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TE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최근연재일 :
2020.09.01 23:59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64,474
추천수 :
2,936
글자수 :
2,335,429

작성
20.08.21 01:57
조회
164
추천
4
글자
27쪽

동기부여

DUMMY

확인하러 가자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오자 마자 껄끄러운 상대와 만나버리고 만 가온.


"......"

"......"


상대 또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침묵하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왜 고개를 끄덕인 거지? 하고 의아해 하는데 피터가 귓속말을 했다.


"사과하는 거야. 받아주면 어떻겠어?"

"아...사과?"



사과? 사과를 받을 만한 일을 했었나?

서로의 일을 중시하여 싸웠을 뿐인데. 하지만 피터의 말대로인지 치렁치렁한 하얀 옷의 은발이라는 눈에 띄는 앳되보이는 인상의 미녀는 가온의 대답을 기다렸다.

가온은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음...딱히 사과할 필요도 받을 필요도 없는 것 같지만. 이쪽도 미안했...습니다. 엘리제."


반말을 할지 존대를 할지 고민하다가 존대를 했는데 미국의 정부공인 순위권자 엘리제는 기쁜듯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녀석들은 바빠서 대신 전해달래. 미안했다고."

"다른...아."


그때 싸웠던 정부공인 순위권자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들에게도 사과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온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엘리제는 사과를 위해 이 앞에서 기다린 걸까? 얼마나?"


'...아니, 애초 이들이 나한테 사과를 한다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분명 기절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범죄자 취급 아니었나?

그때 가온을 감쌌던 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원정대는? 알래인은? 류열과 호운을 비롯한 순위권자들은? 퇴마 김씨 가문과 가온의 가족들은...그리고, 신우는?


에메라나 안내 시스템이 무사한 것을 보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내색할 순 없다.

지금은 호의적인것처럼 보여도 눈앞의 엘리제도, 피터도 언제 변심할 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항~나의 주인님 께서는 주인님의 친우들이 걱정되시나 보군?"

"!"


정곡이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피터는 가온이 그러든 말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웃었다.


"이야아~역시 역시. 말로는 다 버려도 괜찮다고 했지만 정이 있는 분이라니까. 그들부터 보는 게 좋겠군. 곧 만나러 갈 테니 준비해. 나도 나름대로의 채비를 하고 오겠어."


으하하 웃으며 멀어져가는 피터.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가온.

세 여자와 가온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안내시스템과 엘리제와는 좀 어색해서 눈치를 보는데 엘리제가 별안간 뭔가를 들이밀었다.

깜짝놀라 몸을 뻈다가 보니 어떤 영상이었다.

연설로 추정되는 장면이다.


"이게 뭐죠?"

"피터의 연설."

"......"


가온은 잠자코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영상을 시청했다.

기자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피터! 당신은 그럼 이가온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 그렇게 여긴다는 겁니까?!]

[네.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


내가 잘못 들은건가 싶은 가온이 저도 모르게 세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세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똑바로 본 것이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다시 영상을 본다. 피터가 싱글거리며 말한다.


[올바른 자들이라면 모를까 인류의 생존을 위해 애썼던 이들을 욕심 때문에 희생시키려는 자들입니다. 죽어도 무엇이 문제죠? 특히 그 피해자가 세계의 구원자인 이가온 군인데!]

[무슨! 살인을 정당하고 옹호하겠다는 겁니까!]


그러자 피터가 손을 들었다. 좌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주술이 아니다.

단지 싱글거리던 그가 얼굴을 굳히고 진지해졌다는 것 만으로 좌중이 압도되었다.


[가온군은 세계의 구원자. 단언하죠. 그의 조력을 잃는다면, 우리 인류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그와 같은 자는 앞으로 절대로 나오지 않아요. 이건 수많은 연구로 도출해낸 결론입니다.]


좌중을 둘러본 피터가 말을 이어간다.


[까놓고 말하죠. 가온군이 여왕의 영역을 없애는 것을 멈춘다면, 십이지신이라는 괴물과 싸우지 않겠다고 한다면 누가 그걸 대신할 수 있지요? 설마 가온군을 압박하고 고문, 실험이라도 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게 하자...그런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그거야말로 비인도직이고 은혜를 모르는 짓이며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피터가 힘있게 단상을 내리친다.


