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64,472
추천수 :
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20.08.17 20:00
조회
159
추천
3
글자
20쪽

파멸? (9)

DUMMY

"후우...후우..."

"......"


여전히 미동도 없는 이이협. 가온의 칼날에 묻은 피.

이이협의 팔뚝에선 베인 옷 사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목을 노리지 않느냐."

"......"


검을 집어넣는 가온. 그리고 표독스럽게 이이협을, 아버지를 노려본다.


"뭐 하는 겁니까."

"......"

"절 막지 않으면 당신이 지키려는 것들이 죽는다구요?"

"그럴테지."


으득.


태도를 종잡을 수가 없다. 정말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자신을 막으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닌가?


"김일 씨는 어디 갔습니까?"

"본가에 갔다."

"둘이 동시에 덤벼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 당신보다 강하다고요?"

"붉은 커튼이라면 그렇지."


자존심을 자극해도 반응이 없다. 점점 기분이 나빠진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지조차 자각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입니까? 절 막을것도 아니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 어정쩡하게 여기서 뭐 하자는 겁니까?"

"어정쩡하다라..."


이이협이 탄식하듯 한숨을 내쉰다.


"그래. 그게 내 본질이지."

"뭐라고요?"

"뭘 하려고 이러는 거냐고?"


이이협이 가온의 눈을 응시했다.


"책임을 지려고 한다."

"책임?"

"넌 내 자식이니, 그 책임은 응당 부모가 져야겠지."

"하."


실소가 나온다.


"쫒아내고, 방치한지 오래면서 너무 뻔뻔한 발언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 뻔뻔하지. 난 널 책임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책임을 지려고 한다."

"책임을 진다는 게 뭔데요? 부모로서 자식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고 절 때려잡겠다는 겁니까? 아니면 자식의 걱정을 해결해 주겠다는 겁니까? 지금 태도로 봐서는 둘 다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이협은 말없이 다시 가온을 응시한다.

한참이나 가온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이협. 가온은 그 순간에도 감정이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노. 그래. 이건 분노다.

하지만 살심은 들지 않았다. 평소의 분노와는 다른, 기이한 분노.


이윽고 이이협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번도 네 투정을 들어준 적이 없었지..."

"......"

"그러니, 네가 지금껏 쌓아왔던 것을 듣고자 한다..."


마지막 말엔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알았던 이이협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가온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애써 꾹꾹 눌러참는 가온은 겨우 말했다.


"절 막겠다면서요? 호언장담했으면서 이러셔도 됩니까?"

"힘에서 지는 건 어쩔 수 없지."

"......"


짜증난다.

마치 어린애를 구슬리는 듯한 태도가, 그가 옳다는 듯한 이 분위기가 참을 수 없이 짜증났다.

결국 가온은 언성을 높였다.


"그럼 비키세요. 제가 원수를 죽이는 것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뭘 하든, 네 자유다."

"애매한 소리 그만하고!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비키라고요!"

"베거나 밀치고 가거라. 그거면 된다."

"아아 씨이발 진짜!"



결국 욕지거리에 입에서 튀어나온다.

참을 수 없는 울분이 분출된다.


"십 년간 방치했으면서 이제 와서 부모 행세입니까?! 뻔뻔하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생각한다. 그러니...네 결정에 맡기고자 한다. 나를 죽이든, 살리든 말이다."

"제 손에 죽고 싶은 겁니까?"

"...사실 누구라도 좋다."


이이협이 그렇게 말하자 참을 수 없어진 가온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럼 이참에 묻죠! 왜 삼촌이 죽었는데, 이상한 점이 명백했는데 당신은 가만히 있었던 거죠?!"

"현수가 퇴마 이씨 가문의 어두운 부분을 쫒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걱정도 했다. 말려보기도 했지...하지만 실제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현수가 실제로 사라지고 나니...처음엔 아무 생각도 안 들더군."

"......"

