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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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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92
추천수 :
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20.08.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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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20쪽

파멸? (8)

DUMMY

거대한 홀

각지에서 모인 고위권자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돌아다니고, 그런 그들을 비켜보는 소수의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커튼 사냥꾼들이다.


한국에서도 전투로 특출난 자들만 이곳에 모였고 당연히 정부공인 순위권자들도 이 자리에 집합해 있었다.


"지부장님은 괜찮으실까."

"그 말 한번만 더 하면 몇 번짼줄 알아?"


보호하는 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자신들만 들리도록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커튼 사냥꾼들 또한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몇은 의심어린 눈초리로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곤 했다.


이들은 한국의 고위직에 있는 이들.

다시 말해서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이 너무도 쉬운 이들이라는 소리기도 했다.

정부에게 항상 시달려왔던 커튼 본부 소속으로서는 이들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가온이 말하는 복수가 망상이 아니라 정말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의문은 당연히 류열의 머릿속에서도 맴돌고 있었다.


아까 전의 전투에서 한 번 탈진했던 세 정부공인 순위권자들은 어떻게든 움직여 다시 합류하는 데에 성공했다.

현재 호운과 류열이 문지기처럼 맨 앞에서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고 아연은 찝찝하다며 샤워를 하러 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되든 엿같겠지 뭐."


류열의 말에 편하게 앉아 있던 호운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우린 대장...이 아니라 이젠 이가온의 원정에 참가했으니까 모난 눈길은 피할 수 없겠지."

"그런 얘기가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 될지가 아니라, 그 뭐냐...전체적으로 말이지?"

"무슨 얘긴줄은 대충 알겠는데 말이야...지금 상상해 봤자 의미가 있나?"

"있지. 솔직히 의심스럽잖아."

"...그렇긴 하지. 그 여자."


호운이 말하는 그 여자란 켈렌 워빌리프. 숨겨진 이름으로는, 레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일이 그 여자에게, 미국에게 너무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번 일로써 미국의 위상은 한층 더 상승하게 될 것이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상이 높았던 이가온은 완전히 추락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증거도. 심지어 증인까지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뭔가 증거 조작이라도 한 거 아닐까?"

"웃기네. 우리 나라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전부 속일 수 있을 만큼 정보 조작이 가능하다고? 어디 초능력같은 게 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대장을 믿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적어도 이제 그는 글렀어. 완전히 맛이 가 버렸다고. 보면 몰라? 자포자기해서 미쳐 날뛰는 거."

"......"


류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가람과 현수가 번갈아가면서 떠올랐다.

가온은 대체 왜 현수와 친했던 그녀를 죽인 걸까? 이유가 있었을까? 정말 망상증인 걸까?

답답했다.


'이럴 떄. 익환 형님이라도 있었다면...'


그 사람은 이가온에게 협력하고 있었다. 뭐라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현재 에메라와 함꼐 도망자 신세. 만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라고. 언제 대장이 올라올지 알아?"

"지부장님이 버티고 있다."

"글쎄. 김일 선생이 같이 있었다면 나도 희망을 걸어보겠는데, 혼자서 붉은 커튼을 막을 수 있겠어?"

"......"

"그보다, 지부장님 진짜 진심으로 하려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부모자식간인데."


류열이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이가...그렇게 좋진 않잖아."

"어이구. 괜히 핏줄인 줄 아나. 하긴. 어쨌든 저쩄든 지부장까지 뚫리면 저기 늙은이들 다 뒈지는 건 확정이지."


피식 웃은 호운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도끼를 들고 벌떡 일어났다.

출입문 밖에서 강력한 주술사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지...낯이 익은데."

"...설마."


류열이 성큼성큼 출입문 쪽으로 걸어간다. 호운이 어이! 하고 제지했지만 류열은 들은체도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뭐, 뭐 하는 겐가!!"

"무슨 일이야! 설명해!"


뒤에서 늙은이들이 발악하는 것도 무시하고 연 문 너머에서는, 그가 서 있었다.

아까 전에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 익환이.


"...수고가 많네."

"...!"


으드득. 이를 간 류열이 익환의 멱살을 잡아챈다.



"뭐 하는 겁니까!!"

"글쎄..."


그제야 익환인 걸 확인한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익환...?"

"이가온의 부하. 익환...!"



