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6,258
추천수 :
955
글자수 :
256,612

작성
20.05.20 18:00
조회
686
추천
20
글자
12쪽

9. 시프트

DUMMY

9.



이태성 코치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계속해서 닦아냈다.

하긴 지금 이헌이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복싱 코치가 얼마나 있을까.

분명 저 김이헌이라는 학생은 제대로 된 복싱 경험도 없는 초보자라 했다.

물론 종합격투기를 수련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의 나이 겨우 17살.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송이가 훈련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 것이며, 또 제대로 된 코치 밑에서 훈련했을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무엇보다도 종합격투기와 복싱은 완전히 다른 운동이었다.

심지어 저 녀석은 단 한 번의 공식전도 치르지 못했다 하지 않았던가?


“부장님.”

“예 코치님.”

“어디서 저런 괴물을 주워오셨습니까?”

“......”

“저 녀석...의 회피 보셨습니까?”

“예. 진짜 타이슨처럼 피하더군요.”


크리스찬은 순수하게 감탄하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헌이 인파이팅을 펼치며 다니엘의 펀치를 피하는 모습은, 전성기의 마이크 타이슨과 완전히 닮아 보였다.

하지만 이 코치는 그런 크리스찬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예?”

“저건 마이크 타이슨 같은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저 스텝이나 회피는......”

“맞습니다. 스텝이나 회피는 타이슨의 위빙과 비슷하죠.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파이터가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보고 피한다. 두 번째, 미리 피한다.”

“보통은 그렇죠.”

“무하마드 알리와 메이웨더가 바로 대표적인 첫 번째 케이스입니다. 알리는 멀리서 아웃복싱을 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피해냈고, 메이웨더는 그 두 가지 회피를 완벽하게 해내는 선수였습니다.”

“예.”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말 그대로 장거리 아웃복싱에서나 가능한 기술입니다. 특히 알리는 상대의 피지컬과 펀치 속도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런 간단한 헤드 슬립만으로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던 거죠.”


이 코치의 말은 사실이었다. 과거 무하마드 알리가 보여주었던 헤드 슬립은, 자신의 체력을 아끼고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는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원거리 싸움에서나 가능한 전법이었다.


“하지만 말이죠. 인파이팅은 다릅니다. 근접전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보고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아니,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저 아이는 지금 눈 복싱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아웃복싱이 아닌, 인파이팅으로!”


이 코치의 경악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그 알리조차도 스치면서 쌓였던 데미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년이 어땠는지는 말 안 해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이태성 코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가 말했던 것처럼, 천하의 알리조차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하게 피해내지는 못했다.

분명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치듯이 맞았던 펀치는 계속해서 그의 뇌에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심각한 뇌 질환으로 돌려 받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헌은 그러한 복싱의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처음 시작은 전형적인 더킹과 위빙 동작이었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와 고개를 숙이면서 상대의 공격을 빗나가게 만드는 정석과도 같은 회피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하는 동작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라운드가 시작됐을 때는, 점점 그 동작들이 간소화되더니, 더 이상 무릎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선, 간단히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감히 다니엘의 수준으로는, 이헌의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을 당해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런 건 결코 복싱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저 상대방을 억지로 찍어 누르는, 무지막지한 폭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헌은 간단한 회피 동작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저항할 수 없는 절망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헌의 라이트 스트레이트와 레프트 바디의 연속 공격.

두꺼운 글러브 덕에 다니엘의 턱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간과 복부는 보호할 수 없었다.


“흡!”


다니엘은 숨을 참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아까부터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헌이 공격하고, 다니엘은 도망치고.

지루한 공방이었다. 만약 일반인들이 TV로 이 스파링을 보았다면, 재미없다며 채널을 돌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복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복싱이 아니라 격투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감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이는 단순하게 한쪽 선수의 키가 210cm가 넘고, 몸무게가 140kg 이상이 나가기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피지컬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재미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의 싸움은, 마치 천적 간으로 분류된 동물들만큼이나 불합리했다.

