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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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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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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폭주기관차

DUMMY

25.




마이크 감독의 간단한 최면에 수비수 모두가 광기에 휩싸였다. 그들은 마치 이헌이 진짜 사이보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페이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은 미식축구 테스트였다. 그냥 평범한 레더 드릴(사다리 모양의 줄을 바닥에 놓고, 그 사이를 뛰는 것)이나 컨디셔닝 능력, 그리고 캐치와 40야드 기록만 보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힘이 좋다면 수비수들과 함께 몸싸움을 시키면 되는 일이었고, 스피드가 빠르면 라인맨과 1:1 대결을 시키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이크 감독의 주문은 너무나도 과했다. 특히 사이보그 스캔들은 이신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사건으로, 미식축구부원들에겐 자극이 강한 이슈였다.


“감독님은 무슨 생각이신지......”

“사이보그에 유감이라도 있어? 다들 왜 저래.”

“그거 때문에 1년 동안 출전 정지를 당했거든. 미국에 있는 고등부 애들한테는 아직까지도 비아냥을 당하고 있고.”


이신 국제학교 미식축구부는 일 년에 한 번, 미국 고교 챔피언과 시합을 가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고등학생 수퍼볼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였다.

경기 내용과 결과는 당일 미국의 지상파 뉴스에도 나왔으며, 이것을 전문으로 생중계하는 케이블 채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그런데 그 전통 있는 경기를, 멍청한 사이보그 한 명 때문에 기권을 하게 된 것이다.


“사이보그가 문제가 많나?”

“아직도 심각하지. 방출될 것 같으면 당장 눈에 뵈는 게 없어지니까.”

“약물이나 인조인간이나 그게 그거잖아. 뭔 호들갑은......”


하지만 이헌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인조인간이라고 해봤자 별로 와닿지도 않았을뿐더러, 어차피 그의 생각엔 로이더나 사이보그나 똑같은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이헌을 보며 페이튼은 질렸다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너에겐 약물이나 개조인간이나 하찮게 보이겠지.”

“어쨌든 저놈들이 나한테 과격한 태클을 걸어올 거라는 건 알겠어.”

“그래. 그러니까 이번엔 패스 대신 러닝백으로...”

“그럴 필요 없어.”

“뭐?”

“이번에도 패스를 해.”


이헌의 눈이 번들거렸다.

사실 이헌이 미식축구부를 찾은 것은, 정말로 이 종목을 테스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진짜 목적은, 자신의 육체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궁금했다.

과연 저 덩어리들의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 자신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육체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식축구의 거친 라인맨들만큼 적합한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순수한 힘이라면 지금 이신 내에서 저들을 능가하는 자들은 없을 테니까.

이제 이헌의 진정한 시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이헌이 패스를 받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두 명의 수비수가 나타났다.

그들은 처음 이헌을 샌드위치로 만들려고 했던 라인맨들로, 그 체격만큼이나 흉흉한 면상을 하고 있었다.


“이 사이보그 녀석!”

“사이보그는 죽인다!”


순간 이헌은 이 녀석들의 지능지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미식축구를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하더니, 어째 말하는 게......


“너희들 바보냐?”

“크아악!! 사이보그는 죽인다!”


정말 바보인지, 아니면 바보 흉내를 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쿼터백이 라인에서 공을 건네 받아 패스를 하려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맹수처럼 변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이헌을 밀치기 시작했다. 최대 130, 최소 110kg은 나가 보이는 덩치 둘이, 90kg도 되지 않는 이헌을 전력을 다해 밀쳐냈던 것이다.


“어?”


뭔가 이상했다.

분명 원래대로라면 이헌은, 평소 그들의 샌드백처럼 형편없이 나가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기는커녕 절대 느껴질 리 없는 어떠한 통증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벨을 잘못 건드렸거나, 거대한 바위를 밀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었다.


“하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힘을 확인한 이헌의 입에서, 재밌어 죽겠다는 듯한 광소가 흘러 나왔다.


“이익!”


수비수들은 그런 이헌을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오죽하면 얼굴만 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스모 공격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험하게 밀어쳐도, 이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선, 오히려 고요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이헌은 두 명의 수비수들을 무시한 채, 자신에게 날아오던 공을 가볍게 잡아냈다.

그것은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운, 너무나도 완벽한 캐치였다.


“덮쳐!”

“우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순간, 사방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이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마이크 감독은 전율했다. 아니, 전율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헌이 합 200kg이 넘는 덩치들의 범프를 아무렇지도 받아낼 때, 그는 진실로 소름이 돋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NFL에서조차 와이드 리시버를 담당하는 수비수는 한 명이 전부였다.

간혹 말도 안 되는 능력치를 보여주는 리시버에겐 두 명이 붙기도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능력’, 즉 불가능한 능력치를 가진 선수에게나 붙이는 전술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선수가 한국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범프 속에서 기어이 쿼터백의 패스를 받아냈을 때, 마이크는 자신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것이 어느 정도였냐면, 혹시 자신이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에 걸린 게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덮쳐!”


그리고 시작되는 수비수들의 무자비한 태클.

