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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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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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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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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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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2. 트래비스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

DUMMY

12.



이헌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으로 샤워실에서 나왔다.

급하게 샤워를 한 것인지 그의 몸 구석구석엔 아직 닦이지 않은 분홍색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분홍색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허나 그런 흔적들을 차지하더라도 그의 몸은 아름다웠다. 전생 전만 하더라도 온몸이 칼자국으로 뒤덮여 있던 이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은 파이터나 검객이라기 보단, 대리석을 깎아 만든 조각상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런 그의 육신과, 지금 그가 서 있는 이곳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종의 피칠갑이었다. 마치 현대 미술가가 만든 듯한 붉은 난장판이, 그의 주변에 극단적으로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어둑하고 칙칙한 붉은 범죄 현장 속에서 눈부신 나신으로 서 있는 이헌의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일레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헌이 옷을 입지 않았던, 몸에 핏자국이 남아 있던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이헌이 샤워실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수건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아니에요.”


남자 경험이 많은 일레나야 남자의 벗은 몸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놀라운 건 이헌이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맨몸으로 일레나를 맞이하는 것이, 여자에게 상당히 익숙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제로 이헌이 여인에게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매춘부와의 경험이 없는 것과, 여성의 경험은 별개였으니까.

과거 이헌은 뛰어난 육체를 타고난 것은 물론, 엘리트 선수 이상으로 단련한 사람이었다.

사람의 신체는 똑똑했다. 자신의 몸이 혹사를 당하게 되면,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근육을 만들어 스스로의 몸을 보호한다.

그 과정에서 육체는 근육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호르몬을 스스로 처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호르몬을 생성되기 시작하면,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변화가 바로 왕성한 성욕이었다.

이는 이헌뿐만이 아니라, 혈기왕성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생리현상이었다. 오죽하면 올림픽 숙소 쓰레기통에서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용된 콘돔이라고 할까.

물론 이헌의 스승이었던 중헌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연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나가며 스스로 수양을 쌓았다.

하지만 이는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해있었던 탓이었지, 결코 둘 중 하나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헌의 주위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있었다.

이헌이 바람둥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육질의 몸에 야수와도 같은 외견은, 언제나 여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자가 끊이질 않았던 이헌이었지만, 정작 한 여인과 깊은 관계까지 감정을 이어나간 적은 없었다.

이헌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가족을 꾸릴 정도의 짙은 감정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결국 이헌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까.


“여기, 주스 한 잔 하세요.”


일레나는 마치 숙련된 스튜어디스처럼 이헌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넸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던 탓이었을까. 설탕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헌이었지만, 일레나가 준 주스는 참 달고 맛있었다.

주스를 다 마신 이헌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곳은 일레나가 장사를 하던 건물의 3층이었다.

1층과 2층이 매춘을 위한 침실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곳은 그런 매춘부들을 관리하기 위한 포주의 사무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이제 이곳은 지독한 범죄현장일 뿐이었다.


“졸지에 마이클 마이어스(슬래셔 무비의 조상님)가 돼버렸네.”

“예?”

“아니야.”


처음 이 일에 끼어들었을 때 이헌은 트래비스(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가 되고 싶었다. 이는 스승님과 함께 숙식을 시작했을 때 처음 같이 본 영화로, 남자들이라면 피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었다.

스토리는 간단했다. 외부인인 중년인이 소녀, 혹은 소년을 구한다는 전통적인 서부극 스타일로, 대표적으로 셰인과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맨 온 파이어가 있었다.

특히 택시 드라이버는 베트남 전쟁 후 버려진 군인들의 이야기와, 어려웠던 시절 가난했던 하류층의 삶을 조명하며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이헌이 20세기 영화에 빠지게 된 것도 록키와 함께 택시 드라이버가 결정적이었으니까.


그렇게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떠올리며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직접 손을 쓴 이헌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헌의 손에서 펼쳐진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였다.

평화롭게(?) 잘살고 있던 포주 조직에게 갑자기 나타난 피범벅 재앙. 바로 할로윈(마이클 마이어스 캐릭터가 나온 영화) 스타일의 슬래셔 무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헌은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들이 평범한 조폭들처럼 회칼이나 쇠파이프 같은 것으로 무력을 행사했다면, 가벼운 뇌진탕과 골절 정도로 합의를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동하고 나타난 것은 회칼이 아닌 군용 나이프와 진짜 제대로 된 카타나였다.

카타나를 왜 포주 조직이 가지고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저 군용 나이프는 회칼 따위와는 그 성능부터가 달랐다.

한국 조폭들이 굳이 사시미라 불리는 회칼을 쓰게 된 이유는, 오히려 그것이 좋은 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을 죽일 때 쓰이는 칼들은, 반드시 도검소지허가증이 필요했다.

