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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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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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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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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추적(Pursuit) (2-5)

DUMMY

파공음이 울리며 상어의 칼날이 뭔가에 걸린 듯 멈췄다. 이와 함께 그녀의 시야에, 검은색 실검(実劍)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네다섯 번의 파공음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박지연은 충격파를 느끼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상어와 그녀 사이에 어떤 사람 그림자 하나가 멈춰 섰다. 상어 역시 난입한 상대를 깨닫고는 공격을 거두며 간격을 벌렸다.


지수였다.


“늦었군... 제기랄...”

“수장!!”

“빨리 피해!!”


이때 위쪽 벽면에 큰 폭발이 일어나며 구멍이 발생했다. 아름드리나무 여러 그루가 무게감 없이 허공으로 뿜어 올라갔다. 지수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상어 역시 그 뒤를 따라 숲 위로 올라섰다.


이제 두 사람이 숲을 바닥으로 하고 서로를 마주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 사이로 흘렀다.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지수가 상어를 향해 뛰어들었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주변 공기를 찢어나갔다. 상어의 쌍두날도 훨씬 더 급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공방은 점점 박자를 올려갔다. 그리고 그 끝에 삼점사(三點射) 같은 짧은 파공음이 여러 번 울렸다. 상어와 거리를 벌린 지수가 아래쪽 박지연을 향해 소리쳤다.


“다른 사람 데리고 도망쳐! 타고 온 택시가 저쪽에 있어!!”

“아...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택시를 기다리게 한 것은 다행이었다. 그렇게 박지연이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기 위해 움직인 사이, 지수가 정면의 상어를 쏘아보았다. 상어는 느긋한 표정으로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장... 김지수군요.”

“오래간만이군. 상어...!!”

“좀 덜 불행해지나 싶었는데...”


상어는 칼날을 죽이고 허리춤에 있는 홀스터로 칼자루(Hilt)를 물렀다. 그리고 전투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고, 넥타이를 바로잡았다. 머리 역시 다시 정리하여 깔끔하게 만들었다. 준수한 외모가 차가운 달빛에 빛났다.


지수는 그런 그를 그대로 보고 있었다. 가진항에 있을 북한 측 볼리셔니스트 세 명의 행방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박지연과 부상자들이 도망칠 여유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놈도 그쪽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놈을 기다리는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들끓음이 가슴을 치고 있었다. 지수는 자신이 난입하기 직전에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찬 주먹... 표막을 뚫고 들어가는 맨손 공격...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밖에 없었다.


“준비는 끝났나?”


지수의 말에 상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칼을 다시 꺼냈을 뿐이었다. 지수 역시 검을 고쳐 쥐고, 달려 나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

“......”


차갑게 식은 숲 위로 흐르는 칼날 같은 바람. 조각칼로 빚어내는 것 같이 깎아지듯 흔들리는 바다. 포말을 쏟아내며 넘실거리는 파도와 하얗게 얼어붙은 바위... 모든 것이 멈춰선 것 같은 세상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를 옮기던 구름이 달빛을 흐드러지게 펼쳐놓았을 때.


“!!”


솔잎이 흩날린 공간에 두 사람은 없었다. 마치 눈을 깜빡인 것처럼, 이미 둘의 칼은 맞붙고 있었다. 그야말로 감각을 뛰어넘는 속도였다. 칼날이 부딪혀 생긴 파공음이 초음속으로 쌓이며 폭발하듯 주변으로 튀어나갔다.


‘이놈...!’


공방이 이어지면서 상어의 놀람도 커져갔다. 쉽게 볼 수 없는 쌍두의 이질적인 검술 앞에, 지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확실히 어디선가 겪어본 것이 분명했다.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건만 어디서 이런 경험을 쌓았을까. 상어는 궁금했다.


거기에 「칼」을 막아내는 실검(実劍)이라니. 그동안 세계를 떠돌았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금해 할 틈은 없었다.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먹히는 건 자신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한 이후로 처음 느끼는 팽팽함이었다.


다시 한 번 거리가 벌어졌다. 활짝 열린 동공과 미소가 스쳐가는 표정은, 둘 다 이 싸움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간 맛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희열이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알고 있었다. 빨리 끝내야 된다는 사실을. 목적이 있는 이상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수가 먼저 승부수를 걸었다. 양손으로 쥔 칼을 뒤로 한껏 젖히고, 강력한 참격을 날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우오오!”