[그의 힘은 그만의 것! 어떤 원리인지 알아낸다 해도 우리가 쓸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재해나 그 이상의 힘이 어찌 일어나는지 안다해도 이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가온군은 혼자서도 세계를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실력자. 대체 어떻게 그에게서 힘으로 조력을 얻겠다는 것입니까? 앞서 그가 싸운 영상들을 보면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얼마든지 아실 텐데요.]


침묵하고 있는 좌중을 다시금 둘러보던 피터가 활짝 웃었다.


[다시 질문 받습니다.]


그제야 압박이 풀린듯 서로 눈치를 보던 기자들이 입을 열었다.


[커튼을 상대하는 것은 의무인데...]

[그럼 제가 지금 기자님에게 기자의 의무를 다하라고 전쟁터에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진실과 현장을 알리는 것이 기자의 의무이지요?]

[그, 그건 경우가 틀린...]

[같습니다. 여왕의 영역을 탈환하는 것도. 십이지신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지금껏 자발적을 그걸 해왔던 가온군이 이상하리만치 성인인 것입니다. 음...아무래도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네요. 그럼 이렇게 하죠.]


피터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앞으로 가온군을 압박하는 나라에는 저희 미국의 커튼 본부와 피터 재단, 그리고 이가온군과 관련된 모든 기관은 일절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다.]


놀라서 굳었던 좌중이 이내 소리를 지른다.


[협박하는 거야?!]

[저 자식 끌어내!]


하지만 피터가 이은 말에 모두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보에 따르면 이곳 미국에도 십이지신 하나가 잠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계산에 따르면 나흘이면 능히 미국을 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린 일절 돕지 않겠습니다.]


썰렁해진 현장에 대고 피터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어떻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엔 진실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고 가온은 입을 쩍 벌렸다.


"지금 밖에 나가면 돌 맞는 거 아니야?"


이건 사태를 악화시킨 것 아닌가? 저렇게 나왔는데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에도 엘리제가 말없이 다가왔다. 좋은 향기가 훅 들어와 몸을 뺴니 또 붙어온다. 가온의 근거리에 붙어서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내리니 댓글란이 나온다.



[와...힘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이건가. 진짜 너무하네.]

[개 쓰레기들이네 ㅋㅋㅋㅋㅋ]

[다 밝혀지기 전까지 중립기어 넣으련다.]

[중립기어는 무슨 중립기어? 쿨한척 하지 마세요.]

[링크 달아둡니다. 이걸 보고 판단하세요.]

ㄴ[이거 보니까 이가온이 불쌍한데?]

[개 쓰레기들이네 ㅋㅋㅋㅋ]

[이가온 어릴 때 쫒겨나고 온갖 고생한 거 다 저새끼들 짓이란 거잖아. 인과응보네.]

[우리 집 강아지랑 놀면서 보고만 있던 내가 승리자다.]

[링크 봤음. 그래도 살인이 옹호할 짓임??]

ㄴ[진짜 애새끼들 현실 볼줄 모르네. 야. 이가온이 잘못됐든 아니든 쟤가 사람들한테

등 돌리면 우리만 손해야. 진짜 사람들이 왜 그리 주제를 모르지?]

ㄴ[네 다음 이가온.]

ㄴ[내가 이가온이라고?ㅋㅋㅋ 내가 실명은 못까도 다른 건 다 까줄 수 있다. 내 통장이랑 직업이랑 사무실이랑 인증해 줘?]

ㄴ[ㅇㅇ 해보셈.]

ㄴ[이 새끼 100퍼센트 일침충 백수임.]

ㄴ[옛다. 평생 1억도 못 모으는 새끼들아.]

ㄴ[와...20억?]

ㄴ[내가 병신이라도 평생 1억도 못 모으는 니네보단 덜 병신이다. 그래서 충고해주는데 현실을 봐라 애새끼들아. 당장 내 지인이 이가온이 등 돌리면 얻는 손해에 대해 설명해 줬는데 진짜 상상 이상이다. 쓰레기들 옹호하려고 진 뺴지 마라.]



