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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네 님의 서재입니다.

달빛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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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네
작품등록일 :
2019.08.26 10:07
최근연재일 :
2019.10.10 06:30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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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134,297

작성
19.08.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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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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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피환생(환생 당하다)

DUMMY

0. 피환생



나는 눈을 떴다.


‘윽...’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머리가 어지럽다는 것, 그리고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것.


‘어째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죽어가는 중이라는 거.


백제에서는 본 적 없는 집 안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지만, 그 호기심도 일단 접어두었다.


방 안에서는 심한 죽음이 향기가 났다.


저승차사가 코앞까지 와 있음을 알게 해 주는 냄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심한 출혈이 있다거나, 목이 졸렸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기력이 완전히 쇠했을 뿐이었으니까.


다행인 것은 내게 이런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다는 점이었다.


“윽...”


[영력]을 [생명력]으로 바꾼다.


귀신과 소통하고 요괴를 부리는 [무당]으로서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하는 힘인 영력은 그 효율은 별로지만 온갖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범용성은 우월하다.


몸에 어느정도 활력이 돌아오며 성한데가 없을 정도로 상한 온 몸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차라리 기력없이 널부러져있고 싶을 정도의 고통에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나는 만족했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물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당장 119라도 부르지 않으면....


‘119?’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소한 단어에 잠깐 멈칫했다.


내가 알고 있을 리 없는 단어.


뒤늦게, 머릿속에 완전히 다른 기억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그래도 일단 구조요청을 해야 하긴 하니, 방 밖으로 기어가는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 * *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정체불명의 기억을 약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기억해 냈다.


계속해서 떠오른 기억이 쌓이고 또 쌓여갔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렇게 떠오른 기억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정말 전생의 기억인지, 아니면 망상인지 구별도 할 수 없는 천 수백년 전의 기억 따위에 신경쓰기에는 내 삶이 너무 팍팍했으니까.


...


......


나는, 그러니까 [임소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자애의 삶을 단 하나의 단어료 표현하자면 바로 박복함이었다.


일단 아버지라는 작자에 대해서는 애초에 아무것도 몰랐다.


어머니야 알고 있었겠지만 임신하기가 무섭게 버리고 떠난 자에 대해 기억이라도 떠올리고 싶었을 리가 없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와 살았지만 내게는 기억조차 남지 않은 어린시절에 홀로 도망가 버려 외할머니 손 아래 자랐다.


그러나 몸도 약하고 쌓아둔 재산도 없어 손녀를 양육하기는커녕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제 한몸 건사할 수 없는 처지의 할머니였다.


사랑스러운 손녀가 아니라, 홀몸으로 힘들게 키운 딸의 신세를 망쳐놓은 짐덩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나였고.


내가 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그런 외할머니조차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너무도 집안이 어려우니 놀러다닐 시간도 없고, 성격도 자연히 어두워진 나에게는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도 없었다.


성격도 별로, 적당히 생긴데다 공부도 잘 못하는 애를 잘 챙겨주고 친하게 지내는 학급이라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그저 왕따였다.


각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애들조차 서로 모이는 그룹이 있었으나 나는 그런 곳에조차 제대로 끼지 못하는, 왕따들의 왕따였다.


따돌림.


집단 괴롭힘.


진심으로 학생들의 어려움을 살펴주는, 은사라 부를 선생님 같은 것도 창작물 속에나 있는 건지 운이 없어 만나지 못한건지 주위에는 없었다.


아니,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도망가버렸다는 것조차 알고 있는 선생님이 있었던가?


이 세상에 오로지 홀로 남겨진 그 막막함, 고독함...


지금 당장 우울함을...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체불명의 기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평범했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자살’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뭔가를 떠올릴 여분의 공간이 하나도 없는 덜떨어진 머리였다.


자살을 할 정도의 용기라면 살아가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단언컨대, 자기 일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온기나, 온정같은 단어를 실감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인생.


나무조각 하나 붙잡고 홀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듯한 그 막막함을 직접 느껴본 일 없는 이들에게 삶은 항상 죽음보다 쉬운 것이리라.


다시 찾아올 내일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면, 죽음에서 오히려 평안을 찾을 수 있을 테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죽어가는 순간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라곤 대부분이 정말 전생의 기억인지 현실이 괴로워서 떠올린 망상일 뿐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억들이라는 거.


주마등조차 내 것이 아닌 기억들 뿐이라면, 나는 대체 무얼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일까?


그런 의문을 떠올리며 가쁘게 숨이 멎었고.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반지하의 방 안, 반쪽 틈새의 창문을 통해 반쪽달의 창백한 빛만이 흘러들어오는 방 안에서.


다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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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초련初戀 (13) 19.09.12 2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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