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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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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882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2.14 22:35
조회
323
추천
5
글자
11쪽

푸른 악마 5

DUMMY

데구르르, 쿵!


거세게 달리다가 뿌리에 다리가 걸려 우습게 넘어졌다. 그렇게 오래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있었다.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아직도 푸른 악마가 뒤쪽에서 나를 잡으려고 달려올것만 같아서.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그래서 고개를 돌리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다시 몸을 일으켜 달리려는데 몸이 맘처럼 따라주지를 않았다.

도망쳐야··· 도망쳐야하는데.


“키륵, 크륵, 키르륵!”


문득 그런 소리가 들렸다.

그게 웃음소리란걸 알아채기도 전에 소리가 들렸다는 것만으로도 놀라 움찔거렸다.


“캬르륵, 캬르르륵! 키르르륵!”


명백한 비웃음 소리였다. 마치 내 꼴을 보라는 듯이 몇번이나 그 소리는 나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 소리 덕분에 나는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분명, 그 웃음소리가 푸른 악마의 소리는 아닐테니까.

덜덜 떨며 고개를 돌리고 내 뒤에는 몇 마리의 고블린이 있었다.

고블린이었다.

푸른 악마가 아니라.


‘···다행이야.’


약간의 안도와 함께 마음속으로 조금은 평안을 되찾았다.


‘다행?’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가 다행이라는걸까?


“캬르르륵! 캬르륵! 캬륵!”


그러나 그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고블린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심한 나를 보고 제놈들이라도 싸울만하다고 생각한 것일 터였다.

나무뿌리에 걸린 발을 재빨리 빼고 나는 상체를 들어 일으켰다. 방금까지는 일어나지 못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캬르르륵!”


고블린 한 마리가 어디서 가져온것인지 투박한 곤봉을 휘둘렀다. 재빠른 속도였지만 한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곤봉을 피했고 앞으로 나온 디딤발을 차 녀석의 턱을 가격했다.


“꾸, 꾸륵?!”


당황한것처럼 녀석이 턱을 만지며 당황하자 뒤에 있던 두 마리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몇번이나 갸웃거렸다.


“캬륵! 캬륵!”


요상한 소리와 함께 다시한번 녀석은 내게 곤봉을 휘둘렀지만, 그건 전혀 위협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곤봉이 위험한건 사실이었지만 맞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었다.

그런 상황속에서 나는 녀석들의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푸르게 불타오르는 숲이 보였다. 나무들에 불이 번져가며 조금씩 조금씩 타오르고 있었다.


“캬르르륵!”


녀석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한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걸까? 조금 무리하다고 생각될만큼 녀석은 내게 파고들었다. 곤봉이 닿을 거리에서도 두 걸음 더. 주먹을 뻗을만한 간격이었다.

얕보였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고 서로간의 거리가 거의 사라져 곤봉은 커녕 주먹을 휘두르기도 힘든 거리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아니라. 엎어지지도 못할 거리.

그 거리에서 나는 다리에 힘을 줘서 무릎을 차올렸다.


“꾸르, 끄륵!”


키가 작은 고블린이었던지라 아직 어린 내 무릎은 녀석의 명치에 확실히 적중했다. 침 끓는 가래 소리를 내면서 녀석은 허겁지겁 내게서 떨어지려 했다.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이만한 거리에서 곤봉은 닿을 리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걸까? 두 마리의 고블린도 녀석을 도우려 달려왔지만 내가 품 속에서 단검을 꺼내 휘두르는게 좀 더 빨랐다.

샤악! 하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이 반쯤 잘렸고 피분수를 뿜으며 고통에 겨워했다. 성대까지 잘려나갔는지 제대로 된 비명 하나 지르지 못했다.

나는 그걸 보며.


‘불쾌해.'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피를 내뿜으며 죽어가는 고블린의 정면에는 내가 있었고 당연히 피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전신을 적신 녀석의 붉은 피에 달려오던 두 마리 고블린들이 당황했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먼저 단검을 던졌다.

