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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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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722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3.05 07:03
조회
319
추천
4
글자
12쪽

대주교

DUMMY

“넌 도대체 뭐냐?”


나를 멍하니 쳐다보면 영감님이 별안간 그렇게 말했다. 다 늙은 할아버지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평범하게 오래입은듯 보였다. 여기가 성소聖所라고 했으니 난 대충 이 할아버지가 사제라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뭔데요?”


남에게 묻기전에 자기 이름을 밝혀라.

그런건 아니었고 딱히 날 소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늙은 사제가 자신을 소개하는걸 듣고 비슷하게 답하려고 한 것뿐이다.


“음··· 글쎄다.”


당돌하다고 화내지는 않을까? 싶었던 생각과는 다르게 늙은 사제는 고개만 갸웃거리다 오히려 되물었다.


“네가 보기엔 난 뭐처럼 보이냐?”


뭐처럼 보이냐니··· 그냥 늙은 사제님이다. 하지만 말투를 보면 사제가 아니라, 아! 말투는 비루같았다. 틱틱 내뱉는 그런 말투말이다.


“늙은 사제님?”


비루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한테 비루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을테니 나는 그의 외견에서 알 수 있을 늙은 사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렸다.


“오호라. 틀린말이 아니다. 헌데 너는 아무래도 교국 사람은 아닌것 같구나.”


갑작스레 꿰뚫어보듯 나온 그의 말에 나는 움찔 놀랐다. 물론 교국 사람이 아닌걸 알더라도 다를건 없겠지만 단번에 알아챈 그의 통찰력에는 좀 놀랐다.


“어, 어떻게 아신거죠?”


“뭐 말이냐?”


“제가 교국 사람이 아니란 것 말이에요. 절 모르시는거 아니었어요?”


늙은 사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당연하지. 내가 널 어떻게 알겠냐? 나도 그렇게 하릴없는 늙은이는 아니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교국 사람이 아니란걸 어떻게 알았죠?”


늙은 사제는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놈이 날 모르잖느냐. 교국 사람들치고 날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다가 성소에 들어올만한 꼬맹이면 내가 알만한 놈의 자식일텐데 말이다.”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늙은 사제의 말에 나는 어이가 가출하는것을 느꼈다.


“아니, 할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데요?”


“궁금하더냐?”


내가 그렇다고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비틀었다.


“계속 궁금해해라. 것보다 넌 뭐하는 놈이더냐?”


자신의 질문에는 전혀 답해주지 않았던주제에 뻔뻔하게 묻고있는 사제의 작태에 난 코웃음을 쳤다.


“제가 그걸 왜 알려줘야하는데요?”


그러자 늙은 사제는 이번에는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가 성소니까 그렇지. 네가 수상한 놈이면 당장 쫒아내야할게 아니냐?”


일단 사제니까 말이지.

나는 수긍하고 순순히 답했다.


“딱히 댈만한 소개는 없네요. 제 이름은 리드에요.”


하쉬의 제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이제 하쉬는 없으니까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의 제자가 아니게되는건 아닐테지만.


“리드라. 그래. 꼬맹이! 여긴 뭐하러 왔더냐?”


리드라니까··· 이름을 알면서도 굳이 꼬맹이라고 부르는점이 정말로 비루와 닮았다.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워두면 도대체 어떨지 궁금할 정도였다.


“아··· 배우러 왔어요.”


배우러 왔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대주교라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하쉬의 스승이었다니만큼 날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배우러왔다? 뭘 말이냐?”


제법 집요하게묻는다 싶었다. 그런것치고는 흥미없어보이기도했다.


“강체··· 네. 강체술일거에요.”


일전에 한번 들었던 것을 말했다. 그러자 늙은 사제의 표정이 또 묘해졌다.


“강체술이라··· 그래, 누구한테 배운다는거냐?”


“음, 본적은 없지만 그 대주교라는 분한테서 배운다고 들었어요.”


그러자 수상하게도 늙은 사제의 미소가 노골적으로 짙어지는게 보였다. 가만 보고있던 내가 움찔할 정도로 입꼬리가 귀에 걸리게 웃은 늙은 사제는 클클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게 알려주듯 말했다.


“오오, 대단한 분한테 배우는구만.”


“······.”


“넌 그래서 그··· 배우러왔다고? 어디서 왔는데?”


난 아르미안 왕국이라고 답했고 그의 표정이 또 요상해진게 아무래도 자기가 생각했던 답변과는 달랐나보다. 나는 아주 약간의 통쾌함을 느꼈다.


“그래. 아무튼 알겠다. 다음에보자.”


늙은 사제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다음에보자고?’


무슨소리지?




