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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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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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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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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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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 슬픔(Grief) (2-3)

DUMMY

* * * *


명왕성 작전 종료일로부터 11일 후, 1988년 1월 25일 월요일 10시 18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국장실.


한강진 국장은 두 사람의 손님을 앞에 두고 있었다. 책상을 사이로 복잡한 감정과 시선이 오갔다. 그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가며 자신 앞에 앉은 사람을 향해 말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바로 강(江)의 수장, 김지수였다.


“이제 괜찮습니다. 폐를 많이 끼쳤군요.”


지수가 웃으며 답했다. 그는 최근의 부상 때문인지 양 볼이 푹 들어가 있었다. 한강진 국장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 결과는 알고 계시는지요.”

“들었습니다.”


쓰게 답변하는 지수 옆으로는, 거림산업의 사장이자 정은정 과장의 어머니인 반채림이 앉아 있었다. 그녀 역시 아쉬움이 담긴 한강진 국장의 시선을 모르지 않았다.


커뮤니티 테러를 전후하여 소식이 두절됐던 강(江)과 다시 연결된 것은 이틀 전이었다. 한강진 국장의 지시로 반채림과 연락한 정은정 과장은, 그녀에게서 근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수장은 상어와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고 최근까지 회복 중이었다. 수장부는 현재 복구 중이나 언제 완료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통제권이 약화된 상태이다.(이건 수장이 회복되면 곧 원상복귀가 될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수장의 생존을 확인한 한강진 국장은 곧바로 만남을 제의했다. 그것도 지금까지 공개한 적 없는, 9국 HQ에서의 만남이었다. 장소에서 다급함을 확인한 지수 쪽도 의향을 받아들였다.


“먼저 수장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지수는 느리지만 차분한 어조로 겪은 일들을 얘기했다. 상어와의 전투를 얘기할 때는 한강진 국장의 눈빛도 빛났다. 쌍극자Dipole라는 단어 역시 처음 듣는 것이었다. 잠시 뒤 길게 이어진 얘기가 끝나자, 한강진 국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 전투 이후 강(江)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죄송합니다. 뭔가 했어야 했는데...”


지수의 말에서 진한 후회가 묻어났다. 그리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한강진 국장 역시 지수만큼이나 아쉬움이 심했다. 만약 그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테니까.


“그럼 저희 쪽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강진 국장이 말을 시작했다. 주로 지수와 상어와의 전투 이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담담하게, 가감 없이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정은정 과장은 그가 정보를 감추지 않음에 놀라고 있었다.


“......”


얘기가 진행될수록 지수의 눈에 긴장이 서려갔다. 그리고 그 동요는 의지도달공간 붕괴현상을 이야기할 때 절정에 달했다. 지수는 한강진 국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놀라며 반문했다.


“정말인가요?!”

“네.


그릇이 사람들의 의지에 관여한다는 건 오래된 지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건 지수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방금 말씀하신 건 저도 처음 들어보는 현상이군요.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만약... 뭔가 단서가 될 만 것이 있다면 바로 알려드리죠.”

“고맙습니다.”


쌍방의 말이 끝났다. 약간의 침묵을 뒤로하고 한강진 국장이 말했다.


“수장께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조금 민감할 수 있습니다만... 최근 지역 커뮤니티의 예지망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요.”

“예지망요?”

“네. 특히... 부산 쪽 예지망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자세한 건 아닙니다. 작동여부 정도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작동여부라는 단어에 지수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일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상어가 정보 유통을 위해 사용한 루트에, 부산 쪽 커뮤니티 모기업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


지수는 머리에 뭔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볼리셔니스트 커뮤니티가 북한과 내통하다니, 이건 남한 볼리셔니스트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빨갱이라는 타이틀은 이 나라에서 멸절을 의미했다.


다행히 뒤이어 나온 한강진 국장의 말은 그런 불안을 일부 희석시켜주었다.


