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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64,509
추천수 :
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20.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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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0쪽

소원권 (2)

DUMMY

피터에게 양해를 구한다.


[에엥? 언제 오는데에...]


외로워 하는 목소리에 멋쩍음을 느끼며 언제 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자 피터는 낙담한 듯이 중얼거린다.


[오늘은 같이 새로 신설한 스파라도 가려고 했는데...]


비즈니스적인 관계지만 묘하게 애교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히 같은 남자가 그러니 가끔 소름돋을 때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피터와 가온을 이상한 의미로 엮는 팬들도 있는 마당에...


가온은 다시 한 번 사과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십이지신 소를 부른다.


[옷. 금방이네. 열게.]


지이잉.


눈앞에 열리는 게이트.

자신이 붉은 커튼이란 것을 공개하고 2년이다.

더 이상 숨기는 비밀은 없을거라 여겼지만 이것만큼은 납득해 줄지 모르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설애."

"네. 대장님."


2년전, 가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그를 옹호했다는 퇴마 이씨 가문의 하녀 설애. 이이나의 변덕으로 우연히 원정에 참가했던 그녀였으나 실무 경험 2년을 쌓고 이제 제법 숙련된 티를 냈다.


"포획조에게 포상 내려줘. 나 갔다올 동안 해야 할 거 있으면 스케줄 좀 부탁해."

"네. 다녀오세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빠릿했으나 가온과 둘만 있으면 예전의 하녀 모습이 된 것만 같은 그녀였다. 그것에 묘한 귀여움을 느끼며 가온은 게이트를 탔다. 아니, 타려는 순간.


"오늘도 가시나요?"

"나도 같이가자."

"어라..."


가온의 감지조차 속이고 근처에 다가온 건 금발의 절세 미녀 안내 시스템과 퇴마 김씨 가문의 정식 후계자로 지목된 김현미였다.


현미는 학교를 졸업하고 성숙미가 돋보였다.

솔직히 예전보다 더욱 예뻐져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같이 가자니. 십이지신한테?"

"저번에 나도 같이 가지 않았나?"

"아니 뭐..."


현미가 한번 떼를 써서 소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땐 소의 기운에 짓눌러 아무것도 못한 현미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게이트에 문제가 생기면 가온 외에는 갈려나갈 가능성이 있어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걸 들은 소는 날 못 믿는 거냐며 날뛰었지만 그녀가 그럴 마음이 없더라도 제 3자가 방해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미에게서 풍겨오는 힘은 강력한 것이어서 가온은 안심하고 말했다.



"그래, 뭐 그러자 그럼."

"그래! 오늘이야말로 그 젖소녀의 마수에서 널 구하겠다."

"?"

"......"


가온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안내 시스템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게이트를 탄 셋은 예의 동굴로 향했다.

아니, 더는 동굴이 아니었지만.



"와아..."

"저번과는 좀 다른 걸?"


안내 시스템이 화악 밝아진 얼굴이 되었고 현미는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번엔 목장 비슷한 초원이었다면 지금은 온갖 꽃과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어...그렇게 놀랄 정도야?"


안내 시스템을 본 가온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실제로 안내시스템은 감동한 듯 몸을 떨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 아니요...저라는 사람이 이렇게 추태를..."


부끄러워진 듯 크흠 헛기침을 하는 안내시스템.


"당연하겠지. 네 고향과 비슷할 테니까."


흠칫 놀라는 안내시스템과 부루퉁해진 얼굴의 현미.

나타난 것은 거대한 유방을 자랑하는 장신의 미녀였다.

영락없이 사람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뿔과 꼬리가 달려있다는 것과, 의식하지 않아도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는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본 모습이 아니라 가진바 힘이 적게 노출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시무시했다.


"오오...나날이 강해져가는 걸?"

"무슨 소리인지?'


현미가 시치미룰 뚝 뗐다.

저번엔 몸을 꼼짝도 못했지만 오늘은 제법 원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보다...옷이 그게 뭔가?"

"어? 요즘 유행하는 옷이라며?"


십이지신 소가 입은 옷은 노출도가 매우 높았다.


"너희들 언어로 인싸들이 들어가는 곳에서 유행하고 있던데?"

"어...일명 동정을 죽이는 옷 이었던가."


가온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몸을 뻔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눈이 안 갈수가 없는 옷이었지만 가온은 억지로 눈길을 돌렸다.


