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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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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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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추적(Pursuit) (3-4)

DUMMY

모기업과 함께 커뮤니티의 한 축을 이루는 볼리셔니스트 조직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이곳에는 예지가를 비롯하여 커뮤니티의 각종 민감한 비밀들이 가득하여, 보통 모기업은 공개해도 볼리셔니스트 본부는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하지만 의문이 남아. 상어가 절해의 볼리셔니스트 본부를 어떻게 알았을까?”


한강진 국장이 말하자고 하는 건 명확했다. 정은정 과장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스파이가 절해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정확하지는 않네.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절해여행사일지, 해연수산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스파이가 커뮤니티에 있다고 해도, 측정기와 고공까지는 어떻게 연결 된 걸까요?”

“수장부와 연결된 무언가 있다고 보네. 그걸 찾아야 할 거야.”

“하지만 저희도 이런 의심을 하는데... 상어가 그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요. 상어라면 모기업이 아닌 볼리셔니스트 본부에는 폭탄을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보망이 의심받을 짓으로도 볼 수 있었다.


“나도 그 고민은 해봤어. 하지만 놈도 뭔가의 확신이 있었던 거야. 분명 이걸 날리면 이목이 쏠릴 것도 고려했겠지. 헌데 무언가가 놈에게 확신을 준 게 아닐까. 이렇게 해도 정보망에는 타격이 없을 거라는.“

“......”

“조금 더 소설을 써 볼까. 일련의 폭탄 테러는 커뮤니티들을 대혼란에 빠트릴 테고, 그런 상황에서 외부에서 연결고리를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 건 아닐지. 외부 조직이 절해에 직접 간섭 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다만 남은 건 상위 조직이라 볼 수 있는 강(江)인데, 그 강(江)도 절해에는 뭔가를 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선 것일 수도...“


한강진 국장이 끝을 흐리며 말을 멈췄다. 작은 정보에서 시작되어 거의 추측을 넘어선, 그의 말대로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동아줄 잡듯이 연결되는 얘기들은 은근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사실이 아닐지언정, 알아본다고 해도 손해는 없으리라.


문제는 누가 언제 하느냐였다. 볼리셔니스트의 문제인 만큼 일반인이 손대기는 힘들 터. 더구나 스파이가 일반인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볼리셔니스트이면서 탐문과 수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사실 그렇게 보면 9국 내에는 마뜩한 인물이 없었다.


“아마 이 일은 그릇을 안전하게 확보한 이후에나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 동안은 일반적인 경찰수사에 기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일단 일본 쪽에 조사를 좀 요청 했네.”

“내각정보조사실 쪽에요?”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아까 보다는 더 신중한 말투였다.


“이건 진짜 내 추측이야. 사실 추측도 아니지. 말 그대로 망상이니까. 하지만 네 가지가 마음에 걸렸네. 부산, 여행사, 수산업, 그리고... 북한.”


분필을 빙글빙글 돌리던 그가 낮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 조총련과 관련 있지 않을까?”


조총련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좌중에 긴장이 더해졌다. 조총련은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재일 조선인들이 만든 단체였다. 일본에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속해있는 조직으로, 월북 등 북한과 관련된 각종 사건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상어 입국 이후 상어와 북한의 연계는 매끄럽기 그지없지. 볼리셔니스트의 분할 투입, 공해상에서의 과감한 접근... 이건 분명히 본국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증거야. 하지만 과연, 상어 혼자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할까? 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텐데.”


분필을 내려놓은 한강진 국장이 손을 몇 번 털었다. 하얀색 분필가루가 흩날리면서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여행사든, 수산업체든... 해외와 연락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겠지. 더구나 항구도시인 부산이라면 더더욱. 여기서 바로 북한과 연락하는 것보다는, 조총련을 통하는 게 더 빠를 테니까.”


아주 가느다란 단서에서 뭔가를 짜내는 건 한강진 국장의 장기 아닌 장기였다. 사실 지금 테러 사태에서 조총련까지의 연계성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최근 조총련 쪽 볼리셔니스트 관련 동향을 좀 알아봐 달라고 했네. 민단(재일대한민국민단)도 생각해 보긴 했는데... 그쪽에 얘기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보나마나 싸움질부터 시작할 테니.”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한강진 국장이 말했다.


“참, 카츠노 미사키는 본인 얘기처럼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더군. 지금은 부부장이 대리를 맡고 있는 모양이고.”


여기서 약간 뜸을 들인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SOSS에 이 일을 알릴 생각이네. 좀 더 일찍 할 생각이었는데, 윗선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네.”


다들 적당히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 정도로 커진 이상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 될 상황. 문제는 공개 범위였다. 정은정 과장이 말했다.


“어디까지 말씀하실 건가요?”

“다 얘기해야겠지. 하나라도 빠지면 얘기가 어려울 거야.”

“도움을 요청하실 건가요?”

“아니. 그건 좀 그렇지...”


생각에 잠기며 말끝을 흐리는 한강진 국장이었다. 솔직히 손이 모자란 마당에 에이단 한 명이라도 가세해 준다면, 전황 자체를 바꿀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볼리셔니스트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독립성을 중시하는 건 정부 산하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움은 요청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껄끄럽기 마찬가지였던 것.


더구나 공식적으로 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움을 주고받는 주체가 있을 수 없었다.


“리처드 장군님이 좀 놀라시겠군...”


한강진 국장의 시선이 조금 올라갔다. 아마도 유학 시절을 떠올리는 듯 했다. 정은정 과장은 가끔씩 친근하게 부르는 저 이름이, 그와 어떤 관계일지 궁금함이 들었다.


