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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쑤심 님의 서재입니다.

멈춰버린 시계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천명쑤심
작품등록일 :
2021.03.11 16:08
최근연재일 :
2021.10.08 21:48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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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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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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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잿더미. 10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싫어!”




클라이프는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하는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에반스에게 눈길을 돌렸다. 에반스는 클라이프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하나 있는 제자가 스승을 외면하자 클라이프는 큰 충격을 받았다. 클라이프가 충격을 받든지 말든지 절대 상관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사를 내비친 에반스는 엘사를 쳐다봤다.




서른을 넘긴 나이임에도 엘사의 모습은 십 년 전과 같았다.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에반스는 피식 웃었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엘사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지도 않았고 군살이 생기지도 않았다.




에반스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씁쓸하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막상 만나게 되니 안타까움만 더했다. 에반스는 엘사의 시선을 피하며 차를 마셨다. 엘사가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꼬마 기사님.”




방긋 웃는 엘사를 차마 외면할 수 없던 에반스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되지는 않았는지 엘사가 물었다.




“달갑지 않나보네, 에반?”




에반스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묘안을 떠올렸다. 에반스는 엘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제 성인인 남자를 보고 꼬마라고 말하면 누구나 달갑지 않을 겁니다.”




“뭐 어때?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키 작고 잘생겼지만 성격 나쁜 어린애인 걸.”




엘사의 친절한 어릴 적 설명에 에반스는 허허 웃었다. ‘아, 이 사람에겐 내가 아직도 남자로 보이지 않는구나.’ 그는 최대한 심술궂게 말했다.




“성인 남자 키가 177센티미터면 평균입니다. 선배님. 선배님 키가 여자 치고 너무 큰 거뿐이지 않습니까?”




“여자 키 170센티미터면 요즘 애들한테는 평균이라던데?”




에반스는 어이가 달아나는 걸 느꼈다. 이 세상 누가 성인 여성의 신장이 170센티미터가 평균이냐고 따지려던 그는 엘사의 얼굴을 보더니 그냥 허탈하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엘사는 에반스의 다양한 반응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었다.




엘사는 주방에서 김이 올라오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에반스는 혼자 남은 탁자에서 찻잔을 바라보았다. 찻잔에는 파문이 일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 에반스의 얼굴이 투영되었다.




에반스는 울상을 짓고 있는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청년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에반스는 애써 웃어보았다. 그러자 찻잔 속에 비춰진 청년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테아, 전혀 위험하지 않다니까······, 악!”




클라이프는 난생 처음으로 여덟 살 소녀에게 맞았다. 클라이프는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몸을 난타하는 딸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구슬픈 눈으로 엘사를 바라보아도 그녀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어줄 뿐 도움을 주지 않았다. 에반스는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를 품고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 있는 제자는 헤실헤실 웃으며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클라이프는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울고 싶었다.




갈라테아에게 시달리던 클라이프를 구해준 건 다름아닌 페아르였다. 페아르는 클라이프에게 달라붙어 주먹질을 하고 있는 갈라테아를 간단히 떼어냈다. 하지만 난동피우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페아르는 갈라테아의 팔꿈치에 명치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페아르를 두들겨 팼다. 그 모습을 본 에반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일레나 님과 성격이 정반대군. 저건 선배 판박이잖아······.’




에반스 못지않게 클라이프도 당황했다. 마치 엘사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에반스의 넋 나간 얼굴을 보니 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노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클라이프는 새삼 부모 된 자가 그들의 자식에게 얼마나 투영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하게 되었다. 당혹스러워하는 두 남자와는 달리 엘사는 페아르와 딸의 모습을 보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우리 딸, 활기차 보이네.”




클라이프와 에반스는 등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게 활기차 보인다고?”




“······허.”




엘사는 두 사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클라이프와 에반스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물러나 엘사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고생하셨을 게 눈에 선합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힘이 될 줄은 몰랐다.’




에반스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이프는 답답함이 듬뿍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석류차를 홀짝이던 엘사가 클라이프와 에반스를 번갈아 쳐다본 뒤 클라이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말해보라는 듯 턱짓하는 엘사를 보며 클라이프는 초조함이 묻어나는 눈길로 작은 나무상자를 엘사의 눈앞에 올려놓았다. 엘사는 클라이프에게 물었다.




“뭐예요?”




