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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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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4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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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파멸? (5)

DUMMY

묵직하다.

가온의 감상은 그랬다.

너클을 꼈다지만 날카롭게 벼린 검에 주먹을 마주 날린 것만으로 그의 주술이 얼마나 단단하고, 그가 얼마나 그것에 자신감이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흐름을 이용해 공격을 흘리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열세에 몰렸으리라.


애초. 김류열은 접근전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상대인 것이다.

하지만 가온은 일부러 그의 접근을 허용한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손을 뻗으며 폭발의 타이밍을 노리는 호운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아...어째야 해 이거.'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을 하는 것과 달리 호운은 갈등했다.

가온을 공격해야 하나? 제압해야 하나? 그러므로 얻는 이득은?


'이득은 쥐뿔. 지금 내 손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나도, 아니, 이가온 원정대에 있던 모두가 같이 엮여들지 몰라.'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것을 알면서도 살인쇼를 벌일 줄이야.

이건 어떻게 해도 커버가 안 된다. 적어도 호운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제길...아는데 대체 왜 망설이는 거지. 난.'


가온의 움직임이 현란하고 류열을 방패로 삼는듯한 위치에 있어 맞추기 힘들다는 것도 있지만 좌표 설정이 뛰어난 호운으로서는 어떻게든 공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호운은 그러지 않았다.

떠오르는 부하들의 얼굴. 그리고 가온과 했던 거래가 떠오르고, 원정에서 함깨했던 일도 떠오른다.


"아아! 씨바알! 대체 왜 이 지랄인데에!"


비명을 지르듯 소리친 호운의 손에서 주술이 격발.

순간이동급이나 다름없는 속도로 이동한 주술의 힘이 폭발을 일으킨다.

류열도 약간이나마 데미지를 입을 만한 위치였지만 저 단세포 무식남이라면 괜찮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공격!


하지만 가온은 폭발이 일어나기도 전에 펄쩍 뛰어 멀리로 피신했고 애꿎은 류열만 폭발에 휘말렸다.


"크윽!"

"무슨!"


두 사람이 당황하는 가운데 공중에 뜬 가온이 왼손엔 찬란한 빛을, 오른손엔 이글거리는 불꽃을 맺는다.


두 사람의 뇌리에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광경은 십이지신 술에게 쏟아부었던 말도 안 되는 화력.


그게 펼쳐진다면 제 아무리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막을 방법이 없으리라.

하지만 가온을 제지하기엔 너무나 먼 거리였다.

늦었다, 그렇게 여긴 순간.


쿠웅-.


무거운 주술이 가온을 짓누른다.

눈만 돌려 쳐다보자 아연이 손을 뻗었고 검은 원령같은 것이 가온을 감싸고 있었다.


"정신차려 둘. 이리저리 휘둘리면 어떻게 해?"



아연의 말에 벙쪘던 두 남자는 정신을 다잡았는지 다시 자세를 잡는다.

공중에서 대지로 내려온 가온은 우드득 우드득 몸을 풀었다.


'성가신데.'


진심으로 성가셨다.

아연은 솔직히 반쯤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주술에 이토록 강대한 힘이 담겨있을 줄이야.

그녀의 주술에 닿은 순간 가온의 주술은 급격하기 힘을 잃더니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화염구나 섬광같은 기술은 쓸 수가 없었다.


"아, 에임. 음. 라. 가."


아연이 눈을 감고 주술을 외운다. 그녀부터 배제해야겠다고 느낀 가온이 내달리려는 하자 류열이 바로 달라붙는다.


콰앙!!


차라리 포탄에 맞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의 묵직함.

검으로 간신히 막아낸 가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류열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 아연이 준비하던 저주도 완성되었다.


쿠오오.


"큭."


이번엔 신체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온의 힘이 힘인지라 조금의 영향밖에 주지 못하지만, 이만한 상대들이라면 그 조금도 목숨이 위험해진다.


"가온아, 왜, 왜 그랬어 임마! 엉?! 왜 그랬어어!!"


주먹을 날리면서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지 거의 처절한 절규가 되어가는 류열.

