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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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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8,216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1.26 10:48
조회
426
추천
6
글자
16쪽

전조

DUMMY

“······.”


어느새 글귀의 끝까지 따라왔다. 집중하다보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하쉬를 찾으려는데 뒤를 돌아보니 신전이 있었다. 신전의 뒤편이겠거니 하고 왔던길을 되돌아가려는데 신기하게도 글자가 모조리 사라져있다.


“어?”


게다가 신전의 뒤편으로는 왔는데 어떻게 뒤편으로 온거지?


‘문은 안 보이는데?’


내가 지나왔을법한 열린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누가 닫은걸까? 아니면 내가 지나오면서 닫았나? 아니, 그 전에 글자가 보이지 않는데.


“···라.”


어디에선가 들어본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목소리일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고민할 것도 없었다. 하쉬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요?”


하쉬가 나에게 장난이라도 치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성격이 아닌데.


“···망쳐!”


한번 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하쉬가 아니라 마셸 형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이번에도 찾을 수 없었다.

소리는 분명 또렷하게 들리는데, 도저히 그 방향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어디에요?!”


소리쳐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장난치지 말라며 무시하고 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돌아보면 안 될것만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도망쳐라!”


이번엔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달렸다. 발이 부숴져라 달렸다. 푸른색으로 타오르는 화염이 넘실거리며 내 주변을 태웠다. 겁에 질려 달리는데 불꽃은 점점 가까워지기만 했다.


-도망칠 수 없다! 파멸은 너를 찾아가리라!


끔찍한 목소리였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어떤 소리가 저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쇠를 쇠로 긁는 소리? 뱀이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소리? 지네 수천마리가 기어다니는 소리? 그 무엇도 비견할 수 없을만큼 끔찍한 소리였다.

듣는것만으로도 미칠것 같은데, 그런 소리가 또렷히 들려온다. 큰 소리이기도 하지만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다.

무시하기 힘든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며 도망치고 있었는데, 얼마 가지 못하고 푸른 화염에 사로잡혔다.

푸른 화염이 넘실거리며 나를 태웠다.

아주 멀리서, 누군가가 비웃는것같은 소리가 들려온 것 같다.





“헉!”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자연스럽게 양팔로 몸을 더듬었다. 땀으로 옷이 축축했다. 다행이다. 꿈이었나보다.


“무슨일이냐?”


하쉬가 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쳐다봤다. 시간은 아직 낮이었다. 그는 뭔가를 답답해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궁리하는 것 같았는데, 뭘 생각하고 있었던걸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꿈을 꿔서 그래요.”


그건 분명히 꿈이다.

하지만 괴리감과 이질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현실같은 꿈이었다. 그런 꿈을 꿀 수도 있단게 놀랍다. 그나저나 무슨 꿈이더라?


“······.”


오만상을 찌푸리고 기억하려 해봐도 도대체 기억나지가 않는다. 저런 꿈? 아니··· 근데 내가 꿈을 꾸긴 했었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꿈··· 꿈···?


“정신차려라. 먼저 방에 와서 자고 있더라니 악몽이라도 꾼 거냐?”


하쉬가 의자에서 다가와 나를 다독여주었다. 내가 제법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그는 펼쳐놨던 책도 덮었다. 아직도 머리가 띵하다. 하쉬가 가져다준 물 한잔을 마시고야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문득 하쉬가 내게 일어나서 나가자고 말했다.

어딜 가자는 말일까?


“네가 하고싶어했던걸 하러 간다.”


내가 하고싶어 했던 것?

아 혹시라도 배터지게 먹여주겠다는 소릴까? 하지만 지금은 밥 생각이 없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밥 먹을 생각이 전혀 안 든다.


“전에 네가 말했지. 화려한 기술이니 뭐니하는것들. 슬슬 배워둬도 괜찮을것 같구나.”


아, 그러고보니 그랬다. 처음 하쉬와 영지를 나섰을 무렵에 그렇게 투덜댔던 기억이 었다. 그런데 그건 지금이 아니라 기초훈련이 끝나면 알려주겠다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맘이 바뀐걸까?