상어도 저 공격을 한 손으로 받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기로 결심했다.


무게가 존재하는 실검(実劍)이 무게가 거의 없는, 의지도달공간으로 벼려내 만든 칼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상어는 혀를 차면서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을 받아내는 척 하면서 비껴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지수의 노림수였다. 마치 피하는 걸 예상한 것 같았다. 칼자루에서 떨어진 그의 오른손이 푸른 안개로 휩싸였다.


“?!”


가속도와 관성 따위는 무시한, 현실감 없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푸른 주먹이 지금까지의 진행방향에서 90도 이상 궤도를 바꿔 상어를 향해 돌진했다. 운동방향이 바뀔 때 느끼는 일반적인 감각이 뭉개지면서 상어의 머릿속에 대혼란이 왔다.


분명했다. 관성을 조절하는 저 법칙은 마법사의 그것이 아닌-


“!!!”


오갈 데 없는 운동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폭발음이 일어났다. 둘은 눈과 눈이 마주칠 정도로 가깝게 붙은 상태였다. 근접한 시선 가운데 사선으로 부딪힌 두 개의 칼날이 떨렸다. 하지만 힘의 부딪힘에서 온 진동은 칼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바로 허리춤에서 날아든 지수의 주먹과, 그걸 받아낸 상어의 손바닥 때문이었다.


“전사Warrior...!!"


푸른 주먹과 붉은 손이 섞이지 않는 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토해내는 것 같은 상어의 말에, 지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래... 너도 쌍극자(雙極子Dipole)인가...”

“...!!”


쌍극자란 원래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단어였다. 양과 음의 극(極)이 상대하는 물질을 의미했다. 하지만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이 바닥에서는 마법사와 전사의 능력을 동시에 가진 자를 일컫는 단어기도 했다. 양 극단에 있는 두 가지 힘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실전(失傳)된, 전사 계통에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지면서 공간이 생겨났다. 온몸을 회전하는 아드레날린을 느끼며 지수가 입을 열었다.


“어때, 칼 놓고 한 번 해보는 건?”

“... 좋소.”


칼날을 죽인 상어가 칼자루를 홀스터에 고정했다. 그리고 양 주먹을 내밀며 격투 자세를 취했다. 지수 역시 칼을 등 뒤로 넘기고 비슷하게 양 손을 들었다.


칼을 맞대는 것 이상의 긴장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서로의 실력을 확인한 이상,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일정 수준에 오른 전사에게 표막이나 법칙 같은 건 큰 의미가 없었다. 경화(硬化)한 양 팔은 칼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면서 강력했다. 거기에 온 몸을 통해 나오는 체술(體術)은 하나하나가 표막의 방어력을 상회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공격 범위나 중장거리 화력 투사만 빼면 볼리셔니스트 간 싸움에서는 마법사의 상위 호환으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극한의 수련을 요구하는 전승(傳承)의 어려움과, 기록으로 남기기 힘든 체술계 법칙의 난해함, 다목적에서의 활용성 부족은 현대에서 전사를 도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현대에 들어 전사는 거의 씨가 말라버리다시피 했다. 야마토처럼, 60 평생을 볼리셔니스트로 살아온 사람마저 전사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 온 것이었다.


현대의 볼리셔니스트라면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전사. 거기에 마법사의 힘을 함께 가진, 경지에 오른 전사끼리의 싸움.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고 싶어 했을 그런 싸움이었다.


그러나 갤러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겨울 바다와 무심한 달만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수는 상어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거 가만히 있다가는 몸에 곰팡이가 피겠는데...”

“그럼 먼저 들어가죠.”

“좋아--!!”


상어의 선공으로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까는 칼이었다면 이번에는 주먹과 다리가 무기였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파괴력은 칼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느낌은 헤비급 권투선수의 경기와도 비슷했다. 묵직한 공격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타격으로 다가왔다. 표막이 옷자락처럼 휘날리며 아슬아슬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

“......”


두 사람 다 극한의 긴장 속에서 말이 없어졌다. 상어와 지수라는 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지금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싸움의 의미 따위는 차츰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잠시 뒤, 전투 현장이 숲 아래쪽으로 바뀌자 격렬함은 극에 달했다. 나무는 수수깡처럼 날렸고 땅은 푸딩처럼 파여 갔다.