그런 류열을 도와 호운이 합세해 맞으면 폭발하는 위협적인 도끼를 훙훙 휘두른다.

그걸 한끗 차로 피하는 가온을 보고 류열은 더 분통이 터질 뿐이다.


'이런 애가. 이렇게 재능 넘치는 애가, 왜 그 불쌍한 애를 죽인 거냐고?!'


정부공인 순위권자 둘을 상대로도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런 애가. 그 착했던 가온이 대체 왜? 류열의 험악한 얼굴을 본 가온이 희미하게 웃었다.


"왜냐고요?"

"!"

"정말,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거든요"

"...그게! 대답이 될 거라고 생각하냐아아아!!"

"류열 형씨! 흥분하지 마!"


하지만 늦었다. 흥분한 류열의 주먹을 피해내고 등을 붙잡아 휙휙 휘두르더니 호운에게 밀쳐버리는 가온. 호운은 망설이더니 옆으로 비껴났고 이번엔 가온이 그 탄성을 이용해 그를 빙빙 돌리더니 어느새 도끼를 손에서 빼앗았다.


"엇!"


눈 시퍼렇게 뜨고 도끼를 빼앗기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호운.

가온의 근접 전투 실력이 신기에 가깝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흐름!

마우스의 흐름은 전투에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제 도끼로 뭘 할까? 긴장하며 대기하는 두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가온은 도끼를 던졌다.


아연에게.


떵-!


"큭...악."


복부에 도끼를 엊어맞고 데구르르 구르는 아연.

동시에 가온을 괴롭혔던 저주들도 훅 사라졌다.


"큭. 너!"

"잠깐만!"


달려드려는 류열의 목을 휘감는 호운.


"놔! 저 자식한테 한 방이라도 먹여줘야...!"

"사생결단 내러 온 거야?! 설득하려고 온 거잖아!"


호운이 고막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조금이나마 씩씩거림이 줄어든 류열.

그틈에 호운이 얼른 말했다.


"대장...아니, 이젠 이렇게 부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

"뭐가 말이죠?"

"뭐긴! 댁의 동료들, 원정대는 어떻게 할 거야? 중심이자 모든 것이나 다름 없는 대장이 이렇게 나오면 원정에 참가했던 모두 얼마나 피해를 볼지 잘 알잖아?"


특히 가온만 보고 기관을 빠져나온 황석필같은 퇴마사들은 어떻게 될까?

하지만 가온은 웃었다.


"모르셨습니까?"

"뭐?"

"전, 동료같은 거 안 키워요."


나 하나가 전부라며 가온은 검을 들어올린다. 호운은 벙쪘다가 이내 빡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히 당해 주지는 않..."



쿠쿠쿠쿠쿠쿵!


호운과 가온의 실랑이는 둔탁한 소리들로 인해 중단되었다.

힐끔 바라보니 다섯 개의 인영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대검을 들고 있어 두 사람 분의 소리를 냈던 가냘픈 여자가 자신의 몸보다더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온다.


떠엉!


"크...윽...!"



쩌릿쩌릿.

손이 아파 눈을 커다랗게 뜨는 가온.

류열의 주먹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주르륵 밀려난 가온에게 쉴 틈을 주지 않겠다고 따라붙은 건 얼핏 보면 미식 축구 같은 복장을 한 덩치 큰 남자였다.


후웅-


'이건 숫제...대포로군!'


흐름을 응용하여 대부분 흘려냈음에도 총알같이 튕겨가는 가온. 그리고 그런 가온은 딱딱하지만 실체가 없는 뭔가에 막혀 멈추었다.

흘끗 보니 주술로 이루어진 벽이 가온을 둘러싼 후였다.


'결계.'


상주 이후로 처음 보는 결계 전문가! 저 남은 셋중 대체 누가?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각자 하얀 옷과 검은 옷으로 대비를 준 두 남녀가 손을 들고 자신들의 주술을 발했기 때문이다.


쿠오오오!


"아 또 그러네."