가온은 거기서 다시 위로 올리고 링크에 들어가 보았다.

거기엔 가온이 어떤 어린시절을 겪었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글과 동영상등이 수없이 개재되어 있었다.


"가관이네."


욕하는 자. 옹호하는 자. 그리고 이때다 싶어 현실을 들먹이며 거들먹거리는 자까지.

무조건 적으로 욕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뭘 어떻게 한 거지."

"피터가 손을 썼겠지."

"네?"

"피터는 미국은 물론 세계의 부나 인맥을 꽉 잡고 있으니까...거기에 두 가문의 조력까지 있었으니 의외로 쉬운 일이었을지도."

"어..."

"어떻게 했는지는 피터에게 직접 들어."

"아...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친학 척이지. 내심 엘리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에메라와 안내 시스템이 그녀를 밀어내듯 가온의 곁에 섰다.


"흐음."


엘리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싱긋 웃고, 안내시스템은 순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듯 고개를 떨궜고 에메라는 무표정으로 답했다.


묘하게 불편했던 가온은 피터가 언제 오나 기다렸다.

결국 그에게 물어야 현 상황에 대헤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색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는동안 배려인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가온 님."


비서로 추정되는 여러 서양 미인들이 달라붙어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한다.

하지만 워낙 예쁜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서 그런가 가온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다 드셨는지?"

"네."

"그럼 모시겠습니다."


그들을 따라가자 피터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의 뒤에는 퇴마 이씨 가문이 행사를 할떄 동용하곤 하는 뭐 이리 기다랗지? 싶은 차량이 있었다.


"이야~역시 씻고 갈아입으니 신수가 훤한 걸?"

"......"

"다 모여있어.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러 가자고. 주인님이여. 주인님의 궁금증은 차 안에서 전부 풀어주지."

"아, 네. 그런데..."


가온은 주위를 힐끔 보았다가 그냥 차량 안에 탔다. 굳이 밖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고 차량 안에서 제법 긴 시간을 소모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하게 푹신한 시트를 느끼며 팔짱을 낀다.

아직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복수를 위해 뛰어가야 할지, 아님 상황을 지켜봐야 할지 고민된다.


"나의 주인님이여. 복수는 차근차근해도 돼. 그런 건 느긋이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저기, 왜 절 주인님이라 부르시는 겁니까?"

"응?"


솔직히 남자가 그러니까 징그럽다 못해 소름돋을 지경이다. 피터가 여자처럼 곱상한 얼굴이 아니라 우락부락했다면 진작 말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여자가 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으음...하지만 자네라고 불렀다간 내가 너무 불경하고..."

"상관 없습니다."

"나의 주인은 이해심도 깊군."

"그러니까..."

"알겠어 알겠어. 그럼 내 동생이라고 하지. 그 정도야 괜찮지?"

"...그렇게 하세요."


항의해 봤자라고 생각한 가온은 포기하고 답한 후 이번엔 궁금한 점을 물었다.


"무슨 마법을 쓴 겁니까?"

"음?"

"사람들이 절 욕하지 않는 게 신기한데요. 거기다 연설하시는 것 까지 봤는데 그건...차라리..."

"도발이다? 진실이지."


피터의 대답에 가온은 벙쪄버렸다.


"어떻게 했냐면...그냥. 받은 걸 그대로 되돌려 주었어."

"그대로 되돌려...?"

"조작을 당했으니 이쪽도 조작이지. 망상증이니 뭐니 하는 슬플 정도로 조잡한 명분 같은건 전부 지워버리고 이쪽의 안타까운 사정을 퍼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이용해 동생을 동정하고 우대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동생을 욕하고 미워하는 주제도 모르는 자들이 이상한 것이라고 여론을 몰아갔지."

"......"


말은 간단하지만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과 돈이 들었을까?

하지만 눈앞의 피터라는 사내에겐 아주 쉬운 일인 듯 했다.


"결과, 지금은 넷상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지. 그것도 빠르게 자네의 편으로 기울고 있어."