"그 다음엔 분노였다. 현수는 내 하나뿐인 피붙이였지...재능도 있었고, 언젠가 나를 뛰어넘어 세계에 힘을 떨칠 우수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꽂도 채 피워보지 못하고 져 버렸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왜 가만히 있었던 겁니까? 저 아래에서 누나에게 쏘아붙였죠. 저나 가은이는 아기라서 그렇다 쳐도 누나는 왜 가만히 있었냐고. 네. 개소리죠. 어린애가, 어른에게 한창 칭찬받고 싶었을 어린애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걸 알면서 쏘아붙인 전 쓰레기죠. 하지만 당신은...당신은 정말 달랐어요. 뭐든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당주이자. 한국 최강의 커튼 사냥꾼.

정말 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못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원수 중에서도 재무진 정도를 제외한다면 다 복수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재무진조차 이이협을 두려워하고 시기했다.

하지만 이이협은 침묵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에 절망한 가온은 고독의 복수를 결의했다.


대체 왜?


의문을 담아 바라보자 이이협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노 다음에 든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 당신이 다음 차례일 거라는 두려움이요?"

"...널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가온이 입을 벌리고 멍해졌다.


"너나, 가영이, 가은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휘감았다."

"...개소리! 당신이라면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어린애들 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이 말이나..."

"그래. 나라면 뭐든 할 수 있었겠지. 나 자신만이라면 어떻게든 지켰겠지만...내가 복수를 하러 간 길에, 너희가 납치라도 당한다면? 너희들로 협박한다면 난 반항도 못하고 죽겠지...그래. 지금 생각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군."


탄식하듯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이협.


"그래...두려움과 복수심.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 우유부단이 지난 십 년이다. 나는 두려웠다. 또 다시 내 피붙이를 잃는것이 너무 두려웠다. 널 가문에서 쫒아내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널 지키고 싶었다..."

"...개소리! 다 개소리야!"


가온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당신이! 아버지가...아빠가 그랬다고요?!"


무심코 예전에 불렀던 호칭으로 부른 가온이지만 자각하지 못했다.

말투도 존대에서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웃기지 말아요! 날 정말 아꼈다면 그딴 눈빛을 할 리가 없어! 항상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봐 놓고서는!"

"그래. 짜증났다."

"......!"

"널 아꼈지만, 한편으로는 너 때문에 현수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못났지. 못났고 말고. 난 너를 원망함으로서 내 마음을 지켰다. 한창 가르쳐야 할 너를 방치했다."

"그래도, 그래도 복수는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삼촌 떄문에 날 미워했다면, 그 삼촌을 직접 죽인 놈들에게 어떻게든...!"

"그래야 했지...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하지만 내 본질은 우유부단하며 어정쩡하다...네 말이 맞다. 가온아."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가온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 이이협. 이런 순간에 이 짓거리를 하는 아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기쁨을 느끼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가온을 오리처럼 꽥꽥 소리를 지른다.


"맞긴 뭘 맞아! 그딴...그딴 변명이나...!"

"그래. 변명이지. 그 사람을 잃고 난 후로 난 항상 어정쩡하며 변명만 하는 한심한 놈이였다."

"...엄마요?"

"그래. 네 엄마. 착하고...아름답고...피붙이처럼,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정말 한심한 이야기지만 현수가 죽고난 뒤 그 사람이 죽은것도 너 때문처럼 느껴지더구나."

"......"

"그래...그래도 복수심은 잊지 않았었지..."


하지만 세월은 모든 걸 무디게 만든다.

지켜야 할 것을 위해 복수해야 할 원수들에게 잘 보이고. 고통을 잊기위해 격무에 매진하고...


"그러는 사이 소중한 게 많이 생겨버렸다. 더더욱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넌 다르구나..."


홀로 서서 이만큼 성장하고, 자신이 못했던 일을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내려고 한다.


"이나에게 애걸하다시피 해서 너희를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와서 그딴 소리를 해봤자 어쩌라는 거예요...? 내가...내가 십 년동안 얼마나 외롭게...얼마나 괴롭게...아빠가 알기나 해요?!"

"모른다...널 방치한 내가 알 리가 없지."

"......!"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분한 가온은 뭐라고 이이협에게 쏟아부었다.

아빠는 쓰레기다. 아빠는 바보다. 아빠는 겁쟁이다.

논리도 없는 애 같은 말이 속사포로 쏟아지고 이이협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계속 쏟아내던 가온은 깨달았다.

이건 투정이구나. 하고.


"......"


침묵하는 가온을 보며 이이협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이젠, 지쳤다."