“물론, 이 또한 첫걸음부터다. 칼을 쥐어본적은 있느냐?”


그럼 그렇지. 화려한 기술을 위한 첫걸음을 배운다는 소리인 것 같다. 칼을 쥐어본적 있냐는 하쉬의 물음에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칼을 써본적은 없었다.


“한스의 칼도 들어보기만 했지 쥐어보진 않았는걸요.”


내가 휘두른 거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나무괭이나 주먹이었다. 하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랬을거라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와 나는 방을 나서서 신전의 뒤뜰로 향했다.


“문이 있네?”


분명히 없었는데··· 아니, 무슨 소리람. 신전의 뒤편에 와본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자꾸 무슨 헛소리냐? 어디 아픈거냐? ···아무튼 수련은 여기서한다. 먼저 기초는 칼을 쥐는법이다. 설명하는것보다 글쎄, 먼저 겪어보는게 낫겠지.”


그는 다짜고짜 내게 조잡한 나무칼 한 자루를 던져주었다. 언제 들고 있었던거지? 내가 받은 나무칼은 울퉁불퉁하지만 손잡이만은 매끈한것이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누가 깎았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으리라.

내 팔만한 크기의 나무칼을 주먹쥐어 잡자 하쉬는 내가 처음 칼을 쥐었단 감상을 느낄새도 없이 갑작스레 주먹으로 나무칼을 쳤다. 아무리 나무라도, 울퉁불퉁하더라도, 칼은 칼인지라 놀랐지만 하쉬는 눈쌀만 찌푸리고 말았다.


“칼을 놓으면 안 된다.”


“무슨 소리에요! 안 다쳤어요?”


내가 걱정하는 말에 그는 표정없이 양옆으로 고개만 저었다.


“다칠리는 없으니 안심해라. 것보다 방금 내가 주먹으로 쳤을때 놓친거 같으냐? 놓은거 같으냐?”


호언장담과도 같이 다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하쉬의 놓쳤냐, 놓았냐라는 질문에 어느쪽이냐하면 놓친것 같았다. 내가 그 점을 말하자 하쉬는 그랬을테지 하며 목검을 쥐는법을 알려주었다.


“모든것에는 방법이 있다. 자, 이렇게다. 그래. 그렇게 검지와 엄지는 둥글게 말고 나머지 손가락은 감싸듯이 쥐어라.”


그는 이걸 파지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파지법을 알려주고 가르쳐준대로 나무칼을 쥐어잡자 갑작스레 하쉬가 물러났다. 멀리서 자세가 괜찮은지 보는건가 했는데 방금보다도 명백히 빠른속도로 칼을 주먹으로 쳤다. 깜짝 놀라서 그런지 조금 비틀렸다.


“어떠냐?”


질문에 대한 생각은 잠시였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손아귀가 제법 아프긴했지만 중요한건 놓치지않았다는 거였다.


“괜찮네요.”


두 세번 정도라면 견딜 수 있을지도.

하쉬는 흡족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팔찌의 무게 때문에 손목이 이상해질것 같지만 그건 말하지 않았다.


“그럼 그대로 휘두를 수 있겠지?”


하쉬는 나와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휘두르라는 말에 팔을 들어올리고 검을 들어 거세게 내리쳤다. 분명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놓쳐버렸다.


“······.”


손목이 얼얼했다. 붉게 변한것이 아무래도 가볍게 삔것 같은데.


“지금 왜 놓쳤는지 모르겠지?”


하쉬는 내가 떨어뜨린 검을 허리숙여 쥐었다. 왜 놓쳤냐는 말에 나는 손목을 가리켰다.


“그야, 팔찌 때문이잖아요?”


팔찌가 이렇게 무식하게 무겁지 않았다면 놓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하쉬는 내 말을 부정했다.


“그건 반만 정답이다. 네가 놓친 이유는 이거다.”


하쉬는 나무칼을 들고 크게 내리쳤다. 놓친 이유라고는 했는데 도대체 뭘 보여주려는건지 모르겠다.


“아직은 다른걸 모르겠지. 그야 이건 네가 휘두른 그대로 휘둘렀으니까.”


