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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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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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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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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5,429

작성
19.06.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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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부 3화: 퇴마 이 가문 (3)

DUMMY

삐-.


아무도 없는 주방. 다른 소리는 일절 없이 전자레인지의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어서 담았던 음식을 꺼내라고 전자레인지가 소리를 치는데도 앞에 서 있던 소녀는 소리를 음미하기라도 하듯 가만히 있었다.


혹시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는 사람이 잠깐 잊었을까 싶어 넣어 놓은 몇 번 더 울리는 알람기능도 끝나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하얀머리의 소녀는 말없이 전자레인지에 손을 뻗어 덜컹 열었다.


안에서 나온것은 냉동식품. 최근엔 대부분 인스턴트로 때우던 소녀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음식을 꺼냈다.



"앗, 뜨..."



너무 오래 데운 것일까.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소녀는, 에메라는 음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대체 뭘 생각하는 건지 떨어진 냉동식품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아."


한숨을 쉰 에메라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숨이라니."



누구나 하는 한숨을 한 것이 자못 놀라운 듯이 멍하던 그녀는 천천히 쭈그려 앉았다.



"왜...이렇게 됐지."



풀죽은 목소리가 새어나온 그 순간.


파앗!!


"......!!"


그녀의 머릿속을 꿰뚫고 지나가는 영상들. 그것이 하나의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이가온이 위험에 처했다고.

아니...정확히는 가온보다는.


"...내가?"








"퇴마 이 가문!! 새로운 소식 들었냐?"



퇴마 이씨 가문이 유명하긴 했다. 시내에 나온 것뿐인데 그 이름을 듣게 되다니.

미헤유와의 약속은 내일이었고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잡다한 것을 사러 시내에 나온 가온은 여기저기서 퇴마 이 가문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공적을 자랑할 생각은 없지만 고생한 건 가온인데 덕은 퇴마 이씨 가문이 보고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뭐가 챙기는 격이다.



모자를 한층 더 깊게 눌러쓴 가온은 두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로 검은 차량이 있는 곳까지 빠르게 걸었다.



"용무는 마치셨습니까."

"네."



운전기사의 말에 짧게 대답한 가온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솔직히 10년이 넘게 소시민의 삶을 살았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극진하게 모시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어딜 가더라도 운전기사가 따라붙는다. 배려가 아니라 감시라고 가온은 느꼈다.

그나마 처음엔 전속 시녀도 붙이려다가 가온이 극구 만류해서 운전기사로 그친 것이었다.



"좋으시겠습니다."

"뭐가요?"

"퇴마 이가문이요."

"...? 아 네 뭐 그렇죠."



보통 퇴마 이씨 가문이라 부르는데 왜 자꾸 씨를 빼먹는 거지? 조그만 의문이 떠올랐으나 굳이 물어볼 필요성도, 기사의 착각을 바로잡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시후 차량이 부드럽게 출발하고 풍경이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도련님."


평소 말이 없는 운전기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3녀 아가씨께서 오후에 뵙자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졸리다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3녀.


퇴마 이씨가문의 직계중 하나. 그 여자도 만나면 골치가 딱딱 아프긴 마찬가지였던 터라 가온은 짜증이 났다.


만나지 않으려고 피해도 저가 알아서 찾아오니 귀찮기 짝이 없었다.



'어째 직계중에 제대로 된 녀석이 없냐.'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맏형을 제외하면 전부 성격 파탄자라고 가온은 생각했다.

그는 기분전환을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딱히 게임도 즐겨찾는 사이트도 없는 그가 선택한 것은 문자였다.

원래는 기현밖에 연락할 사람이 없는 그였으나 최근에는 연락할 사람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지현이 누나도 한 번 찾아가야 하는데...정민씨도.'



죽은 친구와 군인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가온의 활약에 고무되었는지 그를 용서하겠다고 말했었다. 가온으로써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하겠다.



'나중에 찾아뵙도록 하고. 일단은...'


가온이 손가락을 놀려 문자를 보냈다



-야. 뭐하냐?


위잉.



"깜짝아."


