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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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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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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612

작성
20.06.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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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6. 친구

DUMMY

26.




이헌이 미식축구부에 가입한 이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상에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제일 먼저 그가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인’들의 태도였다.

이신 국제학교에는 많은 외국인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미국인이었다.

그들은 교내 인원수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를 자랑했는데, 사실상 한국인과 함께 절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인과 미식축구는 절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법이다.

특히 한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채워진 이신 야구부와는 달리, 미식축구부는 대부분 미국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 전미 고교 풋볼 챔피언과 일 년에 한 번 맞붙는 이벤트는, 한국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딱 좋은 행사기도 했다.


“안녕 이헌?”

“어, 안녕.”


지금만 봐도 그렇다. 영화에서나 보던 금발 백인과, 긴 생머리를 가진 흑인 미녀가, 이헌에게 동시에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그냥 인사가 아니었다.

복도 벽에 딱 몸을 기댄 채, 은근히 골반 라인과 가슴의 볼륨을 보여주는 것이, 노골적으로 이헌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헌은 이런 유혹을 못 알아볼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너희들은 내 이름을 아는데, 나는 모르네.”

“안녕, 나는 에이미야.”

“나는 알렉스.”

“그래? 혹시 초등학생은 아니지?”


이헌의 나름 진심이었다. 보기에는 이렇게 보여도 혹시 초등학생일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그녀들은 그 말이 제법 재밌는 듯했다. 자기들끼리 한 번 눈을 마주치더니 꺄르르 하며 하얀 건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하하. 이헌이 너, 재밌는 아이구나?”

“너무 귀여워. 지금까지 너무 조용히 지내서 몰랐잖아. 진작 말 걸어 볼 걸.”


이헌이 생각하기에 지금 자신의 말은 전혀 재밌지 않았다. 아마 다른 평범한 사람이 똑같은 말을 했다면, 무슨 헛소리냐며 경멸의 눈빛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 농담을 꺼낸 사람이었다. 천하의 마이크 감독을 벌벌 떨게 만들고, 크리스찬 부장마저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보증수표의 한 마디가 아니던가.

아마 이 여자애뿐만 아니라, 당장 마이크 감독도 낄낄대며 열심히 웃었으리라.


“이헌아. 오늘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아이스크림?”


갑자기 낯간지럽게 아이스크림이라니. 하지만 생각해보니 평범한 데이트 코스로는 제법 어울리는 장소였다. 너무 연애를 안 하다 보니 그만 사고회로가 맛이 가버린 것이다.

콜라도 제로 칼로리를 먹는 이헌이었지만, 의외로 아이스크림은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 젤라또는 이헌이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어디 좋은 가게라도 있나? 내가 이신은 잘 몰라서.”


이헌은 자신이 가난한 촌놈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이 좁은 한국 땅에서도 그가 알고 있는 이신 땅이라고는, 가브리엘 보육원이 전부였으니까.

허나 그런 그의 모습에는 굴욕이나 비굴함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런 이헌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호호호 그래? 그럼 우리가 소개해줘야겠네?”

“아주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있거든. 바닐라랑 초콜릿이 특히 맛있어.”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수도?”


에이미와 알렉스는 뭐가 또 그렇게 재밌는지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웃었다.

이헌은 참 밝은 아가씨들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녀들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았다. 뭔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저런 상류층 서양 애들과 교류를 나눌 수 있을까.


그렇게 이헌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던 그녀들은, 이헌에게 윙크를 남기며 자리에서 떠났다.

특히 에이미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백인 여자는, 골반을 움직일 때마다 쭉쭉 올라가는 자신의 미니스커트를 내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여주는 건가?”


이헌은 엉덩이를 살살 흔드는 에이미의 자태를 감상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당연히 보여주는 거지.”


그런데 그런 혼잣말을 태연하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헌이 옆을 보니 그곳엔 새까만 뿔테 안경과 함께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갈색 머리의 주근깨 소녀가, 마찬가지로 에이미의 엉덩이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녀는 한참 동안 에이미의 엉덩이를 감상했다. 하지만 이내 이헌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안녕. 나는 조이라고 해. 조이 맥칼리스터. 너는 김이헌이지?”

“어째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네.”

“하하하. 너는 처음 이신에 올 때부터 유명인사였으니까.”

“그렇긴 하지.”

“그런데 거기에 미식축구부까지 들어간 거지. ‘미국’ 여자애들이 안 놔두고 배기겠어?”

“......어허.”

“왜?”

“전형적인 미국인 여자애한테 배기겠어 같은 표현을 듣는 게 신기해서.”

“후후후. 그래?”


조이는 이헌의 말이 제법 마음에 드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동그랗던 눈은 어느새 음흉하게 가늘어졌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음험한 미소를 짓더니, 이헌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물었다.


“그래서. 갈 거야?”

“뭘?”

“아까 그 아이스크림.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후후.”


