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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쑤심 님의 서재입니다.

멈춰버린 시계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천명쑤심
작품등록일 :
2021.03.11 16:08
최근연재일 :
2021.10.0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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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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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29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라바사트는 나무와 동화된 자신의 몸에 불화살이 꽂히는 걸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 변하지 않은 반대쪽 팔로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았다.




길고 긴 겨울은 끝났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끝나려면 아직도 몇 년은 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눈앞에 오와 열을 맞춘 채 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겨울과도 같은 추위가 느껴진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훈련된 병사들이다. 저렇게까지 다듬어진 병사들을 몇 번 본 적 있다. 대제국들과 칠왕국의 정규군들 그리고 전장을 전전하는 뛰어난 용병들이었다. 저들이 화살에 불타는 화살을 건다.




라바사트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크기로 자라난 자신의 팔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화살을 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성공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안도하려는 찰나 창 하나가 라바사트의 나무 팔을 꿰뚫었다. 그 창은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아이의 손을 잡고 뛰던 사내를 관통했다. 라바사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용병들을 노려보았다.




옆에 서 있던 병사로부터 창을 건네받은 덩치 큰 사내가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문지르며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몸을 보호해주는 어떤 물건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산책 나온 사람처럼 가벼운 옷가지를 걸친 사내는 짧게 자른 금색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카로스의 편백나무 부대에 속해있는 지휘관 중 한 명인 룩 브라이튼 톨비쉬는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주시했다. 라바사트가 지키던 이들은 모두 서른네 명. 그중 집요한 공격으로 사망한 이들이 모두 열둘. 룩이 창대를 잡고 빙글 돌렸다. 그가 윈터펠과 카로스에게 받은 명령은 단순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아군을 제외한 모두를 죽여라.




남은 스물두 명, 단 한 사람도 살려 보낼 수 없다. 그것이 두 명의 최고 지휘관에게서 내려온 지상명령이다. 룩이 창을 바로잡았다.




라바사트는 급하게 반대쪽 팔을 동화시켜 룩을 향해 내질렀다. 저 남자가 창을 던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희생은 있어선 안 된다. 한 명이라도 살려야만 한다. 하지만 카로스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짙은 투기를 가지고 있던 룩은 라바사트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감이 피할 필요가 없다고 귀에 속삭인다.




일반 남자가 평범한 공을 던지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간 라바사트의 나무 팔은 그 덩치 곳곳에 새로 자라난 날카로운 가시들이 가득했다. 평범한 삼기 투사라면 그 힘에 찌그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허나 룩의 몸에 맞닿았을 때 방해되는 건 모조리 밀어버릴 듯했던 팔이 멈추고, 돋아난 가시는 철판에 부딪친 것처럼 맥없이 부러졌다.




라바사트는 룩이 가진 투기의 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그가 아는 한 저토록 강인한 투기를 가진 이는 손에 꼽는다. 그리고 현재 마을에 저 정도 투기 사용자는 없다.




룩의 손을 떠난 창이 마을 사람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이 육시럴 놈들!”




눈을 부릅뜨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라바사트의 나무 팔을 힘으로 꺾어버리며 룩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침에 붉은 핏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격을 완벽하게 상쇄시키지 못했다. 룩은 입가에 슬며시 묻어나온 피를 닦았다. 방금 전 공격으로 장기 쪽에 손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색할 시간도 없이 짙은 투기는 피해를 입은 장기를 수복하고 부족한 피를 보충했다.




룩은 또 다시 창을 인계받고 던지려는 자세를 취했다. 라바사트는 룩을 막기 위해 새로운 팔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팔을 룩을 향해 휘두르는 일도, 룩이 마을 사람들을 향해 창을 던지는 일도 없었다.




