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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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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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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8. 프로토콜 P

DUMMY

28.




기껏 이신이라는 명문교에 들어간 이헌이다. 그런데 정작 그의 학교생활이라고는 수업과 영양분 섭취, 그리고 운동밖에 없었다.

효율적이라면 효율적이라고 우길 수 있었지만, 솔직히 제대로 청춘을 즐긴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이헌의 학교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조이의 세컨드 클럽인 게임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이다.

고전 게임부터 시작해, 최신 게임까지. 게임에 관심이 없던 이헌조차도 흥미가 생길만한 VR 게임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이헌이 흥미롭게 플레이한 게임은, 막 신작으로 나온 중세풍 판타지 장르였다.


“검을 저렇게 휘두르는 게 어딨어. 양날검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잖아!”

“이봐. 이건 그냥 게임이잖아. 그냥 즐겨.”


전자는 이 게임부의 회장인 김태영이 한 말이었고, 후자가 바로 이헌이 한 말이었다.

이 중에서 진짜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운 사람은 김이헌 외엔 없을 텐데, 정작 고증에 엄격한 사람은 게임 오타쿠인 김태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태영의 불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통 검술을 메인 테마로 내세운 게임이라 했는데 이게 뭐야! 기껏 검술 트리(검술 육성)으로 탔는데 엉망이잖아!”

“상대가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데 왜 하프 소딩이랑 모트쉴락으로 때리지 않는 거지? 스킬이라도 만들어 놨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아...... 창을 상대로 그냥 싸운다고? 위버그라이펜으로 반격하는 게 아니라?”

“왜 하나 같이 자세들이 검도 스타일로 되어 있는 거야? 저건 폼탁이 아니라 그냥 팔상인데.”

“결국 행엔오트 자세는 한 번도 안 나오네. 그냥 이건 망겜이야.”


태영은 제법 신랄하게 게임을 비판했다. 정작 이헌은 재밌게 하고 있는데, 태영은 아주 게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이헌은 그런 태영이 재밌기도 했고, 또 제법 신기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렇게 중세 검술에 관심을 갖고, 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중세 검술에 대해 잘 아나 봐?”

“저놈 저거 그냥 아가리 마스터야. 신경 쓰지 마.”


헌데 그런 이헌의 물음에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녀는 미셸이라는 이름의 흑인 소녀였는데, 이는 이헌도 익히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저 소녀 때문에 당장 미식축구부에서 싸움이 두 번이나 났는데, 아무리 이헌이라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예쁜 얼굴에 항상 A를 놓치지 않는 뛰어난 두뇌. 거기에 거대 로펌을 운영하는 집안까지.

설마하니 그런 완벽한 여인이, 이런 변방의 게임부에 가입하고 있을 줄은 이헌도 몰랐지만 말이다.


“아가리 마스터라고?”

“어. 쟤 검 한 번 휘두른 적도 없어.”

“그런 것치고는 제법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쟤가 하루 종일 하는 게 그런 거야. 검술 영상 보고, 커뮤니티가서 정보 얻어서 저렇게 잘난 척하는 거지.”


미셸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일까. 태영은 대답 대신 게임에 집중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헌은 그런 태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었다.

태영이 그 지식으로 상대를 괄시하거나 무시한 것도 아니고, 그저 게임 평가를 했을 뿐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태영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 게임은 다른 것보다도 ‘진짜 검술’을 테마로 했다며 가열차게 홍보를 진행했었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기본적인 조사도 없이 전형적인 액션 게임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당장 정통 축구 게임을 표방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캐릭터가 공을 들고 뛰거나, 골키퍼가 야구배트로 수비를 하면, 게이머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니 태영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뭐 그럴 수도 있지. 영화도 잘 만드는 사람만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태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까.”

“그렇지! 이헌이는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어!”


태영은 사뭇 감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처음 이헌이 조이의 소개를 받아 게임 클럽에 왔을 때만 해도, 불신의 눈빛을 보냈던 그였다.

전형적인 너드 오타쿠인 태영에게 이헌은 가장 엮이기 싫은 종류의 사람이었으니까.