조이의 물음에 이헌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 멀뚱거리며 있었다. 그러자 조이는 제법 흥미롭다는 얼굴로 이헌의 등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이 불쌍한 중생아! 쯔쯔쯔.... 이거 이거 생각 외로 순진한 양반이었군.”

“중생? 지금 중생이라고 한 거야? 너 진짜 미국인 맞아?”

“그게 중요해? 너 정말로 모르겠어? 바닐라랑 초코라고 했잖아. 응? 그게 뭐겠어? 잘 생각해봐.”

“바닐라랑 초코가 왜......”


그 순간, 무언가가 이헌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흐음... 아니, 설마? 그래도?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는......


이헌의 마음 속에서 내적 갈등이 일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거겠지. 지금 이 앞의 소녀가 뭔가 착각을 하는 거겠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조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헌의 복잡한 고뇌를 단번에 끊어주었다.


“모르는 여자랑 쓰리섬 할 때는 조심하는 게 좋아. 콘돔 껴도 헤르페스는 걸린다? 뭐, 요즘 성병이야 대부분 완치가 된다지만, 꽤 비싸거든.”

“으음......”

“뭐 나 같은 너드아싸도 아니고, 어차피 대학교 때 걸릴 성병, 미리미리 걸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만! 그만!”


이헌은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었다. 성교육을 받아도 개차반으로 받고, 성병에 관한 건 나중에 유튜브로 봐서야 아는, 그런 한국인인 것이다.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나의 정절을 빼앗길 뻔했군.”

“우와. 너 혹시 총각이야?”

“정절이라고 했지 순결이라고는 안 했다.”

“하하하, 그런가?”


처음부터 충격적인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일까. 이헌과 조이는 급속도록 친해질 수 있었다.


조이는 재밌는 녀석이었다. 일단 평소 이헌이 봐오던 캐릭터와는 동떨어진 건 둘째치고, 동서양의 문화를 완전하게 섭렵하고 있는 특이한 존재였다.

또 미식축구 때문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인들과는 달리, 그녀는 순수하게 이헌에 대해 궁금해했다.

오히려 조이는 마초이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운동(미식축구, 야구, 아이스하키)엔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녀는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씹덕이니 오타쿠니 하는 너드 긱에 가까웠다. 항상 그녀의 입에서 주제는 클래식한 영화와 만화영화, 그리고 게임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뭐? 너 셰인이랑 택시 드라이버는 봤는데 아저씨를 안 봤단 말이야? 그거 한국 영화라고!”

“말했잖아. 고전 영화는 그냥 기회가 있어서 본 거라고. 난 원래 극장에 가본 적도 거의 없어.”

“허허...... 한국인들은 전부 영화광이라고 들었는데.”

“먹고 살기 힘든데 그럴 여유까진 없었거든.”

“아...... 그렇네. 하긴, 앞의 영화들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

.

.


“뭐? 마블 시리즈를 안 봤는데, 스타워즈 시리즈는 봤다고!? 왜? 어째서? 너 한국인이잖아?”

“스타워즈가 칼 쓰는 영화 중 제일 유명하다고 하길래 한 번 본 거야.”

“몇 편? 몇 편을 본 거지?”

“당연히 1편이지. 그럭저럭 볼만 했어. 거기 나오는 이상한 외계인이 너무 시끄러워서 조금 힘들었지만.”

“세상에 맙소사!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맞지?”


조이는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분명 재밌다고 그랬는데 왜 저렇게 열을 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말처럼 전형적인 너드(미국 스타일의 오타쿠)의 리액션을 보는 것 같아 재미는 있었다.


한쪽은 미식축구부, 다른 한쪽은 너드. 이런 둘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묘한 시너지를 냈다.

조이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건네며, 아는 척을 했다.

이헌은 그녀의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원래 즐거운 법이었으니까.


이헌은 언제나 외톨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리했지만,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더더욱 그러했다.

누군가는 그의 기운에서 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이헌의 목소리에 초저주파가 섞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껄끄러운 사람. 그것이 바로 이헌이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이에겐 그런 것 따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듯했다.

자신의 주근깨만큼이나 활력이 넘치는 그녀는, 언제나 먼저 이헌에게 말을 걸었으며,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그렇게 이헌은 전생 이후, 처음으로 친구라는 존재를 얻을 수 있었다.




* * *




“아니! 아니라니까! 나는 부자가 아니라고! 그냥 말 목장집 딸이라니까!”

“미국에서 농장이나 목장 하면 엄청 부자 아니었어?”

“아니야! 우리는 그냥 소규모로 하는 거야. 못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지주 같은 느낌은 아니라고.”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조이는 전형적인 남부 시골 여자애였다. 동부 여자애들이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을 즐길 때,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나섰으며, 또 동부 여자애들이 뉴욕의 화려한 사교계에 데뷔할 때, 그녀는 말을 타고 로데오를 즐겼다.


“그런데 한국까진 왜 온 건데?”

“엄마가 이신 대학교를 나왔거든. 나도 가고 싶은데 솔직히 공부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렇군. 이신 국제학교를 나오면 아무래도 보너스 점수가 붙지.”