짜증난다는 듯 중얼거리는 가온. 아까처럼 주술이 흐트러지고 있었고 반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저들은 기세가 한껏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검은옷은 저주술사. 하얀옷은 주술을 증폭시키는 힘을 가진 것 같았다. 그것도 가온이 느끼기에도 상당한 폭으로!


'거기다가 저 하얀옷. 겉보기와 달리 꽤 세잖아?'


대검을 든 여성처럼 가녀린 모습이지만 저 안에 압축된 근육이 느껴진다.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리리라.


'하지만, 저주술사는 아연 씨보다는 못한데...이거라면...'

"아. 무시하냐."


검은 옷이 투덜거렸고 가온은 움찔했다.

설마, 지금 마음을 읽은건가?


"다는 못 읽어. 그런데 난 무시하고 얘는 고평가...열 받네. 나는 분명 한국의 아연보다 전통적인 주술은 못하지만 다른 쪽으로 특화되어 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짜증나는 거! 검은 옷 하얀 옷이 뭐냐? 야. 이렇게 세련된 고딕 패션 봤어? 엉?! 대충 수녀옷 차려입은 쟤보단 내가 훨씬 낫다고!"

"말 엄청 많네 거. 그보다 헷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티 안 냈더니 둘 다 뭐하는 짓입니까?


무지개색 머리에 펑키한 복장의 남자가 투덜거렸다.

복장과는 달리 제법 진지한 성격인 것 같았다.


"소용없어. 저 녀석, 금방 알아챘을 거야."


하얀 옷의 여자. 지금보니 에메라처럼 은발에 가까워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가온은 갑자기 목을 휙 뒤틀었다.

방금 전까지 가온의 육체가 있던 자리에 뭔가가 슉 하고 지나가더니 땅에 콱 박혔다.


"봐봐. 기습도 알아채잖아."

"와 저거저거 매너없게 또 방심하는 틈에...근데 그걸 피하네?"


혀를 내두르는 검은 옷.

저격이다.

어디선가 가온을 노리고 저격하고 있다. 상당히 강력한 위력이며 정확하다.

마치 프랑스의 루이스를 연상시킨다.


가온은 이들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정부공인 순위권자인가?"

"그 말대로!"


검은 옷의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퉁 치면서 씩 웃는다.


"내 이름은 페르난도스. 저주술사다. 하얀옷은 엘리제. 대검녀는 레이라. 저어기 미식축구 선수는 고든. 결계술사는 프리다다. 아니, 피터였나?"

"아! 그걸로 부르지 말라고! 개명했다고!!"


화나서 소리치는 펑키한 남자. 하지만 가온은 알 수 있었다.

얼핏 태도는 장난스러웠지만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으며 빈틈도 전혀 없다는 것을.


"미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 2위에서 7위까지 싸그리 오셨다! 충격인데? 우리 이름을 모르겠다는 게 대강 느껴져서 설명해줬다. 고맙지?"

"고맙군."

"그래? 고마우면 순순히 잡혀주면 기쁘겠는데. 레임이 히스테리 부리는 거 짜증나거든."


그리고 전력차도 분명하잖아? 페르난도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타앙!


또 격발. 가온은 휙 몸을 날려 피하고 그 틈을 타 미식축구 선수, 고든이 또 총알같이 달려들었다.

쿠앙!


공중에서 제비를 돌며 훙훙 날라가는가 싶던 가온은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고 사뿐히 땅에 착지했다.



"아...말하는 거 잊었는데, 저격남은 유리라고 해."


페르난도스는 겉은 깐족거리지만 속은 경악한 상태였다.

설마 저 조합의 공격을 저리 쉽게 받아내다니?



"후우."


가온은 눈을 감았다.

미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 한국보다 명백히 강대국이며 인구도 많은 미국 출신답게 그 강함은 한국의 순위권자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각자 지니고 있는 무기가 심상치 않다.

전에 레임의 부하들이 휘두르던 것과 같은 느낌이 난다. 미국의 최신식 무기....

그리고, 숫자.


아까는 셋이었지만, 지금은 여섯.


당해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근데? 어쩌라고?"