그 순간부터 에반스는 엘사의 분노를 예상하고 귀를 틀어막았다. 엘사는 그런 에반스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클라이프도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열어보라고 손짓했다. 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열던 엘사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눈에 목줄이 백금으로 된 목걸이가 들어왔다. 목줄은 제법 세련된 디자인의 고리로 이어져 있었다. 에반스는 나무상자 사이로 보이는 목걸이를 보고 두 눈을 찡그렸다. 엘사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메마른 목은 침으로 적셔지지는 않았다. 멈춰있던 엘사의 손이 움직였다.




상자를 끝까지 열어젖힌 엘사는 슬픈 눈으로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황금 테두리에 잘 가공된 회색빛의 돌멩이가 박힌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돌멩이는 완전한 원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 타원형으로 가공된 돌은 엘사의 엄지손가락만 했다. 엘사는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일레나 언니······.”




엘사는 두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채 고개를 떨구었다. 엘사가 소리칠 것이라 생각했던 두 남자는 예상을 벗어난 반응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조심스레 엘사의 반응을 살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엘사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벌써······.”




에반스는 엘사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녀를 알게 된 십여 년의 세월동안 이렇게 약해보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에반스는 클라이프를 쳐다봤다. 클라이프는 이를 꽉 깨문 채 엘사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에반스는 고개를 돌렸다.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엘사는 클라이프의 몸을 밀어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엘사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심호흡한 뒤에야 진정할 수 있게 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상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 게.”




그녀의 손이 목걸이를 붙잡았다. 클라이프와 에반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엘사가 손에 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목걸이에 박힌 돌을 만지작거리던 엘사가 입을 열었다.




“테아가······, 성인이 되면 내가 다 알아서 할 게. 그러니까 클라이프, 당신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에반. 넌 저 애를 부탁해. 보아하니 ‘불’도 넘겨준 거 같으니까. 검은 숲한테서 안전하게 테아를 지킬 수 있게 해줘.”




클라이프와 에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앨사는 페아르와 갈라테아를 보았다. 잠깐 안 본 사이 그들의 상황도 끝이 난 듯했다. 페아르는 갈라테아를 껴안은 채 그녀의 백은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마음 내키면 찾아올 수도 있고, 나 없을 때 게오르그나 알타이르가 찾아와서 놀아줄 거야. 심심하지는 않을 걸? 뚝.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면 되는 거야. 그리고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걸? 스승님이 한 달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 한 달! 내가 날짜 세는 법 알려준 거 기억하지?”




“응.”




“금방 볼 수 있으니까, 애처럼 그만 짜.”




“애 아니야!”




“알았어. 그러니까 그만 울어요?”




갈라테아를 토닥이는 페아르를 보며 엘사는 피식 웃어버렸다.








*








제국 발라의 시간으로 올해 마흔이 된 프렙은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아무래도 눈이 올 것 같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마차의 짐칸에서 내려왔다.




많은 인파가 북적거리고 있다. 다들 다음 거래에 쓸 물건들을 재차 검토하는 중이었다. 프렙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자! 눈이 올 거 같으니까 물건들 확인 끝났으면 싸게싸게 집어넣고 가림막 확실하게들 쳐놔!”




곳곳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다들 눈이 오면 행상이 길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재수 없는 날에는 미끄러져 마차가 박살나기도 하는 거친 날씨를 누가 반길까. 프렙은 경고만 한 뒤 다시 자신의 짐칸으로 되돌아갔다.




말없이 물건을 나르던 평범한 인부 스벤은 프렙의 마차를 곁눈질했다. 스벤은 힘겹게 물건을 나르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옮기던 겨울 과일이 잔뜩 든 상자를 스벤이 가로챘다.




“어, 어?”




화물을 뺏긴 밀리아는 당황하며 스벤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과일 상자를 빠르게 싣고 밀리아에게 돌아왔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스벤은 큼지막한 귤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쉬엄쉬엄 해요. 아직 출발하려면 멀었잖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다가 귤을 받고 총총걸음으로 멀어져가는 밀리아의 모습은 스벤을 미소 짓게 했다. 헤벌쭉 웃고 있는 스벤의 모습이 기분 나빴던 잉고르가 그를 지나치며 어깨를 툭 쳤다. 잉고르가 말했다.




“그런다고 저 여자가 넘어올 거 같냐? 쯧쯧. 어리석은 중생아.”