하쉬는 잘 보라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알겠느냐?”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자 하쉬는 그럼 알 때까지 계속 보라며 내가 휘둘렀던 방식과 옳은 방식을 번갈아가며 휘둘렀다. 눈을 다섯번 감을때쯤 그 차이를 알았다.


“아! 손목!”


내가 정답을 말한것인지 그는 휘두르다 말고 내게 칼을 돌려주며 말했다.


“그래. 넌 손목으로 칼을 휘둘렀다. 칼은 팔로 휘두르는거지 손목으로 휘두르는게 아니다. 그래서 네가 칼을 놓친거지.”


하쉬는 팔 전체로 칼을 내리쳤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움직인건 손목과 어깨뿐이었던 것이다. 당연 손목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반만 정답이었군요.”


팔찌가 없었다면 저리 휘둘러도 몇십번은 휘둘렀을지도 모른다. 반만 정답이라는 이유를 알겠다.


“음! 기억해둬라. 그리고 백번이다.”


뭐가? 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솔직히 휘두르다가 팔이 먼저 부숴질것 같지만 하쉬가 시키는건 언제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나는 칼을 휘둘렀다.




“이제 시작하시오. 모렉 공작”


모렉 공작은 수정구의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웃음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리라!


“프하하하! 오랜 기다림이었다. 애송아! 네가 말한대로 병력은 다 모아두었다. 털도 안났던 호랑이가 이제는 이빨을 드러내는군!”


레너 왕자가 수정구 저편에서 쓰게 웃는다.


“오늘부터 열흘 내로 왕가를 무너뜨려야 하오. 그리고 내가 왕에 오른 뒤, '그것'들을 모조리 참살하겠소. 그대도 물론 그래야하겠지.”


모렉 공작은 이빨을 씩 드러냈다. 늙고 병들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치지 않고 위협적인 사자와 같은 기세를 풍겼다. 썩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열흘! 프하하하! 애송이가 이젠 완전히 호랑이가 되었군!”


“그것들이 깨닫기전에, 내가 왕이 되어야하오. 사실 열흘도 길다오. 일주일로 하지. 그리고···”


레너 왕자의 눈이 일순 새파랗게 빛났다.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던 모렉 공작조차 웃음을 멈추고 섬뜩해질만큼 차가운 눈빛이었다.


“왕은 반드시 이 손으로 보내드리겠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왕자는 왕을 죽이겠노라 패륜을 선언했다. 하지만 모렉 공작은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흥, 이제 애송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겠군.”


불퉁스러운 모렉 공작의 표정을 보며 레너 왕자는 웃었다.


“삼년 전, 우연한 기회였지만 덕분에 나는 그것들이 어떤 놈들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소. 물론 그 추악한 것들을 경멸했던것은 더 이전이었지만.”


“······.”


갑작스럽게 꺼내는 왕자의 과거사였지만, 모렉 공작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은 왕자의 다짐이나 마찬가지였다. 결전에 앞서 마음을 굳히는 것이었다.


“말했을거요. 공작! 나는 그 어떠한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을거요. 그것들이 왕국을 좀먹고, 기만하며! 내 눈앞에 보이는 이상, 내 아비를! 내 동생을! 내 가족 모두를 죽여서라도 그것들을 이 왕국에서 지울것이라고!”


흥분하며 다짐하는 왕자를 보면서도 모렉 공작은 코웃음쳤다.


“역시 네놈은 미쳐있구나.“


왕자는 이미 경멸을 넘어 증오와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추악하고 비열하고 악랄하고 거짓된 존재들이지만 왕자 자신이 직접 피해 입은 일은 없을 것이다. 선대와 현대의 왕처럼 눈을 감으면 될 일이다.

복종하고 굴복하면 편하게 왕으로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런데도 왕자는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그것들을 없애려하고 있었다. 자신과는 이미 비교하기도 무안할 정도로 그것들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이러한 증오는 모렉 공작의 긴 일생동안 단 한번도 보지 못했을만큼 강렬했다.

한센 남작이라는 애송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왕자가 가진 그 증오는 너무나도 크고 강렬해서 자신의 목숨조차도 우습게 보일만큼 그것들을 경멸하고 있다.