다시 칠판지우개를 든 한강진 국장이 조심스럽게 칠판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지운 칠판을 뒤로하고 마지막 말을 정리했다.


“좋아. 정리하지. 일단 밖으로 나간 인원들은 모두 귀환해서 좀 쉬도록 하고, 이성진 대리만 속초 인근에서 그릇 탐색을 계속하는 걸로. 그리고 3일 정도는 두고 보다가 향후는 상대 반응을 봐가면서 대응하자고. 그리고 정 과장은 에이단에게 연락해 주게. 내일 쯤 보자고.”

“알겠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회의가 끝났다. 다들 일어서면서 의자 소리가 회의실을 흔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빈 회의실 안에서, 그가 빈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휴...”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천정을 바라보았다.


이 사건의 대응 수준은 이미 9국의 역량을 떠난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매사 「볼리셔니스트의 일은 볼리셔니스트가 해결한다」라는 원칙으로 접근했고 또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그들의 행동은 언제나 일정했고 예상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완전히 달랐다. 현실 세계에서 닳고 닳은 테러리스트라는 점을 애써 무시한 것이 패착이었다. 볼리셔니스트이면서 비(非) 볼리셔니스트 전력까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점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나 싶었다.


특히 이번 테러에 아무런 예지도 없었다는 점도 공포였다. 민혜림 대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커뮤니티 예지망을 벗어난 상태에서 벌린 일이었다. 예지가들은 그들의 모기업에 폭탄이 배달되는 동안, 아무 것도 잡아내지 못했다.


예지망을 잘 아는 만큼 그 허점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이번 테러도 예지한계 밖에서 일을 꾸몄든 일반인을 동원했든 뭔가 방법을 썼겠지. 이제 상어가 예지망을 벗어나 일을 터트리는 건 놀랍지도 않았다.


‘젠장.’


욕지기를 속으로 삼키며, 순간 그는 이 일이 끝난 후 9국의 개편 방향을 고민했다. 지금의 작전역량이 볼리셔니스트의 독립적 성향 - 일반인과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는 - 을 고려한 것이라면, 향후에는 비 볼리셔니스트 영역까지 일부 커버할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생각도 이 사건을 잘 처리했을 때의 얘기겠지만.


이때 갑자기 닫혔던 회의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뒤로 축 쳐져있던 한강진 국장이 급하게 허리를 세웠다.


“팀장님...?”


정은정 과장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정 과장. 뭐 놓고 간 거 있나?”

“아뇨.”

“그럼?”

“걱정 많으신 거 같아서 왔죠.”

“......”


그녀가 빙긋 웃으며 살며시 그에게 다가왔다. 사실 성탄 전야 사건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상황의 위중함에 주변의 눈치라는 것도 있으니, 사담(私談)을 나눌 시간조차 없었던 것.


한참 걱정에 잠겨있던 한강진 국장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자 마음이 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의자 하나를 당겨 그의 옆에 놓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분필가루 가득한 손이었지만 거리낌이 없었다.


“고마워. 어머님은 좀 괜찮으신가?”

“네. 방금 연락했어요. 내일 정도는 퇴원하신대요.”

“다행이군...”


안도의 얼굴을 보인 그녀가 조금 침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수장부와는 아직 연락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우리 예상대로 예지망은 산산조각 났고요.”


먼저 궁금한 걸 얘기하는 그녀에게서 미안함을 느끼는 그였다. 그걸 의도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안하네.”

“그럴 리가요.”


만면에 웃음을 그린 그녀가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곧바로 격정적인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그녀의 손은 그의 몸 곳곳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피부가 화끈 달아오르며 머리가 쭈뼛 섰다.


그러나 그는 분필가루에 하얗게 변한 손을 공중에 띄운 채, 압력에 저항하듯 목에 힘을 줄 뿐이었다. 혹여나 옷에 하얀 흔적을 남길 수는 없었기에.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가 다시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그걸 알기에 고개를 뒤로 뺐다. 깊은 여운이 남으며 열기가 조금씩 식어갔다. 동시에 천천히 멀어지는 거리 안에서 시선이 교차했다.


“......”

“......”


흐트러진 초점이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명확했다.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시선을 현실로 돌리면서,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에이단이 있는 호텔에는 전달해 두었어요.”

“고마워.”

“SOSS가 그릇에 열을 올리지 않으면 좋겠네요.”

“그러지는 않겠지. 하지만 확보 후의 처리 문제는 같이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

“......”

“문제는 균형이니까...”


「균형」.


짧은 만남의 여운만큼이나 멀어져가는 단어였다. 애써 묻어두고 있었지만 그릇의 확보 이후도 큰 문제였다. 그 큰 힘을 가진 존재를 누가, 어떻게 관리한단 말인가? 아니, 감히 관리란 단어를 쓸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일단은 살고 난 다음에 고민하기로 할까.”

“그래요.”


그랬다. 당장의 문제가 더 급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다시 한 번 들이닥칠지언정, 지금은 눈앞의 불꽃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먼저 나갈게요.”


그녀가 일어서서 회의실 밖을 향했다. 다시 한 번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 역시 뜨거워진 가슴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4-


다음날, 1988년 1월 9일 토요일 11시 7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국장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 주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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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6화 : 슬픔(Grief) (2-2) 20.10.09 48 0 14쪽
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8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49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2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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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2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50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9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1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7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8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4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50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7 1 10쪽
88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2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8 1 10쪽
» 5화 : 추적(Pursuit) (3-4) 20.05.29 50 0 12쪽
85 5화 : 추적(Pursuit) (3-3) 20.05.25 52 1 12쪽
84 5화 : 추적(Pursuit) (3-2) 20.05.18 4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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