독뱀은 치명적이다. 인간은 물론 거대한 코끼리조차 쓰러뜨릴 수 있는 독을 지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뱀이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한들, 고양이 앞에선 한낱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뱀이 고개를 들며 위협적인 소리로 경고를 보내도, 고양이들에겐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청소기 소리만 들어도 털이 바짝 서는 작은 고양이가, 무시무시한 독사 앞에선 호기심에 꼬리를 세우는 것이다.

현존하는 제일 큰 뱀인 아나콘다도, 결국 재규어 앞에선 일용할 한 끼의 식사가 아니던가.


단순히 천적을 넘어서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종족.

이것이 바로 이헌과 다니엘의 차이였다.


[뻐억!]


이헌의 어퍼컷이 다니엘의 턱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머리카락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다니엘의 땀들이 허공으로 분사되고 있었다.

시작은 이헌의 발이었다. 1라운드와 2라운드 내내 전진과 함께 ,평범한 바디 블로우만 반복하던 그였다.

하지만 다니엘이 아까와 똑같이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던 찰나, 이헌의 몸이 급격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바로 다니엘의 측면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것이었다.

상대방의 사이드를 잡으며, 회피와 동시에 카운터를 넣는 동작. 바로 타이슨의 대표적인 움직임이었던 그 다마토 시프트였다.

그렇게 상대의 측면으로 시프트한 이헌은 그대로 다니엘의 턱을 향해 어퍼컷을 적중시켰다.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만약 다니엘의 키가 10cm만 더 작았다면, 혹은 이헌이 몸무게가 10kg만 더 나갔다면, 지금쯤 다니엘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턱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다니엘이었지만, 의외로 맞은 충격은 크지 않았다.

체급이란 그 정도로 불공정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다니엘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겨우 2라운드였다. 2라운드 만에 제대로 된 경험도 없는 초급자에게 비참할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더욱 더 비참한 것은, 아직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헌은 이제 시작이었으니까.


그렇게 라운드가 끝났지만, 아직 스파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2라운드가 끝이 났다. 아마추어 경기였다면 다음이 마지막 라운드였겠지만, 현재 스파링은 5라운드까지 약속을 잡은 상황이었다.


경기는 더욱 극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헌의 스텝은 더 빨라졌고, 그의 시프트는 더욱 활발해졌다. 왼쪽, 오른쪽, 또 어떨 때는 움직이지 않고 정면으로.

그야말로 완벽한 삼지선다였다.

그럴 때마다 다니엘은 안면은 점점 더 피로 물들어갔다.

과연 다니엘이 언제 이렇게까지 안면을 허용해봤을까.

그의 키는 어렸을 때부터 독보적이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으며, 또래 아이들은 감히 그에게 도전할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어른들조차도 그의 체격을 감당하지 못해 빈번히 무너졌을 정도였다.

거기에 명문대인 성 요한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복싱 기술이 개화한 뒤로는, 단 한 번도 턱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퍽! 퍽!]


레프트 바디와 함께 이어지는 레프트 훅. 교과서적인 콤비네이션이었다. 하지만 교과서적이라는 얘기는 그만큼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과도 같았다.

아마 그때서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다니엘은 어렸을 때부터 복싱을 시작한 뒤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떤 유혹을 받기 시작했다.

더 이상 복싱이 하기 싫었다.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고, 빨리 집에 가서 엄마를 보고 싶었다.

혹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닐까.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 당장 스파링을 중단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헌의 라이트 어퍼컷과 레프트 훅을 맞았을 때, 다니엘은 그 감각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육체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지금 당장 누워서 몸을 회복하라고 보내는 뇌의 경고였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다니엘은 더 이상 풋워크를 밟지 않았다. 대신 그는 두 팔을 벌리더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헌을 그대로 안아버렸다.

그의 복싱 역사상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니 할 필요조차 없었던 클린치를, 아직 데뷔 무대도 갖지 못한 고등학생에게 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다니엘의 실수였다.