"......"

"날 끝내려면...그것도 좋다. 네 손이라면야..."


가온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걸음을 옮겨 이이협을 지나쳤다.

이이협은 막지 않는다.


"안 막을 거예요?"

"......가거라. 가서, 네 원껏 하거라. 돕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마."


막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이이협. 그는 처음부터 그저 가온과 진솔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잠깐 멈춰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가온.


"전 아빠가 못한 일을 할 거예요. 도움은 필요 없어요."

"......"

"그걸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어요. 그렇지만..막지 않아서. 고마워요. 아빠."


가온은 출입구로 들어가버렸다.

이이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의 눈에는 물방울이 맺혔고, 이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후우...후우..."


가온의 눈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이제와선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 가온은 복수를 할 것이다. 그에겐 그의 전부다.

이제 와서 이이협이 도와준다고 말해도 곤란하다.


'이 복수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니까.'



이것만을 위해서 살아왔으니까.









"으아 씨발. 어째야 하나 이거."


격전을 펼치는 류열과 익환.

그들을 둘러싼 커튼 사냥꾼들은 확연히 강력했다.

폴이란 남자는 확실히 강대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급이고 그 휘하도 약소국이라면 그 자리에 앉을만한 자들이었다.


더군다나 저주술사가 저주까지 퍼부어대니 뛰어난 둘이라도 점점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끼어든다?


'안 돼지 안 돼. 내가 먹여살리는 입이 몇인데...함부로 행동하지 말자.'


그렇게 납득하고 결론을 내린 호운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류열에게 결정적 빈틈이 생겼다.


"끝이다!"


폴이 크게 웃으며 주먹을 휘두른다. 그의 빗자루 머리가 반짝반짝 빛난다.


"아! 진지한 장면인데 개 거슬리네 거!"


호운의 도끼가 폴을 날려버린다.


"크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폴.

그는 사납게 호운을 노려보았다.


"방관하는 줄 알았더니...무슨 짓이지? 호운?"

"아아니! 그 머리는 아니잖아! 그딴 머리면 화나서 끼어드는 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호운."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류열을 보지도 않고 호운은 쯧 혀를찼다.


"이걸로 나도 범죄잔가...뭐 됐어. 어차피 반 범죄자였어."

"...후우."


짜증의 한숨을 휜 레임이 손짓했고 옆의 인형을 안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운에게도 저주의 힘이-


쩌적.


"읏...!"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익환 류열을 누르던 힘마저 사라져버렸다.

인형을 안은 여자가 경악하는 가운데 홀에 느긋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다시 봤어어~호우운~"

"...어디있다가 나오슈?"

"에헤헤~"


아연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들어와 당당하게 선다.



"아연. 무슨 짓이지?"

"무슨 짓이기인~동료 지키기이~?"


레임의 말에 천역덕스럽게 대꾸한다. 레임은 이제 안면에 혈관이 가득 돋아 있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죽고 싶은 거냐!"

"맞아 그런저엄~다 자기 마음대로 되야 한다는 거어...진짜 마음에 안 들거드은~?"


레임을 비웃으며 아연은 전투의지를 표명했다.


"우린 네 부하가 아니야아~"


그 말에 지금껏 망설이고 방관하던 커튼 사냥꾼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뽑았다.

뒤에 있던 고위직들이 히익 겁먹은 목소리를 낸다.


"너희들은 또 뭐냐."


레임의 말에 저마다 이죽거리는 커튼 사냥꾼들.


"뭐긴 뭐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거지"

"아니 제대로 된 조사하고 까던가? 엉?"

"첨부터 맘에 안 들었는데. 아주 조져버린다?"


으드득. 이를 가는 레임. 폴은 호탕하게 웃는다.


"괜찮아 레임! 이 쓰레기들 다 죽여버리고 처넣으면 그만이니...까?"


폴이 문득 출입문 쪽을 바라본다. 그의 예민한 청각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기 떄문이었다.


'주술에 걸리지 않았는데...대체 누가...?'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피투성이의 소년.


"어라...잘못 왔나?"


이가온이 히죽 웃었다.


"으아! 으아아아!"

"이가오온!"


고위직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진다.

그런 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히죽 웃어보이는 가온.