룩은 치켜든 창을 내렸다. 창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맡은 구역을 깨끗하게 몰살한 데카론이 후방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마을 사람들은 윈터펠의 소나무 부대 소속 지휘관 데카론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 섰다. 무서울 정도로 윈터펠과 행동이 비슷한 데카론은 고개를 기이한 각도로 꺾었다.




조금 이상하게 목을 꺾는 것뿐이었다. 허나 데카론에게서 샘솟는 붉은 오러와 그가 양손에 나눠 쥔 피로 붉게 물든 두 자루의 도끼가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데카론은 주저앉아 바지에 오줌을 지린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에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눈여겨보았지만 그의 마음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데카론이 도끼를 높게 쳐들었다. 담금질을 통해 뽑아낸 오러가 도끼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레니아는 왕국 페이서스의 법으로 내년 여름에 스무 살이 된다. 법적으로 인정한 성인이 된다는 소리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달탄이란 작은 마을에 묶여 있던 스스로에게 상을 줄 생각으로 가득했다. 성인식이라는 고지식한 행사를 지나고 대도시에 가 잘생긴 남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레니아의 머리 위로 데카론이 도끼를 내려찍었다.




그것을 신호로 데카론 휘하의 용병들이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을 도륙했다. 사람이 가축처럼 도살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데카론은 도끼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가 투구의 안면보호대를 열었다. 거추장스럽다. 편백나무 소속의 지휘관들처럼 이번 일에 장비를 챙겨오지 않는 편이 좋았다. 답답한 투구를 벗으며 그가 라바사트와 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몸을 나무로 동화시킨 늙은이는 누가 뭐라 해도 하늘 도사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창대를 돌리며 가만히 서 있는 룩은 아무리 봐도 놀고 있는 듯했다. 데카론은 룩의 나쁜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놓고 천천히 공포를 심으며 사냥을 즐기는 건 누가 봐도 좋은 버릇은 아니었다. 데카론이 라바사트를 향해 도끼를 집어던졌다.




오러를 쓰는 데카론은 삼기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하늘 도사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제련이 끝난 오러를 라바사트의 나무를 태울 수 있는 ‘불’로 벼리면 된다. 그렇게 불의 힘을 갖게 된 오러에 둘러싸인 도끼는 라바사트의 나무 몸을 자르며 태웠다.




급작스러운 오러 투사의 습격에 라바사트가 당황하는 사이 룩은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며 이마를 긁었다.




“벌써 끝내고 온 거냐?”




라바사트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데카론이 파고들었다. 라바사트는 데카론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룩이 던진 창을 피하지 못했다. 창이 나무로 동화된 그의 몸에 꽂혔다. 평범한 패기가 담긴 공격이었다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룩의 살기가 가진 ‘낙인’은 라바사트의 동화된 몸의 실체를 붙잡고 끌어냈다.




창이 라바사트의 갈빗대를 뚫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와 한참을 날아갔다. 그리고 데카론이 라바사트의 몸뚱이를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버렸다.




얼굴에 튀는 피를 닦은 데카론은 라바사트의 시체를 발로 찼다. 느긋하게 다가온 룩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나무 몸에 진절머리를 냈다.




“하늘 도사란 놈들은 하나같이 목숨이 질겨. 이거 봐, 또 붙어서 살아나려고 하잖아.”




룩이 라바사트의 반쪽 남은 얼굴을 짓뭉갰다.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데카론은 불로 벼린 오러의 덩어리를 라바사트의 몸뚱이를 향해 방출했다. 시체와 나무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데카론이 룩의 말을 받았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건 그렇고, 넌 그 좀 엿 같은 버릇 좀 버려. 빨리 끝내고 가도 모자랄 판에 뭔 몰아놓고 토끼잡이야?”




“몇 년간 고생했으니 이 정도 여흥은 괜찮잖아? 비도 오고 날씨도 꿉꿉한데 놀면서 좀 풀어도 되지.”




“하여튼 이 새끼는 어떻게 된 게 변하질 않아요.”