다니엘은 순간, 자신의 몸이 중력을 거스르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쿵!]



* * *



스파링은 중단됐다.

더 이상은 의미가 없는 스파링이었다. 아까도 그랬지만, 이렇게까지 수준 차이가 심한 대련은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

특히 마지막 이헌이 선보였던 테이크 다운은, 거인인 다니엘에게 많이 위험한 것이었다.

물론 이헌이 정통 레슬링 방식의 진짜 테이크 다운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그의 늑골을 잡고서 약간의 중심을 흩트렸을 뿐이었으니까.

이는 복싱에서도 클린치를 잡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나오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복서가 하는 테이크 다운과, 제대로 레슬링을 배운 이헌이 하는 테이크 다운은 그 강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낙법 같은 건 단 한 번 배운 적이 없는 다니엘이 아니던가.

다행히 큰 뇌진탕은 아니었는지 다니엘은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만 턱을 맞고 기절했냐는 엉뚱한 질문을 늘어놓는 것으로 보아, 경기 기억 중 한 부분이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링은 그렇게 정리가 됐다.

이헌은 땀도 제대로 흘리지 않았는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체육관을 나서려 했다.

그런 이헌을 보며 이태성 코치는 억지로라도 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자네.”

“예.”

“우리 학교로 올 생각은 없겠지?”

“네. 없어요.”

“역시 그렇지. 그럼 바로 금메달을 준비할 건가? 아니면 프로?”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하. 그래.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


2라운드 만에 자신보다 30cm가 크고 몸무게는 65킬로그램이나 더 나가는 선수를 넉다운 시켰다.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주먹으로 쓰러뜨린 것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클린치에서 벌어진 테이크 다운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저 괴물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계의 복싱판이 바뀌게 될 거라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19 20.06.24 1,268 0 -
공지 업로드 시간은 오후6시 혹은 오후 11시 59분 입니다. 20.05.17 700 0 -
37 37. 에이스 결정전 +15 20.06.23 573 40 16쪽
36 36. 시합 당일 +8 20.06.22 477 29 12쪽
35 35. 젤라또 +6 20.06.21 485 24 16쪽
34 34. 자퇴빵 이벤트 +7 20.06.19 504 23 15쪽
33 33. 이헌을 노리는 사람들 +5 20.06.18 508 25 13쪽
32 32. 징계위원회(3) +9 20.06.17 602 25 15쪽
31 31. 징계위원회(2) +6 20.06.16 562 24 17쪽
30 30. 징계위원회 +5 20.06.13 566 27 16쪽
29 29. 나는 말로 안 함 +8 20.06.12 556 27 17쪽
28 28. 프로토콜 P +7 20.06.11 546 21 17쪽
27 27. 연습 +5 20.06.10 591 25 16쪽
26 26. 친구 +4 20.06.09 516 24 16쪽
25 25. 폭주기관차 +6 20.06.08 533 23 18쪽
24 24. 사이보그 +3 20.06.07 558 23 17쪽
23 23. 기록 +4 20.06.05 569 24 16쪽
22 22. 마스터 +4 20.06.04 576 21 19쪽
21 21. 점심 +3 20.06.03 570 27 14쪽
20 20. 천재(天災) +4 20.06.02 586 23 14쪽
19 19. 와이드 리시버 +5 20.06.01 577 23 16쪽
18 18. 안타까운 재능 +3 20.05.30 600 24 16쪽
17 17. 허약한 몸 +5 20.05.29 615 22 19쪽
16 16. 피트니스 클럽 +2 20.05.28 577 19 17쪽
15 15. 상대적 박탈감 +1 20.05.27 594 19 14쪽
14 14. 고개 좀 숙이며 살자 +5 20.05.26 603 23 13쪽
13 13. 결심 +1 20.05.25 625 24 16쪽
12 12. 트래비스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 +4 20.05.24 648 21 17쪽
11 11. 슬럼가 +3 20.05.22 684 21 15쪽
10 10. 어뷰징 +4 20.05.21 710 2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