마이크가 미리 지시한 대로, 다섯이나 넘는 무시무시한 덩치들이 이헌을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사실 이 같은 무자비한 태클은 연습에서 사용하기엔 너무나도 위험했다. 특히 상대가 이헌 같은 작은 체중(미식축구 기준으로)의 선수라면 더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마이크가 이 같은 태클을 지시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이헌에게 미식축구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헌은 분명 모든 방면에서 천재였다. 초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상급인 러닝 능력과 캐쳐 능력까지 동시에 지닌 악마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이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다간 미식축구 자체를 얕보고 경시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안일한 마음은 반드시 부상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는 이런 신고식을 행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이헌이 이번 태클을 통해, 미식축구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끼길 기원하면서.


“어어?”


헌데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던 코치의 알 수 없는 의문사가 들려왔다.

이신의 코치들은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사고가 터졌다는 뜻이었다.


깜짝 놀란 마이크가 필드로 달려나가려 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그는 달려나가는 대신, 코치들과 마찬가지로 멍청한 의문사를 내뱉고 말았다.


“뭐, 뭐야 저거?”


그것은 평생을 미식축구에만 매달려온 마이크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헌은 달리고 있었다.

아니, 지금 저 속도는 달린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해 보였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답답한 달리기가 다섯 명의 덩치들을 끌고 가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90kg도 나가지 않는 작은 체격의 이헌이, 평균 120kg이 넘는 라인맨 다섯을 업고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게 뭐야!”


저것이 도대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마치 질량보존의 법칙 같은 물리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모습이 아니던가?

경악하는 것은 코치진들만이 아니었다. 이헌을 막기 위해 대기 하고 있었던 다른 수비수들 역시, 똑같이 입을 벌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 중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이신의 사령관인 페이튼이었다.


“이헌! 손을 써! 손을 써도 돼!”


페이튼의 다급한 외침이 필드 전체를 맴돌았다.

그때부터였다. 기이한 차력쇼처럼 보였던 장면이, 무시무시한 학살극으로 변했던 것은.

정확히는 그가 팔을 사용하고 나서부터, 미식축구의 모든 법칙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하하!”


이헌은 거친 광소와 함께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손짓 한 번으로, 두 명의 라인맨이 나가떨어졌다.

앞에서 버티고 있던 또 한 명의 라인맨은, 이헌의 어깨치기 한 방에 그 자리에서 넘어가 버렸다.

순식간에 세 명의 라인맨들을 처리한 이헌은, 평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허리 뒤엔 아직도 두 명의 선수가 더 매달려 있었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우직하게 달려나갔다. 그것은 두 명의 덩치들을 달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질주였다.


결국 악착같이 매달려 있던 수비수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폭주하는 이헌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기엔, 그들의 약력은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렇게 다섯 명이나 되는 수비수들을 떨구어낸 이헌이었다. 그런 그의 손아귀엔, 아직까지도 타원형의 공이 단단하게 들려 있었다.

그리고 엔드 존까지는 아직 60야드나 더 남아있었다.


“막아!”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필드 위에 있던 모든 수비수들이 이헌에게 달려들었다.

앞에서 막는 자들, 대각선에서 막는 자들, 옆에서 막는 자들,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까지.

그렇게 수비수들은 이헌을 향해 사방에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헌을 잡을 순 없었다.

뒤에 있던 수비수들은 아예 쫓아가지도 못했으며, 그것은 옆에서 달려오던 수비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혹 근처에 있던 몇몇 수비수는 겨우 이헌의 몸에 손을 댈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이헌의 팔과 부딪칠 때마다, 마치 프로레슬링처럼 공중제비를 돌아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끔찍했던 것은, 정면으로 이헌의 앞을 가로막던 한 수비수였다.


“커억!”


이헌의 손바닥에 명치를 얻어맞은 그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그대로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다.


그 누구도 이헌을 막을 수 없었다.

심지어 거친 미식축구에서도 금지된 기술조차, 이헌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위험한 기술을 쓸수록, 거칠게 나자빠지는 것은 바로 그 당사자들이었다.



그렇게 이헌이 엔드 존에 도착했을 때, 그의 뒤로 멀쩡하게 서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절대 도망가는 플레이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폭력이자 방화였으며, 살육의 폭주기관차였다.


하지만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터치다운을 성공한 이헌이 내뱉은 한 마디였다.


“아, 공격수도 팔 사용 할 수 있는 거였어?”


초심자임을 증명하는 방금의 대사는, 그가 보여주었던 방금의 러닝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



* * *



테스트는 종료되었다.

마이크의 안색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지어 하얀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이헌의 플레이를 보며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그의 손이 완전한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방금 플레이를 보고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닐 테니까.


그것은 흡사 조나 로무의 환생이었다.

키 198cm에 몸무게 120kg의 무지막지한 피지컬로, 필드를 파괴했던 거대한 전차.

미식축구의 모든 이가 탐냈고, 뉴질랜드의 모든 이가 보호하려 했던, 럭비 역사상 최강의 플레이어.

그 조나 로무가 지금 이신의 필드에 나타난 것이다.