***




마셸은 성소에 복귀했음을 알리고 1층으로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잘 있어야할텐데.’


물론 사고칠 성격은 아니지만 괜스레 걱정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같은 마음이랄까? 모던에게 부탁받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계단을 내려가는 와중에 모던은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대, 대주교님!”


저 아래층에서 대주교가 뒷짐지고 여유로이 올라오고 있었던것이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마셸은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것처럼 느껴졌다.


“응? 넌 뭐냐?”


제법 오랜만. 몇년만의 만남이기때문일까? 대주교는 마셸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셸은 그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주교님은 계속 사람들을 가르치셨을테고··· 난 그 중에서 도망친 한 놈일테니까.’


“마, 마셸 성기사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답하지 않을수는 없었다. DNA··· 아니 어린 시절 기억속에 각인된 공포에 덜덜 떨면서 대답하자 대주교는 잠깐 고민하다가 눈을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군. 너 그때 그 빌어먹을 꼬맹이구나.”


빌어먹을 꼬맹이라. 꼬맹이란 소리도 언제 들어본건지···. 마셸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애매한 표정으로 쓰게 웃었다.


“아무튼 용건없으면 저리가라.”


귀찮다는듯이 손을 훠이훠이 내젓는게 아주 파리를 쫓는듯한 몸짓이었다. 이런 대우를 받은게 언제만이지? 생각했다가 파견 전에는 거의 이랬다는걸 기억해냈다.


“아, 용건이 없는건 아닙니다.”


우연찮게 만난거지만 마셸은 어차피 대주교를 찾아가려했었다.


“음? 그럼 빨리 말하고 가라.”


전혀 흥미없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말씀드릴건 아닌것 같습니다.”


마셸은 표정을 진지하게 굳히고 대주교를 직시했다. 잠시 말이 없던 대주교도 마셸의 분위기가 여간 진지한게 아니란걸 알았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흠. 좋다. 그럼 여기서 잠깐 기다려라. 내 용건보고 가마.”


“아, 저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


대주교는 이미 한참 앞으로 가 있었다. 제 말을 끝내고 갈 길을 가는 대주교를 보며 벤자민의 말이 떠올랐다.


‘그럴리가 있는가? 내가 듣기로는 온화하고 좋은분이라고 들었네만.’


···역시 아니었다.

그것보다도 도대체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대주교가 된지 몰랐다. 마셸 자신의 아버지인 알렉 추기경도 성격으로는 지지 않지만··· 역시 대주교에게는 한 수 밀리는 것 같았다.


“하아. 영락없이 기다려야겠는걸.”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가 대주교가 자신이 없는걸보면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리드가 조용히 있어주길 바라는 수 밖에.

대주교는 마셸의 염원이 통했는지 오래 있지 않았다. 불과 십분만에 돌아온 그는 똥씹은 표정이 되어있었다.


‘이크!’


말을 걸어도 되는걸까? 하지만 가만히 있을수는 없어 마셸이 말을 걸자 그는 잡아먹을듯이 마셸을 노려보다 표정을 풀었다.


“아, 그래. 할말 있다고 했더냐? 내 방으로 가자.”


‘방?’


성소에 방이라니? 마셸은 의아해했지만 대주교는 아랑곳하지 않고 툴툴거리며 앞장서 내려갔다. 1층까지 갈 것도 없이 대주교의 방··· 아니, 기도실은 바로 아랫층에 있었다. 대주교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마셸도 그를 따랐다.


“으음···”


툴툴한 성격과는 다르게 그가 거주하다시피 하고있는 기도실은 굉장히 잘 정리되어 있었고, 의외로 책같은 것들이 많았다. 아니, 기도실이니만큼 정리되있는건 당연한걸까?


“뭐하냐? 안 앉고.”


마셸은 그에게 고개숙이며 조심스레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몇명이나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에 혼자 앉아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대주교는 앞쪽 의자에 앉았는데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라 마셸은 대주교의 뒤통수밖에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 빨리 얘기해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바쁜 몸이다.”


마셸은 그의 뒤통수를 지긋이 보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대주교님께서도 들으셨겠지만···”


“뭘 들었단말이냐?”


그걸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했는데.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면 이 몸은 모른다. 바깥에 있다가 한달만에 돌아온거니까.”


아, 젠장. 마셸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럼 대주교는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소리였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힘들어 입술만 씹고 있자 대주교가 고개를 힐긋 돌렸다.


“뭐냐? 바쁘다고 했는데 그리 뜸들이는거냐?”


어쩐지. 소식을 들었다면 아직 담담히 행동하기는 어려웠을텐데. 마셸은 조금 더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떼었다.


“하쉬 경이··· 사망했습니다.”