화륵


화신지경이 된 가온을 보고 깜짝 놀라는 페르난도스.


"무슨! 내 저주가 일순간에 사라졌...!"


콰차창!


뭔가가 깨진 소리가 났다고 자각했을 땐 가온이 페르난도스의 코앞까지 온 상태였다.

눈을 크게 뜨는 페르난도스와 악마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가온 사이에 레이라와 고든이 끼어든다.


쿠콰앙!


"......"


가온을 튕겨냈지만 레이라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고든도 자신의 어깨를 매만지며 팔을 훙훙 풀었다.


"와...깜짝이야. 나 뒤질 뻔한 거? 프리다! 똑바로 안 할래?!"

"아 씨. 그걸로 부르지...아오!"


프리다. 아니 피터는 속을 썩였다.

제법 강력하게 만든 결계였는데 이걸 한 순간에 부순다고?

아까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고, 아니 솔직히 압승이라고 여겼는데 뭔가 이건?


하지만 경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팔을 번쩍 들어올린 가온의 손에 순식간에 화염구가 맺히더니 건물만하게 커진 것이다!


"어! 저저!"


페르난도스가 깜짝 놀라 주술을 없애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가온이 들고있던 검을 집어던졌고 그걸 피하느라 늦었다.

그 사이에 가온은 그것을 저 멀리 향해 던져버렸다.


쿠구구구.


재앙이나 다름없는 화염구가 똑바로 나아가, 어느 고층 빌딩의 옥상을 화려하게 박살내버린다.


"...저기 사람 있었던가?"

"없었을걸. 유리는 사람 많은 거 싫어하니까."


페르난도스의 당황에 엘리제가 시크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공격으로 한동안 저격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살아는 있을까?


"모두 망설이지 말고 신무기 꺼내. 이거, 봐주면서 하면 우리가 죽겠어."


엘리제의 말에 각자 뭔가 하나씩을 꺼낸다. 엘리제의 경우는 너클이었고 고든은 어깨에 강철의 둔기가 하나 생겨났으며 레이라의 검날색이 바뀐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가온은 그저 히쭉 웃을 뿐이었다.


정부공인 순위권자 여섯과 한 명의 소년이 격돌하고-. 그건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얼마나 싸웠을까?

십 분? 이 십분?


"흐악! 흐아아악!"


양 회장이라도 피신시켜려 했지만 워낙 치열하고, 가온이 그만은 보내지 않으려고 해서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런 와중 류열은 생각했다.


-아. 저 새끼. 진짜 오지게 봐줬구나. 하고.



까앙!


"큭...!"


시종일관 침묵하던 레이라가 신음을 흘린다.

이젠 갑옷같은 것까지 입었는데도 충격을 흘릴수가 없다.


"아...진짜 미쳤나?"


페르난도스가 더운땀과 식은땀과이 섞인 얼굴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대체 주술량이 얼마나 되는 거야...?"

"후우."


가온은 그저 숨 한번 내쉴 뿐. 이런 격전 속에서도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검을 집어던져서 상대하기 수월할 줄 알았더니 자력으로 만들어내 휘두르고 어느새 던졌던 검까지 회수해서 휘두르고 있다.

엘리제는 손을 풀며 퉷 침을 뱉고 중얼거렸다.


"괴물 자식..."

"이게, 이가온인가..."


프리다의 중얼거림이 시발점이라도 되기라도 한듯 가온이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유리가 저격을 가하기 시작했지만 가온의 화신지경은 그 모든 걸 알아채고 막아낸다. 소강상태.

아니, 가온의 주술량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들은 점차 체력이 떨어져가는 상태. 이대로는..


그때, 고든이 나서서 말했다.


"잠깐 이야기를 할까. 잠깐이면 된다."


우뚝. 가온이 걸음을 멈추었다.

불타는 눈으로 뭐냐는 듯 쳐다본다.


"...우선 말하자면, 난 그대를 존경한다. 이가온."

"?"

"정확히는, 나의 대장 피터가 존경하는 자네를 존경한다."


가온의 시선이 프리다인지 피터인지에게 향했다. 움찔하는 그를 보며 고든이 말했다.