"어때? 불끈불끈한가?"

"야!"


현미가 빽 소리질렀지만 소는 눈을 끔벅거릴 뿐이었다.


"왜?"

"여, 여자가 조신스럽지 못하게 그러는 게 아니다."

"조신이고 뭐고, 너도 억겁의 세월동안 처녀이고 좋은 상대 만나 봐. 절실해질 걸?"

"아니...!'

"그래서. 나랑 그걸 할 마음은 들었나?"

"그거?"

"우리들의 자식을 만들자는 말인데?"

"아. 그래. 그런 거 같네."

"?!"


현미가 목이 부러질 기세로 돌아보았다. 솔직히 가온과 소는 이제 일상적으로 이 따위 만담을 나누었으므로 별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엔 정조니 뭐니 하면서 극구로 멀리하던 그녀였으나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깊은 농담을 지껄일정도로 사이가 진전되었다.

물론 지금 하는 말도 진심은 아니리라.


"어, 어쨌든 갈아입어라!"

"뭐야 질투였나?"

"지, 질투는 무슨 질투!"

"네 앞에서 가온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오랜만의 손님이니 이야기를 들어 주지."


그리고 소는 평소 입던 옷인 소 무늬의 옷이 되었다.


"아니...솔직히 그것도 충분히 노출이 많아 보이는데."

"이건 내가 현역이었을 떄부터 입던건데?"


더는 갈아입을 의사가 없음을 내비치며 소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그런데 소 누님. 고향이라니?"

"응? 그 공주의 고향이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어서 말이지. 좀 흉내낸 거지."

"아...그랬었군."


안내시스템의 고향. 그래서 안내시스템이 감동한 것인가.

정작 안내시스템은 그 말을 듣고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뭐, 내 고향은 삭막했으니 이해 좀 해줘. 그런데 오랜만에 손님이 온 건 기쁘긴 한데..."

"오랜만이라니. 가온이 수시로 들락거렸던 걸로 아는데?"


어째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가온은 손님보다는 가족같은 느낌이라서."

"...!"


또 얼굴이 뻘개지는 현미. 화가 난 그녀를 진정시키듯 어깨를 톡톡 두드린 가온이 말했다.


"기쁘긴 한데 뭐?"

"아니, 날을 잘못 잡은 것 같아서...나만큼은 아니긴 한데, 그 녀석들도 의식하지 않아도 내뿜는 게 꽤 된단 말이지."

"그 녀석들...?"


사사사삭.

타탁.


여기저기서 들리는 숨기려 고도 않는 발소리.

곧 발소리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일 먼저 나타난 건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인간..이기는 했지만 파충류의 비늘로 뒤덮인 이질감이 드는 미인이었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그 다음 나타난 건 온갖 보석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붉은색의 인간 크기만한 붉은색의 닭.


그리고 차례차례 솜사탕 같은 솜털에 푹 뒤덮힌 양과 온 몸에 상처투성이에 뿔이 달려있는 돼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대하지만 귀여운 귀를 쫑긋거리며 옴 몸에 달 문신 비슷한 것이 새겨져 있는 토끼가 나타났다.

현미가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얼굴을 찡그렸고 안내 시스템은 대번에 겁을 먹었다.


"아. 기대하는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두는데, 저 양이랑 토끼는 행동이 좀 계집애같긴 한데 엄연한 사내놈들이다."

"?"

"기대했냐? 이가온? 보통 양이랑 토끼하면 귀여운 여캐잖아?"

"뭐래. 미친놈이."


남자인 건 몰랐지만 여자일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온의 반응에 재미없다는 듯 입을 다무는 닭.


"허. 그럼 난 여자같냐 남자같냐? 엉?"

"잘 모르겠는데. 소 누님 힐끔거리는 거 보면 영락없는 남자같긴 한데."

"야 이 씹. 내가 언제..."

"허이구. 잘들 한다."


소가 콧방귀를 뀐다.


"유. 넌 가온이 보면 시비 좀 그만 걸어."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자꾸..."


시비건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닭. 가온은 사뿐히 무시하고 뱀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인 걸."

"그렇구나 쉿. 이 모습으로 보는 건 처음이구나 쉿."


뱀이 주위를 둘러본다.


"아름다운 곳이로구나 쉿. 이걸 직접 만들었다니..."


그렇다.