그리고 회칼은 말 그대로 회를 썰기 위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칼이지, 절대 사람을 찌르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조폭들이 회칼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조금이라도 형량을 적게 받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시작부터 진짜 흉기들을 들고 나왔다. 이는 이들이 얼마나 대책 없고 잔인한 조직인이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헌은 별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회칼이나 군용 나이프나 찔리면 아프고 뒤지는 건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헌은 그 누구보다 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저들이 설사 폴암이나 쿼터스태프 같은 최종병기를 들고 온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이 이헌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이헌 조차도, 그들이 권총과 산탄총을 꺼내 드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


평생을 치안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왔던 김이헌이다.

이헌에게 있어서 총이란 영화나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별세계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퍼런 총구가 겨눠졌을 때, 그의 내면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당황, 황당, 냉정,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폭풍들이, 그의 내부를 휘몰아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곧 생존본능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이끌어 내고 말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주먹으로 얌전히 봐주려던 이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본도를 손에 쥐었다.


이것이 바로 이 참극이 벌어진 경위였다.

결국 이 피투성이의 난장판은, 이헌이 진심으로 실력 발휘를 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거기 피 웅덩이 조심해라.”


이헌의 말에 일레나가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를 성큼 건넜다.


“너무 오버 했어.”

“예?”

“설마하니 총을 겨눌 줄은 몰랐거든. 놀라서 조금 과하게 손을 썼네.”


이헌의 농담 같지도 않은 말에 일레나는 두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의외로 부잣집 도련님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땅에서 총을 볼 일이 없는 곳이라고는, 부자들이 사는 부촌과 서울의 특별한 지역 외엔 거의 없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저 남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이 총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적어도 도망을 치거나 그 자리에서 얼어붙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남자는 당황했다는 이유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도륙을 내버렸다.

그러면서도 처음이라 서툴렀던 거라며 변명 비슷한 걸 늘어놓는 것이다.

마치 첫 경험을 망치고 부끄러워하는 남자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레나는 지금의 상황이 무섭지 않았다.

지금 이 남자는 사람을 열다섯이나 죽인 살인마였다. 심지어 그녀의 눈앞에는 자신 같은 매춘부가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은 경찰조차도,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나야 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나는 이 남자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이 순간, 일생 처음으로 안도감이라는 안정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일레나라고 했던가.”

“네.”

“진짜 나이가 몇이지.”

“열여덟 살이에요. 하지만 3년 전 끌려왔을 때부터, 저는 쭈욱 열다섯이었어요.”

“부모는.”

“빚 대신 절 팔아먹은 뒤로 연락도 없어요. 한 번은 전화해봤는데 곧 구해주겠다며 안심시키더군요. 그런데 그 뒤로 이놈들에게 구타를 당했어요.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짓을 하면, 다른 언니들처럼 약쟁이로 만들어버리겠다면서요.”


안 봐도 훤했다. 자신들이 팔아먹은 딸이 귀찮게 굴자 조직원들에게 일러바친 거겠지.


“낳아줬다고 모두 부모는 아니지. 잠시만 기다려.”


이헌은 사무실 구석으로 향하더니 제법 커다란 금고의 문을 열었다.

금고는 피투성이의 지문 모양으로 잔뜩 찍혀 있었다. 이는 저 금고의 문이 어떤 과정으로 열렸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18살이면 성인인가?”

“그래요.”

“매춘부 일, 계속하고 싶어?”

“......”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내가 살던 곳은 매춘부가 갑이었어. 너처럼 어리고 예쁜 애들은 더더욱.”

“그건 당신처럼 살기 좋은 곳의 고급 창녀들이나 그렇죠.”

“그럼 이걸로 카페나 열던가.”


이헌은 금고에서 꺼낸 돈뭉치들을 꺼내 차곡차곡 쌓더니 가방에 담아 몽땅 그녀에게 건넸다.

3억? 아니 적어도 5억은 되어 보이는 물량에 일레나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됐다.

이헌이 사람을 베는 모습을 볼 때도. 심지어 꿈틀거리는 시신을 볼 때도 초연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동요를 보인 것이다.


“저, 정말요?”

“네 정당한 노동 값에 위자료까지 더하면 이 정돈 되지 않을까.”

“하, 하지만......”

“신분세탁도 해야지. 가족들이 찾아와서 손 벌리거나 또 팔아버리면 곤란하잖아.”


현재의 대한민국은 주민등록 같은 정교한 신분 시스템이 없었다. 6.25 전쟁의 결과가 바뀌면서 간첩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이나 미국처럼 쉽게 신분을 바꾸거나 도용할 수 있는 문제가 생겼지만, 지금 일레나의 경우 오히려 그러한 점이 도움이 되었다.


“동료들에게도 이 일은 말하지 마. 그냥 혼자서 도망가.”

“정말 제게 이런......”