거짓말 안하고 보낸지 거의 3초만에 답장이 왔다. 내용은...


-바쁘다.



바쁘다는 것 치고는 답장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나 싶었지만, 우연히 핸드폰으로 업무라도 봤던 거겠지 생각하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전에 말했던 유적지.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좀 있다가 연락할게.



차갑다.

시간이라도 떄우려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문자 상대는 얼마 전에 열렸던 세계 대회에서 알게 된 엘미리오였다.

그녀와는 십이 지신이란 심상치 않은 것과 연관된 유적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약조를 받았으므로 그걸 확인할 겸 연락한 거지만...


띠링.


"음?"


-지금 말해줄 건, 일주일 안에 갈 수 있다는 거야. 준비해 둬.



"일주일?"


이건 또 빠르다고 가온은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속한 클랜에 들어간다는 조건이었는데 가온은 아직 이렇다 할 가입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건 괜찮은 걸까?


그래도 엘미리오는 똑부러지는 성격이니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은 가온은 휴대폰을 조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친구목록에 친구가 된 소녀와 엘미리오와 마찬가지로 세계 대회때 알게 된 알래인의 이름이 있었으나 세계대회 이후로 연락한 적이 없어서 먼저 연락하기가 조금 꺼려졌다.



'귀찮게 여길지도 모르고...'


엘미리오는 비즈니스 감각으로 먼저 연락해와서 그런 게 없었지만 이 둘은 달랐다.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차량이 천천히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빠르네요."


잠깐 생각에 젖어있는 사이 벌써 본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가온은 대문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대문 앞에는 가온의 수발을 드는 시녀를 무시하고 그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촌형과 아까 운전기사가 말했던 여자가 서 있었다.


이이격과 이리라. 직계들은 전부 짜증났지만 저 녀석들은 그 중에서도 심했다. 다른 직계들은 귀찮게 굴지라도 않는데 저것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으니까.

그들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직계들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집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아랫사람을 시켜서 대접하면 대접했지 자기들이 직접 나오는 일은 적다.


직접 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손님이라면 진작 안으로 모셨을 테니 직계 두 명이 굳이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상대하는 일은 희귀했다.


뚱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던 이리라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얼굴은 곧 좋은 장난감을 찾았다는 듯한 얼굴로 바뀌었다.



'죽을라고.'


속으로 콧방귀를 뀐 가온은 당당하게 대문쪽으로 걸었다.

그제서야 이이격이 가온을 발견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야. 너 왜 지금..."

"퇴마 이 가문 되십니까?"


이이격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 놀라운 건 저 개차반이 그런 행동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얼굴만 찡그렸다는 것이다. 대체 누구일까?


체격과 외모 모두 평범했지만 풍기는 기도가 범상치 않는 남자였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은...



"...퇴마 김씨?"

"그렇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만 퇴마 이 가문 되십니까?"

"......? 일단은요."



당신 눈앞에도 두 명 있는데요. 그런 의미를 담아 이이격과 이리라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가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 퇴마 김씨 가문의 직계이자 부당주는 김주철이라 합니다."


부당주.

하긴 그쯤은 되어야 저 망나니 이이격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함부로 대할수도 없지만 안으로 들일수도 없다. 라이벌 가문의 부당주라니.


"그런 귀하신 분이 저에겐 무슨 볼일로..."

"...현미 아가씨에 대한 일 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반 친구에 관한 일이니 어울리도록 하죠. 지금 당장 가면 되나요?"


잠깐 벙쪘던 김주철이 감격한 듯 고개를 숙였다. 나이 먹은 사람이 저러니 오히려 가온쪽이 황송해졌다.



"넓은 마음에 감사합니다."

"야. 너..."

"가만 있어봐 오빠."


발작하려는 이이격을 이리라가 자못 재밌다는 듯 가로막았다.



"다만 오늘 당장은 아니고 다음주 중에 초대를 하려 합니다만...시간이 괜찮으실지?"

"음...일주일 후에 외국으로 갈지도 몰라서 확답을 드리기 그렇군요. 시간 조정을 위해 연락처라도 교환할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시라도 빨리 일을 진행하고 싶지만 영웅의 스케줄을 방해할 순 없지요. 부담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뇨. 영웅은요..."


