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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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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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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25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8.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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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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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소년과 용병과 요정2

DUMMY

무념무상無念無象.

어떠한 생각도, 어떠한 상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처음으로 지워진것은 현재의 장소와 시간에 대한 생각이었다. 얼마나 촉박하건 급박하건 그건 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정진하는 편이 나으리라.

나는 그렇게 시간감각을 잃었다.


“······.”


부유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비슷한 느낌을 몇번이나 받아보았다. 비록 그곳은 현실이 아니었지만.


“······아아.”


‘내’가 나눠지는 기분이었다. 기억해내야할게 있는데, 어째서 망각하기만 하는것인가? 어째서 잊기만 하는건가?

그 이름을 기억해야하는데.


‘또?’


언젠가 이랬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던게 분명 처음은 아니었으리라.


“···잊지 않아.”


나는 중얼거리며 팔을 뻗었다.

이미 시간감각도 공간감각도 사라지고 하물며 온전히 ‘내’것이 되었던 영혼들의 기억조차 빛바래 사라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이미 몇년이나 흐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억이 빛바랬다한들 이상한 일은 아닐 터.


“···더 이상 잊지 않아.”


강해지려면 버려야했다. 난 네임리스를 죽여야하는 이유가 있었고 반드시 그 일을 완수해야만했다.

하지만 버린다면 강해진들 의미가 없었다. 그 모든 복수의 이유와 목표를 잃고 네임리스를 죽인다한들 그것은 온전한 나의 복수일까?


······모르겠다.




***




‘내가 미쳤지.’


요정들은 팔락팔락 그 벌레같은 날개짓을 하더니 이내 어느 동굴 앞에 멈춰섰다. 비루는 결국 개소리였구나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동굴속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소리인가?


“이쪽이에요.”


“들어와! 네 팔 치료해줄게!”


정말로 미쳤나.

그러면서도 다리는 움직이고 있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라도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오기로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라는 심정이었으니까.


“아, 그래. 어디 멋대로 해보라고.”


헛웃음을 터뜨리며 먼저 들어간 요정들을 따라 동굴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환청뿐만이 아니라 환각도 보이는걸까? 아니, 진작 그랬지만.


‘···제기랄. 말이 되냐고?’


분명 들어온건 동굴의 입구였을터다. 하지만, 들어서자 내부는 전혀 달랐다. 인테리어가 깔끔한 비루도 단 한번 보지못한 아름답기까지한 집의 모습이었다. 벽난로가 있었고 그 앞으로 소파가 서너개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네모난 테이블이 있었고 네개의 테이블의 안쪽으로 밀어넣어져있었다.


“앉아요.”


직접 만들기라도 한걸까? 검은 요정은 두 손으로 자신에게 알맞은 사이즈의 작은 컵을 들고 홀짝이고 있었다. 홀짝이는건 검은색으로 도대체 무슨 음료인지 몰랐다. 오히려 독약에 가까워보이는 비쥬얼이지만 어지간히 맛있다는 듯이 홀짝이고 있다.


‘코코아는 아닌데.’


브라헴 자유무역도시에서 마셔본 그 음료는 분명 아니었다. 냄새가 전혀 달랐으니까. 하기사 무슨 상관이겠는가? 전부 환각 환청일 뿐인데.

비루는 요정에게 다가가 의자를 뺐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바닥을 긁으며 빠져나온 의자에 비루는 신경질적으로 걸터앉고 턱을 괴었다.


“그래. 내 팔은 어떻게 낫게 해 줄거냐고?”


퉁명스러운 어조는 마치 관심없는 듯이 보였지만 비루의 귀는 쫑긋 세워져있었다.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줄 알아?”


하얀 요정은 히히 웃으며 비루에게 말을 걸었다.

이 장소가 어떤 장소냐라···


“중앙 산맥이잖냐? 아직도 미개척지인 중앙 산맥.”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어째서 중앙 산맥을 제국의 사람들이 개척하지 못한줄 아나요?”


“몰라. 그딴 거. 내가 알아야되냐고?”