“사람이 쉽게 변하면 죽어. 그리고 너나 저 악취미 좀 버려라.”




룩이 데카론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데카론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뒤를 바라보았다. 데카론 휘하의 몇몇 병사들은 거대한 나무 십자가에 시체를 메달아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창끝에 머리를 꽂아 놓은 병사가 대다수였다. 데카론은 턱을 주억거렸다.




“야,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뭔 소리야! 전장에서 너도 잘 하던 짓이잖아.”




“그건 전장이지. 사기 꺾을 때 쓰면 정말 효과적이니까. 근데 여기가 전장이냐? 이 야만적인 새끼야?”




데카론이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도 전장인데?”




“아닌데.”




“아, 예. 그럼 룩 님은 여기가 사냥터신가보네요? 선량한 민간인들 가두리 양식하는 것처럼 천천히 몰아 죽이시는 거 보니까요.”




“너랑 비교하지 말아줄래? 적어도 난 전장도 아닌 곳에서 저런 인륜에 반하는 행동은 안 하는데. 어떻게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도 모자라서 꼬챙이 꿰듯 꿸 수가 있냐?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어쭈? 그렇게 나오시겠다? 오늘 미뤄둔 결판을 내보자 이거지?”




룩과 데카론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며 무기를 들이밀었다. 정말 서로를 죽일 생각으로 칼부림하는 그들을 지켜보던 용병들은 저들을 붙여 놓은 챈슬러와 펙서스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지휘관이 살의를 드러내며 도끼와 몸을 부딪치고 있을 때 쉬고 있던 용병들의 머리 위로 불타는 돌덩이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룩은 어깨에 박힌 데카론의 도끼를 빼냈다. 그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몸에서 떨어질 것 같았다. 허나 투기는 룩의 어깨를 다시 붙여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완벽하게 회복이 된 건 아니었다. 그는 고통을 느끼며 돌덩이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데카론은 룩에게 맞아 바닥에 처박혔던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 반쪽이 팅팅 부어 있었다. 오러 투사는 삼기 투사와 같은 재생력이 없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매만지며 룩이 바라보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데카론이 말했다.




“챈슬러랑 녹스 쪽인데?”




데카론의 말에 룩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간단한 수신호를 보내자 룩과 데카론이 데리고 있던 겨울 용병단 삼백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력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룩이 말했다.




“제일 센 놈이 있는데 제일 오래 끄는 걸 보면 뻔하지.”




“안 그래도 기백 큰 게 여럿 있었다며? 만날까봐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 쪽은 없었어.”




“나도 없었어.”




“그럼 저쪽에 다 몰려 있나보네. 사령관들은 이쪽 지원 못 오지?”




“아마도? 계속 산 너머에서 폭발 소리가 들리는 거 보면, 그쪽은 그쪽대로 수지 안 맞는 일을 하는 거겠지. 사령탑들 도움 구하는 것보다 펙서스가 오는 게 빠를 거다. 챈슬러랑 펙서스 둘이면 사령탑 1인분 하잖아.”




데카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광대뼈가 부러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여전히 룩의 투기는 강력하다. 그가 도끼를 질질 끌며 앞장섰다.




“더 쎄진 거 아니냐, 너?”




룩은 아직도 회복이 되지 않은 지끈거리는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할 말 같은데.”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








딘은 자신의 초월기로 날아오는 투석기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전황을 주시했다.




정면에서 밀고 들어오는 용병들의 숫자는 최소 삼백 명 이상이다. 허나 그들에 맞서 싸우는 기사단의 생존자들은 고작 오십 명뿐이다. 적들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삼백이라는 숫자는 두렵지 않다. 당장 딘과 게럴드, 에히놀은 수천 명에게 둘러싸이고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저 용병들은 삼백 명 전부가 초인의 힘을 사용하는 투사다.