키도 크고 온몸이 근육질에 얼굴까지 멋지게(무섭게) 생겼다. 거기에 운동 하나만으로 장학금을 받을 정도였으니, 상극도 이런 상극이 없었다.

사실 태영은 지금도 믿겨 지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헌에게 있어서 이곳 이신은, 뷔페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 여자나 잡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여자인 미셸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뻔했지만, 결국 그녀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조이가 태영의 말에 사족을 달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미랑 알렉스가 쌍으로 노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구해줬지.’


마치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 느낌일까. 조이의 말에 미셸은 물론 태영까지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심지어 미셸은 이헌에게 ‘조이에게 평생 은혜 갚으며 살아’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도대체 얼마나 평판이 나쁘면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이헌으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이헌은 자연스럽게 게임 클럽에 동화될 수 있었다.

겨우 세 사람밖에 없는 동아리였지만, 모두 착한 아이들이었다.

이헌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폭군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즐겨 하는, 평범한 게이머일 뿐이었으니까.

특히 마음에 든 것은, 이헌 역시 게임이 무척이나 재밌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니 전생에서는 친구들과 피시방도 자주 가고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일상이 그 망할 점쟁이 할아범 이후로 완전히 뒤바뀌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헌도 알고 보면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였다.


이헌은 그날로 게임 클럽에 가입했고, 크리스찬 부장 역시 그런 이헌의 선택을 존중했다.


‘게임부? 차라리 잘 됐다. 괜히 술 마시면서 여자들 데리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낫지.’


심지어 이 소식을 들은 마이크 감독은, 아예 미식축구에 관련된 게임 타이틀을 교재로 갖다 줄 정도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프로 스포츠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당장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의 선수기용이 엉망이다? 그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자들조차, 순식간에 세이버 매트릭스 분석가가 되는 것이 미국인들의 종특이었다.

그런 미국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미식축구 게임이다. 그 깊이가 절대 단순할 리가 없었다.

특히 마이크 감독이 가져다준 타이틀들은, 진짜 감독 수준의 역량이 필요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것들이었다.


“이제 수퍼볼22 해야 할 시간이네.”

“아 제발! 나는 한국인이라고! 미셸도 미식축구는 싫어한단 말이야!”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나마 게임으로 배우는 게 어디야.”


태영은 하소연을 하면서도 이헌을 위해 게임 타이틀을 바꿔주었다.

그러면서도 잔뜩 아쉬운 표정을 보아하니, 중세 판타지 게임이 여간 마음에 든 게 아닌 듯했다.

말로는 신랄하게 비평했으면서, 정작 재밌기는 엄청 재밌었던 모양이다.


수퍼볼22를 실행한 이헌은, 부원들의 도움을 받아 미식축구의 전술을 배워나갔다.

이런 미식축구 게임은 오로지 미국인을 위한 게임이었다. 당연히 한국어 번역 같은 것은 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역시 마찬가지로 이헌 또한 영어 같은 건 할 줄 몰랐다.

평소였다면 조이가 옆에서 도와줬겠지만, 요새 들어 봉사부 일로 바쁘다며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하기야 이헌 같은 한량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시기의 조이는 바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영이나 미셸같이 집이 잘사는 학생들은 대충 기부금으로 입학하면 되겠지만, 조이로서는 불가능할 테니까.


“요새 조이가 바쁜가 보네.”

“걔 요새 그거야 그거.”

“그게 뭔데.”

“허마이오니.”

“......그건 뭐야?”

“허마이오니 몰라?”

“그게 뭐냐고.”

“해리 포터 모르냐고!”

“몰라.”


이헌의 당당한 말에 태영과 미셸 모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았다. 이 녀석은 너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클럽에 들어와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이놈은 운동부였다.

스타워즈도 어쩌다가 1편을 본 게 전부였고, 해리 포터는커녕 반지의 제왕도 보지 않는 전형적인 적(Jock, 전형적인 남자 운동부원 이미지)인 것이다.


“이런! 이럴 때가 아니야!”

“비상! 비상! 지금부터 프로토콜 P에 들어간다!”