검은 요정의 물음에 마찬가지로 차갑게 대답한 비루가 탁자 위에 놓인 컵을 흔들었다. 자신의 사이즈에 알맞게 어느새 준비되어있는 그 컵은 요정의 것과 마찬가지로 검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건 도대체 뭐야?”


어차피 죽지도 않을 환각, 환상인데 마셔나보지.

비루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입가에 대고 컵을 기울였다. 그리곤,


“퉷! 콜록, 콜록! 이게 도대체 뭐냐고?”


쓰기만 하고 어지간히 맛 없는 음료였다. 처음에 쓴 맛이 혀에 닿았을 때엔 독이 아니냐고 의심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뒷맛이 약간 아쉬워 조금 더 마시고 싶어지는건 중독성이 있는···


‘마약?’


“여긴 중앙 산맥. 우리는 이 곳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지키고있어.”


하얀 요정은 비루의 의문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했다. 그 태도에 빈정상한 비루가 하얀 요정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턱을 괸 손을 빼기 싫어 관뒀다.


“그래서?”


“이곳은 용의 무덤. 과거에 있었던 커다란 전쟁에서 죽어간 용들이 묻힌 곳이에요.”


“용? 용으로 맞을소리를 하는구만. 어디 더 지껄여나봐라.”


비루는 일만년여 전, 용마대전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다. 리드가 숨길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마찬가지로 굳이 말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용들의 사체와 함께 그들의 보물이 묻혀있는곳이 이곳. 네 몸을 치료하는건 간단하단거야.”


하얀 요정이 대단하지? 하며 콧대를 높였다. 몸을 쭉 빼고 자랑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지만 비루는 한숨만 푸욱 쉬었다.


“진짜로 미쳤다고. 용이니 요정이니··· 내 팔자가 그렇지.”


어쩌면 제국에 온 것도 전부 꿈이 아닐까? 생생하긴 하지만··· 현실감이 적었다.


“당신을 치료해주는건 간단해요.”


검은 요정이 손을 흔들자 그 조막보다도 작은 손에 시계 하나가 들려있었다. 손목시계···일까? 손목시계라기 보다도 휴대용 시계라는게 더 알맞았다. 마치 팬던트처럼 생긴 그 모습에 다른거라곤 메달 대신에 시계가 들어있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몸이 낫는다면 뭘 할 생각이죠?”


“복수.”


비루의 눈이 진지하게 빛났다.

붉게 타오르는 그 눈빛은 요정들조차 섬뜩하게 만들 정도였다.


“레너 왕을 죽이고, 내 동료의 죽음에 털끝이라도 관련있는 자들을 모조리 몰살시킬거다. 사로잡아 고문과 치료를 반복할거다. 이빨을 뽑고, 손톱을 뽑고,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피부가죽을 벗겨내고, 소금을 그 위에 뿌릴거라고. 그 다음에 내 동료를 사지로 보내고도 아직 멀지 않은 그 눈알을 뽑아내 씹어삼켜주지!”


비루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광기狂氣. 그랬다. 그에게선 거친 광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죽고 나서도 편하지 못할거다. 시체도 찾을 수 없게 갈기갈기 토막낼거다. 그 토막난 살점들은 모조리 내가 씹어삼키고! 크흐, 남은 부분들은 불태워없애버리고 말거다. 그것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비루는 곧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들을 쏟아냈다. 요정들은 그의 분노와 광기를 담담하게 직시했다.


“···그게 당신의 복수인가요?”


비루가 숨을 할딱댈정도로 입을 달싹이고 숨을 골랐을 때, 검은 요정이 되물었다. 슬프다는 듯이 처연한 눈빛을 하고 되묻는 요정에게 비루는 눈을 부라렸다.


“그래! 몇번이고 몇번이고! 실패해도 몇번이고. 나는 힘이 있다면 몇번이건 반복할거라고.”


“너는 불쌍한 사람이네.”


하얀 요정이 비루의 뺨 위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평소라면 거칠게 쳐내고 상대를 묵사발로 만들었을 비루였지만, 요정의 눈빛에는 한 줌의 조소조차 없이 정말 그를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마치 안젤라의 그것처럼.


“그래. 실망했냐?”