절대 녀석들을 얕본것이 아니었다. 세차게 단검을 던졌고, 단검은 고블린의 머리라는 과녁에 확실하게 적중했다.


“쿠르르, 륵?”


영문도 모른채 한놈이 고꾸라졌다. 앞으로 고꾸라지며 이마에 박힌 단검 손잡이가 지면과 충돌했고 푸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더라도 확인사살처럼 고블린의 이마를 더욱 파고들었단걸 알 수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걸까? 남은 한놈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녀석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캬, 캬르, 캬르르, 캬르르륵!”


맨몸으로 나는 남은 고블린 하나를 쫒았고 혼비백산으로 도망치는 녀석을 십 초만에 따라잡았다. 뒤에서 덮치듯 몸을 날려 녀석을 덮었고, 녀석과 나는 한 뭉치가 되어 데굴데굴 굴렀다. 한 서너바퀴를 굴렀을 무렵 녀석이 문득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왜?’


왜일까? 금방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내 상처를 발견하고 쥐어뜯듯이 내 옆구리를 강하게 잡아챘다.


“끄, 끄아아악!”


이번엔 내가 비명을 지를 차례였다. 애써 무시하고, 또 잊어버리고 있던 고통이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제발, 제발!

눈물이 흘러나오는걸 느끼며 나는 녀석의 안면을 있는대로 구타했다.

녀석을 깔고앉은채로 나는 주먹을 휘둘렀고 녀석은 내게 깔고앉아진채로 손을 휘둘렀다. 과일이 육즙을 뿜듯이 내 상처는 피를 뿜었다.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며 있는 힘껏 구타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놔, 놓으라고! 아파, 아프다고!”


머리를 잡고 주먹을 휘두르고 손가락을 세워 눈을 찌르고 코뼈를 부러뜨리고, 머리를 들었다가 지면에 강하게 내리치고 목을 조르고.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그걸 얼마나 반복했을까?

눈물흘리며 녀석을 구타하다가 문득 녀석의 손이 떨어져나간걸 느꼈다.

이미 숨이 끊겼던 것이다.

녀석의 머리는 이미 진득한 곤죽이 되어있었다.


‘아으, 아.’


그 광경을 끔찍하다고 느낄법도 할텐데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옆구리가 쑤실정도로 아팠다.

아직 남아있는 놈의 입가는 어째서인지 웃고 있었다.


‘마음에, 안들어’


마음에 안 들어서.

녀석을 뒤집은채로 내리 찍었다. 안면이 찌그러져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도 힘들게 되었을때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하하.”


처음의 상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녀석들을 보았을때 다행이라고 여겼을까? 왜? 어째서?


‘내가 더 강해서’


나는 붉은 숲에서 이미 고블린들을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녀석들은 나보다 느렸고, 나보다 약했다. 그래서 녀석들을 보았을때 안도했을 것이다.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보다 약한 녀석들에게 죽을리가 없으니까.

푸른 악마가 아니었으니까.


“아하하, 아하하.”


조금 더 크게 웃었다.

피곤죽이 되어버린 손.

녀석의 눈알도, 녀석의 피도, 녀석의 뇌수도 이 손에는 묻어있을 터였다. 붉게 그리고 허옇게 또 거멓게 물든 손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좋아?’


그 피가 물든 손이 나는 좋은걸까?

그 피가 물든 손이 나는 마음에 드는걸까?

그럼 나는 그 네크로맨서와 뭐가 다르지? 나보다 강한걸 피하고 나보다 약한걸 만나 그것들을 죽이고 살해하고 도살하고···

죽어버린 헨리가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퇴역병사 한스가 날 보며 끌끌 혀를 차는 것처럼 보였다.

죽어버린,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이 날 보고 울고 있었다.


“아냐. 아냐. 아냐. 아니라고!”


히스테리처럼 소리질렀다.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나는 단지 달라지고 싶었을 뿐인데.