“에헤이, 넌 친구 행복도 못 빌어주냐? 그리고 누가 그런 목적으로 잘해주는 거간?”




“아, 예예. 당연히 그럴 목적 아니시지요? 예, 예. 자알 압니다. 예예.”




스벤은 얼굴을 붉히며 잉고르에게 다가갔다. 그가 잉고르와 어깨동무를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스벤은 잉고르보다 한 뼘은 더 컸다. 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친형제 같았다. 스벤이 말했다.




“야, 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봐라.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니까?”




“퍽이나.”




“어허!”




“잔말 말고 일이나 마무리하자. 그래야 좀 쉬지.”




잉고르는 스벤의 팔을 밀어냈다. 스벤은 같이 놀아주지 않는 친구를 향해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그는 투덜거리며 잉고르의 뒤를 쫓았다.




대충 마무리가 됐다 생각하자 잉고르가 허리를 피고 땀을 닦았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도 땀이 나네.’ 그는 다가오는 스벤을 향해 상자에서 몰래 빼돌린 귤 몇 개를 던졌다. 귤을 받아든 스벤은 플렙의 마차를 곁눈질하며 잉고르와 함께 구석으로 갔다.




“참나, 돈도 많이 벌 텐데 일하는 사람 품삯은 쥐꼬리만큼 주고.”




주린 배를 귤 몇 개로 채울 수는 없었다. 잉고르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스벤에게 떼주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다. 이번 상단이 끝나면 형이랑 너랑 내가 모은 돈으로 충분히 마차랑 말을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이런 노예 생활도 청산할 수 있어. 좀만 더 버티자.”




스벤이 잉고르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잉고르가 준 귤 반쪽을 입에 넣었다. 스벤이 하늘을 쳐다봤다. 어느새 완전한 우윳빛으로 변한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플렙이 마차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스벤이 말했다.




“어휴, 저 개자식. 야, 가자. 눈 더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거 같다.”




“쉴 틈을 안 줘요.”




스벤과 잉고르는 그들의 마차로 향했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프리에조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여, 꼬맹이들. 또 물건 빼먹고 오냐?”




“뭔 소리야?”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어, 형님.”




스벤과 잉고르는 또 장난이냐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프리에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프리에조는 쾌활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마차에 탔다는 걸 확인한 프리에조가 짐칸으로 이어지는 천막을 슬쩍 열고 말했다.




“거 안쪽에 이 형님이 몸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물이랑 먹거리 좀 놔뒀다. 먹으면서 좀 쉬어둬.”




“역시 형님뿐입니다. 사랑해요!”




“입 좀 다물어라, 스벤. 어렵게 빼낸 거야. 걸리면 우린 뒤지게 맞아. 조용히 하고 먹어.”




“크, 역시 세계 최고 인격자 프리에조 형.”




“지랄들 말고 제발 걸리지나 말고 먹어라.”




스벤과 잉고르는 프리에조가 갖고 온 스프와 육포 그리고 우유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 청년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본 프리에조는 그의 앞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고삐를 쥐었다.




“출발한다. 다 먹고 빈 그릇은 좀 이따 눈 쌓이면 그때 버리고.”




잉고르가 입가에 묻은 스프를 핥으며 프리에조에게 다가갔다. 그는 마부석과 짐칸 틈새로 바깥을 보며 말했다.




“형. 이번에도 ‘위대한 벽’을 따라서 대륙 동부까지 가는 거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레세프랑 나르가스가 전쟁 중이라 다르게 간다더라.”




“헤에······, 그럼 우리가 지금 말고르에 있으니까······.”




잉고르는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대륙 동부와 서부를 오갈 때면 언제나 위대한 벽을 이정표 삼아 움직였다. 벽의 추위 때문에 사제들에게 미처 ‘기적’을 받지 못한 상품이 썩지 않는다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현재 위대한 벽을 끼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인 레세프와 나르가스가 전쟁 중이기에 그곳으로 갈 수 없다. 잉고르는 드문드문 자라기 시작한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잉고르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다 지친 프리에조가 말했다.