이 공간은 가온이 소를 위해 만든 공간.

공간 제조를 수련하는 김에 구현해 낸 장소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쓸 수 없는 것이 강렬한 힘을 동반하기에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공간 만들기에서 버틸 수 있었다.


"내 고향도 구현할 수 있겠나? 쉿."

"음. 기억을 보여주면."

"그래...꼭 부탁하고 싶군. 쉿."

"비켜봐아~"


애교있는 목소리로 뱀을 밀어낸 것은 양.

그는 몸에서 털을 뿜뿜거리더니 순식간에 침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누워서 이야기 해~피곤할 텐데~"

"어...그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온에게 호의적이었던 양을 보며 가온이 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힘이 빠져 흐늘거렸다.


"가온!"

"무슨!"


현미와 안내시스템이 놀라는 가운데 힘빠진 목소리로 가온이 말했다.


"편하다~"

"......"

"......"


두 사람이 찌릿 노려보는 가운데 가온이 둘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꺅. 마스터..."

"가, 가온 이런 건 절차를 밟고...후응..."


그리고 둘 다 침대에 마력에 빠져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귀를 쫑긋거리며 쳐다보던 토끼가 펄쩍 뛰어 현미의 배 위에 앉았다.


"엇? 아핫. 아하핫."


토끼가 볼을 부비자 현미가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저 펄쩍 뛰는 동작에 킥을 얻어맞아본 가온으로서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니 마치 애완동물같은 느낌이긴 했다.


"야. 나도 줘 양."

"싫어."

"아니 쩨쩨하게."

"여기 초대할 때 생각 있는대로 내놓고 지는..."


소와 양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싱글거리던 현미가 벌떡 일어났다.


"호, 혹시...너희들. 십이지신인가?!"

"어라. 빨리도 깨닫네 이거."


닭이 날개로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바보같다는 듯 말했고, 현미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야. 대단한데? 엄청 제한했다고는 해도 우리 기운에 버티잖아? 꽤 강하네."


소가 감탄하며 짝짝 박수를 쳤다.

그들의 말대로 지금 십이지신들의 모습은 남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낮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넷은...?"


술은 죽었고, 원숭이는 봉인당해 있다. 나머지 넷. 쥐와 이 자리에 없는 말. 호랑이, 용은 어디에 있는가?


"걔네들 나타나면 골아파지니까 안 불렀어. 불러도 올 놈은 호랑이 정도일 테고."


소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르지 그랬어."

"왜? 또 싸우려고?"


소가 짓궂게 물었다.

그렇다. 가온은 호랑이와 싸워 본 적이 있었다.

사실 호랑이 뿐만 아니라 십이지신중 거의 전부와 싸웠다.


수련과 소원권을 위한 결투였다.

2년간 가온은 절대 놀고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대화가 가능하다면 할 거야."

"네가 퍽이나 그러겠어."

"그래서 소 누님. 이 녀석들이 이 모습으로 날 만나러 온 이유는? 다굴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다굴은. 넌 나 하나로도 충분해 임마."

"응. 다음 펀치에 부리 부러지신 분."

"씨발! 지랄! 니 오른팔은 안 부서졌나 임마?!"

"그만 그만."


소가 중재하고 목소리를 깔았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엔 항상 이래왔다.


"말했듯. 소원권에 대한 이야기야."

"흐음."


닭이 대체 어디서 요즘 말을 배웠는지도 궁금했지만 소원권에 대해서가 더 궁금했으므로 가온은 경청하겠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1년 전 쯤에 너랑 사가 싸워서 무승부를 기록한 적이 있었지?"


그 말에 현미가 놀란듯이 반인반사를 바라본다.

그녀가 아는 붉은 커튼이라면 절대 쓰러지지 않는 존재인데 그것과 무승부?


"그거 다수결로 해서 사가 이긴걸로 하자 했잖아."

"펴, 편파판정 아닌가?"


현미의 말에 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편파 아니야. 난 그때 독에 중독되 골골거리고 있었거든 시간 지났으면 내가 불리한 건 확실했어."

"아니, 넌 독을 점점 중화시키고 있었고 더욱이 그때 더 강해지고 있었지. 결판이 나질 않아 억지로 대결을 끝낸것 뿐. 내 승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뱀의 말에 현미도 입을 다물었다. 모두 납득한 결과인 것이다.