늙은이들이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폭발했다.


"놈을 잡아! 어서!"

"인질로 씁시다! 이가온도 함부로 경거망동 못하겠지!"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류열과 익환 모두 소동은 무시한 채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류열이 먼저 멱살을 놓았고 익환이 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웃어 보였다.


"고마워."

"형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설명해 줘야겠습니다. 아는 것 전부다!!"

"그러려고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거야. 미국의 특수부대는 대단하네..."


그의 말대로 익환의 몸 여기저기에서 상흔이 엿보였다.

저도 모르게 안쓰러움을 느낀 류열이 그를 안으로 안내한다.

커튼 사냥꾼들은 익환에게 강압적으로 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가온의 동조자든 말든 익환은 언제나 그들의 좋은 동료이자 선배였고 우수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야기는 들어봐야 했다.


"일단 말하자면, 레임...켈렌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녀의 말 중 하나만은 진실이야. 가온이가 붉은 커튼이란 거."

"그건 두 눈으로 확인했어요. 제가 궁금한 건..."


뭐라 말하려다가 멈춘 류열은 겨우 말을 이었다.


"가온이가 망상증을 앓고 있다는 게 사실이요?"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닐 거잖아? 가온이가 정말 가람이를 죽였는지, 그리고 정말이라면 왜 죽였는지 잖아?"


류열이 돌처럼 굳어버렸고 익환이 휴 한숨을 내쉬었다.



"가람이를 죽인 건 가온이가 맞아."

"...대체 왜?!"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울분을 토한 류열에게 익환은 사실을 고한다.


"가람이가 현수가 죽는데에 일조했기 때문이지."

"......네?"


무슨 개소리냐는 듯 익환을 바라보는 류열. 그리고 익환은 후우 한숨을 내쉰다.


"가온이가 가람이를 죽일 이유가 그것 외에 있을까? 가온이의 행동 원리는 전부 현수의 복수인데."

"아니, 무슨 멍청한 소리에요...가람이가, 현수 좋아했던 걔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랬어.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다면...나중에 말해줄게."

"......"


어이없다. 전부 미친 것 같다.

류열은 이를 악물고 반발심에 익환을 노려보았고 익환은 쏘아보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온이가 말한 원수 운운은 전부 사실이야. 어떤 형태로든 현수의 죽음에 관여한 자들...저 자들이지."


익환의 시선에 움찔했던 고위직들이 발끈한다.


"어딜 모함이냐! 이봐! 당장 저놈을 잡아!"

"뭣들 하고 있어!"


우리가 지들 하수인인줄 아나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는 커튼 사냥꾼들


"이상하지 않아?"

"네?"

"저들에 대한 건 믿지 못한다고 쳐도 말이야...지금 이 상황, 이상하지 않냐고."

"무슨 말이에요?"

"전 세계에서 그토록 많은 커튼 사냥꾼들과 화기를 긁어 모았는데 나나 가온이 정보력으로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은폐를 했어도 어디선가 새어나가기 마련인데..."

"......"

"저들에게 너무 유리하지 않냐는 거야."


그건 모두가 느끼고 있던 위화감이었다.

상황이 너무 가온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그래서 뭐요? 익환 형씨. 댁은 저들이 정보를 조작하는 초능력이라도 있다 이 소리요?"

"그래요 호운."

"엥?"


익환의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는 호운.


"잘 생각해 봐요 호운. 가장 오래된 자들과 십이지신 술이 말했던 마녀라는 존재의 특수한 힘. 그런 게 작용하고 있다면?"

"아니, 그렇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는데? 지금 대장 미쳐서 사람들 도륙하고 다니는 건 변함이 없잖아?"

"전 단지,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입니다. 특히 이기주 그 놈은 피해자라고 절대 할 수 없는 놈이에요."


적어도 하지도 않은 것으로 억울하게 당하지 않도록.


"저들에게 다가가게 해달라는 요구는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문답을 하고 싶군요."

"문답?"

"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문답."


호운은 바로 알아들었다. 일종의 심문이다.

예전에 있었던 상황의 자료와 틀린 진술이나 행동을 한다면...그리고 호운이 알기로 익환은 이런 심문에 있어 매우 뛰어났다.


"...맘대로 하쇼. 육체에 해를 입히는 거 아니라면야."

