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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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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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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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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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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3쪽

파멸? (3)

DUMMY

"어서 와~"


느긋한 말투의 소유자이자 한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 5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저주에 관한한 한국 제일이라는 프로 커튼 사냥꾼 아연이 방실방실 웃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온이 온 이곳은 아연이 실장으로 있는 저주 주술 연구 부문.


사람들이 많아 왁자지껄 할 줄 알았지만 느긋한 성격의 아연이 이곳의 대장이라서 분위기가 전염된건지 조용한 분위기다.

모두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뭔가를 중얼거리거나 히히 웃고 있다.


[조용하다기 보다는 음침한 것 같습니다만...]


안내시스템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가온은 아연이 이끄는 대로 가 응접실에 앉았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인데도 해골이나 호박이 기괴하게 조형되어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못한 장소다.


하지만 가온에겐 아무런 알 바가 아니었다.

그가 오늘 온 목적은 하나 뿐.

바로, 이자견의 시체가 어디로 사라졌나 하는 것이다.

그걸 물어보려던 찰나 아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 어때~?"

"좋죠."

"음~"


운도 뗐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려 했을 때, 아연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거짓말이네에~"

"......"

"마음 속에 울분이 가득차 있네에."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천연끼에 바보같아 보여도 역시 정부공인 순위권자.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가온은 느꼈다.


"네가 오늘 온 목적으은 천리안의 시체가 어디로 갔나~ 그게 궁금해서겠지이?"

"...그렇습니다. 솔직히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주술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시체까지 증발시켜버린다는 경우는 듣지 못했어요. 그럼 남은 건..."

"저주가 아닐까 한다는 건가아~으음~"


아연이 내 정신 좀 보라며 일어나더니 차를 가져왔다.

느긋한 동작으로 차를 따른다. 점점 조급해진 가온이 입을 열려 했지만 아연은 조용히 쉿. 하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최그은~바빴나 본데. 조금 쉬어 둬~"

"아니요. 전..."

"계속 그런 상태로 있으며언...결국 사고 난다?"


사고.

마음에 꽂히는 말이었기에 가온은 침묵했다.

차를 다 따르고 한입 홀짝이는 아연. 가온도 머뭇거리다가 차를 들이켰다.


차.


이자견이 따라준 이후, 얼마만일까?


저도 모르게 상념에 젖은 가온에게 문득 아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으음~일단 내 견해느은...저주는 아니야아~"


대답을 요구하듯 바라보는 가온에게 느긋한 말은 이어진다.


"주술이란 게~영혼이 없는, 시체에는 별 짓을 못하거드은~? 주술이란 거언 심,기,체와 혼. 이게 모여서 겨우 육체에 모아두는 게 가능해지는 거야아~그래서 영혼이 없어지느은 시체가 되며어언...사라지는 거고."


그리고 주술은 인간의 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런 막대한 힘을 가졌음에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 건 그 때문.


"그러니 저주도 마찬가지야아~저주를 걸려면으은~일단, 혼이 있어야 해애~저주도 주술이잖아~?"


살아있는 대상에게 저주를 거는 건 가능할지라도 시체에는 불가능하다는 소리.

그럼 어째서 이자견의 시체는 사라진 것일까?

제 3의 세력이 개입했나? 아니다. 에메라는 그건 절대 아니라고 했었다.


그럼, 대체 뭣 때문에?


고개를 수그리고 고뇌하는 가온을 보고 아연이 희미하게 웃는다.


"우리 저주술사들에겐~전해져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가 있지이"

"네?"


뜬금없는 옛날 이야기는 웬 거란 말인가?


"간추려서 말하자면으은...사랑스러운 인간은 나중에 다시 살리기 위해서...신이 육체를 가져간다는 거야아~"

"......"

"아~의심스러운 눈초리네에..."


아연이 우후후 웃으며 책장으로 가더니 서류를 가지고 와 우수수 내려놓았다.


"이것들은?"

"천리안 같은 케이스가 없다고는 했지만~사실으은~비슷한 케이스는 인류의 역사 동안 조그음 있었어어."