"일이 그렇게 쉽게..."

"의외로 돼. 왜냐면 그들은 물어뜯고 미워할 게 필요한 것 뿐이거든. 대신 물어뜯을 것을 준비했으니 그쪽으로 이목이 쏠리겠지."

"대신...?"

"내 조국과 레임이지."

"......"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조국을 미끼로 이용했다는 말을 하는 피터.

가온의 시선을 눈치챈 피터가 쓴웃음 지었다.


"나라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게 내 조국을 위한 일이지. 동생을 지원하고 돕는것이 우리 나라, 전체적으로는 인류를 위한 일이니까."

"그건...너무 과대평가 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 어떤 영상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빠짐없이 한 말이 있지. 동생을 잃으면 이제 인류에는 희망이 없다고...난 정말 그렇게 느꼈어. 자네는 현 인류가 멀쩡할 때 십이지신과 대등할 수 있는 유일한 자니까..."

"......!"


가온은 피터를 어디서 봤다고 생각했고, 입밖으로 꺼내 물었다.


"역시 피터. 당신은 그 대회의 때..."

"맞아. 대회의 때 아래에서 동생을 초롱초롱 바라봤었지. 이야아~대단했어. 그 존재들과 대등히 이야기하다니...솔직히 십이지신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신이나 마찬가지잖아?"

"......"

"인류의 최강자들 중엔 유일하게 관람권이 있지. 고작해야 그것 뿐이지만...어쨌든 난 그때부터 자네의 광팬이었어. 그들과 대등하게, 아니 오히려 우위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당시 난 꽤나 절망하고 있었거든."

"절망?"

"내가 아는 건 나중에 한꺼번에 말해 주겠어. 지금은 원수들에 대해 궁금하지?"

"...그렇죠."

"그들은 일단 일상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었어. 하지만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했지. 어떤 쾌락도 즐기지 못하게 하고 말이야.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겠지."


언제라도 죽이러 갈 수 있다고? 피터가 흐뭇한 듯이 말했다.


"아니면 원하는 곳으로 포장해 줄 수도 있어. 가령 동생이 올리버를 가두었던 곳 같은?"

"흐음."


가온이 올리버를 가두어 놓은 장소는 커튼 본부의 후미진 곳이었다.

딱히 불법적인 일도 아니라 모두 가만히 놔 두었었다.


"그런데, 여론 조작만으로는 의심하는 사람도 나올 텐데..."

"아직도 그 걱정인가? 걱정 말게. 실질적 위협을 느끼면 입을 다물게 되어있어."

"실질적 위협?"

"음. 커튼이 한 짓으로 위장해 상당히 많은 도시를 파괴했지."

"......"


미친놈이다. 가온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동생~사망자는 한 명도 없이 위협만 했고 나중에 내 돈으로 다 보상했으니까."

"그런가요."

"그래. 어쨌건 감히 건드리기 힘든 자를 대신하여 물어뜯을 대상, 실질적인 위협까지 겹쳐지니 누구도 동생을 건드릴 생각을 못해. 거기다 그날 마지막에 자네가 했던 말은 꽤 심금을 울렸던 모양이야. 나처럼 말이지."

"마지막 말?"

"뭔 일이 있더라도 커튼은 다 죽일 거라고."

"...그랬었죠."


어쩐지 흑역사가 들춰지는 기분이다.


"자, 다 도착했네. 이야기는 또 이후에 할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피터의 말대로 차가 멈췄다. 최근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층 건물이었다.


"금방이네요?"

"동생이 깨어나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도록 가까운 장소에 임시 본부를 만들었지. 그런데...혹시 가족은 만나기 싫은가?"


차에서 내리려던 가온이 우뚝 멈추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좀..."

"음. 동생 가족도 그런 모양이야. 그래도 동생의 자매들은 꽤 만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며 껄껄 웃은 피터가 먼저 내리더니 가온이 내릴 수 있게 손수 문을 열어준다.


"다, 당주님."

"어허."


비서가 말리려는 듯 다가오는 것을 엄한 얼굴로 질책하듯 바라보는 피터.