딘을 포함한 오십 명 또한 초힌의 힘을 다룬다. 똑같은 조건에서라면 개개인의 힘의 편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머리수가 많은 쪽이 절대적 우위를 점한다. 딘은 선봉에서 적들의 진격을 막고 있는 에히놀과 게럴드를 바라보았다.




길이가 다른 두 개의 창을 나눠들고 한 번에 수십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에히놀의 무위는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낸다. 달려드는 용병들을 전부 상대함과 동시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화살까지 모조리 떨어뜨린다. 이런 에히놀의 모습에 상대하는 용병들도 넌더리가 난 듯했다.




초월기 하나 없는 에히놀이지만 그가 다다른 무위 자체가 초월기라 부를 만하다. 그가 지키고 있는 한 도망친 마을 사람들은 안전하다.




만약 그가 용기를 잃지 않았다면 이 불리한 전황도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딘이 게럴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게럴드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상대와 공격을 주고받고 있었다. 게럴드의 투기는 자신을 향하는 화살을 완벽하게 방어함과 동시에 적 지휘관의 칼질도 큰 피해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게럴드의 주먹에 맞은 지휘관이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화살을 맨몸으로 받으며 게럴드가 땅을 두 손으로 찍었다. 그가 초월기를 사용해 땅을 찢어버렸다.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며 그 위에 서 있던 모든 걸 나락까지 떨어뜨리려는 듯했다. 하지만 겨울의 용병들은 단 한 사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갈라진 땅 주변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게럴드는 인상을 썼다.




평범해 보이는 병사 하나하나가 터무니없이 강력하다. 편법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만을 통해 쌓아올린 강함이다. 저들 모두가 평범한 투사로는 상대 자체가 안 된다.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게럴드는 이런 자잘한 공격으로 저들의 견고함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에히놀을 바라보았다.




게럴드가 적들의 진격을 잠시 방해하는 정도였다면 에히놀은 백 명이 넘는 용병들을 제자리에 완벽하게 묶어놓고 있다. 단 한 사람에게 겨울 용병단, 챈슬러 휘하의 정예병이 발이 묶였다.




챈슬러는 팔짱을 꼈다. 게럴드와 딘도 성가시지만 문제는 쌍창을 든 에히놀이다. 지금 적들을 추적하지 못하는 건 오직 에히놀 한 사람에게 백오십 명의 정예병이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챈슬러는 다시 전황을 살폈다. 하지만 도출해낼 수 있는 결과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에히놀이 살아 있는 이상 추적은 불가능하다. 게럴드를 죽인다 해도 에히놀은 녹스의 병사들까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으리라.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에히놀의 기백은 챈슬러보다 아래다. 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위는 윈터펠과 카로스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챈슬러는 절대 저 수준의 기백의 삼기 투사가 얻을 수 있는 무위가 아니라 판단했다. 아마도 더 높은 경지에 다다랐을 이의 힘이다. 챈슬러가 팔짱을 풀었다. 그가 꽂아둔 창의 허리를 붙잡았다.




게럴드를 상대하고 있는 녹스와 자신만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 그는 룩과 데카론이 합류하는 걸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챈슬러가 창을 뽑으며 에히놀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룩과 데카론을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챈슬러는 그들의 합류를 배제했다. 함께 훈련하고 성장했다. 그렇기에 챈슬러는 룩과 데카론이라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최선의 선택은 합류가 아닌 적의 배후를 치는 것이다.




에히놀은 열 명이 넘는 용병들의 공격을 막으며 반격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창이 휘둘러지며 생겨난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챈슬러를 주시했다.




지금까지 병사들만 앞세우고 뒷짐 지고 있던 남자가 전면에 나왔다. 비록 기백 자체는 일반 병사들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방심할 수 없다. 에히놀은 손에 힘을 풀며 부드럽게 두 창을 쥐었다.