아연의 말에 서류를 들어 살펴보기 시작하는 가온.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자견처럼 시체가 가루로 화해 사라지는 건 아니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갑자기 먼지로 화해 사라졌다거나, 그렇게 사라진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는 자료들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고 그것도 각 사건마다 몇 백년간의 텀이 있는 극히 희귀한 사례들.


"그들의 공통점이 뭔줄 알아~?"

"......"

"하나같이이...신에게 사랑받는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뛰어났다는 거야아"



아연이 생긋 웃었다.


"천리안도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면으은...낭만적이지 않아~?"

"그 구전이란 건 어떤 책에서 나오는 겁니까?"

"으음~책이라기보다는~문헌인데에~"


아연이 또 거북이처럼 천천히 일어나더니 두꺼운 사전같은 것을 가온에게 내밀었다.


"여기이 상세하게 써 있어어~신이 언급되는 부분은 내가 찍어뒀어어"

"이거...빌려도 될까요?"

"물론~"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볼게요."

"에이~볼일 끝났다고 바로 가다니이...서운하네에.."

"아...죄송합니다.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요."

"음~친구면 어쩔수 없지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나오려는 순간 아연이 아. 하고 가온을 잡았다.


"그 얘기는 어떻게 됐어어~?"

"그 얘기라뇨?"

"상주 씨의 빈자리이...1년간 공석이었잖아~그 자리에 너를 추천한다고 하던데에"

"네?"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가온이 알기로 상주처럼 결계에 관한 프로를 찾기 위해 일부러 그 가지를 비워둔 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온을?


"아니, 왜 제가?"

"어어...너희 가문에서 보인 결계가 어엄~청 좋다고 했었거드은~너라면 근시일내에 그걸 배우지 않을까~하는 얘기가 나왔어어."

"...허."


결계라면 두 가문이 술을 억제하기 펼쳤던 결계를 말하는 걸까.



"뭐~너라며언 진작 됐어야 했을지도오~축하해애. 정부공인 순위권자급. 이라고 불리는 거라앙. 실제로 그 직책인 거랑은 다르니까아~"


가온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고개만 푹 숙였다.


"정보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래애~그럼 사흘 뒤에 보자아~"


사흘 뒤?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온은 책 하나를 가지고 저주 주술 연구소를 나왔다.

어쩐지 연관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처리하고, 소 누님에게 물어보자.'


혹시 이자견이나 아까 본 자료에서 같은 사례가 실제로 있었는지, 알고 있는 게 있는지.

지금 당장 물어보지 않는 것은 찜찜한 것부터 처리하고 심신이 깨끗한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가온은 한동안 책을 읽다가. 저녁에 알래인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를 마중하러 나갔다.


"가온~"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오는 알래인. 이번엔 친구들은 없고 혼자였다.

하지만 가온에겐 그게 더 편했다.

오랜만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하며 적당히 밥을 먹을 가게를 물색한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며칠 후에 있을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축제가 사흘 후였나?"

"응. 재밌을 거야."



그래. 정말 재밌을 것이다.


"어...뭐 먹을래?"

"아무거나...라고 하고 싶지만 이러면 네가 곤란하겠지. 고기면 뭐든 좋아."

"고기라..."


주위를 살피는 가온의 눈에 들어온 건 국수는 물론 라멘도 파는 가게였다.

이 집에서 사이드 메뉴로 파는 튀김 고기가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설명하자 알래인이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넌 계속 올라가는구나. 1년 후면 어떻게 될지..."

"응? 아니...글쎄."


알래인은 가온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가온은 정말로 자신의 현재 지위에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걸 대단하다고, 이런 녀석이랑 친구라 좋다고 생각하며 알래인은 웃었다.


"배고프네. 들어갈까?"

"그래."


두 사람이 들어가려고 했을 때 문 맞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상대방이 먼저 나오도록 우뚝 멈춰선 둘. 상대로 그걸 느꼈는지 먼저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나온 것은 선글라스를 낀 목까지 내려오는 노랑 머리의 근육질 남성.


"엥. 대장 아냐?"