"너! 이 양아치 새끼! 무슨 소리하는 거냐!"

"당장 그놈을 잡지 못해?!"


호운의 이마에서 혈관이 돋았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저들을 도륙하고 싶었다.


"어쩔거야? 류열 형씨."

"...해보지. 나도 믿고 싶으니까."


류열이 그렇게 말하자 익환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최대한 빨리 끝낼..."

"끝내긴 뭘 끝낸다는 거지?"


공중에서 들린 목소리로 두 눈이 커지는 익환.


"레임?"


그녀의 이름을 말한 순간 익환의 몸이 뭔가에 좀 먹힌듯 무기력해져간다.

황급히 주술을 끌어올려 저항하지만 상당히 벅찼다.


그리고 그런 그를 포위하는 몇 개의 인영.

하나같이 강력한 자들 뿐이었다.


'정부공인 순위권자인가? 하지만 모르는 얼굴들인데...'


이를 악물로 저항하는 익환은 고개를 쳐 들었다.

그러자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자들이 눈에 띄었다.


레임 뿐만이 아니다. 이기주가 그녀의 옆에서 벌벌 떨며 서 있었다.

그리고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소녀와 퇴마 이씨 가문의 실질적인 주인 이이나가 서 있었고 그들 옆에는 인형을 꼭 끌어안은 음침한 인상의 여성이 있었다.


익환을 좀먹는 이 힘은 저 여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저주술사? 하지만 이만한 저주술사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없다...나를 둘러싼 이 자들과 저 여자 모두 정부공인 순위권자나 다름없어.'


설마 휘하에 정부공인 순위권자급 수하들을 숨겨두고 있었을 줄이야.

레임역시 엄청난 저력을 숨기고 있었다.


"익환. 괴상한 말만 해대고 논리가 없군. 그런 말에 현혹되기나 하고...한국의 수준이 진심으로 실망스러운 걸?"

"논리가 없다라. 그저 문답만 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레임."

"범죄자의 공범에게 그럴 여유를 줄 이유가 있을까? 폴. 제압해."


폴이라 불린 덩치큰 근육질의 머리를 빗자루처럼 쫙 세운 남자가 씩 웃었다.


"반항하지 말라고? 살살 제압하는 방법 따위, 모르니까."

"대체 어디에서들 튀어나온 거지...?"


분명 이 건물에서 이런 자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껏 은신하고 있었다?


'아냐. 뭔가 이상한데...'


"어딜 한눈을 파나!"


폴이 함성을 지르며 익환을 공격해온다. 검으로 방어하려 했지만 폴의 주먹에 담긴 가공할 만한 위력을 느끼고 익환은 눈살을 찌푸린다.

막더라도 뼈가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감수해야 한다.


'가온이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해!'


꽈앙!


"크윽!"


그리고 뒤로 밀려난 것은 폴 쪽이었다. 익환이 입을 쩍 벌렸다.


"류열!"

"아직 형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단지, 저 치들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폴의 공격을 밀어낸 류열이 전투자세를 잡는다.

레임이 꿈틀거렸다.


"지금 이 상황, 범죄자를 돕겠다는 건가? 류열..."

"범죄자라고 확정된 것도 아니잖습니까? 납득할 만한 물적증거를 주세요."

"이 소년이 그 증거지 않나?"


의기양양한 표정인 이기주의 어깨를 툭 두드리는 레임을 보고 류열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네가 준비한 것만으로는 못 믿겠어."

"그럼 어쩌자는 건가? 이대로 같이 범죄자가 되겠다는 건가?"


쾅!


두 주먹을 맞부딛힌 류열이 호전적인 미소를 짓는다.


"어차피 현타 씨게 왔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지."

"어리석은...같이 제압해!"



그런 소동 와중에도 이이나와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소녀는 그들을 전혀 바라보지 않았다.

저 아래.

벽 너머에 어떤 자만을, 가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온씨가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선택이라니요~? 지금의 가온이에게 선택권이 있나요?"


서로 방실방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둘의 사이엔 냉막한 기운이 흘렀다.


"역시~어머니는 가온씨에 대해서 잘 모르시네요~"

"......"


입가만 웃은채로 후후후 웃는 소녀를 바라보는 이이나.


"아아~가온씨. 어서 올라오세요."