가온은 어색했지만 따르지 않았다가 더 어색한 일을 당할거란 예감에 순순히 내렸다.


그리고 들어간 곳에서는 그리운 얼굴들이 맞아 주었다.



"가온!"

"아. 이가온..."

"가온 씨!"


알래인. 엘미리오. 미헤유 등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이쪽으로 우다다다 달려온다.

나머지 멤버들도 놀란 토끼 눈을 했다가 천천히 접근해왔다.

앉아있던 대부분은 이가온 원정대의 멤버들. 정확히는 마인이나 로베르트등의 인물들이었다.


가온이 왔다는 것을 알자마자 곧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괜찮은 거지?"

"응..."


알래인이게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가온 그런 그를 의아하게 보면서 알래인은 굳은 목소리로 말한다.


"난 살인이 옳다고는 못 하겠지만...그래도 널 믿겠어."

"고맙...다."

"저는 대장님이 그렇게 무책임 하실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황석필이었다. 그도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책임을 묻는 말에 마음임 무거워졌다.


"하지만, 돌아오셨으니 됐습니다. 다음부턴 저희도..."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훈훈하게 끝내려는 찰나 미헤유가 그를 밀쳐 허푸억? 하는 이상한 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가온 씨이이...그때 왜 심한 말 했어요오오..."

"저기...그건..."


하지만 그녀는 말없이 안겼고 곧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졌다.


"그래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쁜 거예...어, 어라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밀어낸 듯 부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미헤유. 그녀는 곧 표독스럽게 가온의 양 옆에선 에메라와 안내 시스템을 노려보았다.


"아니, 저기..."

"하하하. 역시 내 동생. 인기도 많아!"


피터의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이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찰나였다.


"가온아."

"......"


어색하게 그를 부르는 두 사람. 가온도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그곳엔 가은과 가영. 거기다 둘 뿐만 아니라 일반인인 한나. 그 동안 통 모습을 보지 못했던 영아와 지영까지 있었다.


그들 모두 어딘가 어색한 얼굴들이었지만, 곧 가온에게 달라붙어 걱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받으며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가온.


이제 와서 감정을 폭포처럼 쏟아내던 것이 창피해진 것이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가영과 달리 가은이 성큼 다가왔다.


"우린...그동안 잘못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렇지."


그들은 몰랐을 뿐. 무지가 죄는 아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를 섭섭함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이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건...


"그래도...네가 옳았다는 생각은 해."

"...!"


가은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미안했어."

"...아니."


그건 얼마나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사과일까.

가온은 저도 모르게 코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한 때는 다 버리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러니까..."


가영의 눈치를 보며 창피해 죽겠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가은.

가온이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가은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앞으로는 잘 지내보도록 서로 노력해보자 오, 오, 오오오오..."

"오?"

"...쁘아..."

"......"


주위가 푸핫 뿜어버렸고 가은이 화를 냈다.

아직, 친해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가온은 뭔가를 다시 손에 넣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피터가 그를 데려간 곳은 밝은 방이었다.

위험한 자를 수감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꾸며진 방. 솔직히 가온의 방보다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소녀를 감시하듯 바라보던 자가, 둘.


각각 퇴마 이씨 가문의 부당주 이이나와 퇴마 김씨 가문의 직계이자 당주 자리를 물려받을 예정인 현미였다.


"가온~"


이이나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가온에게 뛰어오려고 했고 그보다 한 발 빠르게 현미가 다가왔다.


"깨어났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바로 갈 순 없었다. 미안하다. 요즘 격무가..."

"격무 따위를 핑계로 대다니. 사랑이 부족한 거 아닌가요~"

"어, 어머님..."

"어머나. 전 당신 어머님이 아닌데요~"


지켜보던 가온이 말했다.


"김일씨랑...아버지는?"

"커튼 본부 일 하러 갔지요~되게 혼돈스러운 상황이니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하니까. 우리도 놀았던 건 아니지만요~마녀 네 사람이 번갈아가며 지켜봤거든요?"


칭찬해 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양어머니를 대충 상대하고 가온은 유리 너머로 말을 걸었다.