“일단 페이서스를 통과하겠지. 거기서 말고르 특산품이랑 기타 등등 좀 팔고, 대리석이랑 이것저것 살 거야. 페이서스 대리석은 제국에서도 찾는 명품이니까. 겸사겸사 발라에도 들러서 사제들한테 긴 여행에 상품 안 상하게 ‘기적’ 좀 받고 다가스라트로 가겠지. 거기서 실리언, 케일, 레이비르, 렉사, 이딜 셀, 솔츠 찍고 통탄의 선로 따라 실반으로 가던지 길갈라드에서 마무리하든지 할 거 같은데?”




잉고르와 스벤은 대륙의 지리를 다 외우고 있는 프리에조를 존경을 담아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프리에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 추워지는 날씨에 모포를 덮었다. 앞으로 대륙 서부는 몇 년은 더 겨울이 이어질 것이다. 추위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둘 얼어 죽는다.




대륙 동부로 떠나면 추위는 해결할 수 있다. 헌데 얼어 죽을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 위치한 이들이 과연 그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평범한 말이 말고르에서 제국 실반의 국경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수년이 걸린다. 프리에조는 잔뜩 취한 채 돌아다니던 자칭 신관이라는 여자가 준 술을 꺼냈다.




‘이 땅은 너무 넓다. 너무······.’




술병을 입가에 가져가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프리에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냄새만 맡아도 평범한 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인상을 쓰며 술을 건네줬던 여사제를 떠올렸다.




대륙 서부에서 보기 드문 파란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여자였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잉고르와 스벤과 비슷할 정도로 큰 키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물론 그녀의 얼굴과 몸 그리고 입고 다니는 옷이 제일 눈에 띠긴 했다. 제국 페스벤의 상징인 불타오르는 듯한 태양을 새긴 사제복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껏 프리에조가 만난 ‘신관’들은 모두 약소 왕국들의 사제였다. 그들 모두 왕국에서 한자리 꿰차고 있었다. 고위급 인사란 소리다. 그런 고위직 사제가 호위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가 아는 신관들은 하나같이 전투적이 능력이 전무했다. 신성제국의 사제라 한들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프리에조는 술을 들이켰다.




“컥!”




입이 얼얼하다. 말도 안 되게 도수가 높다. 프리에조는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에 어떤 사제가 이딴 걸 처먹어?”




지금 연재하는 게 끝나고 새 작품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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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경계. 9 21.10.08 2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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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경계. 7 21.10.06 34 0 21쪽
68 경계. 6 21.10.06 30 0 20쪽
67 경계. 5 21.10.02 29 0 20쪽
66 경계. 4 21.09.07 32 0 14쪽
65 경계. 3 21.09.06 31 0 17쪽
64 경계. 2 21.09.05 33 0 13쪽
63 경계. 1 21.09.03 31 0 20쪽
62 epilogue. 여명 21.08.19 35 0 20쪽
61 epilogue. 암살의 대가 21.08.16 31 0 12쪽
60 epilogue. 루브타스의 경계 21.08.14 31 0 17쪽
59 epilogue. 게오르그 21.08.13 43 0 23쪽
58 epilogue. 강철 21.08.11 30 0 13쪽
57 epilogue. 피와 철의 사냥꾼 21.08.10 29 0 17쪽
56 epilogue. 붉은 달 21.08.09 28 0 10쪽
55 잿더미. 33 21.08.09 29 0 18쪽
54 젯더미. 32 21.08.07 33 0 22쪽
53 잿더미. 31 21.08.05 28 0 17쪽
52 잿더미. 30 21.08.03 35 0 14쪽
51 잿더미. 29 21.08.01 33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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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잿더미. 27 21.07.24 32 0 24쪽
48 잿더미. 26 21.07.24 31 0 20쪽
47 잿더미. 25 21.07.12 3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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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겨울. 16 21.03.24 3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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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겨울. 13 21.03.14 42 1 11쪽
12 겨울. 12 21.03.13 41 1 11쪽
11 겨울. 11 +1 21.03.13 35 1 11쪽
10 겨울. 10 21.03.13 40 1 18쪽
9 겨울. 9 21.03.13 35 1 13쪽
8 겨울. 8 21.03.12 36 1 12쪽
7 겨울. 7 21.03.12 36 1 14쪽
6 겨울. 6 21.03.12 41 1 18쪽
5 겨울. 5 21.03.12 42 1 12쪽
4 겨울. 4 +1 21.03.12 39 1 14쪽
3 겨울. 3 21.03.11 38 1 11쪽
2 겨울. 2 21.03.11 51 1 13쪽
1 겨울. 1 +1 21.03.11 14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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