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뷰징
10.
테스트를 끝낸 이헌은, 크리스찬 부장의 차를 타고 보육원으로 향했다.
사실 이헌의 테스트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오늘은 복싱을 테스트하기로 되어 있었고, 내일은 레슬링을 보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크리스찬 부장의 머릿속엔, 레슬링 같은 건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낸 천재에게 레슬링은 무슨 레슬링이란 말인가?
설사 이헌이 레슬링에 재능이 있을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 녀석은 반드시 복싱을 해야 하는 놈이었다.
문제는 지금 이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둘은 돌아가는 내내,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을 정도였다.
만약 크리스찬 부장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엄청나게 흥분하며 이헌에게 침을 튀기고 있었지 않았을까.
김이헌의 미래, 이신 국제학교의 미래, 그리고 프로복서로 데뷔하며 얻는 부와 명예까지.
아마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전부 떨어가며 이헌에게 장밋빛 미래를 심어주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찬 부장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헌이 보통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김이헌은 달랐다. 이신 국제학교 부장이라는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는 코치들이나 학부모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학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이헌은 오만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그는 아무런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으며, 원한다면 스스로 모든 걸 거머쥘 수 있었다.
“부장님.”
“그래 이헌아.”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말해줄 수 있겠니.”
“생각보다 아마추어 레벨이 형편없더군요.”
“성 요한 대학교의 위명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동의하기 힘들구나.”
“뭐 아마추어 수준에선 그럴싸할지도 모르죠.”
“그렇지.”
“문제는 저와는 수준이 너무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건 사실이다.”
“그래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헌의 말에 크리스찬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 이헌이 하는 말은 너무나도 명료했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겠니?”
“애들은 지금도 전국대회를 나가기 위해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있겠죠.”
“그래.”
“양학은 나쁜 겁니다. 아 양학이 뭔지 모르시려나. 한 마디로 어뷰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 게임에서도 자기보다 낮은 계급 애들이랑 놀면 안 되는 법이에요.”
“하지만 그건 으레 거쳐야 하는 의례일 뿐이야. 적어도 올림픽에 나가려면...”
“제가 올림픽에 나가도 그건 반칙입니다. 괜히 다른 선수들 몫을 빼앗고 싶지 않네요.”
그랬다. 이헌은 너무 오만했다. 너무 오만해서 저런 말도 당연하다는 듯 내뱉을 수 있는 거겠지.
“이헌아. 네가 실력이 있는 것은 알겠다. 그래서 오만해질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겠어. 하지만 방금 네가 한 말은 오만을 넘어 기만이다.”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남들 눈에는 제 말이 기만으로 보이겠죠.”
“그런데 왜?”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헌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헌은 크리스찬 부장에게 별생각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차원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이었는데, 그쪽 세계에 있는 최강자와 목숨을 걸고 일대일을 떴다. 그러다가 죽고 눈을 떠 보니 이쪽 세상의 자신이었다.
이대로 애들 싸움에 끼어든다면, 그건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못 할 짓이다. 그것은 마치 프로 챔피언이, 다시 아마추어로 돌아가 다른 선수들의 가능성을 빼앗은 도둑질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이헌으로서는 이런 말을 대놓고 꺼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뭐 크리스찬 부장이라면 믿어줄지 모른다. 조현병 환자의 망상이라고 생각해 뇌 사진을 찍으러 갈 수도 있었지만, 스포츠에 상식이 있고 신중한 성격의 그라면 차라리 차원 전생 쪽이 더 신뢰가 간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헌이 보여주었던 퍼포먼스는 가히 그 정도의 충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헌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남들과는 평생 공유할 수 없는 큰 비밀이 생겼다는 것을.
“...명함 가지고 있지?”
“네.”
“언제든지 연락해라. 네가 원한다면 3학년 막바지라도 널 편입시켜주겠다.”
“뭐 운동부에 들어간다는 전제겠죠?”
“그건 어쩔 수 없지. 우리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거든.”
“하하 이젠 한국 사람 다 됐군요.”
어느새 그의 차는 보육원에 도착했다.