"몸은 좀 어때?"

"아핫. 깔끔히 붙었답니다~개인적으로는 가온씨가 내 주신 거니 그대로 둘까도 했지만요~"


생각 이상으로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것은 절세의 미모를 자랑하는 소녀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온의 친구이기도 했던 소녀다.

바로, 신우.


"절 만나러 오실 줄 알았어요~"


유리창에 달라붙는 그녀를 경계해선지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여유로운 건 이이나 정도. 어쩌면 그녀도 평정을 가장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역시, 아직 저에게 미련이 있으신 거죠? 그렇죠? 저는...여전히, 아니,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요..."


대답이 없는 가온이 불안했던 것일까. 눈동자가 어두워지며 횡설수설을 시작한다.


"생각해 봤는데, 절교하자는 건 친구관계는 싫다는 거죠?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한다는 말인거죠? 꺄아~"

"...가온 씨."


에메라가 가온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적어도 지금의 그녀는 대화할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가온 씨에게 손 대지마! 이 벌레가!!"


콰앙!


특수하게 만들어지며 항시 주술이 주입되는 강화 유리가 순식간에 팽창한다.

마녀들이 힘을 내뿜지 않았으면, 진작 터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도 태연했던 가온은 조용히 말했다.


"또 올게."

"네? 가시는 거에요? 벌써요? 왜요?"

"네가 난리 피우지 않으면 길게 있을 거야."

"왜요? 왜? 그냥 여기서 살아요. 저랑 같이 있어요...여긴 너무 갑갑해요 가온씨."


눈물을 흘리면서 가온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어보지만 가온은 무시했다.

그게 연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가지 말아요...가지 말라고!!"


콰앙!


또 한번 힘이 팽창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어볼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있었지만, 심정문제가 더 컸다.



바깥으로 나온 가온을 따라온 것은 에메라. 한나. 알래인 등이었다.

한나는 특별히 신우를 보고 싶다고 하여 따라왔지만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야...에메라."

"네?"

"네 예언. 틀렸네."


그러자 에메라가 싱긋 웃었다.



"애초에 그건 당신이 반 초월자. 반 필멸자일 때 내려진 예언. 십이지신과 대등, 혹은 초월한 몸체를 가졌을 때부터 뒤틀려진 예언이랍니다."


믿었던 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은 결국 맞지 않았다.


"그럼 진작 말해주지 그럤어?"

"하지만, 이게 좋은 일일지는.."

"왜?"

"...예언을 깬다는 건 보통이 아니라 그 자의 견제를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자라."


지금은 머리 아픈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기적처럼 남은 지인들에 감사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알래인에게 묻는다.


"왜 날 도왔어?"

"어? 아니...뭐 여러가지로..."


이득일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려던 알래인은 가온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머뭇거리다 답했다.


"너 전에...너희 가문 사람이 나에게 시비 걸었을 때 내 친구라며 도와줬잖아. 힘든 상황에서 친구라면서..."

"......"

"나도 그랬을 뿐이야..."


쑥쓰러운 듯 볼을 긁적이는 알래인을 본 가온은 침묵했다.

딱히 힘든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는 인생까지 건 것이다.


"미안해 할 것 없어."

"......"

"네가 나에게 해준 게 별게 아닐지라도, 나에겐 특별했으니까..."

"...그랬나."



가온이 후우.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쉬었다.

분명 신우도 그런 친구였을 텐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필히 해치워야 하는 적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가온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살기가 섞여 있었다.

정확히는 한참 전부터 있었지만 일부러 가온이 외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난, 널 용서못해."

"...그래. 언젠가, 날 죽여. 내가 원수를, 커튼을 다 죽였다면...그때라면 좋아."

"무슨!"

"가온!"


주위에 있던 한나나 알래인이 외쳤지만 가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쓴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그녀는, 아이나는 울고 있었다.


"그런데...베지도 못하겠어."

"!"

"난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침묵이 지나갔다.

결국 가온은 아무런 대답도 해 줄수 없었다.