태영과 미셸은 갑자기 입으로 알람을 울리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스스로 비상을 울리고, 지네들끼리 부산을 떨며 정신 사납게 이헌을 괴롭혔다.

그런 괴상한 광경에 이헌은 이놈들이 왜 이러나 싶어서 당황했다. 태영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 미셸까지 저렇게 광분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래? 프로토콜 P는 또 뭐고?”

“프로토콜 P가 뭔지 몰라?”

“......그게 뭔데?”

“바로 파자마의 P야! 이헌! 너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우리와 합숙을 한다!”


그것은 통보이자 명령이었다. 천하의 이헌조차 절대 어길 수 없는, 왕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헌은 태영이 살고 있는 집으로 끌려가, 강제로 파자마 파티를 강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파자마 파티를 하며 이헌이 당했던 일들을 나열해 보자면,


1. 반지의 제왕 1편부터 3편까지 함께 감상.

2. 해리 포터 1권부터 완결권까지 함께 읽기.

(여기서 이헌은 왜 조이가 허마이오니인지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몸이 두 개여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다는 거였다.)

3. 인디아나 존스 1편부터 3편까지 함께 감상.

4. 스타워즈 4편 5편 6편 함께 감상.

5. GTA 게임 명작선 함께 즐기기.

6. 해리 포터를 다 읽었으면 영화도 함께 감상.

7. 위처 시리즈 함께 감상.


대충 나열해도 이 정도였다. 중간에 스타 트렉과 닥터 후 문제로 태영과 미셸이 마찰을 일으켰으나, 결국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타이틀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중간에는 조이도 중간에 합류해서 명작 특선을 즐겼는데, 자신만 빼놓고 파자마 파티를 이유로 더욱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이헌은 평생 해본 적 없는 파자마 파티는 물론, 평소 먹던 영양식 대신, 칼로리와 나트륨만 높은 정크 푸드만 섭취하며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헌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생활이라고. 이런 너드 생활이야말로, 진정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길이라고.


그렇게 이헌은, 천천히 오타쿠 내공을 쌓으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생활에 물이 들어갔다.

다만 그는 알아야 했다. 여자를 꼬시고, 술을 마시면서 파티장에 가는 것 또한 나름 평범한 생활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그는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 * *



일주일 후.

지옥의 파자마 파티를 끝낸 게임 클럽 파티원은, 초췌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특히 조이와 태영, 그리고 미셸의 몰골은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벨트 하나가 더 늘어난 것은 물론, 야식과 나트륨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띵띵 불어 버렸기 때문이다. 과연 도리토스와 치킨의 힘은 위대했다.


그런 나초 칩의 마수에서 벗어난 자는 오직 한 명, 김이헌 밖엔 없었다.

이헌의 겉모습은 평소와 다른 것이 없었다. 얼굴은 똑같이 무섭게 생겼으며, 근육은 여전히 선명했다.

아쉽게도 이헌의 튼튼한 몸뚱이를 망가뜨리기엔, 그 정도 야식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불공평해... 왜 너만.”


자신의 볼따구를 아이스팩으로 식히던 조이는, 이헌을 보며 불멘소리를 했다. 하기야 함께 먹고 자며 똑같이 생활했는데도, 누구는 지방이 찌고, 누구는 근육이 커졌으니 이보다 더 불공평할 수는 없었다.


“나도 의외야. 평소에 많이 먹기 때문에 억지로 저염식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몸이 나트륨을 필요로 했었나 봐.”

“으으윽! 젠장! 부럽다! 누구는 저렇게 먹기만 해도 근육으로 가는데! 신이시여! 왜 나는 엉덩이로 안 가고 배랑 얼굴에만 살이 찌는 겁니까!”


미셸은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했다. 특히 엉덩이 부분에선 어지간히 한이 맺혔는지, 목소리가 다 갈라질 정도였다.

이헌은 실례인 것은 알지만 미셸의 엉덩이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미셸의 몸매는 저렇게 신을 탓할 정도로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르면서도 탄력이 있는 것이, 많은 여자들의 워너비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외모였다.

하지만 미셸은 자신의 엉덩이가 콤플렉스인 듯, 당장 스쿼트와 데드 리프트를 하러 가겠다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왜 저래?”


