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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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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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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6.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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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32. 징계위원회(3)

DUMMY

32.




“......중상이의 퇴학이라뇨? 지금 무슨 말씀이시죠?”


이수열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유아진 감독에게 물었다. 지금 이 자리는 김이헌을 징계하기 위한 자리였지, 절대 자기 자식의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아진 감독은 오히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수열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아버님?”

“왜 내 아들이 징계를 받아야 하냐는 겁니다.”

“이상하네요. 분명 저번 징계 때 이미 협의가 된 사항이 아닌가요? 한 번만 더 태영 군에게 손을 대면 퇴학으로 조치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이중상은 태영을 단순히 하루 이틀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똑똑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만큼, 마찬가지로 머리가 좋았던 중상이었다.

그는 교묘한 방식으로 태영을 괴롭혔으며, 악독한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그 방식이 어찌나 악의적이었는지, 만약 이중상이 유력한 검사장 후보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퇴학과 함께 형사 처벌을 당했을 정도였다.


“그것은 중상이가 태영 군을 괴롭혔을 때 받는 징계가 아니었나요.”


이수열은 최대한 침착하게 반문했지만, 이미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은 피해자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피해자가 퇴학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아진 감독은 의외로 강경하게 나섰다.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 알겠죠. 이제 들어오시라 하세요.”


여기서 누가 더 들어올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이수열이었다.

하지만 이내 문을 열고 나타난 인물을 확인한 그는, 처음으로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자신의 앙숙이자 최악의 견원지간인 이연지 변호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멍청한 아들은 덤이었다.


“어머 반가워요. 김 차장님.”

“......왜 저 여자가 들어옵니까? 이미 태영 군과의 일은 끝난 거 아닙니까?”


이수열은 이연지의 말을 무시하며 유아진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유아진은 여전히 단호한 음성으로 수열의 말을 부정했다.


“분명 김이헌 군의 증언에서도 이중상 군의 언어폭력이 먼저였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멱살까지 잡은 것은 물론, 폭력을 행사하는 듯한 협박까지 취했죠.”

“그건 저 녀석의 증언이지 않습니까! 제 아들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러니까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기 위해 태영 군과 그의 어머니를 모신 게 아니겠습니까.”


이수열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이연지를 노려보았다. 그런 수열의 살벌한 눈빛을 받으면서도, 이연지는 마냥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연지. 법무법인 정의의 파트너 변호사.

하지만 수열이 보기에 법무법인 정의는, 그 이름과는 달리 추악하고 역겨우며, 무척이나 더러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더러운 로펌인만큼 이연지 변호사 역시 상종 못 할 천박한 계집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연지 역시 김수열을 오물 보듯이 경멸하고 있었다.

이렇듯 둘은 앙숙을 넘어 철전치 원수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다만 이것은 둘의 관계가 나쁜 탓이었지, 단순히 검사와 변호사 사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법조계라는 것이 대부분 한통속이라 절대 따로 떼어놓고는 살 수는 없는 구조였다.

이수열과 이연지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이수열의 줄과, 정의의 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서로 잡고 있는 배경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정의의 파트너 변호사인 이연지와의 관계도 나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크리스찬 부장님.”

“흥. 여기가 무슨 법정인 줄 아나 보지?”


이수열은 이연지의 인사에 괜히 시비를 걸었지만, 이연지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자리가 다시 만들어진 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또다시 협박과 인격 모독을 당했으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재발 되었습니다. 그와 관련한 아들의 정신과 소견서를 제출합니다.”


이수열이 차장 검사로서의 힘이 있었다면, 이연지는 변호사로서의 방식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인맥을 이용해 저명한 정신과 의사의 소견을 받아온 것을 시작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수열로서는 가당치도 않았다. 일단 자신의 아들은 절대 욕이나 협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결정했으면 그런 것이었으니까. 아들은 무조건 피해자여야 했으며, 태영은 반드시 거짓말쟁이여야 했다.


“제 아들은 피해자입니다. 태영 군과 김이헌 군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글쎄요. 과연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이 자리에서 밝혀지겠죠?”