챈슬러가 초월기를 사용했다. 허나 그 어떤 가시적인 변화도 없었다. 에히놀은 더욱 경계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는 건 방어나 반격 계열의 초월기란 뜻이다. 그게 아니면 단순히 보이지 않는 공격 계열일 것이다.




섣불리 공격하는 건 위험하다. 에히놀은 챈슬러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을 접고 주변 사물을 이용한 간접적 공격을 노렸다. 허나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챈슬러를 직접 공격했다. 에히놀이 깜짝 놀라며 창을 쥔 손을 멈추려 했다. 허나 멈추지 않았다. 그가 혀를 찼다.




‘행동을 강제한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딘한테 썼던 지원형 초월기를 나한테도 걸었군!’




에히놀의 창이 챈슬러의 창과 부딪쳤다. 동시에 챈슬러의 반격형 초월기가 발동했다. 그들의 창에서부터 강력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전장에 퍼져 있던 인간들이 대지를 휩쓰는 강인한 충격파에 저항하느라 한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려오던 빗물이 충격파에 역류한다. 그리고 진흙이 되어버린 땅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튀어 올랐다. 그 사이로 챈슬러가 또 다른 초월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땅은 안개로 뒤덮였다.




게럴드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안개를 걷어냈다. 그럼에도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모든 게 의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럴드가 다급하게 외쳤다.




“딘!”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딘이 초월기를 사용했다. 딘의 뒤로 수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빛의 칼이 나타났다. 하나였던 칼은 스스로를 복제해 개수를 늘렸다. 총 다섯 개가 된 칼들이 환하게 빛을 내뿜었다.




안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게럴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와 싸우던 녹스와 용병들이 보이지 않았다. 게럴드는 급히 마을 생존자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딘 또한 자신의 초월기를 수백 개의 작은 칼로 쪼개 적들이 향했으리라 예상되는 경로로 날렸다. 딘은 여전히 챈슬러와 휘하 용병들을 묶고 있는 에히놀을 곁눈질하곤 게럴드를 뒤쫓았다.




에히놀은 게럴드와 딘이 한 발 늦었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었다. 그는 챈슬러를 빠르게 정리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챈슬러의 가슴팍에 깊은 창상을 만들었을 때 똑같은 상처가 자신에게도 생기는 걸 보곤 쓰게 웃었다.




‘초월기 위주의 투사라 안 그래도 상대하기 짜증나는데 복수형 초월기까지 가지고 있다니······.’




상처에 투기를 집중했지만 낫지 않는다. 에히놀은 챈슬러의 상처도 그대로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챈슬러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챈슬러는 에히놀을 묶어놓을 생각이 없다. 그는 여기서 에히놀과 죽을 생각이다. 에히놀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삼기 쓰는 족속들은 하나 같이 정신병자들이라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긴단 말이야.”




푸념을 늘어놓으며 에히놀이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챈슬러가 걸어놓은 지원형 초월기 ‘주시’와 ‘대응’이 그의 몸을 강제로 챈슬러에게 향하도록 했다. 에히놀이 혀를 찼다.




“빌어먹을 자식.”




챈슬러가 창을 고쳐 쥔 채 달려들었다. 에히놀의 몸은 강제적으로 챈슬러의 공격을 막았다. 에히놀은 뒤늦게라도 몸을 빼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완벽하게 챈슬러에게 붙잡힌 순간 대기 중이던 용병들이 챈슬러와 에히놀을 향해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았다.