하쉬는 처음 날 보고 ‘용기있는 꼬마’라고 말해주었다. 스스로 내 용기를 증명했고 하쉬는 그에 감명받아서 내가 검동이, 제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었다.

빈민가의 꼬마는 화촌의 사람들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나는 성기사의··· 제자니까요.’


처음으로 제자라고 말했고, 하쉬의 제자다운 일을 했다.

그러나 산을 올라 본 것은 헨리의 참혹한 시체 뿐이었다.

나는 그것에 슬퍼했다. 퇴역병사 한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법을 배웠고, 선의를 베푼

아이 헨리의 죽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 때, 나는 내가 변했다고 느꼈다.

신전에서 난 하쉬의 지도에 따라 수련을 했다.

처음 하쉬가 무게놀이를 시켰을때처럼 불평하지 않았고 그게 필요한것임을 알았다.

스스로가 달라지기 위해 나는 그렇게 노력했다.

사람들은 그런 내게 기대했다.

신전의 주교도, 마셸 형도, 비루도, 모던도. 그리고 아마 하쉬조차도.


‘그런데.’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빈민가의 꼬마였다. 성기사의 제자가 아니라, 추접스럽고 더럽고 어리석고 겁 많고 비열한 빈민가의 꼬마였던 것이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내 모습에 스스로 환멸감을 느낀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옆구리가 아픈것보다도.

마음이 아팠다.


‘두려워. 두려워. 두려워. 두려워. 두려워!’


푸른 악마가 너무나 두려웠다. 당장에라도 그 푸른 화염이 내 목숨을 빼앗을것만 같고 그 악마의 말대로 파멸이 나를 찾아올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두려운건.


‘만날 수 없다는게··· 두려워.’


그래.

정말로 두려운건 그것이었다.

하쉬를, 비루를, 모던을, 마셸을, 벤자민을 죽게 내버려두기 두려웠다.

다시금 그들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끝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마도 그걸 처음 느꼈던건 부모의 죽음에서였을거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로 자신을 속였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의연하게 부모의 죽음을 ‘외면했다’.

그건 이미 헨리와 한스의 죽음에 눈물흘리며 깨달았을텐데. 누군가를 잃는게 너무나 두려워서 나는 스스로를 속여 외면했던 것인데.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고?


‘바보같아.’


다시 나는 웃어버렸다.

또 허탈한 웃음이었지만 방금과는 사뭇 의미가 달랐다.


‘어차피 정해져 있었잖아.’


그리고.

벤자민은 말해주었지 않았나?


‘옳은건 옳고, 틀린건 틀린거란다. 싸워야할때는 싸워야하지.’


지금이 싸울때가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라는 걸까?

공포를 밀어내라. 눈을 떠라. 외면하지 마라. 똑바로 서서 직시해라.

나는 빈민가의 꼬마가 아니라, 성기사의 제자다.


‘설령 그게 무서운 괴물일지라도 다를게 없어.’


정말로 벤자민의 말대로다.

푸른 악마던 작은 고블린이던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강하건 약하건 내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있는데.

이전에 하쉬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저것들을 상대하는게 내 일이지. 금방 가겠소.’


수많은 스켈레톤을 상대로 하쉬는 등을 돌리지 않고 우릴 도망치게 했다.

정말로 성기사다웠다.

한번쯤은 나도 그처럼 되고싶었다.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켜 달렸다.

지금까지와 같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내가 도망쳤던 곳으로 나는 달리고 있었다.

어디인지 헤메지는 않았다. 불타오르는 곳을 향하면 됐다. 어쩌면 사지로 기어들어가는 꼴이었다. 도망치라고 한 그네들의 말을 무시하는 꼴이었다.

내가 간다고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래도 후회하기 싫었다.

외면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나는 성기사의 제자니까···!”


작가의말

추천,조회,선작,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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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붉은 숲 8 18.02.01 33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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