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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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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736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2.23 13:43
조회
340
추천
6
글자
11쪽

빈 자리 4

DUMMY

“오래도 잤나본데.”


날이 밝았다. 자기 전에도 해가 떠 있었는데 자고 나서도 해가 떠 있으니 이걸 날이 밝았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셸은 눈두덩을 문질렀다. 보통 자고 일어나면 잠이 더 오는 법인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잔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하쉬 경의 장례식이 있는 날인데.


“이럴때가 아니지.”


마셸은 황급히 일어나 갑옷을 챙겨입었다. 신전으로 돌아와 반파된 갑옷을 대신해 신품으로 지급받은 갑옷이니만큼 새것이었다. 하지만 새것을 입는다는 기쁜 마음은 전혀 없고 무거운 갑옷이 귀찮을 뿐이다. 마셸은 먼저 천 옷 위에 두툼한 가죽옷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갑옷을 입었다. 갑옷의 뒷부분을 양옆을 여닫이문처럼 열어 몸을 밀어넣었고 등 뒤에서부터 앞으로 이어진 줄을 잡아당겨 묶었다. 원래라면 갑옷의 안으로 사슬갑옷을 덧대어 입어야하겠지만 싸우러가는게 아니라 성기사로서의 복장을 챙기는것뿐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벤자민 경은 나오실 수 있으려나?”


무리를 해서 나올수는 있겠지만 몸상태가 그러니 아무래도 뒷열에 조용히 서 있는게 다겠지. 마셸은 빙빙 어깨를 돌렸다. 골절되었던 갈비뼈는 어느새 제대로 붙었는지 숨쉬는게 다시 편해졌다.


“몸 상태는 괜찮네.”


갑옷까지 차려입은 마셸은 조식을 먹으러 바깥으로 나가려다 멈칫했다.


‘까먹으면 안 되니까.’


침대 위에 놓여있는 하쉬의 로자리오를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장례식까지는 시간이 있었으니 리드의 방에 잠깐 들려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깨어나있을수도 있으니까.


“리드?”


두 번 문을 두들겼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걸까? 문고리를 잡고 돌리다가 느껴지는 온기에 눈쌀을 찌푸렸다.


“누가 왔다갔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리드는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마셸은 방 안을 빠르게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문고리의 온기는 방금 왔다갔단걸 알려주고 있는데 아무도 없다니? 수줍은 소녀처럼 문만 잡고 있다가 돌아간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직 못 일어났구나.”


정말로 일어나긴 하는걸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대로 영영 못 깨어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충격이 컸니?’


그래도 리드라면 잘 견뎌낼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셸이 무언가를 해 줄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리드의 곁으로 다가간 마셸은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 열도 없는것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데.


“응? 어 이거 마셸 아니야?”


열려진 문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비루가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고보니 모던은 떠났지만 비루는 아직 남아있었단걸 까먹고 있었다.


“비루 씨.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아, 거 참! 난 뭐 별로 다친데도 없잖아? 모던 자식을 빼면 내가 제일 쌩생하다고!”


비루는 팔을 들어올려서 알통을 만들어보였다. 외팔인 비루가 하니까 제법 이질감이 느껴지는 포즈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통이라고할까? 불쑥 솟아오른 근육은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아하하···”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잘 모르겠던 마셸은 그냥 웃기로 했다.


“이 꼬맹이 아직도 안 일어났어?”


“그러게 말입니다. 벌써 사흘째인데 이러다 계속 못 일어나는건 아닐지 걱정됩니다.”


“그게 내 알바는 아니지. 아무튼 너도 몸 관리 잘하라구. 벤자민 그 양반은 계속 성기사질 할 모양인던데 참 징한 양반이다 싶던데.”


“아, 음. 네.”


뭔가 말하려고 하는듯했지만 비루는 쓸데없는 얘기를 하며 말을 질질 끌어댔다. 마셸은 비루가 이런 성격은 아닐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아, 아침 먹었나? 안 먹었으면 나가자고. 신전밥이 생각외로 맛있더라고. 난 뭐 풀이나 뜯어먹을줄 알았는데 말이지.”


“개인적으로 신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지요.”


마셸과 비루는 식당으로 향했다. 대부분 식사를 끝냈는지 다 먹은 식판들이 잔뜩 놓여져있었다.


“아, 이거 참. 먹을 시간도 없겠는데.”


“하하···”


“젠장! 내가 괜히 말걸어서 미안한데. 암튼 슬슬 시간 된거 아냐?”


마셸은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확실히 해가 중천에 떠있는것이 슬슬 장례식 시간이 되어있었다.


“그렇군요. 슬슬 일어나야겠습니다. 비루 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의상으로 넌지시 묻자 비루가 입술을 비틀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 양반 죽은건 솔직히 반쯤은 내탓인데. 젠장! 마지막 가는길은 봐야할거아냐?”


반쯤은 자기탓이라··· 저래보여도 나름 자책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푸른 악마에 대한걸 물어본것도 푸른 악마를 퇴치하겠다고 한 것도 하쉬였으니 비루의 탓으로 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악마를 봉인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하군.’


상상만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쩌면 나라가 한 두개 망하는건 고사하고 인류가 멸종했을지도 몰랐다. 푸른 악마는 그토록 강했다.

비루의 창에도 하쉬의 칼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놈이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맞서는건 고사하고 겁에 질려 미쳐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무엇보다도 푸른 악마는 봉인됐을 뿐이지 쓰러뜨린게 아니었다. 봉인할 방법이 없었더라면 일행은 물론이요 구조대까지 전멸했을게 뻔했다.


“대단하시군요.”