숲 속은 은색의 달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주먹에서 나오는 푸른색과 붉은색 궤적은 네온사인처럼 빛나며 전투를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거리를 벌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먼저 지수가 걱정하는 건 북한 측 볼리셔니스트들의 합류 여부였다. 상어만 해도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데, 세 명의 적이 추가되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상어 역시 걱정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군 세 명의 합류가 늦어지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신나게 휘저었으니 곧 상황을 깨닫고 왔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뭔가 늦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적들 다섯 명은 한 명 빼고 화력을 없애는 데에 성공했지만, 변수는 변수였다.


“... 여흥은 여기까지인가.”


그의 마음을 읽듯이, 지수가 던지듯 말했다. 급한 걸로 따지면 지수가 더 급하긴 했으니까. 상어 역시 화답하듯 씨익 웃어보였다. 원래라면 싸움을 접고 자리를 옮기는 것이 맞을 터였다. 할 일이 있으니 목숨까지 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저 사람하고는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감정을 부정할 수 없었다.


“......”

“......”


준비를 끝낸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제, 서로를 향한 최후의 일격이 시작되었다.


* * * *


전투개시 약 30분 후, 1988년 1월 3일 일요일 22시 8분.

강원도 고성군 인근.


양 어깨에 각각 한 사람씩, 두 사람을 들쳐 맨 박지연이 택시에 도착했다. 지수가 타고 온 택시는 미터기가 켜진 상태로 국도 갓길에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는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부상자가 있음을 깨닫고 물고 있던 담배를 급하게 비벼 껐다.


“속초... 속초 쪽 아무 병원이나 가주소!”

“아, 알겠습니다!”


혹 적들이 있을지 모르는 가진 쪽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더 멀긴 해도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그녀는 뒷좌석에 눕혀놓은 박상훈의 치료에 열중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부상이 덜했던 최지훈은 나중 문제였다.(좌석 아래쪽에 던져놓음)


사실 의료계열 법칙은 기본 중의 기본만 할 수 있었지만, 뭐든 해야만 했다. 아까 데려올 당시 임시로 묶어두었던 옷은 이미 피에 푹 젖어있었다. 그녀는 박상훈의 상처를 봉합하며 지혈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피비린내로 가득 찬 택시 안에서 기사 역시 안절부절 했다. 힘이 바짝 들어간 엑셀에 엔진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젠장... 젠장!’


그녀는 정신없이 치료하는 와중에 아까 전 상황을 떠올렸다. 수장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러 갔던 때였다. 정하진과 서준호는 이미 절망적이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배가 갈라진 박상훈 역시 맥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목숨은 붙어 있었다. 박지연은 쏟아진 내장을 대충 담고 주요 출혈 부위를 지혈했다. 그리고 옷을 찢어 배를 둘둘 묶었다. 힘을 줘 옷을 꽉 조인 그녀는 곧바로 최지훈에게 향했다.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던 그는, 복부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 겉보기에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망 없는 두 사람을 놓아두고 두 사람을 양 어깨에 들쳐 업었다. 택시가 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필사적인 법칙 운영 끝에, 박상훈의 상태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일단 배어나오는 피의 양이 상당히 줄긴 했다. 박지연은 다시 한 번 옷을 찢어 만든 임시 붕대로 그의 배를 빙빙 둘렀다.


그러나 쏟아져 나온 내장은 아무렇게나 집어넣은 상태였다. 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병원에 가야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붉은 광원 하나가 뒤쪽에서 접근했다. 저것은 차량 불빛이 아니었다. 차 뒤쪽 창문을 통해 정체를 확인한 박지연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화염구 법칙이었다!


“아저씨, 핸들 오른쪽으로-!!”

“?!”


순간 타이어 소리가 크게 나며 차량이 휘청 했다. 그리고 바로 직전 차량이 있던 자리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뭐, 뭐, 뭐, 뭔데요-?!”

“일단 밟으소-!”


그녀는 차문을 열고 지붕으로 훌쩍 뛰어 올랐다. 문을 닫고 자세를 낮춘 그녀는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여러 개의 압축공기탄을 만들어 후방을 향해 다양한 방위로 발사했다.


그러자 불꽃 없는 폭발이 여러 번 일어났다. 하지만 혼란을 주려는 그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두 발이었다.


“아오 썅!”


박지연이 다시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 화염구를 향해 압축공기탄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방금 보다는 작은 탄환들 수십 발이 화염구 주변으로 날아갔다.