착각이겠지만 마셸의 귓가에 마치 뚝! 하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마치 뭔가가 끊어진것만 같은.


“뭐라고?”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나보다. 아차하는 마셸에게 대주교가 다시 물었다.


“내가 요즘 귀가 어두워서 잘 안들린다. 다시 말해봐라.”


“···하쉬 경이 사망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주교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도실의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마셸에게 한번 더 물었다.


“그러니까, 하쉬 그렌테일. 내 제자가··· 죽었다고?”


“······.”


마셸은 답하지 않았다. 대주교는 침묵이 답이라고 받아들인건지 아니면 애초에 답을 원하지 않은건지 마셸에게 묻지 않았다.

적막이 기도실에 내려앉았고 마셸은 문득 대주교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네깟놈이 나한테 장난칠리는 없을테니 너나 내가 미친게 아니라면 진짜란 소린데···.”


대주교는 고개를 툭 떨구고 두 손을 모았다. 작게 중얼거리는것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대주교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


마셸에게는 정말로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차라리 기도실을 뛰쳐 나갈까를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위안이 되는건 주머니속에 들어있는 하쉬의 로자리오였다.


‘아, 그렇군.’


마셸은 마음속으로 모던에게 작게 사과했다. 그와 한 약속과는 조금 달라질테니.


“하쉬 경의 유품입니다. 이 로자리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셸은 의자에서 일어나 두 손만 뻗어 대주교의 고개 앞으로 내밀었다. 대주교는 낚아채듯이 로자리오를 챙겼다.


“······!”


그게 진짜 하쉬의 것이라는걸 알아챈 대주교가 마셸에게 물었다.


“하쉬, 그 놈··· 어쩌다가 간 거냐?”


힘빠진 쉰 목소리였다.


“그건···”


마셸은 하쉬와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 짧았던 시간과 그의 마지막. 그리고 하쉬가 남긴 유일한 제자, 리드에 대해서.


“그렇군. 그랬어. 어쩐지 그 놈의 냄새가 진득하니 나더라니···”


대주교는 부숴져라 손을 쥐었다. 마셸은 건네준 로자리오가 부숴지는게 아닐까 살짝 고민했다.


“그래··· 그래서 그 꼬마가 왔구나. 그 애가 많이 슬퍼하겠어.”


‘꼬마’와 ‘그 애’마셸은 그 두 단어가 모두 리드를 칭하는거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다른사람을 얘기하는것만 같았다. 대주교는 떨쳐내듯이 길게 숨을 쉬었다. 그게 뒤에서 있던 마셸에게도 들릴 정도의 소리였다. 대주교는 숨을 쉬고 일어나 마셸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내려가자. 그 꼬마 얼굴 다시좀 봐야겠다.”


이번에도 자기 말을 끝내고 먼저 내려가는 대주교의 뒤를 마셸이 숨죽이며 쫓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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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주교 18.03.05 320 4 12쪽
54 교국으로 3 18.03.02 336 4 12쪽
53 교국으로 2 18.03.01 322 5 11쪽
52 교국으로 18.02.28 330 5 11쪽
51 빈 자리 6 18.02.27 336 4 13쪽
50 빈 자리 5 18.02.26 339 5 16쪽
49 빈 자리 4 18.02.23 340 6 11쪽
48 빈 자리 3 18.02.23 341 4 14쪽
47 빈 자리 2 18.02.22 343 5 14쪽
46 빈 자리 18.02.21 391 4 12쪽
45 푸른 악마 9 18.02.19 338 4 12쪽
44 푸른 악마 8 18.02.19 339 6 18쪽
43 푸른 악마 7 18.02.16 304 4 13쪽
42 푸른 악마 6 18.02.15 316 4 11쪽
41 푸른 악마 5 18.02.14 323 5 11쪽
40 푸른 악마 4 18.02.14 344 5 14쪽
39 푸른 악마 3 18.02.13 318 5 14쪽
38 푸른 악마 2 18.02.12 322 4 16쪽
37 푸른 악마 18.02.09 361 6 15쪽
36 붉은 숲 13 18.02.08 357 4 12쪽
35 붉은 숲 12 18.02.07 347 5 12쪽
34 붉은 숲 11 18.02.06 355 4 13쪽
33 붉은 숲 10 18.02.05 349 5 10쪽
32 붉은 숲 9 18.02.02 374 6 11쪽
31 붉은 숲 8 18.02.01 339 4 12쪽
30 붉은 숲 7 18.01.31 355 4 11쪽
29 붉은 숲 6 18.01.30 345 5 10쪽
28 붉은 숲 5 18.01.29 384 4 10쪽
27 붉은 숲 4 18.01.26 391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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