"호운 씨."


호운이 알래인과 가온을 번갈아보더니 히죽 웃는다.


"아 뭐야 뭐야. 식사야?"

"그렇죠."

"그래? 들어가자 내가 한턱 쏜다."

"아니, 가시려던 거 아니셨어요?"

"아 그러려고 했는데 그게 대수겠어. 그보다 요즘 좋은 사업 아이템 없어?"


항상 일관되게 돈을 밝히는 호운. 가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뭐가 있을지 대충 생각했다.

가게 안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또 보였다. 바로 류열이었다.


"뭐야. 너 간다매...어라? 가온이?"


호운과 류열을 번갈아보는 가온. 맨날 싸우고 험악한 것 치고는 둘이 잘만 붙어다닌다. 솔직히 친한 친구 같았다.

자리에 나란히 앉은 넷. 이 가게의 좋은 점은 천막이 쳐져서 옆자리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편안한 식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원한다면 천막을 걷을수도 있었다.

호운이 대번에 천막을 걷으며 가온에게 친한 척을 했다.


"근데 대장. 다음 원정은 언제야? 우리 애들도 슬슬 투입시키고 싶은데..."


언젠가부터 가온을 대장이라 부르기 시작한 호운. 가온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젠 호운이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의아해 진 수준이다.


"가온이가 왜 네 대장이냐?"

"아 류열형씨. 좀 짜져 있어."

"이 새끼가 근데..."


투닥거리던 둘을 보던 가온이 말했다.


"곧 나갈 거에요."

"오 잘 됐네."

"그러게. 손이 심심했어."


손을 푸는 류열을 보고 웃음짓는 가온.

메뉴를 골라 주문하고 잡담을 나눈다.


"그러고 보니 대장. 내일 본부 언제 갈 거야?"

"본부요? 내일은 저 비번인데요..."

"엉? 비번인 사람들도 다 나오랬잖아?"


금시초문이다. 류열도 어? 하는 눈으로 가온을 보고 있었다.


"음...내일 본부에 커튼 사냥꾼 전부 소집령이 떨어졌는데..."

"전 못 들었어요."

"그런가...뭐, 너는 워낙 특수하니까."


류열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긴. 대장은 안 가도 되겠지. 그 시간에 커튼을 어떻게 회칠까 연구하는 게 건설적일테고...어차피 큰 행사 때마다 있는 이런 때일수록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재미없는 이야기일 텐데."

"그래도 말만 그렇게 하고 행사는 마음껏 즐기도록 풀어 주시잖아?"

"말도 안 했음 좋겠다 이거지~"


재미없다는 듯 뒤통수에 깍지를 낀 호운이 아. 하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씩 웃었다. 그리고 류열에게 눈짓하자 류열이 오. 하는 표정이 되었다.


"대장. 류열 형씨가 할 말이 있다는데."

"네?"


류열을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묻는다.


"아이나 양. 9위랑은 어떻게 됐어?"

"어떻게 돼다뇨?"

"에이~시치미 떼긴."


옆을 보니 호운도 은근히 궁금한 표정으로 가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호운이 히죽히죽 대며 말한다.


"그 왜. 1위님이 요즘 대장이랑 9위 일부러 붙여서 업무를 주잖아?"

"맞아. 너무 대놓고라고."

"어..."


아이나랑 묘하게 같이 붙어다니는 일이 많다 싶긴 했다.

그건 그냥 같은 또래라 그런 줄 알았는데, 이이협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단 말인가?


"9위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눈치고~어때?"

"어떠긴요. 그냥...친구?"

"에이~또 그런다. 하여간 대장 은근히 여자 잘 후린다니까. 그 공주님 같았던 2위도.."


퍽.


류열이 호운의 복부를 팍 때렸고, 원래라면 인상 썼을 호운도 헉 하고 숨을 집어삼킨 뒤 가온의 눈치를 보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모양이다.


"어...저기..."

"아뇨.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 어어 그럼 다행이고 하하하."

"하여간 이 새끼는..."


류열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호운이 작은 목소리로 꺼져 라고 류열에게 말했다.