“흥. 그래봤자 증언이라고는 가해 당사자인 두 사람이 전부 아닙니까. 우리 측 목격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십니까?”

“그래봤자 가해자의 친구들이겠죠?”


이상했다. 분명 여기는 폭력 사건으로 인한 징계위원회였지, 법정 싸움이 아니었다. 그런데 둘은 마치 이곳이 법정인 것마냥 격렬하게 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만 하세요! 여기는 법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법정처럼 운영되는 자리 아닙니까? 청소년 문제는 사법부에서도 학교의 선택을 존중해줄 텐데요?”


이는 미국의 방식이었다. 실제로 당사자끼리 합의를 할 경우, 형사 고소가 이루어지는 사건일지라도 학교 측의 중재에 맡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과연 이신 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 한국이 너무나도 미국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


“결국 지금 쟁점은 이중상 군이 김태영 군에게 위협과 인격 모독을 했는지에 대한 여부겠군요.”


크리스찬 부장을 골치가 아팠다. 이런 진흙탕 싸움이 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하필 그 부모들이 너무 막강했다.

어떻게 잘만 끝내면 김이헌을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수열 차장 검사를 보고 있자니 그냥 넘어갈 기세가 아니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크리스찬 부장을 구원한 것은, 이번에도 역시 유아진 감독이었다.


“이수열 아버님. 그리고 이연지 어머님.”

“예. 말씀하시죠.”

“예. 말씀하세요.”

“만약 이번 일에 아무 관련도 없는 학생의 증언이라면 어떻습니까.”


그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이수열 검사였다.


“예?”

“말 그대로입니다. 야구부와도 관련이 없고, 게임부와도 관련이 없는, 제 3자의 증언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이수열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마치 가당치도 않다는 듯, 이연지를 손가락질하며 결사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허! 아주 법정에서도 증인들한테 그렇게 말해보시죠?”

“뭐? 여기가 법정이야? 여긴 징계위원회야!”

“저기요. 이수열 씨. 말씀을 가려서 하세요. 하여간 부부가 쌍으로 천박하기는......”

“뭐? 이수열 씨?”

“이봐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마지막 괴성은 박지연 여사였다.

또다시 난리가 난 상황에 징계위원회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역시 저 둘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이번에도 역시 크리스찬 부장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이수열 검사님.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런 모욕은 삼가세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리고 모처럼 다른 증인이 나타났는데 왜 그걸 몰아가는 겁니까!”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왜 못 믿어요? 그 증인이 이중상 군의 말에 동의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혹시 중상 군의 말이 거짓인 겁니까?”

“아니, 그건......”


이수열 검사는 막다른 벽에 걸렸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잘못 대답을 했다간, 자신의 자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 밖엔 안 됐기 때문이다.

결국 그로서는 끝까지 ‘거짓’ 증언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못 믿습니다!”

“허허, 거참.”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보아하니 이수열 검사는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이연지 변호사는 반드시 이중상을 퇴학시킬 요량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이 나왔다. 바로 유아진 감독이 다시 한 번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그 학생이 블랙박스를 가지고 있다면?”

“오! 그거 잘됐네요. 어디 한 번 봅시다!”


이연지는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지금 이수열은 거짓 증언 때문에 새로운 증인을 거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블랙박스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아무리 그라도 빼도 박도 못하게 될 터였다.


“뭐, 뭐요? 블랙박스?”


당연히 이수열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갑자기 여기서 왜 블랙박스가 나온단 말인가?

그는 지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가 미쳤어? 미성년자 블랙박스는 불법이야! 지금 불법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는 거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일단 한국에서는 미성년자 보호법에 의해 아동 블랙박스는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말뿐인 불법일 뿐이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와 술을 팔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미성년자가 금연, 금주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무슨 헛소리입니까? 미성년자 블랙박스는 수술이 불법이지 증거 채택은 법정에서도 받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왜 자꾸 반말이야!”

“뭐라고!? 야! 너 말 다 했어?”

“말 다 했다! 왜!? 너 같은 새끼가 어떻게 검사장이 된다고. 국민들이 바보인 줄 아나?”

