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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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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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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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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 추적(Pursuit) (6-2)

DUMMY

“크어억!!”


폭발압에 먼지 밖으로 튕겨 나온 그레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한 바퀴 구를 때마다 모래사장에 붉은 점이 흩뿌려졌다. 가까스로 자세를 세운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 팔이 뿌리부터 사라진 - 잡고 있었다.


“그레이...!!”

“쿠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애쉬가 그레이를 불렀다. 그레이가 다시 모래먼지 안으로 들어가려 한 순간, 애쉬가 복부에 대고 있던 손을 들어 그에게 보였다. 손바닥은 어디에선가 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


그레이의 표정이 굳었다. 아마도 아까 채휘 어머니가 쏜 총알 중 하나가 명중한 듯 했다. 법칙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총상은 치명적이었다. 곧 현기증을 느낀 애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레이가 다급해졌다.


여기에 상황을 바꿀 요소가 또 나타났다. 멀리 도로 쪽에서 투박한 엔진소리 여러 개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지러운 군홧발 소리가 이어졌다. 부상 중에도 애쉬가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도로 쪽에서 어디선가 나타난 십 수 명의 군인들이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뭐... 뭐야!!”


차에서 내려 순식간에 대형을 짠 군인들이 조준을 개시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가락으로 애쉬를 가리키자, 곧이어 조준 사격이 시작되었다. 귀를 뒤흔드는 소총 발사음이 해안가를 가득 채웠다.


“!!!!”


거리가 꽤 있었기에 명중률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날아드는 수많은 탄환들은 충분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애쉬가 소리쳤다.


“그릇... 그릇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레이는, 아직 가시지 않은 먼지 구름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선 것은 피투성이가 된 한강진 국장의 얼굴이었다. 서로를 확인한 두 사람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어딜-!”


좌하방 흉부에 커다란 구멍이 난 그였다. 그러나 한강진 국장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거칠게 그레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레이 역시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오른팔까지 잃었기에, 전투는 난전으로 이어졌다. 법칙과 표막이 아닌 그야말로 맨손 격투였다.


“크아아!!”

“짐승 같은 놈-!”


그렇게 주먹이 오가던 중이었다. 그레이의 눈에 먼지 너머 짙은 음영이 설핏 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야말로 최후의 힘으로 바닥을 향해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자 피부를 갈아내는 것 같은 모래먼지가 끓어오르듯 솟구쳤다.


작은 칼날들의 공격에 한강진 국장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는 야수와 같이 소리 지르며, 피 칠갑이 된 얼굴 속에서 충혈된 하얀 눈을 부릅떴다.


“으어어어!!!”


그러나 그레이는 음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림자의 형태가 뚜렷해 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


작은 그림자 하나.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은 큰 그림자 하나. 여전히 누군가가 채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본 그레이가 이를 깨물며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치켜세운 왼손 끝에서 푸른 색 연기가 아주 작게 올라왔다.


한강진 국장도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눈 안에 스며든 피를 닦을 생각도 않은 채로, 뒤로 당긴 그레이의 왼팔에 달라붙었다. 공격 직전의 강한 저항에 푸른 색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레이가 거칠게 소리쳤다.


“쿠오오오!!!”


가까스로 공격을 저지시킨 한강진 국장이었다. 그러나 힘이 다해가고 있었다. 출혈은 심각했고 의식은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손끝에 감각조차 없었다.


“멈... 춰...!”


그레이가 왼손을 무겁게 휘둘렀다. 퍽 소리와 함께 한강진 국장의 몸이 모래밭 위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레이 역시 한계에 다다랐다. 필사적으로 모은 마지막 법칙이 사라졌고, 이제는 사람 하나 죽일 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파르르 떨리는 왼손으로 큰 그림자를 옆으로 밀었다. 얼어붙은 그림자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그레이는 마지막으로, 작은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아주 작게 열린 시야에서 공포에 찬 채휘의 얼굴이 드러났다. 곧바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붉게 물든 채 모래에 파묻힌 한강진 국장의 시야에 그림자를 안고 움직이는 그레이가 들어왔다. 손톱이 뒤집어진 손가락 끝이 채휘를 향했지만, 의미 없이 떨릴 뿐이었다.


잠시 뒤 채휘를 허리에 들쳐 맨 그레이가 먼지 구름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걸 본 애쉬가 힘을 쥐어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한 측 볼리셔니스트들 네 명 중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한 명뿐. 나머지 세 명은 9국의 볼리셔니스트들에게 죽었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애쉬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난장판이 된 백사장과 멀리 군인들을 번갈아 보던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퇴각--!!”


살아남은 한 명이 비틀거리며 애쉬에게 달려왔다. 부축을 받은 그녀는 채휘를 확보한 그레이를 바라보며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적들이 움직이자 위쪽 도로의 군인들도 해안가 쪽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충분한 거리를 두고 함부로 접근하지 않은 채, 적들의 동선에 맞춰 넓은 면적을 사격하고 있었다. 적과 아군이 분리되자 곧바로 삼각대를 편 M60 기관총이 총알을 쏟아냈다. 흡사 적을 몰아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부상은 심각했지만 그들은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볼리셔니스트들은 바다 중간을 향해 멀어졌다. 사람이 물 위를 밟고 달려가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당황하지 않고 지체 없이 현장 구호를 명했다.


“부상자 이송시켜! 빨리-!”


한강진 국장은 먼지 바깥이 다급해짐을 느꼈다. 다수의 군홧발 소리와 적이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깨달았다.


작전이 실패했음을.

그것도 완벽하게.


* * * *


명왕성 작전 당일, 해변에서 전투가 시작되고 약 40분 후, 1988년 1월 14일 목요일 16시 52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인근.


작전은 실패했다.