"참참. 대장 어디 추천해 줄 인재 없어?"

"인재요."


원래 호운이 훨씬 발이 넓었지만 가온이 원정으로 세계구급으로 활약하다보니 어떤 일에 걸맞은 인재 찾기는 가온이 최고봉이 되었다.


"어떤 인재를 원하시는지?"

"음...어떤 행사에 쓸 건데. 일단 호위에 가까워서 전투능력도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남자답게 잘생겼고...아. 서양쪽이면 더 좋..."


말하면서 말없이 경청하고 있던 알래인을 보는 호운. 알래인이 움찔할 때쯤 호운이 소리를 질렀다.


"어! 딱이네! 딱! 와. 거 잘생겼네!"

"어, 음...감사합니다. 호운님"


타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의 칭찬에 기뻤던 알래인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보수는요?"

"아~대장 지인인데 거하게 챙겨 줘야지~"

"어? 저기..."

"해 봐 알래인. 인맥 넓히는 데 좋을 거야."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호탕하게 알래인의 등을 두드리는 호운. 둘다 덩치가 커서 곰이 늘씬한 곰의 등을 두드리는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건 그날의 즐거움으로. 대충 설명해주자면, 여사님들 비위 맞추기?"

"어...네?"


불길한 말을 들으며 불안한 표정이 되는 알래인.

그런 대화를 가온은 웃으며 듣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가게의 종업원이 가온을 알아보고 싸인을 요구했다거나 하는 트러블등등이 지나갔다.



즐거운 식사 후 나오는 길. 호운이 기어코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가온의 등을 떠밀었고 알래인도 호운과 같이 나오겠다고 가게 안에 있었다.

류열과 가온이 가게 밖에 나와 있었다.


"...나도 너랑 9위는 어울린다 생각해."

"어, 네?"


등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던 류열의 뜬금없는 말에 가온이 반문했다.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음 좋겠는데, 사람은 사람으로 잊게 되더라."

"......"

"9위. 참 좋은 여자잖아. 미모도 미모지만 능력도 출중하고. 착하고..."


가온은 뭐라 대답할 수 없이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다음말엔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가람도 너희가 그런 관계가 된다면 참 기뻐할 거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가온은 간신히 이렇게만 물었다.


"붉은 커튼이 원망스러우시죠?"

"...모르겠어."


류열이 숨을 토한다.


"솔직히 생각하면 열 받는데, 그 놈이 지금껏 목숨을 구해주거나 사람을 도운 걸 생각하면 상쇄되고...솔직히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하지만. 하고 류열이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한 방 갈기지 않고는 못 참을 것 같아."

"...그거. 금방 이룰 수 있을 거에요."

"응?"


류열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가온과 붉은 커튼은 친하니까 곧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하여간 착한 녀석. 내일은 누구랑 데이트할 거야? 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

"에이. 데이트는요."


호운과 알래인이 나올 때까지 실랑이는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리고 여러 지인들을 만나는 와중 시간은, 사흘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사흘 후.

드디어, 축젯날이 밝았다.


퍼펑. 펑.


퇴마 이씨 가문을 비롯한 유력 집안들과 커튼 본부나 시청 같은 공공 기관에서 쏘아내는 폭죽 소리가 아침부터 들려온다.


그 소리에 기상한 가온은 우드득 목을 꺾고 미소 지었다.


"가온님. 일어나셨어요?"


설애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온은 창문을 열었다.

화창한 날씨. 하지만 오후에는 잠시 비가 온다고 했다.


비.


그 날도, 비가 내렸었다.

복수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지금 나가."


설애에게 대답한 가온은 자신의 검을 허리춤에 찼다.

이제, 시작이다.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가는 가온.

그는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이이나가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가온..."


전과 달리 장난치는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가온에게 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까, 아님 목적을 위해서일까?

어쨌든 그녀의 인간다운 면모를 본 가온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드릴 말이 있어요. 얼마 전부터..."

"어머니."


이이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가온은 단 한 번도 그녀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요즘 들어서는 더욱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어졌다.