결국 보다 못한 이헌은 조이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조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로 이헌을 단번에 납득시켰다.


“흑인이잖아.”

“그게 뭐.”

“흑인인데 엉덩이가 작으면 무시당한대.”

“......진짜로? 거짓말이지? 페미니즘은 다 어디 가고?”

“페미니즘? 이헌! 엉덩이는 흑인 여자들의 자존심이야. 코르셋은 벗어 던져도 엉덩이는 커야 하는 법이지.”

“허허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이헌은 아찔해졌다. 아무리 흑인들에겐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지만, 저런 식으로 노골적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태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백장미회의 그 두 명 때문이지.”

“......백장미회?”

“몰라? 우서희랑 클로디아. 걔네 둘 때문에 이신에 다니는 흑인 여자애들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졌잖아. 클로디아야 히스패닉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우서희는 동양인이었으니까. 키키킥.”


태영은 조이와 함께 눈을 마주치더니 음흉하게 미소짓기 시작했다.

이헌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농담을 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장 미셸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오! 빌어먹을! 그 계집애들은 얼굴도 예쁘면서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나!”

“진정해. 너도 충분히...”

“뭐? 충분하다고? 이헌! 그건 칭찬이 아니야! 모욕이지!”

“미안하다.”


미셸은 도저히 못 참겠다면서 홀로 피트니스 클럽으로 가버렸다. 그녀의 말처럼 오늘 하루 내내 스쿼트와 데드 리프트로 엉덩이를 집중공략 할 모양이었다.

조이 역시 시계를 보더니 바쁘다고 먼저 가버렸다. 일요일에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저렇게 뛰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보나마나 봉사부에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많은 것이 바뀐 세계였지만, 생기부에 줄 하나 추가하는 것은 여전히 고된 듯했다.


그렇게 태영의 자취 건물 앞엔 이헌과 태영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얼굴이 붓든, 벨트가 늘어나든 전혀 개의치 않는 태영은 미셸이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거 생리하나. 왜 저래?”

“네가 말했잖아.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채우러 가나 봐.”

“허허허. 그래 봤자 그런 건 타고나는 것을.... 쯧쯧.”

“그나저나 아까 뭐라고 그랬지? 백장미회라고 했던가?”

“엉? 백장미회는 왜?”

“그거, 호스 블랑인가 뭔가 하는 클럽 아니었어?”

“그래. 호즈 블랑슈 클럽. 우리나라 말로 백장미회.”

“백장미...... 처음 들었을 때는 제법 거창해 보였는데.”

“원래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면 다 이상해지는 법이야.”


그랬다. 그날 이헌이 클로디아의 초대를 받아 찾아갔던 금남의 구역. 호즈 블랑슈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장미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클럽이었던 것이다.

이헌은 마침 태영에게 백장미인지 블랑슈인지 하는 클럽에 대해 물어보았다. 도대체 뭐하는 클럽이기에, 그렇게 롱소드를 휘두르는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백장미회인지 뭔지 잘 알아?”

“하하하. 왜, 관심 있어? 너도 남자라고 하여간 크크큭.”

“아니, 그것보다 내가 이상한 걸 봤거든.”

“이상한 거?”

“거기 멤버가 롱소드를 휘두르는 걸 봤어.”

“그게 왜?”

“궁금하잖아? 보니까 귀족 사교 모임 비슷한 느낌이던데, 왜 펜싱도 아니고 롱소드를 휘두르는 거지?”


이헌의 물음은 타당했는지, 태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헌의 궁금증에 동의했다.


“하긴, 너는 외부인 출신이지. 그러면 모를 수도 있겠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사연? 제법 사연이 깊지. 이곳 이신 학교만큼이나.”


그와 동시에 태영은, 마침 잘 걸렸다는 듯 모터에 시동을 걸었다. 그것은 본격적인 태영표 TMI(설명)의 시작이었다.


“처음 백장미회는 유럽인들과 일본인이 주축으로 만든 사교 모임이었어.”


작가의말

허마이오니는 헤르미온느의 진짜 발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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