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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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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네
작품등록일 :
2019.08.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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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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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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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초련初戀 (5)

DUMMY

5.



사실은 달려오는 그림자의 짐승들이 셋이나 되는 것을 보고 살짝 긴장했다.


인간에게 만만한 적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소동물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적을 상대로는 얌전히 도망가는 것이 실로 이롭다.


단련된 인간이 충분한 장비를 갖추었다면 늑대 몇 마리를 상대로도 승산이 있겠지만, 현대인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늑대도 총화기가 나오기 전에는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중세시대에도 늑대무리가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


사실 두 마리가 앞뒤로 포위하기만 해도 위태롭다.


물론 내게는 영력이 있지만, 초련이라면 모를까 임소영의 육체는 이 나이대 평범한 소녀들에 비해서도 훨씬 부실하다는 불안요소가 있었다.


일단 제대로 못 먹고 살았으니 말이다.


“...당신들 말만 못하는게 아니군요?”


야생동물 수준의 지능도 이들에게는 없다.


인간의 신체구조상 두 마리에게 앞뒤로 포위만 당해도 위태롭다.


갑옷으로 보호받는다면 모르겠지만 칼 하나 들었을 뿐이니 계속 견제가 가능한 1대1이라면 모를까 칼만 들고는 승산이 드물다고 생각했다.


근데 포위할 생각도 안하고 셋 다 정면으로 정직하게 달려든다.


어차피 질 것이라고 생각도 안하긴 했는데, 막상 영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유롭다.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그림자 짐승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 또다른 그림자 짐승과 충돌하게 만들어 놓고, 맨 마지막으로 달려들던 그림자 짐승과 순간적으로 1대1을 만든다.


정면으로 정직하게 달려드는 그림자 짐승에게, 그의 돌격을 역이용하는 카운터를 넣어 단박에 일도양단.


동물의 뼈를 가를 힘은 지금의 내게는 없었지만, 아까도 느꼈듯이 이들에게는 내부장기라던가 골격 같은 것이 없었다.


딱 고기덩어리를 베어내는 정도 저항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저만한 고기덩어리를 베는 일도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내 칼솜씨에 요도 후소(가짜)의 날카로움, 그림자 짐승의 돌진을 역이용한 카운터 공격이라는 점까지 한번에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세 마리 일때도 만만했는데 두 마리가 된 뒤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상적인 짐승들과 달리 경각심조차 가지지 않은 채 그저 돌진해올 뿐이었으니까.


차례차례 쓰러뜨릴 뿐.


-엄청 세잖아!

“후. 그보다 당신 여친이 문제네요.”


나는 그림자 짐승들이 달려온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저 그림자 짐승들의 ‘본체’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사고도, 감정도 없는 저 그림자 짐승들은 살아서 멀쩡하게 성장할 수가 없는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저런 식의 패턴으로 멀쩡히 살기 위해서는 어떤 깽판을 쳐도 대항해올 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강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잖아.


저게 무언가의 꼭두각시일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추측이었다.


근데 저 기절해 있는 소녀 때문에 지금 당장 이 곳을 비울 수가 없으니... 아무리 그래도 일어나는 것은 보고 올라가야 할텐데.


나는 살짝 괘씸해졌다.


소년의 시체를 뒤적여 지갑을 털기로 한다.


“...당신 돈 꽤 들고 다니네요?”

-아앗 내 용돈이...

“어차피 이제 쓸 일은 없잖아요. 어디보자... 5만원이나 되네요.”


이거면 하루에 컵라면을 하나씩 사먹으면 한달은 우습게 넘길 수 있는 거금이었다.


점심이야 뭐 학교에서 주니까.


나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나는 소년을 바라본다.


“뭔가 재밌는 얘기라도 해보세요.”

-응?

“당신 여친 때문에 여기서 떠나지도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잖아요.”

-...그냥 깨우면 되지 않아?

“사실 저는 이대로도 크게 상관은 없어서.”


저 위에 있는게 뭔지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그리 호기심 많은 성격이 아니었고, 소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 그렇지.


“정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없다면, 좋아요. 저쪽으로 가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오도록 해요.”


나는 무당다운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갈 길을 잃은 귀신이 여기 있네?


무당은 기본적으로는 귀신이나 요괴와 말이 통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직종이라 하기는 어렵다.


-뭔가 속는 기분인데...


소년은 뭔가 중얼중얼거리면서도 내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멀어져 간다.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갓 살해당한 영혼이라면 엄청난 혼란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무당이 있으면 폭주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무당의 영력 자체가 귀신을 진정시키기도 할뿐더러 대수롭잖다는 듯이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줄 잡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저세상으로 갈 귀신이지만 정찰 정도는 시켜도 되겠지.


애초에 내가 직접 못가는 이유가 쟤 여친 때문이니까 내가 일을 시킨다고 해서 억울해할 주제도 아니리라.


“흐응.”


나는 발을 꼬고 앉은 채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


“확실히 내 시대 여자들이랑은 다르네요.”


얼굴에 치덕치덕 뭘 바르고 있는 애들을 보면 새삼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고등학생 정도 나이면 옛날 여자들도 화장 하긴 했다.


그야 이미 성인일 나이니까.


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화장품의 질도 떨어졌고, 무엇보다 보통 농사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일상적으로 화장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자들의 미모를 보면 그 옛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과거 나는 외모로 어디서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현대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아예 상위권에 비벼보기는 힘들 수준이랄까-


나도 화장을 해놓고 보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하튼간에 말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뙤약볕에서 힘쓰는 일을 하던 억척스러운 시골처녀들의 강인함에 비하자면 마치 수수깡과도 같이 연약하기도 했다.


‘....어휴 남 말 할 때는 아닌데.’


시간 나면 단련이라도 해야지.


그 연약함의 최첨단에 있는게 지금의 내 몸이기도 했으니.


그렇게 소녀의 얼굴을 물끄럼히 쳐다보고 있자니 슬슬 눈을 뜰 기미가 보였다.


으응, 하는 나직한 신음소리와 함께 천천히 눈을 뜬 것이다.


“...!”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밤이죠?”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나는 인사말을 건넸다.


소녀는 두어번 눈을 깜박거렸다.


풀려 있던 눈동자에 슬슬 빛이 돌아오고 있다.


어쩌면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조금 유감이겠지만 말이지.


나는 느긋하게 소녀를 지켜본다.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고, 피바다 속에 누워 있는 (구)남친을 발견하는 모습을.


그리고...


“...”


비명을 지르거나, 다시 기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는 정신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현실감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쪽이건간에 다시 정신줄을 놓는 것 보다는 낫다.


내게 누군가를 조롱하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만큼 일단 용건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저 소녀에게 트라우마라는 것이 될지도 모르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굳이 그걸 신경쓰지는 않았다.


애초에 트라우마인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인지 내겐 그리 익숙한 개념도 아니었다.


그런게 있다는건 소영의 지식으로 알긴 아는데, 소영은 물론이고 초련으로 살아오면서도 그런걸 겪은 사람 자체를 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개념이 있다는 것 자체를 처음 알았다고 해야되나?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었으니까.’


생과 사를 잇는 무당의 존재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현대처럼 오락거리가 많지 않은 시대에는 싸움과 죽음도 오락거리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술, 여자, 싸움... 그런거 말고는 즐길 것도 없었으니까.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생겨난 새로운 질병을 내가 실감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리라.


“일단 일어났으면,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정확히 어디가 안전한 곳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서 기절한 채로 널부러져 있는 것만큼 위험한 곳도 드물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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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초련初戀 (6) 19.08.31 32 1 7쪽
» 초련初戀 (5) 19.08.30 5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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