'뭐야! 이이협과 전투를 치르고 온 거야?!'


폴이 당황한다. 그러나 절대강자 둘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이협! 결국...!'


레임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결국 혈연의 정은 어쩔 수 없다는 거다.

가온이, 그가 걸음을 옮기려고 한 순간 레임이 외쳤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이가온? 지금 하얀 머리의 소녀는 실컷 취조를 받는 중인데 말이야!"

"......"

"좀 아플지도 모르는 취조 말이지..."


히죽 웃는 레임을 힐끗 바라본 가온이 하 실소를 내뱉었다.


"아 그러셔."

"......"

"말했지 레임? 넌 마지막이야."


그녀를 무시하고 고위직들에게 걸어가려는 순간 위에서 누군가가 펄쩍 뛰어내려 가온에게 달려든다.

무심코 베어넘기려 했던 가온은 우뚝 멈춰서 그 사람을 받아낸다.

그 사람은...바로 친구가 된 소녀.


"......"

"가온 씨...너무 보고 싶었어요..."


가온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가 위를 보았다. 이이나랑 이름 모를 몇도 함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이천과 이현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 외에 다른 은신장소가 있다는 건가?

생각이 끝나기도 전 고위직들이 하나 둘씩 사라진다. 아니, 정확히는 위를 향해 두둥실 떠오른다.


"우, 우와앗?!"

"뭐야!"


천장이 훅 사라지더니 광활한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투명하고 거대한 무언가도.


"...뭐야. 우주선이야?"


가온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커튼 본부보다도 거대한 투명한 비행물체가 상공이 떠 있었던 것이다!


"크흐흐흐...그래. 우리 위대한 미국의 과학과 주술이 혼합된...기적의 결과물이지.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 아나?"

"알 바냐."


콧방귀를 뀌며 고위직들을 쫒아 위로 향하려는 가온. 그런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친구가 된 소녀가 더욱 꽉 껴안았다.


"좀 놔줄래? 일단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얘기하자."

"힘들죠?"

"...힘들지."

"네. 힘들 거에요.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었으니까...친구도. 가족도. 부도. 명예도. 연인도..."

"......"

"하지만 괜찮아요 가온씨!"


친구가 된 소녀가 활짝 웃었다. 에메라에 버금가게 아름다워진 얼굴은 그것만으로도 환상적이었다.


"저만은 당신 편이에요!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의 적이라도 저만은 당신의 편!"


가온에게서 떨어진 친구가 된 소녀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제 목숨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저랑 함께해요 가온씨! 그럼...모두 잘 풀릴 거예요!"

"......"


가온이 웃는다.


"우리 커튼 본부에서 만난 적 있었지?"

"네? 무슨 말씀이세요?

"만난 적 있었지?"

"...네."


가온의 단호한 말에 수긍하는 친구가 된 소녀.


"내가 그때...은신을 좀 하고 있었거든."

"은신이요..."

"근데 그 은신이란 게 좀 특별해서, 어떤 대상에게만 보이게 하거나 할 수 있거든."

"호오 호오."

"난 그때, 마녀에게만 보이게 설절해 놓고 있었어."

"......"

"친구."


가온이 웃는다.


"네 마녀로서의 능력은. 조작이야?"

"흐으음~"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지고 활짝 웃은 친구가 된 소녀 신우가 고한다.


"그렇게 나오면 저 재미없는데에~"



쿠웅.


"...?!"


가온도 움직이기 힘든 압박감이 주위를 지배한다.

이 압박감은, 저 비행물체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떠냐!? 이가온! 우리 미국의 과학의 결정체의 위력이!"


레임이 신나서 소리를 지른다.


"이 일대를 전부 날릴만한 위력이다! 소중한 걸 지키고 싶다면, 당장 항복해라!"


가온이 정말이냐는 듯 친구가 된 소녀를 바라본다.

커튼 본부 자체에 함정을 파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 안에 있는 이들이, 인질.


"다 진짜는 아니에요. 정확히는...저 우주선도 포함?"


찡긋 귀엽게 웃는 그녀에게 마주 웃어주는 가온.


"저랑 소년이 만든 합작이에요~이 일대는 물론 가온씨가 원하는 원수들도 전부 순간 태워버릴 수 있고...다른 기능도 많답니다?"