이헌이 내리려고 하자 크리스찬은 다시 한 번 진지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이헌아. 세상은 힘들다.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수도 있어.”
“뭐 제가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렇지. 네가 뭔들 못하겠냐만, 그래도 세상은 힘들다. 비록 부모님을 잃은 것은 안타깝지만, 너는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이신에 왔으니까. 다른 보육원이 가브리엘 보육원만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거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부모를 잃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악운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이헌은 부모를 잃음으로써,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전염병, 범죄, 가난, 마약, 이 모든 것들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뉴욕과 디트로이트 차이만큼이나 양극화가 심해질 거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디트로이트는 좀.”
“그것 봐라. 넌 아무것도 모른다. 네가 비록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육원이라는 울타리를 지나간 순간, 그저 경험이 없는 사회 초년생에 불과해.”
“그렇습니까.”
“그동안 많은 학교들을 봐왔다. 빈민가부터 시작해 부자들의 동네까지, 많은 곳을 옮겨 다녔지. 너 같은 학생들? 학교마다 얼마든지 있었다.”
크리스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물론 너 정도의 재능을 지녔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능히 프로에서도 활약하면서 큰돈을 벌 수 있었던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었어. 하지만 그런 아이들조차도 열에 아홉은 총에 맞아 죽거나, 마약을 팔다 감옥에 갔지. 무슨 뜻인지 알겠니?”
크리스찬은 정말로 진지하게 이헌에게 충고했다. 이는 단순한 꼰대질이 아닌, 그 누구보다 안타까운 케이스를 많이 봐왔던 경험자의 금과옥조였다.
하지만 그런 크리스찬의 마음과는 별개로 이헌은 시큰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헌으로선 지금 크리스찬의 이야기가 와닿지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를 들어도 너무 미국스럽게 예를 들고 있으니,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탓이다.
“뭐 생각해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이헌은 보육으로 돌아갔다.
이때 까지만 해도 이헌은 알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이 세계를 너무나도 얕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크리스찬이 했던 말이, 결코 미국의 상황을 빗대서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 * *
이헌이 보육원으로 돌아오자, 평소에 자주 보던 아이들은 물론,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들을 보아하니, 대충 짐작은 갔다. 자신이 크리스찬 부장에게 봤던 테스트 결과가 궁금한 거겠지.
하지만 다들 대놓고 물어보기는 어려운 눈치였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있어서 이헌은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이헌이 특별히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군기를 주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헌은 이미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무서운 사람이었다. 마치 육식동물처럼 밝게 빛나는 눈동자와 근육질의 체격은, 안 그래도 거칠어 보이는 이헌의 분위기를 한층 더 위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은 언제나 이헌의 말을 잘 따랐다. 보육 교사들의 말은 더럽게도 안 듣는 이헌이, 오히려 아이들을 잘 다룬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지만.
어쩌면 또래 아이들보다 생존 욕구가 더 강한 보육원의 아이들이니만큼, 더더욱 이헌의 말을 잘 따르고 지켰는지도 모른다.
“그래. 어땠어.”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 시켜 주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이헌이 바라보니 현재 이곳 보육원에서 가장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김바다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는 신장만 190cm가 넘었고, 몸은 마치 씨름 선수처럼 거대했다. 체격만 보자면 미식축구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고아라는 것이 그의 모든 장래 길을 막고 말았다.
그의 체격과 운동신경은 훌륭했지만, 그것도 기회가 있어야 써먹을 수 있는 법이다.
이헌처럼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재능을 보이지 않는 이상, 운동 잘하는 고아에게 관심을 둘 정도로 이 세상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바다가 제대로 실력을 쌓기엔, 그 비싼 장비를 살 돈이 없었다.
만약 바다에게 가난의 고하와는 상관없이 제대로 된 부모만 있었다면, 어쩌면 그의 미래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다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노동의 일이나, 나쁜 쪽의 일 외엔 없었다.
“오랜만에 본다.”
“요새 내가 바빴지.”