"그가 아니다. 그는 단지 나의 대장. 미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 1위. 피터의 이름을 따라한 것 뿐이다."

"따, 따라한 거 아니거든?!"


그가 뭐라 말하든 말든 고든은 말을 이었다.


"들은 게 있지. 그대의 복수심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까지 몰리다니, 억울하기도 하겠지."

"어라 어라. 고든. 지금 대화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페르난도스의 말을 사뿐히 무시하는 고든.


"난 레임의 편이 아니다. 그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 여자의 하찮은 이유로 이 세상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는 그대가 매장되어도 될 리가 없다. 그대가 뭘 했건, 그대가 세계를, 인류를 위해 움직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


고든이 손을 내밀고, 반대손으로는 헬멧을 벗었다.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미려한 얼굴이 튀어나온다.



"일단 투항하라. 내가, 피터가 어떻게든 그대를 꺼내주겠다."

"......투항. 투항인가."

"그래."


가온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물론, 투항하면 복수는 버려야 한다. 그게 하잘 것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대가 앞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지금 당장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우리를 따를 수는 없겠는가?"

"흐음."


가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짝짝 박수를 친다.


"고상하신 말씀 잘~들었는데...한 가지 정정할 부분이 있어."

"뭐지?"

"우리를 따를수 없겠는가가 아니라, 따르게 해 달라겠지?"

"......"


고든이 입을 다물고 가온이 큭큭댄다.


"애초 전제가 잘못됐잖아. 난 시발 딱히 인류를 위해 커튼을 쳐 잡고 있던 게 아니라고."

"......"

"내 사정을 안다는 놈이 그따구로 말해? 씨이발. 엿같네. 닥치고 따르면 살려줄테니 너희 인형이 되어라?"


가온이 가운뎃 손가락을 들었다.


"좆이나 까잡숴. 난 복수가 훨씬 중요해."

"...제압할 수밖에 없겠군."


고든이 다시 헬멧을 쓰고, 그 순간 사방에 무척이나 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그 숫자가 만 명에 달한다.


그것도 하나같이 커튼 사냥꾼. 그것도 천(天)급 이상!!

정부공인 순위권자가 수없이 섞여 있었다!


"......"

"힘들었다아..."


프리다가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의 결계가 기척을 차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가온. 그대가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지. 굳이 지정하자면...피터나 한국의 두 가문의 당주의 밑. 우리들의 위. 중간쯤 되겠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열세를 이길 수 없다며 고든은 자세를 다잡았다.

정신도 육체도 다부진 고든을 보며 이건 오늘 내에 쓰러뜨리기 힘들겠다고 가온은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전력을 다해 그대를 잡겠다. 유리! 지금이다!"


지금.

유리는 지금껏 일부러 힘을 제한하여 탄을 쏘았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 진면목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미안...못하겠군.]


부끄럽다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고든도 흠칫한다.


"유리?"

[견제 당했다.]

"...견제?"


가온의 동료는, 익환과 은발의 소녀 정도일 터.

그런데 견제? 누구에게?

대답은 하늘에서 들려온다.


"가온 씨에게서-!"

"음?!"

"떨어지는 거에요!!"


쿠우아아아아아아앙!!


바닥이 움푹 꺼지며 고든이 비틀거린다. 고든이니까 그 정도였지 다른 이들을 충격에 쿠당탕 날아간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일었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여자가 그걸 손짓 한방으로 걷어낸다.

고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미헤유!"


미헤유의 옆에 돌연 돌풍이 불더니 스케이트 보드를 탄 소년 하나가 중얼거리며 펄쩍 뛰어내린다. 루카스였다.


"아. 시말서...시말서어..."


그러더니 돌연 눈물짓고 가온을 노려보았다.


"다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라! 앙?!"

"......"


갑자기 나타난 프랑스의 정부공인 순위권자들에 고든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정신인가? 지금 이가온의 편을 들었다간..."

"사랑이! 먼저인 거예요!"


자세를 잡는 미헤유.

세계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우선하겠다는 그 태도에 고든도 입을 다물었다.