비록 신장 질환으로 인한 짧은 전성기와 함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결코 작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조나 로무라는 단 한 사람 때문에 럭비의 모든 공식이 무너졌으며, 수백 년을 쌓아왔던 전통이 바뀌었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이헌에겐 조나 로무조차 가지지 못했던 ‘건강’이라는 무기까지 있었다.

아니, 장담컨대 그 조나 로무조차 방금 위대한 플레이는 불가능할 터였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의 물리법칙을 위반한, 기적의 러닝이었으니까.


마이크 감독의 눈이 뒤집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는, 차마 이헌에게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미식축구에 있어서 감독이란 왕의 자리였다.

그 왕의 전술과 전략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었으며, 왕의 간택을 받아야만 전쟁이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왕이 지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말을 잘못했다가 이헌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마이크가 제왕과도 같은 힘을 지녔다지만, 그것은 결국 미식축구 내에서 가지는 권력일 뿐이었다.

그가 아무리 이신 미식축구부에서 잘나가봤자, 결국 다른 학생들에겐 아저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천재는 미식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만약 여기서 시시하다고 가버린다면? 그 말도 안 되는 장면으로 잔뜩 현혹시켜 놓고, 무책임하게 우리를 버린다면?

그렇다면 자신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마이크 감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헌을 보며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코치진들 역시 마찬가지라서, 그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한 명, 양복을 입고 있는 한 미국인을 제외하면.


“이헌! 김이헌!”

“부장님도 계셨습니까?”

“하하하! 아까부터 보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그는 마치 이헌과 크게 친분이 있다는 듯, 잔뜩 친한 척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는 당연히 크리스찬 부장이었다.

물론 크리스찬과 이헌은, 서로 다서 여섯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지금 대면하는 것까지 합쳐도 결국 열 번을 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헌을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이헌 역시 그런 크리스찬에게 친근하게 대했다.

십 년을 사귀어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 한 번을 만나도 평생지기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헌과 크리스찬은 제법 잘 맞는 편이었다.


“그래 어떠냐. 미식축구 재미있니?”

“재밌었습니다. 마치 전쟁을 하는 것 같아서 색다른 기분이 들더군요. 그냥 도망만 치는 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마냥 그렇지도 않네요.”

“그렇지? 참호를 만들고, 포병으로 방어하면서, 공중전이나 탱크, 둘 중 하나로 밀고 나가는 거야. 이보다 더 남자의 스포츠가 어디에 있을까?”


크리스찬은 이헌의 말에 긍정하며 미식축구의 공격 전술을 현대전에 빗대었다.

하지만 정작 이헌이 말한 것은, 그런 근대화 된 전쟁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 저는 기병대를 말한 건데요.”

“응?”

“정예 기병대 백 명이면, 일만의 보병도 쉽게 붕괴시키지 않습니까.”

“그, 그러냐... 네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도 같네.”


순간 크리스찬은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장면이 떠올랐다.

온몸을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채 전투용 명마를 올라탄 정예 기사 한 명이, 억지로 전쟁에 끌려 나온 백 명의 농민들을 학살하는 광경이었다.

방금 이헌이 보여줬던 플레이가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참고로 우리 학교는 중복 가입이 가능하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식축구는 일 년에 20경기도 뛰지 않아.”

“야구랑은 딴판이네요?”

“그래. 한 마디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강요하지는 않으마. 복싱 하고 싶으면 해. 레슬링을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 다만 그들 사이에 미식축구 역시 껴있으면 좋겠구나.”


크리스찬은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니,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자면, 털어놓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복싱이나 레슬링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 역시도 전형적인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헌이 복싱이나 레슬링이 아닌, 미식축구를 택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헌은 누가 뭐라 해도 미식축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크리스찬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이헌이 아니었다.


“허허, 괜히 그러지 말고 솔직해집시다. 미식축구 해달라고 하세요 그냥.”

“그럴까? 그럼 해줄래?”

“뭐 해드리죠.”

“지, 진짜?”

“다만 복싱부에 있는 제 이름은 빼지 말아 주시고.”

“네가 원한다면 그쯤이야 문제없지.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니? 크리스 감독이랑도 그렇게 됐는데.”

“이대로 떠나버리면 제가 무슨 꼴이 됩니까. 잘난 척만 하다가 미식축구로 도망가버린 녀석이 되잖아요.”

“그건 그렇구나.”

“적어도 그럴 듯한 실적은 내야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복싱 좋아합니다.”

“그래. 좋아하면 어쩔 수 없지.”


크리스찬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머릿속엔 복싱이든 뭐든 들어오지 않았다.

이헌이 미식축구부에 들어갔는데 뭔들 못 해줄까?


그렇게 크리스찬 부장과 마이크 감독의 환호와 함께, 드디어 이헌의 미식축구부 입단이 결정되었다.


작가의말

페이튼의 의문처럼, 보통 미식축구는 저딴 식으로 테스트 안합니다. 


그냥 이헌이 미친놈이라서 마이크한테까지 전염이 된 겁니다. 도발도 좀 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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