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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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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06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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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6,612

작성
20.06.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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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6. 시합 당일

DUMMY

36.



드디어 D-DAY, 그 날이 다가왔다.

이미 제퍼슨 체육관은 이신의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려 했으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방송부 학생들이 지원하는 인터넷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터진 대박 흥행이었다. 특히 저번 사이보그 이슈 이후 많은 학생들이 운동부에 실망한 뒤로, 이런 관중몰이는 처음이었을 정도였다.

물론 이 같은 흥행이 단순히 복싱 경기라는 이유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이신의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미식축구조차도, 막상 경기 당일이 되면 구경 오는 사람이라고는 전교생의 반절도 되지 않았다.

이는 야구부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숨겨진 에이스라는 육상부는 더 심했다.

지금 이벤트라고 다를 것 없었다. 지금 모이는 학생들 역시 단순히 복싱을 좋아해서 이렇게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상황은 일종의 팝콘 뜯기였다. 바로 이 복싱 경기의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너도 나도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음 이 시합은 이헌과 샘의 자퇴빵으로 잘못 알려졌던 이벤트였다.

물론 프린시펄 팍의 분노와 이신주간지의 발행으로 잘못된 소문이 바로잡히긴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번 매치는 더욱 이슈가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이름도 비슷한 두 인물인, 크리스찬과 크리스의 대립이었다. 둘이 학교 복도 앞에서 싸웠던 모습이 누군가에게 목격이 되면서, 이신 전체에 또 다른 소문이 퍼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뜬소문에 지나지 않았던 자퇴빵이, 오히려 교장의 개입으로 인해 진짜 목숨을 건 단두대 매치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제 이 제퍼슨 체육관은 더 이상 체육관 같은 곳이 아니었다. 바로 황제를 처형하고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목을 베는 공개처형장이나 다름없었다.


“자 여러분! 나초도 있고 감자칩도 있고 팝콘도 있습니다. 음료수는 수제 보리차와 제로 코크도 있어요!”


이신 국제고는 학생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학교였다. 미리 신고만 한다면 이런 이벤트에서 얼마든지 이런 호객 행위를 할 수 있었다.

다만 으레 그렇듯, 이런 장사가 평범하게 이루어질 리 없었다.

수제 보리차 주문 시 5달러를 추가로 내면 특제 보리차로 업그레이드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특제 보리차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수제 보리차와 차이점이 있다면 특제 보리차는 이상할 정도로 하얀 거품이 많다는 것. 그리고 마시면 적당히 기분이 알딸딸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시합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었다. 이미 사각의 링은 이틀 전에 체육관에 세워져 있었고, 심지어 클래식한 이미지의 포스터까지 학교 전체에 뿌려졌을 정도였다.

이제 예고했던 시간만 되면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두 명의 에이스가 혈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실내 체육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으며, 화려한 조명들은 링의 한가운데를 집중해서 비췄다.

그러자 그곳에서 턱시도와 함께 회색 가발을 쓴 백인 남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신사 숙녀 여러분! 드디어! 이날! 역사에 남을 매치가 시작됩니다. 이신 국제학교의 헤비웨이트 에이스 결정전! 준비되셨습니까!]


“꺄아아아악!”

“푸하하하! 저게 뭐야?”

“오 제법 잘 따라 하는데?”


남학생의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도 묵직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거기에 마이크를 이용할 줄 아는 쇼맨십까지.

그것은 과거 전설적인 링 아나운서 사촌 형제들인, 마이클 버퍼와 브루스 버퍼를 대놓고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옛날 사람들을 도대체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제법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 보통 퀄리티가 아니었다.


[Are! You! Rea-----------Dy!]


“오오오!”

“바로 그거야! 어서 시작해!”


[오늘! 대한민국! 이신에서! Let’s Get Ready To Rumble!!!!!]


그와 동시에 체육관 내부에서 본격적인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샘과 이헌의 등장이었다.


샘은 평범한 블랙 팬츠를 입은 채 체온유지를 위한 간단한 후드 티를 입고 등장했다. 워낙 얼굴이 잘생기고 몸도 좋아서 그런지, 간단한 복장에도 절로 눈이 갈 정도였다.