아이나와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모두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만나기를 기약하고, 가온은 특이한 자를 만나려 하고 있었다. 누굴 만나러 갈지 묻는 피터에게 말하자 따라가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같이 가자고 했더니 끙끙거리다가 포기했다.


"동생에게 우호적일진 몰라도 나에겐 틀릴 가능성이 높거든."

"그런가요."

"아~그리고 눈치챘겠지만. 레임은 도망쳤네."

"......"


그의 수하들은 투항했지만 레임은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후일을 기약하면서...

하지만...


"뭐...정상적인 생활은 힘들테지."


피터는 씁쓸한 것 같았다. 나름대로의 정이 있는 듯 했다.


"어쨌건 놓친건 미안하지만 동생이라면 곧 잡을 테니까...그리고, 그만한 자는 모든 걸 직접 하고 싶지?"

"...감사하군요."


어쩌면 피터는 일부러 레임은 놔준 걸지도 모른다.

가온에 의해 더욱 가혹한 벌을 받기 위함으로....


그의 진의는 모르겠지만, 차차 알아가면 될 일.

가온은 오랜만에 어떤 장소에 왔다.

오자마자 짓눌리는 듯한 중압감을 느꼈지만 상대가 작아지면서 중압감은 곧 사라졌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투정부리는 상대에게 가온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몇 백년도 근시일 아니었나?"

"아니~그건 그거! 이건 이거!"


십이지신 소가 뾰루퉁한 듯 볼을 부풀린다.


"뭐...이번엔 고생한 모양이네"

"나름대로..."

"뭣 떄문에 왔는지는 알겠네. 이야기해 볼까?"


한동안 이야기를 하던 중. 소가 문득 말했다.


"지금 네 동기는 복수밖에 없는 것 같네."

"...그거 말고 다른 게 필요한가?"

"필요하지. 넌 소원권이란 걸 정말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같으니까."

"소원권..."


그러고 보면 그런 게 있었다고 가온은 떠올렸다.

십이지신과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으로 어떤 존재에게 빌 수 있는 비원.


"그 삼촌이라는 자나. 이자견이란 마녀를 살리는 걸 소원으로 비는 건 어때?"

"...뭐?"

"가능할 걸? 말 그대로 뭐든지 이뤄주니까."

"......"



그건, 생각도 안 해봤단 이야기였다.

가온의 가슴이 조금이지만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들을...살릴 수 있어?

어쩌면. 지금까지 죽어온 자들을. 기현이를. 영민을. 케인을. 가람을...

살릴 수 있다.



쿵. 쿵. 쿵.


심장박동이 뛰는 가운데. 누구도 모르는 곳, 가온의 내면에 있던 마우스가 히죽 웃는다.


[끝의 시작인가.]






그리고,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작가의말

이제 곧 완결이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부를 완결했네요. +3 19.05.15 300 0 -
공지 수정 시작했습니다... 18.08.08 341 0 -
공지 잠깐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것 같네요. +6 18.04.03 469 0 -
공지 주말은 올리지 않습니다... 17.10.28 870 0 -
379 새로운 시작. (完?) +3 20.09.01 212 4 27쪽
378 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20.09.01 153 3 30쪽
377 소(牛) 토끼(兎) 양(羊) 닭(鷄) 뱀(蛇) 돼지(豚) 말(馬) 호랑이(虎狼) 용(龍) 고양이(猫) 20.08.31 157 3 26쪽
376 쥐(誓) 바람의 결말. 20.08.30 156 3 19쪽
375 세계와 내면의 진실 (2) 20.08.29 158 2 16쪽
374 세계와 내면의 진실 (1) 20.08.28 160 3 24쪽
373 절대적인 신(神) 20.08.26 154 3 15쪽
372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3) 20.08.25 173 3 13쪽
371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2) 20.08.24 164 3 14쪽
370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 (1) 20.08.23 161 3 15쪽
369 소원권 (2) 20.08.22 161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3 3 23쪽
» 동기부여 20.08.21 165 4 27쪽
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4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71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60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7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69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6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7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5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4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7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69 3 17쪽
355 파멸의 징조 (3) +1 20.08.08 175 4 15쪽
354 파멸의 징조 (2) 20.08.07 172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