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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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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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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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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4. 고개 좀 숙이며 살자

DUMMY

14.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현재 이헌은 체육 장학생으로 오전 수업만 하면 되는 특혜를 받고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하니 점심은 든든하게 먹어두는 게 좋았다.

학교 지도를 보며 학생 식당을 찾아간 이헌은, 다시 한 번 크게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학교인 만큼 식당 역시 보통은 아닐 거라 기대했지만, 이 정도로 퀄리티 높은 식당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은 마치 고급 호텔의 뷔페와도 같았다. 한식부터 시작해 중식, 일식, 유러피안식까지. 전 세계인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각각의 식단이 정성껏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공짜였다. 돈도 없고, 가진 건 몸 밖에 없는 운동선수에게 이보다 더 좋은 복지가 어디에 있을까.

감탄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플레이트 위에 접시들을 올려놓은 이헌은 제일 먼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부터 담았다.

영양의 보고이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인 햄버거였다.

이 햄버거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중헌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제품으로, 둘이 함께 식사를 하면 햄버거 세트 10개를 기본으로 배달시켰던 추억이 있었다.

이헌은 햄버거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급식에서 볼 수 있는 잡고기 패티와는 달리, 이신의 햄버거는 순쇠고기 패티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햄버거는 오로지 쇠고기여야만 했다. 거기에 베이컨이 들어갈 순 있어도, 패티에 잡고기가 섞이는 건 이단이요 사특한 사마외도와도 같았다.

그렇게 햄버거 두 개로 시작한 이헌은, 본격적으로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현재 벌크 업 중인 이헌에겐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조합이 중요했다. 이에 탄수화물은 스파게티, 그리고 지방은 바싹 익힌 베이컨으로 보충했다.

그렇게 영양학적으로 조합을 맞춰나가 보니, 어느새 이헌의 플레이트엔 음식들을 담은 접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운동선수라면 이 정도 먹는 양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루에 만 칼로리를 먹어도 살이 빠지는 수영선수 정도는 아니더라도, 벌크 업을 하기 위해선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이헌의 식사량은 이 귀한 아가씨들에겐 낯선 모습인 듯했다.

노골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허나 테이블 위에 다양한 음식들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며, 묘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기야 대충 스쳐봐도, 이헌처럼 플레이트 한가득 채워 오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소식을 하는지 쥐 꼬리 만한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마저도 채식이 대부분이었다. 단백질을 먹어도 삶은 계란이나, 수비드 된 닭 가슴살을 먹지, 이헌처럼 햄버거를 먹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이헌의 식단은, 폭식을 넘어 과격한 폭력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이헌이야 남들이 채식을 하든 소식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운동 선수에겐 그 무엇보다 식사가 중요했다.

그에게는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근육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양질의 영양분이 더 중요했다.


과연 음식은 맛이 있었다. 보육원에 있을 때도 음식에 만족했던 이헌이었지만, 이곳 학교 식당은 그 질부터가 달랐다.

얼마나 맛이 좋았는지,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더 배가 고파질 정도였다.


“하하하!”


너무 기분이 좋았던 탓일까. 이헌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덕분에 식당 분위기가 더 이상해졌지만, 이헌은 상관없었다.

그가 보기엔 이 좋은 음식들을 놔두고 저렇게 찔끔찔끔 풀만 뜯어 먹는 것들이 더 이상했으니까.

이날 이헌이 먹은 점심은, 이 세계로 전생한 이후 처음 맛보는 행복과 만족이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이헌은 이번 삶만큼은 이런 사소한 행복을 위해서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성질은 좀 죽이고, 고개를 숙이는 연습도 해야겠지만, 그것은 차차 해나가면 되는 문제였다.


물론 초반에 너무 흥분을 한 나머지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이헌이었다.



* * *



“제임스.”

“샘.”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복 차림에 가벼운 슈즈, 거기에 단단하게 감은 붕대까지.

아무리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누가 뭐라 해도 복서였다.

점심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은 벌써부터 복싱 체육관에 들어와 있었다.

단순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복싱 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모두가, 이미 오와 열을 맞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이 복싱부를 위해 특별히 초빙되어 왕의 자리에 오른, 크리스 스웨일 헤드 코치(감독)였다.

해군 부사관이었던 크리스는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미래의 장교들을 가르치는 교관 출신이었다.

해군사관학교의 스포츠팀은 여러모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 미식축구와 농구팀은 미 전국 대학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강팀이었으며, 라이벌인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와의 대결은 손에 꼽히는 미국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였다.

크리스는 그중에서도 해군 장교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복싱 코치를 전담했던 교관으로, 그 실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프로들도 와서 한 수 배우고 갈 정도였다.

미래의 해군 장교들을 혹독하게 다루던 카리스마와 그에 걸맞는 실력, 그리고 군인 특유의 지휘까지.

이신 국제고의 복싱부는 모든 운동부를 통틀어 가장 군기가 강한 최정예의 생도들인 셈이었다.


“다들 모였나.”

“써! 예 써!”

“오늘 신입이 온다던데.”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이 언제 끝나지.”

“6분 남았습니다.”

“어디 한 번 보자고.”


과연 그거 뭘 보자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신입생의 미래는 지각 여부에 따라 갈리게 될 거라는 점이다.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5분이란 남들이 보기엔 짧은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짝다리를 짚을 수도, 또 누군가는 코를 긁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그 어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완벽한 열중쉬어의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런 자세만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강한 군기를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정각 1분 전, 체육관의 문을 열고 화제의 신입생이 등장했다.


그 신입은 당연히 김이헌이었다.

