. 운동을 그만둔 지 오래됐지만 클라이프의 몸은 여전히 군살이 없었다. 엘사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제 비 오는 날에도 좋은 일만 생길거야. 걱정하지 마.”




클라이프는 따뜻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엘사는 클라이프를 껴안은 채 조용히 잠들었다. 클라이프가 눈을 떴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창밖을 봤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페아르와 갈라테아가 우산을 가져갔을까 걱정하던 그는 반대로 돌아누웠다.




‘알아서 하겠지.’




그러고는 엘사를 껴안고 그녀의 황금색 머리카락에 속에 얼굴을 묻었다. 봄날에 꽃들이 활짝 핀 들판에서 맡곤 했던 향기가 났다. 클라이프는 기분 좋게 잠들었다.




지금 연재하는 게 끝나고 새 작품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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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경계. 8 21.10.06 30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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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경계. 2 21.09.05 33 0 13쪽
63 경계. 1 21.09.03 31 0 20쪽
62 epilogue. 여명 21.08.19 35 0 20쪽
61 epilogue. 암살의 대가 21.08.16 31 0 12쪽
60 epilogue. 루브타스의 경계 21.08.14 31 0 17쪽
59 epilogue. 게오르그 21.08.13 43 0 23쪽
58 epilogue. 강철 21.08.11 30 0 13쪽
57 epilogue. 피와 철의 사냥꾼 21.08.10 29 0 17쪽
56 epilogue. 붉은 달 21.08.09 28 0 10쪽
55 잿더미. 33 21.08.09 29 0 18쪽
54 젯더미. 32 21.08.07 33 0 22쪽
53 잿더미. 31 21.08.05 28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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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잿더미. 28 21.07.31 34 0 12쪽
49 잿더미. 27 21.07.24 32 0 24쪽
48 잿더미. 26 21.07.24 31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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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잿더미. 21 21.06.27 3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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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겨울. 18 +1 21.03.26 39 1 12쪽
17 겨울. 17 21.03.25 33 1 12쪽
16 겨울. 16 21.03.24 37 1 13쪽
15 겨울. 15 21.03.22 48 1 14쪽
14 겨울. 14 21.03.19 43 1 11쪽
13 겨울. 13 21.03.14 42 1 11쪽
12 겨울. 12 21.03.13 41 1 11쪽
11 겨울. 11 +1 21.03.13 35 1 11쪽
10 겨울. 10 21.03.13 40 1 18쪽
9 겨울. 9 21.03.13 36 1 13쪽
8 겨울. 8 21.03.12 36 1 12쪽
7 겨울. 7 21.03.12 36 1 14쪽
6 겨울. 6 21.03.12 41 1 18쪽
5 겨울. 5 21.03.12 42 1 12쪽
4 겨울. 4 +1 21.03.12 39 1 14쪽
3 겨울. 3 21.03.11 38 1 11쪽
2 겨울. 2 21.03.11 51 1 13쪽
1 겨울. 1 +1 21.03.11 14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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