이건, 친애의 의미가 아니다.

뭔가 다른, 하지만 알 수가 없는 그런 의미.

이이나는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우리 삼촌은. 이현수는 10년전 죽었죠?"

"......."


어떻게 죽었는지 묻는 게 아니다.

이이나에게 막을 능력이 있음에도 왜 그러지 않았냐고 추궁하는 것이다.


"전..."

"한 가지만 말해주세요."

"......"

"직계가 얼마나 관련되어 있나요?"


이이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고, 그걸 다 들은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가온 그들은..."


가온이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가온을 이이나는 잡을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이나는 오랜만에 불길함을 느꼈다.







"흐아암~졸려 죽겠구만..."

"기어이 술 쳐먹고 잤냐."


호운과 류열이 다른 사냥꾼들의 대열에 합류해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대장은?"

"왜 대장이라 부르냐 대체?"

"아~능력있음 대장이지 왜. 대놓고 나보다 세고 원정에선 내 상사고, 대장이 제일 친근한 호칭이다?"

"어이구...그런데 그 가온인 어디 갔지?"


비번이지만 본부에 합류할 시간은 있었을 텐데.


"익환 형님도 안 보이고..."

"그 양반은 대장 부하잖아. 같이 다니겠지."

"뭔 부하냐. 상호존중 관계지."

"존중하는 부하 상사 관계지 뭘...혹시 알아? 대장이 9위나 다른 여자들과 신나게 하고 있을지."

"천박한 놈이..."





그리고 그 가온은, 어떤 건물의 입구에 위풍도 당당하게 입장했다

그곳은 커다란 빌라다. 빌라이자, 어떤 남자의 사유지이자 대피소이기도 한 장소.


어떤 남자란 서 의원이다.


"여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모자를 쓴 가온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양복남들이 원군을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기절하고 말았다.


가온이 지나가려던 장소의 CCTV는 전부 미리 파괴되어 있었다.

한동안 그걸 반복하자 귓가에 무전 소리가 들린다.


[가온아. 그 건물안에 더 이상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말곤 없어. 외부에서 방해가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아.]


익환은 떨떠름한 목소리였다.

뭔가 방해가 들어올 것만 같아 가온과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지만 너무 조용해서 불길할 정도다.


"조사하고 또 조사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오늘 와도 된다는 결론이었잖아요?"


그러니 안심하라는 가온의 뜻에 익환은 침묵한다.

드디어 오늘, 가온은 커튼이 아닌 인간에게 복수를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중추에 있던 방이 열리고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테이블 너머 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 의원.

평균적인 몸과 키를 가진 깔끔한 차림의 남성.


"역시 왔나..."


비장한 목소리를 내는 서 의원을 보고 가온은 천천히 걸어가 그의 맞은 편의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이가온..."

"안녕? 서 의원. 아니, 서보해라고 불러줄까?"

"날 죽이러 온 거냐?"

"아님 왜 왔겠어."


스릉. 지금껏 뽑지 않았던 검을 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져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입을 것 같은 검을 보고 서 의원이 꿀꺽 침을 삼킨다. 가온이 심드렁하게 묻는다.


"지금부터 고문당하고 죽을 건데, 감상은?"

"감상?"


서 의원이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서고, 가온도 마주 일어선다.


"자수해라. 이가온."

"뭐?"


어이가 없어 코웃음 치는 가온.


"너, 우리 삼촌을 기억..."

"개소리는 마라. 인류의 역적."

"...?"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대화가 맞물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서 의원이 겁을 먹지 않고 있다.

분명 한 달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가온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벌벌 떨고 있다고 들었는데.


"개소리야. 혀부터 뽑히고 싶냐?"

"닥쳐라! 뻔뻔한 놈...!"


엄숙한 목소리가 가온에게 삿대질을 하며. 서 의원이 외쳤다.


"붉은 커튼 이가온!!"

"....."


잠시 멍해진 그때.


파파파파파파파파팟


가온의 주위에 수많은 창이 떴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해가 안 갔다.