그도 피터를 위해서라면, 그가 세계의 적이 된다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기에.


"유리를 견제하는 것은 그럼 루이스인가...하지만 미헤유. 지금 이 전력차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헬기. 심지어 전투기!

각장 화기들까지 이 장소에 속속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화기는 커튼 상대로는 결정타를 낼 수 없지만...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가온처럼 강대한 주술사라면 어느 정도 막아내겠지만, 과연 어디까지?


"저건 우리들의 소속이 아니다. 레임이 가져온 것이다. 이가온 지금이라도 투항하라. 목숨부터 살리고 봐야하지 않겠나?"


고든은 어디까지나 가온을 위해서 말했다.

하지만 가온의 시선은 옆에서 으르렁대는 미헤유에게 가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품속에 소중하게 넣어두었던 것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웃었다.


"미헤유씨."

"앗! 네 가온씨! 걱정 말아요. 가온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

"진짜, 눈치 없는 것도 이 정도면 병이네."

"...네?"


가온의 웃음에 당혹하는 미헤유.



"말했지?"


가온의 몸에서 붉은 스파크가 파직 파직 튀었다.

그걸 본 고든이 입을 벌렸다.


"설...마..."


그리고 프리다를 바라본다.


"프리다! 막았던 게...!"

"그런 줄 알았다고! 그런데 그럼 왜 지금껏 사용 안했던 거...!'



미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들도, 파도처럼 몰려오는 커튼 사냥꾼들도. 위에서 발포 직전인 화기들도 전부 무시하고, 가온은 말했다.


"난 동료같은 거 안 키워. 멍청한 년아."


떵!


어느새 날아온 엘리제가 가온을 후려갈겼다. 미헤유 급의 펀치에 속절없이 날아가는가 싶었던 가온. 그는.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불기둥에 몸이 휘감긴다.

직전 커튼 사냥꾼들이 쏘았던 공격들이 전부 무마된다.

모두가, 파도처럼 달려들던 수많은 자가. 전 세계에서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이 넋을 잃는다.


불기둥 속에서 튀어나오는 철퇴같은 뭉툭한 팔.

갑주같은 붉은 각질의 피부.

그리고, 불타오르는 두 눈.


붉은 커튼이, 강림했다.


동시에, 이 자리. 아니, 서울에 있던 모든 전력이 고꾸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위압감을 뿜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모두 전투 능력을 잃었다.


화륵.


변신을 푼 가온이 걸어나오며 중얼거렸다.


"하나씩 처리하기 귀찮았는데, 몰려와줘서 고맙군."

"크...윽..."


고든만이 간신히 무릎 꿇고 서서 공포에 질린 얼굴로 가온을 바라보았다.

움직임 힘이 없었다.

하지만 가온은 그에게 관심일 두지 않았다.


그저, 나무뒤에 숨어있던 양 회장을 끌어냈을 뿐.


"히익! 히이이익!"

"자 그럼, 두 번째 해체쇼. 시작합니다~"



다음 순간. 피비린내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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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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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새로운 시작. (完?) +3 20.09.01 212 4 27쪽
378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20.09.01 153 3 30쪽
377 소(牛) 토끼(兎) 양(羊) 닭(鷄) 뱀(蛇) 돼지(豚) 말(馬) 호랑이(虎狼) 용(龍) 고양이(猫) 20.08.31 157 3 26쪽
376 쥐(誓) 바람의 결말. 20.08.30 156 3 19쪽
375 세계와 내면의 진실 (2) 20.08.29 158 2 16쪽
374 세계와 내면의 진실 (1) 20.08.28 160 3 24쪽
373 절대적인 신(神) 20.08.26 155 3 15쪽
37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3) 20.08.25 173 3 13쪽
371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2) 20.08.24 164 3 14쪽
370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1) 20.08.23 161 3 15쪽
369 소원권 (2) 20.08.22 161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3 3 23쪽
367 동기부여 20.08.21 165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4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1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60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7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70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6 3 16쪽
» 파멸? (5) 20.08.14 168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5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4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8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69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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