“물론 커뮤니티 자체가 연관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재까지 알아낸 바로는, 상어가 커뮤니티에 잠입시킨 것으로 보고 있죠.”

“... 그런가요. 하지만 예지망은 왜 물으시죠?”


살짝 주저했던 한강진 국장이 대답했다.


“조금 무리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루트를 확인하기 위해 사냥꾼을 고용했습니다.”

“...!!”

“그리고 핵심인물을 잡으려는 순간, 알 수 없는 적을 만났습니다. 모두 볼리셔니스트였죠.”

“그러니까... 말씀은 볼리셔니스트들이 활동했음에도 부산 측 공동체에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네.”


지수가 고민에 잠겼다. 문제는 수장부와 부산 쪽 커뮤니티 - 「절해」 - 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번 회합에서도 그랬듯이, 「절해」의 총회장 「박철수」는 사사건건 수장부와 부딪혔다.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아마 일이 있다고 해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특별히 들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예지했다고 해서 대응할 수 있었을까요? 대응할 의기력자(볼리셔니스트)가 없을 텐데요.”

“그래도 수장부 쪽에 뭔가 알리지 않았을까 해서 여쭤봤습니다. 더구나 핵심인물은 모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이었으니까요. 분명히 예지가 있었을 겁니다.”

“그것도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적이란 어떤 말씀이죠?”

“스스로를 와인Wine과 마젠타Magenta라고 부른, 마법사와 전사의 2인조였습니다.”


지수가 조금 놀라며 말했다.


“전사라고요?”

“네. 맨손으로 칼을 막아냈다고 합니다. 한 손으로 잡지는 못했지만요.”

“오호...”

“아무튼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군요...”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한강진 국장은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받침 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 나라에서 권력과 볼리셔니스트와의 관계는 저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과거를 청산하자는 것도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현 사태와 관련해서는 잠시나마 과거를 잊은, 전면적인 협력을 요구 드리고 싶습니다.”

“...!!”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좌중 전체가 깜짝 놀랐다. 분위기상 협력을 포함한 대책 얘기는 시기상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강진 국장은 상황 교환이 끝나자마자 전향적인 협력을 제시했다.


지수 역시 놀라긴 했지만 그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작년 성탄 전날 있었던 만남을 떠올린 그는 한강진 국장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성을 깨달은 이상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명분이든 뭐든, 지금 여기 온 것도 협력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지수도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웃음기 띤 얼굴로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강(江)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9국과의 전면적인 협력을 약속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여 답례한 한강진 국장이 서류뭉치 하나를 내밀었다. 현재 작성 중인 보고서의 최종판 초안이었다. 「‘88.1 선형방호계획 훈련 결과 보고(세부)」라는 제목 위아래로는, 붉은 색 2급 비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지수가 조금 놀라며 말했다.


“괜찮습니까. 이런 걸 보여 주셔도.”

“이 자리에서 보시는 거라면 관계없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25페이지를 한 번 봐주시죠.”


한강진 국장의 말에 지수가 페이지를 넘겼다. 한눈에 봐도 잘 정리된 내용 뒤로, 25P - 「납북 세력의 추후 의도와 관련하여」라는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강진 국장이 말을 이어갔다.


“원래 걱정이 좀 많은 성격이긴 합니다만... 전술기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게 제 예감입니다.”

“어떤 말씀이죠?”

“단순한 추측이죠. 티어0의 그릇을 전술기로만 쓰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는 겁니다.”


지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눈이 머문 페이지에는 지금 한강진 국장이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 큰 게 있다는 말씀인가요? 가령 여기 적힌 것과 같이... 올림픽 같은?”


한강진 국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대량의 의지와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어떻게 본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기서 끄집어낼 수 있는 에너지는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겠죠. 비단 볼리셔니스트 세상뿐만이 아닙니다. 보통 세계도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겁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말이었다. 지수도 이 대목에서는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강진 국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사실 상어만 적대했을 때는, 이 일이 단순히 북한이 전술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릇을 확보한 직후 새로운 적이 등장했죠. 코드명만 보면 적어도 4인 이상의 조직으로 볼 수 있는.”