복싱 체육관에 처음 들어간 이헌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다소 특이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격투기 체육관 하면 흔히 날 수밖에 없는 그 텁텁하고 습기 찬 냄새가, 이곳에서는 전혀 나지 않았다.

어찌나 환기를 잘 시키고 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는지, 아예 향기가 날 정도였다.

거기에 코치들과 그런 그들 앞에 일렬로 열을 맞춰 서 있는 학생들까지.

이헌이 아무리 군대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이 체육관의 공기를 모를 수가 있을까.

이 복싱부를 지휘하고 있는 감독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이미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감독이 지금 이헌을 향해 무시무시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네가 김이헌이냐.”

“예.”

“간발에 차이로 늦지 않았구나. 늦었으면 앞으로의 네 인생이 고달파질 뻔했는데.”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영어 모릅니다.”

“나도 한국말은 모르지만, 네가 영어를 모르겠다고 하는 건 알겠다. 이신에 다니는 녀석이 영어를 모른다고? 앞으로 영어를 배워라.”


크리스 코치의 말에 옆에 있던 동양인 코치가 직접 번역해주었다. 그는 한국인이었는지 한국말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코치의 말을 듣던 이헌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복싱부원이라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천지개벽의 것이었다.


“여긴 한국이니까 그쪽이 한국어를 하시죠.”


웅성웅성.

그것은 지금 이곳, 복싱 체육관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였다.

아무리 국제고의 절반 이상이이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모두 한국말 정도는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었다.

아무렴 이곳은 이헌의 말처럼 엄연한 한국의 땅이었다. 거기에 한국이란 나라가 세계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어의 위상은 원래 세계의 중국어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이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당사자인 크리스 코치를 제외하면.

하지만 크리스 코치도 눈치라는 게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든 자신의 제자들이 저렇게 당황을 한다? 그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 맹랑한 동양인이, 분명 자신의 권위를 건드리는 말을 내뱉은 것이 분명했다.

크리스 코치는 당황하고 있는 한국인 코치에게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저 녀석이 뭐라고 했지?”

“저... 그게......”

“괜찮네. 저런 놈들 한, 두 번 상대해보는 것도 아니고.”

“여긴 한국이니 감독님께서 한국말로 하랍니다.”

“어허......”


크리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 동양인 신입생도 바보가 아닌 이상, 처음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분위기를 읽었을 것이다.

군기로 가득 찬 학생들의 매서운 눈빛과 코치들의 절도 있는 동작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통제하는 키 190cm에 몸무게만 90kg 이상 나가는 근육질의 자신까지.

사춘기가 온 운동부 학생? 아무리 제멋대로의 불량아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순하고 착한 양이 되는 공간이 바로 자신의 체육관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녀석은 그런 무거운 공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대놓고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해군사관학교에서도 보지 못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동양인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아마추어 복싱이라고 하지만 엄연한 격투기 종목이다.

기술? 피지컬? 다 쓸모없다. 저 정도의 프라이드는 있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허나 프라이드는 프라이드고 하극상은 하극상이다. 저 대범한 성격은 합격이었지만, 감히 감독인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자존심은 그쯤 부려도 좋다. 오늘부로 지금까지 배웠던 것은 전부 잊는다. 너는 저기 거울 앞에서 스텝부터 시작한다.”

“스텝?”

“그리고 너, 지금 몇 파운... 아니 몇 킬로그램이지?”

“지금 82.7kg입니다.”

“역시나, 쓸데없는 근육이 너무 많아. 넌 앞으로 라이트 미들(69kg)...... 아니 그래도 동양인치고는 체격이 좋으니 미들급(75kg)에서 뛴다.”

“미들급? 미들급이면 몇 키로더라......”

“지금 한가롭게 그럴 시간이 어딨나! 그 근육 깎으려면 당장 굶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어서 줄넘기부터 해! 이 코치!”


아무래도 이헌의 전담 코치는, 말을 번역해주던 이세명 코치로 정해진 듯했다.

마른 몸에 안경을 쓴 이세명 코치는 크리스의 명령에 마치 이등병처럼 움직였다.


“김이헌? 이름 맞지? 반갑다. 나는 이세명이야. 일단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몸무게부터 줄이자. 기술은 천천히 가르쳐주실 거야.”


그는 카리스마 있는 감독과는 달리 제법 유순한 성격으로 보였다.

아니 어쩌면 유순한 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노련한 조련사라면 당근과 채찍은 기본일 테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 그가 상대하고 있는 녀석은, 지금껏 그들이 가르쳐왔던 평범한 문제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잠깐. 이거 뭐지?”

“응?”

“이봐요 감독님.”

“이헌아!”

“크리스찬 부장한테 못 들으셨나?”


이헌은 이세명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보고 있는 크리스 감독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 이헌의 행동에 크리스의 눈살이 점점 찌푸려졌다. 적당히 하고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이놈이 점점 선을 넘고 있지 않은가?


“뭐야?”

“못 들었냐고요.”

“뭐를 말하는 거냐?”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겁니까?”

“네가 언터처블이라는 거?”

“그래요 그거. 분명 난 건들지 말라는 오더가 내려왔을 텐데?”

“허허... 이놈이?”


그랬다. 이헌 스스로 조용히 숙이며 살자 다짐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구제불능의 불한당은,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다시 개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해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복무하면서 수많은 또라이들을 만나봤던 크리스였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그조차도 이헌 같은 캐릭터는,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작가의말

이 소설의 목표는 주인공이 평범하고 조용히 살기 원하는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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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안타까운 재능 +3 20.05.30 620 2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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