그렇게 친구가 된 소녀는 쿡쿡 웃음을 흘린다.










"......"

"......"



고요속에 대치하는 아이나와 가온.

하지만 정말로 고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주변에선 끊임없이 유리 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파파파파팡...


그러기를 몇 분. 겨우 유리 꺠지는 듯한 소리가 멈추고 주술로 이루어진 검이 우수수 부수져 내린다.

아이나가 후우 숨을 내쉬었다.


"천공검. 잘 쓰네? 남의 기술을 막 갖다 써도 되는거야?"

"별로 쓸만한 기술도 아닌데."


도발하는 말투에 눈썹을 치켜올리는 아이나는 이번엔 천천히 검을 뽑는다.

그녀의 특기는 발도였으나 그걸로 기습을 걸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제대로 해 볼까?"

"제대로 하면 넌 죽는데."

"우리 언니처럼?"


아이나의 이죽이는 말투에 이번엔 가온이 순간이었지만 경직했다. 이내 웃어보인 가온은 비웃듯 말해.


"그래. 가람 선생님처럼."

"......"


눈에 살기가 깃드는 아이나. 그녀가 말한다.


"붉은 커튼으로 변해. 지금 당장."

"왜 그래야 하지?"

"그 모습인 널 죽이고 싶으니까야. 아니면, 못 하는 이유라도 있어?"

"있지. 있고말고."

"뭔데?"

"변하면 저기 숨어있는 늙은이들이 너무 쉽게 죽을 거거든.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야."

"...그건 진심이네."



가온이 잠시 말문을 잃었다.


"지금까진 내가 진심이 아니었기라도 하다는 거?"

"응. 대충 알거든? 나 아니라도 알 사람은 다 알 걸."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한 아이나는 이내 눈을 부릅뜨고,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왜 그랬어!!"


까앙!



"왜 언니를 죽였어!! 그리고 왜 나한테 잘해줬어?! 죄책감 때문이야?!"

"왜긴. 망상증 떄문이잖아. 안 그래?"


까깡! 깡!


둘의 검이 맞부딛히는 것만으로 주변 사물이 퍽퍽 깎여나간다.

허공에 생성되는 검. 천공검의 영향으로 큰 거리가 있음에도 부서져 나가는 주위.

평소라면 누군가 휘말릴 것은 염려하여 자제할 아이나였으나 지금은 달랐다.

그저 감정을 쏟아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개소리! 그딴 걸 누가 믿어! 난 '나라를 지키는 자들' 의 일원이야! 그 정보가 레임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다 안다고! 네 진심을 말해! 왜 죽였어! 그리고...왜...나한테...!"

"왜 너한테 잘해줬냐고? 당연한 걸 뭘 물어. 애정결핍이던 년 잘 구슬려서 한 번 먹어볼려고 그랬지."


이죽거리는 가온의 목젖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가온은 목을 팩 뒤로 빼 간발의 차로 피한다.


"거짓말이랑 진실쯤은 구분할 수 있다고! 진심을 말하란 말이야!"

"......"


까깡! 깡.


"너도 소중한 사람을 잃어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언니가 널 얼마나 좋아하고 잘해줬는데...네가 어떻게!! 가람언니의 기술을 훔쳐 쓰면서 죄책감도 안 들든?"

"......들겠어? 천공검. 화신지경. 아주 잘 배워먹었다고. 응."

"거짓말의 연속이네. 그거 알아? 네 거짓말 진짜 못해."


이를 악문 아이나가 다시금 고한다.


"진실을 말해. 뭔 하잘것 없는 이유로 언니를 죽였어?"



무감정을 가장했던 가온의 감정이 그 말에 으스러져 간다.

마치 댐이 무너지듯, 감정의 파도가 솟구쳐 올라온다.


"왜, 냐고? 가람 선생님이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왜 그랬냐고?"

"그래! 왜!"

"왜긴!"


까앙!


이번엔 가온이 검으로 밀어붙인다.

강력한 힘에 주르륵 밀리며 이를 악무는 아이나.


"왜냐고 물었어?! 잘해줬는데! 사랑해 줬는데 은혜를 왜 원수로 갚았냐고 물었냐고!"

"그래! 아까부터 그렇게 묻잖아 이 등신아!"


까앙! 깡!