애쉬Ash/그레이Grey, 와인Wine/마젠타Magenta의 이야기였다. 명사와 그와 관련된 색이라는 규칙성을 지닌 코드명은, 그들이 좀 더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상어와 연계하는 것이라면, 알 수 없는 조직... 일단 조직이라고 해두죠. 아무튼, 이 조직이 북한과 손을 잡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순간 지수를 비롯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마법사의 나무」였다. 한강진 국장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상어가 유럽을 탈출할 때 「마법사의 나무」 문양을 사용했죠. 그때 저희는 그것을 단순히 정보조직의 추적을 피하고, 유럽의 사냥꾼들을 묶어놓기 위해 한 위장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마법사의 나무」 잔당들이 실제로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요.”


싸늘함이 방 안에 가득 찼다. ‘세속 권력과 손잡은 범죄자 볼리셔니스트들’이라는 단어는 볼리셔니스트에게는 트라우마 그 자체였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평생에 걸쳐 배척했던 일 - 세속 권력과의 결탁, 볼리셔니스트로써 행하는 범죄 - 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존재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암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국장님 말씀은... 여기서 제2의 「마법사의 나무」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뜻입니까?!”

“나쁘게 보면 그보다 더 심하겠죠. 그때는 그릇도 없었고 올림픽도 없었으니까요.”

“...!!”

“하지만 놈들은 올림픽이라는 대목을 앞두고 티어0의 그릇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것도 전력화 방법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죠.”


지수가 타들어가는 목을 느끼고 잔을 들었다. 이미 식어버린 차가 목구멍에 걸렸다. 힘겹게 차를 삼킨 그가 말했다.


“무서운 말씀이군요. 하지만 틀린 판단으로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희 나름대로 고민이 많습니다. 원래 볼리셔니스트의 일은 볼리셔니스트가 끝내는 게 맞긴 합니다만... 이제는 그럴 수 없어 보이니까요.”


자조적인 말이었다. 상어를 볼리셔니스트로 보고 대응한 건, 이번 일의 가장 큰 패착 중 하나였으니까.


“해서 저희 안기부 역시, 이번에는 대(對) 테러 부서와 공식적으로 협업을 시작합니다.”

“대 테러 부서라... 공안과의 협력인가요?!”

“네.”


공안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지수의 표정이 무섭게 돌변했다. 하지만 한강진 국장도 물러설 수 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sa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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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6화 : 슬픔(Grief) (3-4) 20.10.29 40 0 10쪽
109 6화 : 슬픔(Grief) (3-3) 20.10.22 44 0 12쪽
108 6화 : 슬픔(Grief) (3-2) 20.10.17 46 0 10쪽
107 6화 : 슬픔(Grief) (3-1) 20.10.16 41 0 14쪽
106 6화 : 슬픔(Grief) (2-4) 20.10.15 40 0 14쪽
» 6화 : 슬픔(Grief) (2-3) 20.10.10 47 1 12쪽
104 6화 : 슬픔(Grief) (2-2) 20.10.09 48 0 14쪽
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8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49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2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7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6 0 15쪽
98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2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49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9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1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7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8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3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50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7 1 10쪽
88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2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8 1 10쪽
86 5화 : 추적(Pursuit) (3-4) 20.05.29 49 0 12쪽
85 5화 : 추적(Pursuit) (3-3) 20.05.25 52 1 12쪽
84 5화 : 추적(Pursuit) (3-2) 20.05.18 47 1 13쪽
83 5화 : 추적(Pursuit) (3-1) 20.05.17 48 0 13쪽
82 5화 : 추적(Pursuit) (2-5) 20.05.15 49 0 19쪽
81 5화 : 추적(Pursuit) (2-4) 20.05.12 4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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