이 방은, 온갖 카메라와 CCTV로 점철된 방이었다. 그것도 현재 진행형으로 어딘가로 송출되고 있었다.


어디로 송출되는지는 수많은 화면들이 말해주었다.

어느 화면에나 수많은 사람들...그것도 각국의, 익숙한 얼굴들이 가온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큰 화면에는, 레임의 얼굴이 있었다.


[이가온. 세상 사람들을 기만한 것도 모자라 나라를 짊어지는 자를 죽이려 하다니...]


레임의 재밌다는 듯한 목소리가 울린다.


[너의 만행. 지금 전 세계가 보고 있다!]


치직. 무전이 울린다.


[가온아...! 지금 뉴튜브에,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온갖 플랫폼의 실황에 지금 네 상황이 송출되고 있어! 일단 거기서 무마하고 빠져나...]


치직...무전기가 끊긴다.

멍한 표정의 가온을 보고, 레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누가 누구를 죽인다고? 애송이?]

"......"

"자, 이가온! 네놈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정당한 법의 절차를 받고 사죄를 하라!"


여전히 엄숙한 말로, 굳은 얼굴로 정의로운 척 포장하는 서 의원.

그리고 화면속...류열들. 미헤유들. 엘미리오...알래인, 퇴마 이씨 가문의 직계들...이이협. 가영. 가은...각 국의 인연들과 친구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온은 푸핫 웃었다.


"아, 뭐야."

"무엇이긴? 네 죄가 밝혀지는 것이지!"


서 의원이 다시 삿대질하며 팔을 뻗었고, 굳어버렸다.

가온의 주술에 압박당한 것이다.


[허세는 그만 부려라 이가온. 지금 그곳으로 우리 자랑스러운 사냥꾼들이 가고 있으니 얌전히 투항해라. 포로를 잡을 생각은 말아라. 그분인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신 분. 위해는 용서 못한다.]

"....."

[마스터...지금 근처에 마녀의 반응이 있습니다. 이건...이건...한 달전. 천리안 이자견이 죽을 때 관여했던 그 마녀입니다...!]



웃겨 죽을 것 같았다.

연극같은 레임의 말투도. 엄숙한 목소리로 포장하는 서보해도. 이 지경이 될 떄까지 놔주었던 자신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도. 믿을 수 없게 된 사람도.


무엇보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자신의 진의를, 진정으로 바래왔던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이, 이가온...! 당장 투항하라...! 나는 절대 폭력에 굴하지 않는다. 국민들을 기만한 너에겐 절대로...!"

[그 말대로다 이가온. 당장 투항해라. 그렇지 않으면 사살도 불사...]


말하고 있는 레임을 보며. 가온이 씨익 웃는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들어올린다.

멀뚱히 보던 레임이 한숨을 쉰다.


[허세는 그만 부리라고 했을텐데? 어린애가 따로 없군...그 나이대면 어른이나 다름없지. 어른답게 행동해라.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특별해진 것 같나?]

"맞아 이가온...! 지금이라도 죗값을 치루겠다고 천명하면,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


서걱.


"...어?"


서보해가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본다.

없다.




"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제야 주술의 압박이 풀리고 그에 따라 피의 분수가 사방의 카메라에, 가온에게 튀었다. 그 피를 뒤집어쓰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가온.

쓰러지며 뒹구는 서보해를 보며, 굳은 표정의 레임을 보고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좆이나 까잡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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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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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쥐(誓) 바람의 결말. 20.08.30 157 3 19쪽
375 세계와 내면의 진실 (2) 20.08.29 158 2 16쪽
374 세계와 내면의 진실 (1) 20.08.28 161 3 24쪽
373 절대적인 신(神) 20.08.26 155 3 15쪽
37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3) 20.08.25 173 3 13쪽
371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2) 20.08.24 164 3 14쪽
370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1) 20.08.23 161 3 15쪽
369 소원권 (2) 20.08.22 161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3 3 23쪽
367 동기부여 20.08.21 165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5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2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60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8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70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6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8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6 3 19쪽
» 파멸? (3) 20.08.11 175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8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70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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