"뭐. 그래도 유효타를 누가 더 주었나란 관점에선 사가 우위였지. 그래서 그때껏 가온이 돼지 토끼 닭 등을 상대로 딴 포인트를 사에게 몰아주었었다."

"그, 그런...!"

"일단 들어 봐."


가온이 현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뭐, 우리랑 밥먹듯이 대련하게 된 건 최근 1년이고 그 전엔 한 번씩 대결하여 판정으로 승리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그래도 세 번 대결에서 이긴 실적이면 대부분의 소원은 이룰 수 있다 여겼다. 그래서 사는 그 자식과 접선했지."

"그 자식..."


소원을 들어준다는 정체불명의 신 같은 것.

가온은 뱀을 쳐다보았다.


"여기 있다는 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건가?"

"그래. 쉿."


뱀이 추욱 늘어진 기색으로 말했다.


"예를 들어...내가 다시 활동이 가능하다거나, 뭔가를 갖게 해달라는 소원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거나 되찾는 것이라면 그걸로는 택도 없다고 들었다. 쉿."

"......"


그렇게 까다롭단 말인가?

십이지신이나 되는 존재에게 세 번이나 승리했는데도 소원을 이뤄주지 않다니.

가온같은 특수한 자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넌 십이지신과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결투를 벌였지. 그리고 완벽한 승리를 거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린 생각한 거야~지금이라면~정말 어떤 소원이든 이룰 수 있다고~"

"대결에서의 승부 점수는 이길 때마다 더하는 게 아닌 배의 배로 곱해지는 것...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높은 점수가 필요하다 해도. 지금이라면 수억의 사람을 살리는 소원도 가능하다고 본다."


닭의 말이었다.

가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뭔데?"

"얼마 후. 그 분께서 강림하신다."

"그 녀석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그놈이 강림한다. 대체 어떤 식으로?


"어떤 방식으로 올지는 몰라. 하지만 온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제안하고 싶어 메~"

"그 날. 우리 십이지신들에 너를 포함한 열 하나가 배틀로얄을 벌여 진정한 승자를 가렸으면 싶다. 쉿."

"...과연."


십이지신은 저마다 비원이 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비원을...이대로 가온이 소원을 이루는 것을 보고만 있을 리 없겠지.


"거절하면? 여기서 너희들이 날 죽이는 건가?"


갑자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되자 안내 시스템과 현미가 긴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친숙하게 느껴졌던 그들이 정체불명의 괴물, 아니 그 이상의 초월적인 무언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십 초 정도 이어진 침묵은 깬 것은 십이지신이었다.


"그럴리가. 제약도 있거니와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있다. 쉿."

"단지 성의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래서 본체로 온 거고. 2년동안 네 변덕에 어울려준 값이라고 생각하지 그래?"

"유. 그렇게 말했다간 들어줄 것도 안 들어주겠다 메."


가온은 넷을 번갈아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토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호오."


소가 눈을 반짝였고 나머지 십이지신이 기뻐했다.


"그래야지!"

"고맙다 메~"

"뭐. 먼저 소원을 이뤘다고 다음에 못 본 체하지는 않을거다 쉿. 누가 됐든 말이다 쉿."


긴장된 분위기에서 훈훈한 분위기가 되자 안도한 두 사람.

그리고 가온이 말했다.


"단. 신 놈은 예외다."

"흠? 봉인되어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참가 못할 텐데?"

"그런 이야기가 아냐. 소원권 쟁탈전이 일어나기 전에 그놈만은 죽인다."


그 놈 때문에 이자견이 죽은거나 다름이 없다.

품속의 천조각을 의식하며 가온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놈 때문에 공간 만들기를 수련한 것이다. 반드시 죽이리라.


"...그래. 네 뜻대로 해."


소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열 하나? 술이랑 신...그리고 한 놈을 빼고 나 포함이면...열이잖아?"

"쥐는 온다."


소가 나직이 말했다.


"그 놈은 어떻게든 나타날 거야."

"죽었다며?"

"......"


소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른 십이지신도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쥐면...십이지신의 대장 아니야?"

"대장은! 그 개자식...!"

"개자식은 술이고 메."


닭이 분통을 터뜨리자 양이 조용히 태클을 걸었다.


"명목상 대장은 맞지만. 그 녀석은 반역을 일으켜 죽었어. 지금 대장자리는 공석이야."