두 번의 큰 폭발이 나면서 주변이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 화염탄의 요격에 성공한 박지연은 운전석 위쪽에서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소리에 놀란 기사가 황급히 레버를 돌려 창문을 열자, 박지연이 소리쳤다.


“라이트 끄고요!”


차가 다시 한 번 휘청하면서 라이트가 꺼졌다. 하지만 상대는 그 직전까지 위치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화염구가 아닌 인영(人影)이 차량을 향해 날아들었다. 트렁크 부분을 밟고 올라선 상대가 칼을 휘둘렀다. 성인 남성의 무게가 더해지자 차 뒤쪽이 휘청거렸다.


“!!”


차량 위에서 두 개의 칼이 맞붙었다. 박지연은 이를 깨물며 상대의 공격을 방어했다. 위태로운 공간이었음에도 적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역시 파로호에서의 전투는 실력을 숨긴 것이 분명했다.


‘최지훈 이 개새끼...!’


힘겨운 전투 중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박지연은 최지훈의 어설픈 대응으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다고 느꼈다. 순간 짜증이 솟아오르며 분노가 그에게 향했다. 물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긴 했다. 그냥 의미 없는 투레질일 뿐.


하지만 어찌됐든 살아남아 욕을 퍼부어 주겠다는 생각에, 칼놀림이 예리해졌다. 집중력이란 의외의 상황에서 나오기도 하는 법이었다.


“으랴아아아아-!”


차량 지붕이 강제한 좁은 공간에서 칼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환경은 그녀가 항상 칼을 연마해온 곳이었다. 도장이든 자신의 방이든 어디든지 간에, 넓은 곳에서 칼을 휘두른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커뮤니티 출신 볼리셔니스트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좁은 공간에서의 칼싸움이라면 꿀릴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씨부랄!”


극한의 상황이 오자 원래 입버릇이 나왔다. 그녀는 사정없이 욕을 하며 상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적당히 뜨거워지면서 심적으로도 조금씩 여유가 났다. 쌍두날의 상어를 상대했기 때문일까. 같은 값이면 하나의 칼날이 상대하기도 편했다.


“끄지라!!”


차량 지붕이 깨어질 듯 스텝을 밝으며, 낮은 위치에서 칼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북한 측 볼리셔니스트는 방어 라인 아래쪽에서 들어온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뛰어서 피해야만 했다.


“시--팔놈아!!”


그녀는 이런 상황을 노린 듯 했다. 회전력이 남은 칼을 위쪽으로 젖혀 올렸다. 칼날은 적의 옆구리 쪽 표막을 베어내고 파고들었으나, 상대는 필사의 방어로 치명상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처는 꽤 컸고 공중에서 방어했기에 자세를 잡을 수 없었다.


뒤이어 파공음이 두 번 더 났다. 적은 차에서 떨어지며 도로를 데굴데굴 굴렀다.


“이거나 쳐무라-!”


겨우 자세를 잡은 적을 향해 압축공기탄 여러 발이 날아들었다. 연속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도로의 아스팔트가 뒤집어졌다. 적은 꼼짝 못하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동안 차량은 앞으로 훌쩍 나아가며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그녀는 멀어지는 상대를 주시하며 상황을 살폈다. 부상을 입었기 때문일까. 다행히 적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박지연은 상대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차량 안으로 돌아갔다.


“아으...”


힘겹게 자세를 잡자 온 몸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싸울 때는 몰랐던 상처가 온 몸에 가득했다. 찢어지고 잘려나간 옷에 배어나온 피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지혈하면서 박상훈과 최지훈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더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박지연은 한숨을 내쉬며 좌석 뒤쪽으로 머리를 기댔다. 이때 뒤쪽에서 무언가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은 그녀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


먼 곳에서 하얀색 불빛이 하늘을 밝혔다가 사라졌다. 위치로 봐서는 수장과 상어가 맞붙은 곳 같았다. 아직도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습격한 적의 볼리셔니스트는 한 명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어디로 간 것일까. 순간 수장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쫙 돋았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부상자들을 빠르게 병원으로 데려가는 일밖에 없었다.


‘수장...!’


마음 한 가득 걱정을 안은 채, 택시는 계속 속초를 향해 달려갔다.


-3-


상어와 강(江)의 사냥꾼과의 전투 닷새 후, 1988년 1월 8일 금요일 14시 12분.

서울시 예장동, 안기부 본관.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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