그러니까 가온씨.


친구가 된 소녀가. 신우가 미소를 짓는다.

그건 사람의 미소라기보단 미지의 뭔가의 미소 같았다.


"제 말을 따르고, 저만 바라보세요."

"......"

"봐요. 당신의 동료였던 익환 말고 당신을 따르는 이가 있나요?"


가온이 주위를 둘러본다.

겁을 먹은 표정. 적의 어린 표정.

어느것이든 부정적인 것 뿐.


"친구도. 가족도. 부도. 명예도...전부 돌려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절 선택하지 않는다면요.


"이대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파멸할 거라구요?"

"...파멸인가."

"네. 아. 지금도 파멸인가?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바라보지 않으니까...앗. 제가 있으니 파멸은 아니네요!"


아하하 웃는 신우를 보고 가온은 검을 늘어뜨린다.

레임이 포기라고 생각했는지 신나서 웃는다.

상관없다.

어차피 혼자다.

파멸이라고? 십년 전 그날부터 자신은 파멸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한 가온은 그저 웃었다.


"이가온! 지금 당장 무릎을 꿇어라! 원래부터 네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어! 그러니..."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의외의 목소리에 일제히 모두 그쪽을 바라보았다.

가온이 멍한 얼굴로. 멍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말했다.


"알래인...?"


대검을 든 알래인 드루드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가온은 세계의 영웅! 절대 범죄자 따위가 아니고! 잘못되지도 않았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등장해서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가 왜 가온을 감싸는가?


"......"


가온이 침묵했다. 분명 뜬금없고 어이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기쁘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맞는 말인 거에요! 가온씨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에요!"


분명 쓰러졌을 미헤유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입구에 서 있다.

루카스가 내가 미쳤지...라고 중얼거리며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무슨...그렇게 데여놓고 아직도 저 쓰레기의 편을 들 마음이 드나? 미헤유?!"

"레임..."


인형을 꼭 껴안은 여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쪽에서...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적의를 갖고있어."

"뭐? 무슨..."


레임이 인형의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이가온 원정대의 일원들?! 대체 무슨...!"


그들은 또 왜 왔단 말인가?

레임보다 의아해하는 가온을 두고 알래인이 대검을 들어 레임을 겨누었다.


"저희는, 저희가 본 것을 신뢰할 것입니다."

"이...네놈이 감히!"



이상한 기분이다.

그리고, 차가워졌던 무언가에 온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신우가 중얼거렸다.


"...아아 짜증나네 진짜아...이놈이고, 저놈이고..."


가온이 그녀를 바라본다.

머릿속에 에메라의 이야기가 소생한다.


[믿었던 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 거였나.'


너무 어이없는 예언이라 가온은 푸핫 뿜어버리고 말았다.


뭘까.

가온의 파멸인가? 아님 다른 무언가인가?

그 결과가 드디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부를 완결했네요. +3 19.05.15 300 0 -
공지 수정 시작했습니다... 18.08.08 341 0 -
공지 잠깐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것 같네요. +6 18.04.03 469 0 -
공지 주말은 올리지 않습니다... 17.10.28 870 0 -
379 새로운 시작. (完?) +3 20.09.01 212 4 27쪽
378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20.09.01 153 3 30쪽
377 소(牛) 토끼(兎) 양(羊) 닭(鷄) 뱀(蛇) 돼지(豚) 말(馬) 호랑이(虎狼) 용(龍) 고양이(猫) 20.08.31 157 3 26쪽
376 쥐(誓) 바람의 결말. 20.08.30 156 3 19쪽
375 세계와 내면의 진실 (2) 20.08.29 158 2 16쪽
374 세계와 내면의 진실 (1) 20.08.28 160 3 24쪽
373 절대적인 신(神) 20.08.26 154 3 15쪽
37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3) 20.08.25 173 3 13쪽
371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2) 20.08.24 164 3 14쪽
370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1) 20.08.23 161 3 15쪽
369 소원권 (2) 20.08.22 161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3 3 23쪽
367 동기부여 20.08.21 164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4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1 4 28쪽
» 파멸? (9) 20.08.17 160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7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69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6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7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5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4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7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69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2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