이헌은 눈앞의 청년을 보며 어색한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헌은 이 김바다라는 학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돌아다녔던 건지, 저 커다란 보육원생을 오늘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이헌이 어색해하거나 말거나 바다라는 보육원생은 이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어땠어? 애들이 너만 기다리고 있잖아.”
“그냥 재미없었어.”
“왜? 많이 맞았어?”
“어. 많이 맞았어.”
“하하 그럴 리가 없지. 복싱 글러브로 맞았으면 얼굴에 티가 많이 났을 텐데.”
“알면서 왜 물어.”
“그냥. 네가 형편없이 깨지길 원했거든.”
“우리 사이가 그렇게 안 좋았나?”
이헌은 진심으로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저런 말은 어중간한 사이끼리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아주 친하거나, 아주 사이가 나쁘거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뭘 포기해?”
“만약 네가 뒤지게 쳐맞고 왔다면 포기가 빠를 것 같았어. 아... 나는 정말로 재능이 없었구나 하고.”
“그런데?”
“지금 네 모습을 봐. 누가 널 보고 진짜 선수들과 복싱을 하고 왔다고 생각하겠어.”
“코피라도 흘리고 올 걸 그랬나.”
“차라리 그러지 그랬어. 그랬으면 이렇게 자괴감이 들진 않았을 텐데.”
“자괴감?”
이헌의 물음에 바다는 잠시 동안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헌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이 이상 침묵할 순 없었는지, 진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맞고 산 적이 없었다. 덩치 큰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었어. 어디 지역 최고라던 고등학생들도 내 손에 걸리면 박살이 났지.”
이헌은 순간 골치가 아파짐을 느꼈다. 보아하니 소위 일진 놀이를 했던 녀석인가 본데,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먹질에 자부심이 있었거든. 그렇게 스스로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모든 걸 조심했어. 어설프게 애들 괴롭히지도 않았고, 이른바 정의로운 일진 코스프레도 했지.”
“그건 다행이네.”
“그리고 널 만났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체격도 작은, 똑같은 고아.”
그 뒤로는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다는 호승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헌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바다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했다.
이헌은 그런 바다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넌 재능이 있어.”
정말이었다. 이헌을 상대로 도망가지 않고 싸움을 걸었을 정도다. 그 용기와 저런 피지컬만 있다면, 체육 쪽으로 충분히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지금도 너를 보면 오줌을 지릴 것 같아. 그때처럼......”
그렇게 말하는 바다의 다리는 살짝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헌은 깨달았다. 아까부터 바다는 단 한 번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도망갈 수밖에 없어. 너 같이 재능이 넘치는 녀석은 결국 어느 스포츠에서든 활약할 수밖에 없거든. 공개석상에서 네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리는 광경을 전 국민에게 보여줄 순 없으니까.”
“오버하긴.”
“오버가 아니야.”
진지하게 말하는 바다를 보며, 이헌은 보육원의 아이들이 왜 그렇게 자신을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 대단한 담력을 지닌 녀석이 오줌까지 지렸다는데, 보육원 아이들이라고 별수 있을까.
결국 이헌은 순순히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마.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나였으니까. 그 뒤로도 너는 얌전히 있었고.”
“그래도 미안하다.”
“됐다. 김이헌. 너는 꼭 성공해라.”
“말하는 걸 보니 떠날 것처럼 얘기하는데.”
“아는 형이 있어. 그 형이 같이 사업을 제안했거든.”
이헌은 눈앞의 청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아는 형과 함께 사업? 아무런 기술도, 경험도 없는 고아에게 사업을 제안할 맘씨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헌은 과거 어렸던 자기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좀 적당히 할 것이지, 도대체 애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 반응이 나온단 말인가.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 뒤로 김바다는 보육원을 떠났고, 몇몇 아이들 역시 그런 김바다와 함께 사라졌다.
김바다를 따라간 아이들은 원래부터 불량한 녀석들이었으니, 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을 터였다.
이헌은 굳이 그런 바다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주알고주알 말해봤자 무슨 말이 먹히겠는가. 이헌은 부모나 선생처럼 조언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헌이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음에도 평범한 삶을 원하듯, 바다 역시 자신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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