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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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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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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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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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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화 : 추적(Pursuit) (2-3)

DUMMY

* * * *


다음날, 1988년 1월 3일 일요일 21시 15분.

강원도 고성군, 가진리 인근.


흔들리는 차 안, 희미한 조명 아래 최지훈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지수의 말 그대로였다. 북한 측 볼리셔니스트들은 다시 예지망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치 보란 듯 뚜렷한 의지를 뿌리며 고성군 근처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형이 호수에서 바다로 바뀌었다 뿐이지, 상황은 그때와 비슷했다. 바다는 바위 위에 하얀 눈처럼 얼어붙은 채 내려앉아 있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파도는 굉음을 내며 백색의 바위 끝을 부술 듯 넘실거렸다.


최전방과 가까워 경계도 삼엄한 이곳을 이동 장소로 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이 이동하는 이상, 사냥꾼들도 이동해야만 했다.


7번 국도를 타고 가던 사냥꾼들의 차량이 멈췄다. 예지대로라면 적들은 가진항 인근으로 이동했을 터. 대략 남은 거리는 1km 남짓. 이제부터는 천천히 신중하게, 걸어서 접근해야만 했다.


해안에 쭉 깔린 철책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그림자는 순찰 도는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 쓸 것이 많았기에 전진속도는 더뎠다.


“이제 슬슬 나타날 거야. 숨어.”


서준호의 말에 다들 해안의 바위 그림자에 모습을 숨겼다. 이 근방에서 군 생활을 한 서준호는 순찰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봐가며 세심하게 이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잠시 뒤 백사장 건너 항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대략 500m 정도가 남아 있었다. 밤이 되어 출항하는 배들이 오가는 항구는, 추위를 무색케 할 정도로 활기차 보였다.


그리고 예지대로라면... 적들은 저 항구 근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이때 길잡이를 하던 서준호가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뒤의 다른 사람들 역시 상체를 숙였다. 서준호 뒤를 따라가던 최지훈이 말했다.


“왜?!”


서준호는 대답 없이 손을 뻗어 방파제 끝을 가리켰다. 쌍안경을 꺼내든 최지훈이 그 부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그란 시야 안으로 방파제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세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


그들이 걸음걸이를 드러내는 의미는 확실했다. 자신들이 볼리셔니스트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은 모르는 어떤 신호 같은 이 행동은, 지금 자신들이 여기 있으며 그걸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건방진 새끼들이... 유세 떨고 있군.”


최지훈이 쌍안경을 박지연에게 넘기며 이를 깨물었다. 받아본 그녀 역시 특징적인 걸음걸이에서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고마 꼼짝 말고 있자. 알았제?”


박지연은 혹 최지훈이 튀어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말했다. 하지만 그는 뭔가의 분을 삭이지 못한 듯, 험악한 표정을 지어가며 방파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박지연은 맹렬한 분노를 드러내는 그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적들의 위치를 특정했으니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해안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송림으로 울창한 언덕 위였다. 물론 관측을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10분쯤 뒤, 사냥꾼들은 소나무 그림자가 가득한 언덕 꼭대기에 진을 쳤다. 적들은 여전히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방파제 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마치 들어올 거면 빨리 들어오라는 느낌이었다.


이때였다. 계속해서 쌍안경을 들여다보던 최지훈의 표정이, 흡사 꿈틀거리듯 굳어갔다.


“저, 저놈들이...!”

“왜?!”


서준호의 물음에 최지훈이 토해내듯 외쳤다.


“광학위장이다!!”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시 한 번 적들이, 투명한 망토 뒤로 몸을 감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쌍안경 시야가 사방팔방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적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방파제와 그 주변은 다시 원래의 분위기를 찾아갔다.


마치 이쪽의 시선을 알고 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이제 우짜노?”


싸늘한 분위기가 번져갔다. 도통 적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살기를 뿌려가며 호기롭게 남한으로 내려올 때는 언제고, 지금은 교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피해만 다니다니.


“예지에서 이동과 살의가 비슷하게 잡혔다는 게 이런 의미인가?”

“미적지근한데...”

“일단 수장 말씀대로 철수하자. 놈들이 눈치 채고 저랬을 수도 있는 거 아니가?”

“시팔!”


최지훈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바닥을 두드렸다. 보아하니 그는 수장에게 혼난 것과, 그것을 만회할 기회를 애타게 노리는 것 같았다. 박지연은 불안해 보이는 그를 달래듯 말했다.


“고만하고 일어나자.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송림 사이로 부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시끄러웠다. 두런두런한 말소리가 오가는 동안에도, 강원도의 겨울바람은 칼날처럼 그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 일어나자.”