"반역..."


현미가 이해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해할 필요 없다고 다른 십이지신이 말하자 납득한 기색은 아니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현미.


"그럼 나머지 십이지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들도 알고 있나?"

"우리가 전할거야."

"그렇군...그런데 가온. 네가 싸우지 않은 나머지 넷은 종말파 인 것 같은데. 어째서 싸우지 않았나? 호랑이와는 싸웠다고 했지?"


2년 전. 가온이 붉은 커튼인 걸 알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정체가 들켰을 때도 가문 차원으로 편을 들어준 현미에겐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주었다.

그녀도 마녀기에 무관하진 않았으니까.

그때 파벌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는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면, 다른 녀석들과는 대련이지만 녀석들과는 바로 죽냐 사냐의 싸움이 되었을테니까."


호랑이와도 그랬다.

놈과 싸움에서 서로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나 나중에라도 계속했다면 어느 한쪽은 죽었을 것이다.

다른 십이지신이 호랑이와 다시 싸우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자 다른 종말파가 가온과 싸우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자견의 사건 이후로 가온은 결심했다.

자기 원수가 아니라고 가만히 내버려뒀다가 당하지는 않겠다고, 적의가 있으면 이쪽이 박살낼 것이라고.

종말파와는 결투가 아닌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얘기도 나눠보지 못한 말과 용. 그 두 놈은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은 채 최적의 상태로 가온과 싸우고 싶은 거겠지.



"뭐. 오 녀석이야 짐작가는 바가 있는데 진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소 누님."

"응?"

"소 누님도 나와 싸우는 건가?"


눈을 끔벅거리던 소가 히죽 웃었다.


"나도 비원이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소는 말했었다. 십이지신 중에서도 강한 셋이 있다고.

소는 그 중 한 명이 분명했다.


'질 수는 없지.'


삼촌을, 이자견을 위해서라도.


"그래서. 신과는 언제 싸울 거야?"

"한달 안으로."

"시간이 알맞네. 정해지면 말해 줘. 우리도 세상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울 테니까."


고마운 말이었다.

그 뒤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십이지신에 관한 잡담을 나누었다.

요즘 지식을 어떻게 아냐니까 그런 걸 알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요즘 춤을 배운다는 닭을 놀려서 또 한바탕 말다툼을 한 가온은 시간이 늦은 것을 깨닫고 일어선다.


"가게?"

"음. 할 게 있어서."

"하긴. 많겠지. 가고 또 와. 아참. 그래도 그 특이한 인간은 데려오지 말고."


특이한 인간은 피터를 말하는 것이다. 그가 십이지신을 만났을 때의 반응은 엄청났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온갖 미사여구를 말한 피터. 잘생긴 사람이나 좋아할 거라 여겼는데 십이지신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비슷한 녀석이라서 그랬다고 한다.


뭐가 닮았냐고 물으니 소가 대답했었다.


"목적을 위해서면 뭐든 안 가리는 점. 나름의 신념이 있는 점. 그러면서 소중한 이를 위해서는 뭐든 하는 점."


누굴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피터는 웬만하면 데려오지 않고 있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소가 이번엔 안내시스템을 바라보았다.

움찔하는 그녀를 보고 소가 말했다.


"그땐...미안했다."

"......"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말하면 더 열받겠지만. 그렇게 밖에 할 말이 없다."

"알고 있어요. 그 분에 의한 제약이었으니까...."


무슨 이야기일까? 하지만 안내 시스템이 소에 대한 미움과 공포를 조금이나마 걷게 된 것 같았다.


"아...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는데."

"응? 뭐지."


십이지신이 쳐다보는 가운데, 가온은 뭔가를 물었고 십이지신인 뭔가를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또 보자."


그리고 세 사람은 나중을 기약하며 동굴을 떠났다.



[곧이군.]


그리고 현미나 안내시스템은 물론 십이지신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자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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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세계와 내면의 진실 (1) 20.08.28 161 3 24쪽
373 절대적인 신(神) 20.08.26 155 3 15쪽
37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3) 20.08.25 173 3 13쪽
371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2) 20.08.24 164 3 14쪽
370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1) 20.08.23 161 3 15쪽
» 소원권 (2) 20.08.22 162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3 3 23쪽
367 동기부여 20.08.21 165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5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2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60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8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70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6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8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6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5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8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70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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