“거기에 추천서도 받을 수 있으니까!”

“동아리 활동 그런 건가?”

“맞아 그런 거야. 이번에 내가 회장 먹으면 이신 대학교는 사실상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거든 흐흐.”


조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신 대학교에 간다. 그런 뒤 그곳에서 공부 잘하는 뺀질이 수의학과 한 명을 낚아챈 후, 고향으로 돌아와 행복한 부부 목장을 운영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설계가 아닌가?


“행복하겠네.”

“히히 그지? 그런데 이헌. 이헌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조이의 말에 이헌은 의아해했다. 이곳 이신에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던 탓이다.


“왜 그걸 물어봐? 다른 사람들은 전부 NFL로 갈 거라 생각하는데.”

“모르겠어. 솔직히 이헌은 미식축구 별로 좋아하진 않잖아. 좋아했으면 일찌감치 스카우트 받았을 때 들어왔겠지.”

“오, 놀라운 통찰력.”

“히히. 말해봐. 뭐가 되고 싶은 건데? 설마 복싱 선수는 아니겠지? 이제 복싱부는 잘 가지도 않잖아?”


조이의 반짝반짝한 눈빛에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결국 이헌은 자신의 친구에게 처음으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좋은 직장을 얻고,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얻어 적당히 살아가는 것.

고지서에 쩔쩔매고, 사춘기가 온 자식들 때문에 고민하고, 중년의 위기가 찾아오고. 이헌은 그런 미래를 꿈꿨다.

특히나 이런 미친 세상에선, 이헌이 그리는 평범한 삶조차 녹록지 않았으니까.


“뭐? 아하하하!? 뭐라고? 네가?”

“네 말대로 나는 NFL 스타 같은 거랑은 안 어울리거든.”

“그래서, 대학교 졸업하면 뭐 하려고?”

“크리스찬 부장하고 얘기된 게 있어. 이신 대학교만 잘 졸업하면 이신 국제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채용해주겠대.”

“체육 교사? 푸하하하하하!”


조이는 웃었다. 그것도 그냥 웃은 게 아니었다. 아예 배를 잡더니, 주변의 모두가 돌아볼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웃음을 터뜨리던 그녀는, 예의 빛나는 눈빛으로 이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평범하게 산다고? 그건 불가능해. 너는 절대 그럴 수 없어.”


마치 그것은 확신이요, 확정이자, 믿음이었다. 그 어떤 불신조차 느껴지지 않는 조이의 목소리에선, 천하의 이헌조차도 소름 끼칠 정도의 광기가 숨겨져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당연하잖아! 누가 너를 가만 놔두겠니? 당장 지금을 봐. 미식축구 하기 싫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잖아? 사람은 사람마다 쓰임새가 있는 법이야.”


다행히 이어지는 조이의 발언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타당했다. 방금 이헌이 느꼈던 광기는, 이미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이후로도 조이와 이헌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잡담을 즐겼다.

하지만 이헌은 새삼 조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록 한순간이라지만, 분명히 이헌은 그녀에게 겁을 먹었다.

이헌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대가리가 맛이 간 미친놈이었다. 그런데 그런 미친놈을, 이 순수해 보이는 미국산 촌녀가 겁을 집어먹게 한 것이다.

하긴 먼저 자신에게 다가와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녀석이 어디 보통이겠는가. 분명 어디엔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이 분명했다.


확실한 건 그런 조이와의 인연은, 이헌의 학교생활에 활력을 불어줬다는 것이었다.

학교생활이라고는 운동과 먹기 외엔 아무것도 없던 이헌이다.

그녀는 이헌을 데리고 이신의 핫 플레이스 구경을 시켜 주었으며, 그가 그렇게 좋아한다던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잔뜩 먹여주었다. 비록 패스트 푸드에서 파는 공산품이었지만 그게 어디인가.

물론 돈이 없는 이헌이었으니, 대부분의 돈은 조이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자기 말로는 평범한 목장의 딸이라고 했지만, 이신 국제학교에 유학을 올 정도면 꽤나 잘사는 집안인 것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마냥 공짜인 것은 아니었다. 조이는 꽤나 꼼꼼하게 장부를 적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언젠가 이헌이 성공하게 된다면, 이 장부에 적힌 금액의 열 배를 갚아야 한다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굉장히 불공정한 계약이다. 두 배도 아니고 열 배라니? 이런 날강도 사채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계약에는 허점이 많았다.

먼저 이헌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미래 일은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아무리 이헌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사 이헌이 성공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헌이 이름을 날린다면, 그것은 분명 프로 스포츠 선수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프로 선수라면 이딴 간식값 따위, 열 배 스무 배, 아니 백 배를 해도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조이는 거짓 투자를 앞세워, 일종의 나눔 행사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선택했던 봉사부는, 그녀에게 딱 맞는 활동이었다.

보통 수험생들이야 계산적인 이유 때문에 봉사를 선택하겠지만, 조이에겐 오히려 딱 맞는 천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이헌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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