“아뇨.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서 다행이에요.”


“당신의 의지라면 분명 꺾이지 않을거야. 다행이야. 다행이야. 당신이라서 다행이야.”


어째서인지 그런 말들을 토해냈음에도, 속에서 더 이상 올라올것이 없을만큼 저주와 분노의 말을 토해냈는데도 요정들은 다행이라 말한다.


“그 의지는 돌아가서도 이어질거야. 당신이라서 다행이야. 잊지 않을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야.”


“···부디 그 마음이 이어지기를.”


검은 요정이 시곗바늘을 돌린다.

끼익, 끼익,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비루는 의아해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이게···?”


비루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비단 심장만이 아니라 몸 속의 모든 장기, 혈관, 근육, 뼈들이 비명을 질렀다. 뇌는 과부화되어 고통에 소리지르라는 명령밖에는 내리지 않는다.


“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


네크로맨서에게 진탕 당했을 때가 이리 아팠을까? 푸른 악마와 싸웠을때가 그리 아팠을까? 풋내기 용병시절에 처음으로 맞은 칼침이 이토록 아팠을까?

그것들을 모조리 합쳐도 몇십, 몇백배는 넘을 고통이 비루를 한번에 엄습했다.


“‘당신의 시간’은 되돌려질거에요. ···그 시간을 당신이 견딜 수 있다면.”


비루의 육체의 시간이 되감겨지고 있었다.




***




“아, 아.”


수면에 파문이 일듯, 무언가가 깨어져나가다 사라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분명 소중한 기억이었으리라. 정말로 내 기억이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내’ 기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잊혀지지 않은걸지도 모른다.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안 되는데.”


결국 그게 정답이었을까? 강해져야할 동기들을 버리고 강해지는것이. 나는 그 길을 거부했기에 계속해서 마모되어가기만 하는건지도 모른다.


“······.”


이곳에 처음 도착한 나와 지금의 나는 달랐다. 그 때의 내가 셋이 모인다한들 지금의 나를 당해내기는 어려우리라.

역량力量은 변하지 않았지만, 기량技量은 크게 늘었다.

본래 내 기량은 모렉 공작에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싸운다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역량의 차로 그를 찍어누를 순 있겠지만, 같은 힘을 사용한다면 반대로 그에게 패할 수 밖에 없었다.

수십년의 연륜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한들 쉽게 넘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내 재능이 평생에 보기 드문것이라 하나, 그 또한 천재로 불리며 살아와 생의 끝과 검의 극에 달한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내게 가장 부족했던건 시간이었다.

오년 남짓한 짧은 시간으로는 기량을 늘릴 수 없었다. 역량은 방법이 있을지 모르나, 기량만큼은 오로지 자신의 순수한 실력이니.


‘그게 채워져간다.’


우직하게 수련하는것만으로도 나는 강해질 수 있다. 이 공간속에서라면 언젠가 네임리스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구름의 속도를 보아하니 대강 얼마나 느려져있는지는 짐작이 간다.

애초 일만의 영혼들과 동화되는 것으로 나의 역량은 네임리스에 미치지 못하나 그에 준한다고 할 수 있었다. 즉, 기량이 동일하다면 어느정도 싸움은 가능할 터였다. 내 기량이 그를 넘는다면··· 어쩌면.


‘기량···’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족했다.

이제서야 모렉 공작의 기량을 따라잡았을까 싶었다. 하물며 일만년을 살아온 악마 네임리스에게는 요원한 일일것이다.


“···역량.”


역량 또한 미세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는것이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것이 이상한것이다.

조금씩이지만 나는 나의 알을 부숴나가고 있었다.

내가 정한 한계를 부수고 새로운 무武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새에 나는 또 다른 존재로 변태하고 있었다.


“···기다려.”


반드시 너의 이름을 기억해낼테니까. 왠지 모르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의지로 그 기억이 잊혀졌다는것이.

그리고 그 이름을 다시 기억해내는 순간, 이 수련이 끝나리라는 것 또한.


“······헨.”


작가의말

선! 추! 코!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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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소년과 용병과 요정 18.08.28 201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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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악마 네임리스 18.08.23 20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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