청명한 검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가온이 손으로 검을 홱 잡아챈다.

깜짝 놀라 검을 멈추는 아이나.


"앗..."


이대로 손을 당기면, 제아무리 가온이 주술의 고수라도 절단이...

아이나의 머릿속에 가람과 가온이 오버랩된다.

이대로 당겨버리라는 마음과 그러지 말라는 마음이 충돌한다.


"왜냐고?"

"......"


아이나는 정지했다.

가온이 울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람 선생님이, 가람 누나가 우리 삼촌 죽이는데 일조했으니까!!"

"......!!"

"그 사람이 나한테 잘해준것도 그냥 죄책감 때문에, 대체할 게 필요해서? 아니! 그 사람은 그냥 외로워서, 그걸 잘 알아서 외로운 나에게 잘해줬던 것 뿐이야...나라고 가람 누나를 죽이고 싶진 않았다고! 근데 어째?! 삼촌의 원수중 하난데? 미워 죽겠는데!"

"이가온..."

"지금 너랑 마찬가지야. 네가 날 미워하는 것처럼 나도 가람 누나가 미워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 사람이 나한테 잘해준 건 맞아. 사랑도 받았어. 그래도...어쩔 수 있겠냐고."


제일 사랑하는 건 삼촌이었는데.


검을 잡은 손에서 피가 흘러나와 아이나의 손목을 적신다.

멍해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나를 보고 가온이 말을 이어간다.


"너한테 잘해준 건...이유없어. 그냥 친구였으니까."

"......"

"이젠, 아니겠지."


우득.


"컥...!"


명치에 주먹을 얻어맞아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아이나.


"이가온...너...!"

"용서해달라는 말은 안 해. 네 원망과 복수심은 정당한 거야. 내가 그랬듯이...그러니 언젠가 네 손에 죽어줄게. 근데 그게 오늘은 아냐."


난, 복수를 완성할 거니까.

가온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아이나는 결국 털썩 쓰러졌다.


그녀를 바른 자세로 뉘어넣고, 가온은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몇 십번을 반복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 사람 앞에 서면 감정이 폭발할 테니까.


'응. 됐어.'


진정한 가온이 태평한 몸짓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최강의 커튼 사냥꾼. 이이협이 문지기로 있는 정면으로.

아이나와 격전을 나누는 동안, 무슨 생각인지 한 번도 덤비지 않은 그에게로.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아까 아이나에게 했던 말중 붉은 커튼으로 변신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이나의 말대로 진심이었다.


'붉은 커튼이 되지 않고도 이길 상대가 아닌데...'


자신의 실력이 한없이 딸림은 인지했으나 멈출수는 없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이이협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간다.

그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가온을 주시하고 있다. 방심해주고 있다.

최적의 거리로 다가가면, 회심의 일격을 날리리라.

지금 인간의 기교를 모두 담은 일격을!


그리고 그 거리는 빠르게 찾아왔다.

이이협에게서 고작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


"음!"


기합을 지르며 발검과 동시에 막대한 주술을 쏟아붓는다.

이이천의 기술을 보고 새로 개발해난 회심의 검.

이거라면 이이협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받아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목을 노려 공격해간다.


그리고 가온은 경악했다.

이이협이 막았기 때문이 아니다.

공격을 인지했음에도 그가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에....


"...윽!"


으지직!


전력을 다한 공격을 전력으로 멈추니 당연히 그 반동이 찾아온다. 몸이 뒤틀리고 근육이 찢어진다. 고통을 감내하며 간신히 공격을 멈추자 커다랗게 불타올랐던 검은 평범한 검이 되어 이이협의 목에 조금 닿은 채 겨우 멈춰 있었다.


"...무슨 생각이야."

"......"


침묵하는 이이협을 보며, 겨우 추슬렀던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무슨 생각이냐고 묻잖아! 아버지!!"


최강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애써 세뇌했던 것이 풀려버린다.

이이협은 감았던 눈을 떴다.


"내가, 어쩌면 좋겠느냐?"

"......!!"



죽어. 가온이 그렇게만 말하고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핏줄기가 허공에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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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소원권 (2) 20.08.22 161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3 3 23쪽
367 동기부여 20.08.21 165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4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1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60 3 20쪽
» 파멸? (8) 20.08.16 158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70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6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8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5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4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8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70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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