“빨리 돈 챙겨서 가. 구경꾼들 많으니까 뒷문으로 가고.”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어떻게 하려고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결국 일레나는 이헌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돈을 챙겨 떠나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식 예절에서 나온 인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일레나 자신도 모르게 몸에서 나온 진심을 담은 감사였다.

잘못된 부모를 만나 수많은 남자들에게 유린을 당해오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역경 속에서도 그녀는 절망과 혐오 대신, 제대로 된 남자를 볼 수 있는 눈을 길러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일레나가 한 일이라곤, 아주 조금이나마 신경이 쓰였던 남자를 걱정해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덕에 그녀는 돈과 자유를 얻었으니까.

그녀의 눈은 옳았던 것이다.




* * *



이헌은 창문을 통해 일레나가 택시를 타고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용감하고 똑똑한 여자였다. 이 지독한 동유럽 출신 갱들에게서 무려 3년 동안 무사히 버틴 것만 알 수 있었다.

마약과 여자들을 파는 이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했는지는 다른 여자들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자들이 여자를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빚의 늪에 빠뜨려 꼼짝도 못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마약에 중독시켜 이지를 상실케 하거나.

특히 후자의 경우 멕시코나 동유럽 마피아들이 주로 쓰는 방법으로, 치안이 극도로 어지러운 나라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런 자들에게서 버텨낸 일레나라면 어디에서든 살아날 수 있을 터였다.


“후우.”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샤워를 했음에도 몸에서 땀이 났다.

일레나가 건네주었던 수건으로 머리를 달리던 이헌은 문득 자신이 아직까지도 알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름 일레나랑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한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옷도 입지 않은 변태가 똥폼이나 잡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낄낄거리던 이헌은, 비교적 깨끗한 녀석의 옷으로 빌려 입었다. 물론 다시는 돌려줄 필요가 없겠지만.


이후 이헌은 본격적으로 작업을 개시했다.

어려운 건 없었다. 자신이 남긴 흔적과, DNA가 남아 있을 이 일본도를 처리하면 끝이었다.

그런 뒤 사무실 안에 있던 약간의 촉매제들을 이용해 건물에 불을 질렀다.

불이 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위층에서부터 난 불은 서서히 아래로 번졌고, 곧 건물 전체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과 매춘부들은, 뜨거운 열기와 연기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수선하고 복잡해진 배경 속에서, 이헌이라는 존재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불은 건물 전체에 번졌지만, 사건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이곳은 슬럼가였다. 경찰에 신고해도 한 시간이 넘도록 순찰차 하나 나타나지 않는, 버림받은 지역이었다.

이런 곳에선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귀신처럼 묻히기 마련이다.


제보?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었다.

슬럼가에 밀고는 없다.

그들은 방관자이자 생존자였다. 이 바닥이 생리를 잘 아는 그들이, 함부로 주둥이를 털었다간 어떻게 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어두운 밤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길거리 가로등도 제대로 관리 되지 않는 이곳에, 이헌의 얼굴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그 거리에서 이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일레나 외엔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제외하면, 김이헌을 본 사람 중 살아 있는 자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보육원으로 돌아오기 전, 이헌은 싸구려 옷가게에 들렀다. 그리고는 대충 몸에 맞는 싸구려 옷과 신발로 갈아신은 뒤, 현장에 있던 모든 물품들을 버려버렸다.

옷, 양말, 신발까지. 아예 흔적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정리를 한 이헌은 보육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한 번 샤워를 했다.


시간은 유수와도 같이 흘렀다.

사건은 이헌이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도심에서 사람이 열다섯 명 이상이 죽고 방화까지 일어난 사건이다.

만약 예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하루 종일 대서특필 됐을 정도의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달랐다. 사건은 그날 저녁 단신 뉴스로 한 번 보도된 것이 전부였다. 그 뒤로는 지상파 뉴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헌이 사건을 발견한 것은, 갱단 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료 인터넷 뉴스 홈페이지에서였다.

일본에선 야쿠자나 폭주족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런 갱단 전문 뉴스가 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뉴스 홈페이지에서조차 이번 방화 살인 사건은 그저 흘러가는 작은 소식일 뿐이었다.


인터넷 뉴스에서 나온 사건의 전말을 이러했다.

아직 구역에 대해 잘 모르는 신입 조직원이 실수로 라이벌 조직의 창녀촌으로 갔다. 그로 인해 시비가 붙었고, 결국 ‘정당방위’로써 스스로를 방어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채택된 것이 바로 죽은 조직원들의 사체였다. 시신에서 총알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말단 조직원의 정당방위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검찰은 범인을 과잉방어와 방화, 사체유기로 공소했고, 자연스럽게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렇게 경찰은 범인을 잡으며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무주공산이었던 구역은, 해당 조직원의 조직이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석이조의 사건이었다.


“하 참나......”


어지간하면 혼잣말 같은 건 뱉지 않는 이헌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흘러가는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세계는 미친 게 분명했다.


작가의말

실수로 예약 업로드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올라왔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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