만약 상대가 이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상대인 이헌은 과연 이헌이었다. 반대편에서 입장하는 그는, 빨간색과 황금색이 천박하게 뒤섞인 커다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런 로브의 뒤편에는 마찬가지로 황금색으로 프린팅 된, 김이헌이라는 이름과 본 조르노라는 젤라또 가게 광고가 떡 하니 박혀 있었다.


“푸하하하하 저게 뭐야?”

“야이 미친! 이헌 너 재밌는 놈이네!”

“그 로브 뭐냐고! 너무 긴 거 아니야!?”

“저거 그 옛날 영화 패러디네.”


당연히 주위에선 난리가 났다.

항상 심각하고 진중한 모습만 보여주던 이헌이다.

물론 그와 친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무서운 얼굴의 동양인은 그 겉모습만으로 오해를 사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헌은 의외로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당장 저 본 죠르노 광고판만 봐도 그렇다. 저 가게 홍보를 두고 일 년간 젤라또 공짜라는 거래를 따낸 것만 봐도, 그가 마냥 무뚝뚝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이헌을 보며 환호하고 또 좋아했다. 비록 가까이선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헌이었지만, 관중석과 화면이라는 완충 장치를 거치자 스타성이라는 재능으로 치환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헌은 항상 그랬다.

처음 이신에 왔을 때부터 그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복싱부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으며, 수영을 할 때도, 또 미식축구 필드에서도 그는 언제나 존재감을 뿌리며 다녔다.


그에 비해 샘의 학교생활은 엄격한 수도승의 생활과 다르지 않았다. 엄격한 스승 밑에서 군인과도 같은 일상을 지냈으며, 심지어 파티 같은 것도 멀리했다.

좋게 말하면 모범생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재미없는 운동선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이헌 역시 파티나 술 같은 건 손도 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은 이헌에게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것이 바로 스타성의 차이였고, 이름값의 차이였다. 괜히 클로디아가 이헌에게 1억 달러를 운운했던 것이 아니었다.


“김이헌! 그 주먹맛 좀 보자!”

“이중상이를 한 방에 기절시켰다며? 어디 똑같이 해봐!”


사방에선 여전히 김이헌만을 외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학생의 아마추어 경기가 아니라, 프로의 분위기와도 같았다.

이런 열광적이면서도 일방적인 분위기에, 세컨드로 나온 크리스 감독은 자신의 선수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마추어 복싱은 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이 된다. 과격한 관중은커녕 세컨드의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쩌렁쩌렁 퍼질 정도였다.

이런 열광적인 반응? 장담하건대 미식축구부나 야구부조차 거의 경험하지 못했을 터였다.

아무리 샘이 아마추어 전적이 많다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 속에선 자칫 휩쓸릴 수가 있었다.

혹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이기도 전에, 정신없이 휘둘리다 시합이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샘. 정신 차려라. 저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감독님.”

“그래!”

“저는 지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뭐?”

“원래 저런 멍청한 놈들을 닥치게 만들 때가 제일 재밌는 법이죠. 안 그렇습니까?”

“......”


허나 크리스의 염려와는 달리 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애초에 무대 공포증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 못 할 정도였으면, 이미 진즉에 약점을 드러내야 했다.

하지만 샘은 지금까지 복싱을 하면서 그런 멘탈적인 문제는 단 한 번도 드러낸 적 없었다.

무엇보다도 샘의 말은 틀린 것도 없었다. 누가 봐도 열세인 언더 독이, 탑 독을 상대로 업셋을 시켰을 때의 희열은, 그 어떤 스포츠를 막론하고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샘과 크리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저런 관중들의 반응과는 달리, 이 시합에서 탑 독은 오히려 자신들이라는 것을.



“너......”

“저는 프로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관심과 조명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싶습니다.”

“올림픽은 결국 건너뛰는 거냐.”

“예. 다시는 그런 굴욕을 당하기 싫으니까요.”


샘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런 제자의 눈빛에서, 크리스는 진정한 파이터의 투지를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찬 부장의 그 만행들이,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샘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이쯤 되니 크리스는 되려 크리스찬 부장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의 멍청한 선택 덕에 오늘 샘은 껍질을 부수고 날아오를 터였다.