그것들에 굴복한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될 결심을 할 만큼이나 말이다.

하지만 그 왕의 재목에 레너 왕자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 분명 역사에 다시없을 철혈의 왕이 될 터다. 이 왕국은 다시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모렉 공작이 상념에 빠져있는동안 어느새 레너왕자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는 내 가족을 볼 수 없을테지. 시작하시오. 그것들을 없애기 위한 발판이오.”


담담한 어투와는 다르게 그 내용은 참혹하리만치 잔인한 말이다. 수정구 너머로 왕자와 공작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았다.


“반란을 시작하시오!”


그 날, 아르미안 왕가에 피바람이 불어닥쳤다.






조사대가 파견되고서 며칠이 지났다. 주교는 얼마 지나지않아 그들이 돌아올거라 생각하며 서류를 정리하러 주교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창문 너머에서 주교는 뒷뜰에서 하쉬를 발견했다. 그는 제자라던 아이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왕자를 구하고 평민이 됐다고 했었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 아이가 조사대를 파견했던 구실이 됐던건 기억하고 있다. 주교로서는 솔직히 조사대를 파견하고 푸른 악마를 퇴치해야한다는 그의 말에는 완전히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교는 하쉬라는 사람 자체를 마음에 들어했다.

하쉬는 정의 그 자체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신념을 세우고 꺾이지 않는 자세는 이야깃속에나 나올법한 성기사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런 하쉬경의 제자라···’


하쉬는 지금까지 단 한명도 제자를 받지 않았다. 그런 하쉬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수습 성기사들의 교관으로서 그들을 가르쳤던적은 있었지만 며칠사이에 대부분이 떨어져나갔다.

그러다 결국 교관직을 짤린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듣기로는 인연이 느껴지지 않네 뭐네 하지만 쉬쉬하는 이야기로는 하쉬 자신에 비견될만한 재능있는 아이를 발견하지 못해서라고들 뒤에서 말한다.


“그럼 저 아이는?”


주교는 성기사가 아니라 사제이지만, 저 수련만큼은 잘 알고있었다. 무게놀이였다. 아직 아이인지라 나름 사정을 봐준다고는해도 잘 견디는걸 보면 끈기는 있는듯 싶다. 하지만 재능은 과연 어떨까?


"······."


주교는 어느새 자신이 뒤뜰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럴때가 아니라고 바쁜 걸음은 돌아가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이왕 이렇게된거 소년의 칼을 한번쯤 보고 가도 괜찮으리라.


‘과연··· 저 아이는 하쉬 경만큼의 재능이 있을까?’


뭇 성기사들을 모두 절망케한 스승만큼의 재능이 소년에게는 있을까?

주교는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소년이 칼을 휘두르기를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소년이 세차게 위에서 아래로 칼을 내리쳤다.

샥!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람이 갈렸다. 성기사 출신이 아닌 주교가 보기에도 날카롭고 깔끔한 궤적을 그리지만 그것뿐이었다.


뛰어나기는 하나, 특출남은 없다.


쇠팔찌를 차고도 저리 휘두르는게 용하긴 하지만 저 정도의 인재는 신전에도 차고 넘쳤다.


‘실망이군. 마셸 경만해도 저 소년보다는 뛰어나겠어.’


스승을 따라가기에는, 호랑이가 되기에는 부족한 소년. 그래, 호랑이는 아니다. 기껏해야 늑대쯤 되리라. 몇번을 더 소년을 지켜보던 주교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굳이 이름을 기억해둘 필요는 없겠어. 하쉬 경. 당신의 제자라기에 기대했지만··· 하긴, 그래요. 저게 보통이겠지요.’


수재는 맞지만 천재는 아니다. 주교는 이내 소년에 대한 관심을 꺼트렸다. 직접 확인했으니 더 볼것도 없다. 천재가 아니라면 소년 자신에 대한 가치는 주교에게 있어서 없는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교는 간과하고 있었다.

소년이 쥐고 있었던건 날카롭게 갈린 진검이 아니라, 날도 칼등도 없는 몽둥이처럼 ‘울퉁불퉁한 나무칼’이었단 것임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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