포기하는 것 같은 최지훈의 말이었다. 그가 포기함에 따라 그렇게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바람소리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좋은데. 이렇게 빨리 찾다니.”

“?!”


놀람과 함께 다섯 명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기척도 없이 다가온 남자의 모습은 숲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큰 키와 안정적인 걸음걸이에서 위험한 기색이 묻어났다.


“누... 누구냐!”


놀란 최지훈이 칼을 꺼내며 외쳤다. 칼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바람소리 밑을 치고 들어갔다. 하지만 양복의 남자는 손에 든 무언가를 고쳐 쥐며 짧게 대답했다.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남자의 손에서 칼날이 솟아올랐다. 쌍두(雙頭)의 날이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칼날은 어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짙은 갈색을 흩뿌리며 찢어지듯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


칼날이 전개되는 소리,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 충격파에 날린 흙먼지... 온갖 소음과 들끓는 어둠은 삽시간에 이곳을 전투 현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상어와 사냥꾼들이 접촉하기 약 1시간 전, 20시 58분.

속초 시내 어딘가의 다방.


“김 사장님 앞으로 온 전화예요.”

“고맙습니다.”


마담에게서 쪽지를 받아든 지수가 생각에 잠겼다. 그릇의 탐색을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온, 수장부에서 온 전화 내용이었다.


‘고성 가진항, 대응 이동 중, 상어 미확인.’


구체적인 내용은 고성 인근으로 적들의 이동 예지가 있다는 말과, 관측을 위해 사냥꾼들이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말해 놓은 것도 있으니 일반적인 대응으로 볼 수 있었다.


헌데 위치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가진항이라면 속초 위쪽의, 거의 최북단에 위치한 곳이 아닌가. ‘남침’이라는 목적으로 본다면 좀 더 남쪽으로 내려와야 되는 게 맞지 않을까. 거기다 상어 관련 예지는 여전히 전무한 상태. 지수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는 그릇 탐색에 지친 몸을 잠시 소파에 기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목적이 뭐지?’


지금 적들이 보여주는 행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흔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교전을 유도함이 마땅했다. 위기감을 높이고, 이쪽 전력을 묶어둘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교전을 앞두고 도망쳤다. 그리고 남쪽도 아닌 동북 끝단의 작은 항구로 이동했다.


남한으로 오더라도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 사라지던 그들이, 갑자기 길게 머무르는 것도 이상했다.


‘왜?’


불안감이 몸을 감쌌다. 예지대로라면 사냥꾼들은 접촉을 위해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가능성이 컸다. 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몸을 옮겼다. 마담에게서 동전을 잔뜩 바꾼 그는 다방 구석의 공중전화로 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일요일이지만 상대방이 받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이윽고 어렵사리 연결된 신호 끝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한강진 팀장입니다.]

“어... 팀장님. 안녕하세요. 접니다. 일요일에 죄송합니다.”

[누구... 아, 수장이시군요.]

“네. 지금 장소가 장소인지라 길게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이번에는 가진항입니다.”

[가진항요? 속초 위 고성 쪽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

“일단 애들을 보내긴 했습니다. 보기만 하라고 말해 놓긴 했습니다만...”

[이번에도 상어 관련 예지는 없는 것이 확실하죠?]

“네.”


역시 눈치가 빨랐다. 그는 잠깐 고민하는 거 같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수 시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긴 합니다.]

“네?”

[저 역시 길게 말씀드리기 쉽지 않군요. 접촉 예정시간은 언제죠?]

“아마 한 시간 정도 뒤가 될 거 같습니다.”

[연락이 닿는다면, 바로 퇴각 시키십시오. 함정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지수는 공중전화 위 남은 동전을 쓸어 담고는,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지수는 기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다급하게 외쳤다.


“가진항으로 갑시다!”


거리는 대략 20km 정도. 택시가 빨리 달려준다면 접촉 전에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 *


상어와 사냥꾼들의 전투가 시작된 직후, 1988년 1월 3일 일요일 21시 49분.

강원도 고성군, 가진항 인근.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시고 관심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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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51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5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8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7 0 15쪽
98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3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51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9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50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3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9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9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5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50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9 1 10쪽
88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3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8 1 10쪽
86 5화 : 추적(Pursuit) (3-4) 20.05.29 50 0 12쪽
85 5화 : 추적(Pursuit) (3-3) 20.05.25 53 1 12쪽
84 5화 : 추적(Pursuit) (3-2) 20.05.18 47 1 13쪽
83 5화 : 추적(Pursuit) (3-1) 20.05.17 49 0 13쪽
82 5화 : 추적(Pursuit) (2-5) 20.05.15 49 0 19쪽
81 5화 : 추적(Pursuit) (2-4) 20.05.12 50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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