그리고 자신은 마찬가지로 날아오르는 샘을 타고서 하늘로 승천하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크리스는 이제 적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 적이란 당연히 반대편 코너에서 촌스러운 로브를 벗고 있는 김이헌이었다.


저 망할 녀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복싱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이헌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크리스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 망할 놈이 영화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크리스 감독도 복싱 관계자였으니, 저 복장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바로 영원한 복싱 영화의 레전드, 록키 발보아를 흉내 내며 장난을 치고 있었으니까.

크리스는 복싱에 관해선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정식 시합이 아닐지라도, 저렇게 장난치는 녀석은 진정한 선수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헌이 저 문제의 로브를 집어던지는 순간, 크리스의 눈살은 한 층 더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같지 않은 엄청난 근육들이, 마치 성난 황소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그런 선수가 있다. 단순히 육체만으로 상대의 기를 죽여버리는 선수.

타고난 것이든 스테로이드를 왕창 썼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타고난 육체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헌은 그의 근육 하나만으로, 선수도 아닌 크리스 감독까지 압박하고 있었다.


그 순간, 크리스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샘에게 다이어트를 지시한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는 사실을.

이헌의 말마따나 감량은 필요 없었다. 차라리 압도적인 체중 차를 이용해 짓눌러버리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스포츠는 엄연히 피지컬 또한 재능이었으니까.


그렇게 이헌과 샘 둘이 링 위로 올라오자, 안 그래도 차이 나는 둘의 피지컬이 더욱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196cm의 마른 체형. 그리고 다른 한쪽은 183cm에 근육질 체형.

오히려 체중은 샘 쪽이 더 많았지만, 이헌의 팔뚝이 훨씬 더 굵은 이상한 광경이었다.


[땡!]


그리고 드디어 시합 공이 울렸다. 각자의 코너에 있던 이헌과 샘은 천천히 중앙으로 모였다.

그런 그들에겐 글러브 터치 같은 인사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선전포고는 끝난 상태였다.

이제 둘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치고 박고 싸우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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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 에이스 결정전 +15 20.06.23 572 40 16쪽
» 36. 시합 당일 +8 20.06.22 475 29 12쪽
35 35. 젤라또 +6 20.06.21 483 24 16쪽
34 34. 자퇴빵 이벤트 +7 20.06.19 501 23 15쪽
33 33. 이헌을 노리는 사람들 +5 20.06.18 507 25 13쪽
32 32. 징계위원회(3) +9 20.06.17 601 25 15쪽
31 31. 징계위원회(2) +6 20.06.16 560 24 17쪽
30 30. 징계위원회 +5 20.06.13 566 27 16쪽
29 29. 나는 말로 안 함 +8 20.06.12 556 27 17쪽
28 28. 프로토콜 P +7 20.06.11 544 21 17쪽
27 27. 연습 +5 20.06.10 591 25 16쪽
26 26. 친구 +4 20.06.09 516 24 16쪽
25 25. 폭주기관차 +6 20.06.08 531 23 18쪽
24 24. 사이보그 +3 20.06.07 557 23 17쪽
23 23. 기록 +4 20.06.05 566 24 16쪽
22 22. 마스터 +4 20.06.04 575 21 19쪽
21 21. 점심 +3 20.06.03 569 27 14쪽
20 20. 천재(天災) +4 20.06.02 586 23 14쪽
19 19. 와이드 리시버 +5 20.06.01 576 23 16쪽
18 18. 안타까운 재능 +3 20.05.30 598 24 16쪽
17 17. 허약한 몸 +5 20.05.29 614 22 19쪽
16 16. 피트니스 클럽 +2 20.05.28 575 19 17쪽
15 15. 상대적 박탈감 +1 20.05.27 593 19 14쪽
14 14. 고개 좀 숙이며 살자 +5 20.05.26 602 23 13쪽
13 13. 결심 +1 20.05.25 624 24 16쪽
12 12. 트래비스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 +4 20.05.24 647 21 17쪽
11 11. 슬럼가 +3 20.05.22 684 21 15쪽
10 10. 어뷰징 +4 20.05.21 708 2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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