뜬금없이 대단하다는 말에 비루는 머리를 갸웃거리고 손을 관자놀이쯤으로 가져다대고 빙빙 돌렸다.


“뭔 개소리야. 그럼 내가 그 양반 장례식도 참가 안할 개새끼로 보였단거야 뭐야?”


아, 그게 아니었는데. 생각한게 길어서 그런지 핀트가 어긋나버렸다. 마셸은 쿡쿡 웃었다.


“어랍쇼? 이젠 웃기까지하네? 에이씨! 멋대로 하라고!”


성큼성큼 걸어서 먼저 앞서나가는 비루.


“아, 그게 아닙니다. 비루 씨!”


작은 오해가 불러일으킨 소소한 해프닝. 마셸과 비루는 티격대며 뒷뜰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조금 늦었다는걸 깨닫고 둘은 금세 태도를 바꿨다.


“이제 왔는가들?”


벤자민이 입구쪽에서 웃고 있었다. 양옆에서 부축을 받아 겨우 움직이는듯 했다.


“아, 벤자민 경.”


“앞으로 가게. 하쉬 경의 마지막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앞으로 가 있어야지 않겠나?”


벤자민은 묘비의 맨 앞자리로 가라고 했고 마셸은 그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부축을 받는 신세라 힘들것같다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기백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서 있었다. 마셸과 비루는 구석쪽으로 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하쉬 경.”


신전의 복장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교국을 나타내는 상징인 문양이 있었다. 하얀 방패와 붉은 검이 그려진 문양.

마셸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는것을 느꼈다. 옆을 돌아보니 비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다. 정말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비루 씨.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마셸이 비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비루가 응? 하며 마셸을 쳐다보았다. 뭔 일이라도 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 그래. 이런 양반이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묘비의 가장 앞으로 도착한 마셸은 처음으로 묘비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하쉬의 묘비를 만드는건 다른 신전 관계자들이 했는데 이쪽에 종사하는 사람들답게 한 두번 해본 솜씨는 아니었다.


‘······.’


마셸은 묘비의 글귀를 빠르게 살폈다.


[하쉬 그렌테일]

[듀란드 신성제국의 성기사]

[악마와의 싸움에 자신을 불태우고 여기에 잠들다]


‘하쉬 경···’


그 말대로, 하쉬는 스스로를 불태웠다. 아닌게 아니라 직접적인 사인은 화상이었다. 온 몸이 불타오른 시체. 마지막에 하쉬를 보았을때 모두가 놀랐던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부터 장례식을 시작하겠네.”


주교가 뒤에서부터 걸어왔다. 마셸은 비루를 끌고 옆쪽으로 한 걸음 자리를 옮겼고 주교는 목을 가다듬었다.


“하쉬 그렌테일. 서른 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위대한 성기사는···”


하쉬의 업적이 하나 둘 주교의 입을 빌어 모두에게 알려지고 있었다. 어디에서 태어나 무엇을 하였으며 어떤 일을 행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렇게 십분 가까이 연설하던 주교의 말이 마침내 끝났다.


“···이리하여 그는 마지막에 자신을 불태워 푸른 악마를 퇴치하였네. 그와 그 일행들이었던 성기사 벤자민과 마셸 경. 용병 비루. 화전민 모던. 그의 제자 리드에게 감사를 표할 따름이네.”


긴 연설이었지만 누구 하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악마를 묵묵히 그림자속에서 행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할테니. 알 듀란데.”


그림자 속.

다시 말해 이번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묻겠다는 소리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신전의 상황 때문이었다. 함부로 악마가 나타났다니 뭐니하는 소문을 퍼뜨렸다가는 왕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 사람은 많다지만 그 증거가 없었으니.


“기도는 자네에게 부탁하지.”


주교는 거기까지 말하고 열의 뒤로 물러났다. 기도를 외울 차례는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마셸에게 넘기려한 것이다. 마셸은 조용히 고개숙였다.


“신의 이름 아래···”


한참 기도문을 외우는 중에 뒷쪽이 소란스러워져 마셸은 기도를 하다 멈췄다. 무슨일인가 싶었더니 사람들이 길을 비키고 있었다.


‘뭐지?’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누군가 한 명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누군가를 보며 수군대고 있었던 것이다.


“저 아이는···”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마셸의 귀에 닿았다. 아이. 아이라는 단어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리드가 일어난거겠지.


“리드?”


마셸은 자신을 쳐다보는 리드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꼴이 저게 뭔가. 오른손의 붕대는 칭칭 풀려져있는데다가 동공이 떨리고 있다.


‘울지 마.’


차마 리드를 보지 못하고 마셸은 옆으로 비켜섰다. 하쉬 경의 장례식에서 묘비에 가장 가까이 있어야할건 자신이 아니라 리드였기 때문이다.

리드는 잠시 홀린듯이 묘비를 보더니 입을 뻐끔거렸다.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말하려다가 말하지 못하고. 마셸은 가슴 한켠이 무거워지는걸 느꼈다.

그렇게 몇번이나 말을 하지 못하고 있자 비루가 성큼성큼 리드에게 다가갔다.


“어이. 마셸 경. 계속 하라고.”


입술을 깨물고 마셸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지자 기도문을 읊조렸다. 그 사이 어느새 비루의 눈망울은 눈물이 당장이라도 흐를것 같이 변했고 또 소년의 오른손은 까드득 주먹을 쥐고서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마셸은 자신의 발밑의 흙들이 부드러워졌음을 느꼈다.


“알 듀란데.”


기도문과 함께 하쉬의 장례식은 끝이 났다.

소년의 마음속에 영원히 빈 자리를 남긴 채.


작가의말

댓글,추천,선작,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연참..이겠죠?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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