지금 연재하는 게 끝나고 새 작품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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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경계. 9 21.10.08 29 0 15쪽
70 경계. 8 21.10.06 30 0 18쪽
69 경계. 7 21.10.06 34 0 21쪽
68 경계. 6 21.10.06 30 0 20쪽
67 경계. 5 21.10.02 29 0 20쪽
66 경계. 4 21.09.07 32 0 14쪽
65 경계. 3 21.09.06 31 0 17쪽
64 경계. 2 21.09.05 33 0 13쪽
63 경계. 1 21.09.03 31 0 20쪽
62 epilogue. 여명 21.08.19 35 0 20쪽
61 epilogue. 암살의 대가 21.08.16 31 0 12쪽
60 epilogue. 루브타스의 경계 21.08.14 31 0 17쪽
59 epilogue. 게오르그 21.08.13 43 0 23쪽
58 epilogue. 강철 21.08.11 30 0 13쪽
57 epilogue. 피와 철의 사냥꾼 21.08.10 29 0 17쪽
56 epilogue. 붉은 달 21.08.09 28 0 10쪽
55 잿더미. 33 21.08.09 29 0 18쪽
54 젯더미. 32 21.08.07 33 0 22쪽
53 잿더미. 31 21.08.05 28 0 17쪽
52 잿더미. 30 21.08.03 35 0 14쪽
» 잿더미. 29 21.08.01 33 0 19쪽
50 잿더미. 28 21.07.31 34 0 12쪽
49 잿더미. 27 21.07.24 32 0 24쪽
48 잿더미. 26 21.07.24 31 0 20쪽
47 잿더미. 25 21.07.12 31 0 14쪽
46 잿더미. 24 21.07.12 30 0 9쪽
45 잿더미. 23 21.07.05 31 0 10쪽
44 잿더미. 22 21.07.03 30 0 18쪽
43 잿더미. 21 21.06.27 31 0 15쪽
42 잿더미. 20 21.06.25 31 0 14쪽
41 잿더미. 19 21.06.24 29 0 12쪽
40 잿더미. 18 21.06.22 32 0 14쪽
39 잿더미. 17 21.06.18 30 0 17쪽
38 잿더미. 16 21.06.17 32 0 16쪽
37 잿더미. 15 21.05.30 4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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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잿더미. 13 21.05.21 38 0 14쪽
34 잿더미. 12 21.05.17 37 0 15쪽
33 잿더미. 11 21.05.11 34 0 17쪽
32 잿더미. 10 21.05.08 34 0 16쪽
31 잿더미. 9 21.05.06 41 0 14쪽
30 잿더미. 8 21.04.27 58 0 12쪽
29 잿더미. 7 21.04.23 34 0 19쪽
28 잿더미. 6 21.04.21 35 0 20쪽
27 잿더미. 5 21.04.18 35 0 16쪽
26 잿더미. 4 21.04.16 36 0 14쪽
25 잿더미. 3 21.04.12 47 0 15쪽
24 잿더미. 2 21.04.11 36 0 17쪽
23 잿더미. 1 21.04.10 39 0 13쪽
22 겨울. 22 21.04.04 37 0 11쪽
21 겨울. 21 21.04.01 39 0 12쪽
20 겨울. 20 21.03.30 37 0 12쪽
19 겨울. 19 21.03.27 42 0 13쪽
18 겨울. 18 +1 21.03.26 39 1 12쪽
17 겨울. 17 21.03.25 33 1 12쪽
16 겨울. 16 21.03.24 37 1 13쪽
15 겨울. 15 21.03.22 48 1 14쪽
14 겨울. 14 21.03.19 42 1 11쪽
13 겨울. 13 21.03.14 42 1 11쪽
12 겨울. 12 21.03.13 41 1 11쪽
11 겨울. 11 +1 21.03.13 35 1 11쪽
10 겨울. 10 21.03.13 40 1 18쪽
9 겨울. 9 21.03.13 35 1 13쪽
8 겨울. 8 21.03.12 36 1 12쪽
7 겨울. 7 21.03.12 36 1 14쪽
6 겨울. 6 21.03.12 41 1 18쪽
5 겨울. 5 21.03.12 42 1 12쪽
4 겨울. 4 +1 21.03.12 39 1 14쪽
3 겨울. 3 21.03.11 38 1 11쪽
2 겨울. 2 21.03.11 51 1 13쪽
1 겨울. 1 +1 21.03.11 14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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