먼저 최우선 목표였던 「그릇」을 빼앗겼다. 이는 변명 할 수 없는 가장 큰 실패였다. 여기에 한강진 국장을 포함, 9국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생명만 건진 수준의 큰 부상이었다. 특히 한강진 국장과 민혜림 대리의 부상이 심각했다.


그나마 투혼을 발휘한 문정식 대리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부상당한 몸으로 짐마차 둘을 몰고 속초 공항까지 가서 육군 모(某) 항공부대 소속 보병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 요청에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온 항공부대장 박철 대령은 면 단위의 압박 사격을 통해 적들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피해는 더 커졌을 것이 분명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한강진 국장을 보고 박철 대령의 눈이 휘둥글 해졌다. 그는 한강진 국장의 오랜 친구로, 일반인임에도 볼리셔니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강진이! 어떻게 된 건가!!”

“와줘서... 고맙...네.”


가까스로 대답한 한강진 국장이 들것 위에서 혼절했다. 그나마 부상이 덜했던 서창민 대리가 부상자 호송 후의 뒷정리를 맡았다. 하지만 그를 비롯하여 백사장 위 모든 사람들의 눈은 한 장소를 향해 있었다.


바로 채휘의 어머니가 있던 곳이었다.


“......”


서창민 대리가 정리하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이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래밭 위에 단정히 누워있는 채휘의 아버지, 남태선. 그 옆에서 오열하는 채휘의 어머니. 이 모습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한강진 국장은 채휘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삼았다. 가공할 파괴력으로 날아들던 그레이의 손끝은 필사의 방어에 막혔다. 아슬아슬하게 채휘 어머니의 앞에서 멈춰 선 것이었다.


“잡았...다!”


한강진 국장이 양손으로 그레이의 상완부를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양손바닥에 법칙이 모이면서 접촉면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


그러나 한강진 국장이 그레이의 팔을 날려버리기 직전, 다시 한 번 추진력을 얻은 그의 손날이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로 찰나의 차이였다.


그렇게 법칙을 머금은 손끝이 그녀의 심장 바로 앞까지 이르렀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애쉬의 공격에 쓰러져 있던 남태선이 그 사이에 끼어든 것이었다. 핏발 선 눈을 부릅뜬 그가 힘겹게 몸을 날렸다. 채휘와 그녀의 어머니를 뒤로 밀어냄과 동시에, 자신의 가슴을 내밀었다.


“안 돼!!”


그레이의 팔은 한강진 국장을 지나 남태선의 심장 부분을 정확히 꿰뚫었다. 마치 뜨거운 송곳이 종이를 뚫어내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평안한 표정으로 채휘 어머니를 향해 마지막 단어를 전하며.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행복...’


그리고 한강진 국장이 그레이의 상완(上腕) 중간부분을 폭발로 절단해 낸 건, 그로부터 0.02초 후였다.


“......”


실혈(失血)로 창백한 것만 빼면 지극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백사장 위에 누워있었다. 서창민 대리는 울고 있는 여자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겨울바람이 혼란했던 시간을 싸늘하게 흘려보냈다. 피를 머금은 붉은 모래는 바닷내음과 함께 연기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 * * *


명왕성 작전 D+1, 1988년 1월 15일 금요일 00시 4분.

서울, 을지로 인근.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그저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쉬고 있는 도시를 무대삼아, 여전히 건물과 건물을 빠르게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은정 과장과 상어가 대치한 거리는 한적했다. 추운 겨울에 밤까지 깊어 사람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불 꺼진 건물이 벽처럼 주위를 에워싼 가운데 가로등만이 쌓인 눈을 비출 뿐이었다.


어디선가 9국의 볼리셔니스트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가 건물에 반향되어 위치를 잡기 곤란했다. 칼이 부딪히는 소리는 멀어짐과 가까워짐을 반복하고 있었다.


“......”


정은정 과장은 가로등 아래로 나온 상어를 보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쌍두날이 이글거렸다. 그리고 극명한 명암조차 희미하게 만들 정도의, 날카로운 얼굴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묘한 웃음기를 띤 입을 열며 말했다.


“그래. 하얀 마녀. 나야. 플라타너스.”


그의 웃음을 보는 정은정 과장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녀는 아까 20시경 속초에서의 작전이 실패했음을 전해 받았다. 그것도 서창민 대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큰 부상을 입은 채로 끝난, 완벽한 실패였다. 더구나 한강진 국장이 중태라는 얘기를 들은 그녀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결투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 이상의 실패는 곤란했다.


이런 와중에도 궁금증은 더해갔다. 상어의 작전은 대성공했다. 이쪽에 전력을 묶어 분산시켰고 그릇까지 확보했다. 그렇다면 응당 철수함이 마땅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불필요한 싸움이니까.


그러나 그는 왔다. 네 명의 볼리셔니스트들을 이끌고, 이곳 서울 한 복판으로.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나러 오듯이. 정은정 과장은 궁금증을 드러내며 말했다.


“...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릇을 확보했으니 끝난 거잖아. 우리가 졌으니까.”


이때 웃음 비슷한 묘한 것이 상어의 얼굴을 스쳤다. 읽을 수 없는 표정의 끝에, 상어는 감추지도 드러내지도 않는 표정을 보이며 대답했다.


“...... 여흥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가 칼을 앞으로 들었다. 싸움의 신호였다.


“거두절미하고, 오래간만에 한 번 해보자고.”

“... 그래.”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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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6화 : 슬픔(Grief) (2-2) 20.10.09 48 0 14쪽
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8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50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2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7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6 0 15쪽
»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3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50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9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1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8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9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4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50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7 1 10쪽
88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2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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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5화 : 추적(Pursuit) (3-1) 20.05.17 4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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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5화 : 추적(Pursuit) (2-4) 20.05.12 49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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