멋쩍은 목소리로 연락처를 교환.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철주에게 마주 허리를 숙이고 이이격과 이리라가 말을 걸기 전에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갔다.


이이격이 또 시비를 건다면 패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리라는, 그냥 대화하는 것만으로 짜증나니 피하고보자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두 명은 라이벌 가문의 부당주 앞에서 추태를 보일수 없다고 생각헀는지 가온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시녀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가온의 외출준비를 도왔다.



"그 미헤유 씨가 가온님의 친구분이라니!!"



여자에게도 인기가 있는 미헤유. 퇴마 이씨 가문이라도 직계나 높은 직위가 아닌 이상 정부공인 순위권자를 동경하는 건 같았다.


"같이 갈래?"

"아, 아니요! 제가 어찌 언감생심!"



어제도 말해봤지만 그건 너무 황송하다며 거절했다. 그녀를 보다보면 예전의 친구가 된 소녀가 떠오른 가온은 쓰게 웃었다.


언젠가 이 조심스러워 하는 성격을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온은 약속장소로 향했다. 이번에 만나는 곳은 커튼 사냥꾼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장소이니 굳이 변장할 필요는 없으리라.


차에 몸을 맡기고 몇십 분후. 고급스러운 건물앞에 내린 가온은 기척을 느끼고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이 기척은, 미헤유의 기척이다.

과연 건물 안에서 미헤유가 헐레벌떡 뛰어 나오더니 가온을 보고 활짝 웃었다.

큼큼 헛기침을 하고 머리를 정돈한 미헤유가 요조숙녀처럼 천천히 가온에게 걸어왔다.


여전히 거대한 가슴에 억지로 눈을 떼면서 가온도 그녀에게 마주 다가갔다.



"...한 달 만인가요."

"그런 거예요."


어색함과 쑥쓰러움. 하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한때는 사이가 틀어질 뻔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일은 없으리라.

미헤유는 자신을 구해준 가온에게 감사를 느끼고 있었고 가온또한 착한 미헤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후후. 퇴마 이가문을 눈앞에서 보다니. 자랑스러운 거예요!"

"음...저희 가문이 대단하긴 하죠."



미헤유까지 가문 언급을 하자 가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요새 가문의 위상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생각하면서. 하지만 미헤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가문이라니...왜 자기를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네?"



이게 무슨 소리지?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미헤유가 아~손뼉을 치더니 이내 깔깔 웃었다.


"발음이 비슷한 거예요!"

"발음? 아...그럼 뭐라고 하신 건데요?"


퇴마 이 가문이라고 한 게 아니라면, 뭐라고 한 걸까? 답은 간단했다.


"퇴마 이가온. 가온씨의 별명인 거예요."



커튼 사냥꾼들이 그렇게 불러서 최근에 퍼졌지만요. 몰랐던 거냐며 다시 깔깔 웃는 가온은 아연실색했다.


영웅도 모자라서 언제 그런 별명이 붙은걸까.


정부공인 순위권자급의 유명한 커튼사냥꾼에게는 별명이 있다. 예로 결계사라던가. 폭탄마라던가...그런 별명이 자신에게 붙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음...부끄럽네요."

"헤헤. 어울리는 거예요. 가온씨만큼 멋진 별명인..."



미헤유가 말하다 말고 얼굴을 붉혔다. 멋지다니. 가온의 얼굴도 자연스레 화끈해졌는데그녀가 말꼬리를 돌렸다.



"오, 오늘 가온씨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던 거예요. 그 사람을 만나고 저랑 업무를 보는 거예요."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요?"


그 떄.


고오오.



불길한 기운이 가온을 휘감았다.

마치 진흙에 휘감기는 듯한 불쾌한 감각에 뒤를 돌아보자, 언제고 봤던 남자가 서 있었다.



"당신은...김남일?"

"안녕하십니까."


정부의 개라고 불리는 까만색의 불길한 남자.

그가 가온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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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파멸? (8) 20.08.16 157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69 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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