“야! 내가 네 선배야!”

“뭐래 꼰대가. 내가 너 있는 줄 알았으면 서울대 안 갔어!”

“뭐!? 너 이러는 거, 너 내 밑으로 몇 명이나 있는지 알아? 내 동문이 알면 뭐라고 할 것 같아?!”

“뭐라고 하긴 뭘 해. 등신 같은 새끼 엿 먹였다고 귀여워 해주겠지.”

“너! 너!!”


이제 보니 둘은 같은 대학 출신인 것 같았다. 가뜩이나 법조계는 출신 학교는 물론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엄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둘의 사이가 여간 살벌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하세요. 그리고 이수열 검사님. 검사님도 잘 아실 텐데요. 비록 블랙박스가 악용이 많이 되어서 그렇지, 결국 피해자들을 위한 수술이라는 것을요. 실제로 법정에서도 많이 채택되지 않나요?”

“크흠!”


유아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블랙박스라 불리는 생체 녹화 시스템은, 말 그대로 빈민가의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주요 목표는 여성들로, 이 블랙박스로 인해 수많은 범죄와 성폭행범을 잡을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이를 악용해 몰카 범죄에 악용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칫 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특히나 생체 프로그램인 만큼 수술을 하는데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쟁점이었다.

이는 저렴한 프로그램일수록 더욱 위험도가 커졌기에, 결국 미성년자는 수술할 수 없도록 법으로 개정이 되었다.

이는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강제로 인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취지였기 때문에, 아직도 갑론을박이 많은 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블랙박스의 유용함을 부정할 순 없었다. 특히 법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운 빈민가의 여자아이들의 경우, 이런 생체 블랙박스는 필수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도, 도대체 이신 같은 학교에서 왜 생체 블랙박스를 쓰는 학생이 있는 겁니까. 혹시 몰카범 아닙니까?”

“검사로서 너무 편협하신 발언이시군요. 성범죄가 상류층 아이, 빈민가 아이를 따져가며 일어난답니까. 오히려 약물로 인한 성범죄는 명문 사립 학교에서도 꾸준히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유아진 감독의 말에 이수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체 프로그램이라고 해봤자, 싸구려 복제품과 불결한 시설에서 수술이 이루어지기에 위험한 것이지, 정품은 굉장히 안전한 측에 속했다.


결국 이수열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유아진 감독은 크리스찬 부장의 허락에 영상을 가지고 올 수 있었고, 그렇게 컴퓨터로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 * *



영상은 명확했다. 비록 멀리서 찍은 거라 자세한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중상이었다는 것이다.

중상이 먼저 태영에게 다가갔으며, 중상이 먼저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시계를 풀어 마치 뺨을 때리는 듯한 행동을 취한 뒤, 깔깔대며 태영을 비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연지의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영상에서 이헌이 중상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서서 때렸을 정도였다.


[뻐억!]


또 영상으로 밝혀진 것이 있다면, 이헌이 증언한 대로 손바닥으로 때렸다는 점. 그리고 그 손바닥 한 방에 중상이 잠시나마 기절을 했었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잘 들리지도 않던 영상에서 유독 크게 들렸던 타박음이다. 그 충격이 어떠했는지는 지금 중상의 얼굴만 보도 알 수 있었다.


사건은 종료되었다.

이수열은 날카로운 눈으로 영상을 지켜보았지만, 결론을 바꿀 순 없었다.

자기 아들은 여전히 병신이었고, 심지어 싸움마저 패배한 등신이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선생님들.”

“여, 여보.”

“가자.”


섬뜩하게 깔리는 목소리와 함께, 수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지연 여사는 그런 수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따라갔으며, 중상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함께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중상아......”

“감독님. 저 어떻게 해요. 저 진짜 아빠한테 맞아 죽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감독님 감독님!”


야구부 감독은 그런 중상이 안타까웠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부터는 김가의 가족 내부의 문제였으니까.


문득 중상의 울상을 지켜보던 이헌은 중상이 시계를 푸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쩌면 중상도 결국엔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보고 배운 것이 그런 것이었으니, 그 역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이헌은 갑자기 중상이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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