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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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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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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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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 추적(Pursuit) (6-1)

DUMMY

-6-


명왕성 작전 당일, 해변에서 전투가 시작된지 약 10분 뒤, 1988년 1월 14일 목요일 16시 8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인근.


민혜림 대리의 칼과 적의 칼이 강하게 부딪혔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울린 파공음과 같은 음색이었지만, 백사장 위 모든 사람들의 눈은 그쪽을 향해 있었다. 한강진 국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접근하는 적을 급하게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거칠게 민혜림 대리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분전했으나 실력 차는 명확했다. 더구나 채휘의 보호를 위해 위치를 지켜야 했기에, 불리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때였다. 다시 한 번 둘의 칼이 부딪히며 초음속의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리고 충격파에 여자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가 뒤로 넘어갔다. 그렇게 얼굴을 확인한 한강진 국장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


검은색 머리칼을 가진 동양계의 여자 얼굴이었다. 앳된 인상에 선은 얇았지만 표독스러움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크게 울려 퍼졌다.


‘애쉬Ash!'


하지만 경악의 그 순간, 민혜림 대리가 자세를 잃고 말았다. 세 합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치명타가 될 공격이 날아들었다.


“!!”


필사의 회피에도 불구, 여자의 칼은 민혜림 대리의 흉부를 사선으로 길게 찢어놓고 말았다. 표막과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귀를 때리며 백사장 저편까지 퍼졌다.


“안 돼!!”


이때 이성진 대리가 급가속하여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상대하던 적을 무력화 시킨 순간이었다. 북한측 볼리셔니스트 하나가 모래에 쓰러지기 전, 그의 칼은 이미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반응은 빨랐다. 여자는 민혜림 대리에게 결정타를 날리기 보다는 곧바로 채휘를 향했다. 순식간에 채휘 앞에 도달한 여자가 손을 뻗었다. 놀란 아이가 몸을 움츠리자 그 앞으로 아버지가 달려들었다.


“비켜!!”


하지만 보통사람의 저항 따위는 볼리셔니스트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다. 여자는 마치 물을 흘리듯 남태선을 잡아 옆으로 던져버렸다. 어른의 몸이 장난감처럼 나뒹굴었다. 동시에 아이를 감싸는 어머니와, 그 뒤쪽의 정두산 대리까지 손으로 쳐 날려버렸다. 그가 들고 있던 M16은 허공을 향해 몇 발을 토한 후 모래밭 위에 떨어졌다.


이제 장애물은 없어졌다.


“젠장---!!”


그러나 이성진 대리는 빨랐다. 다시 한 번 뻗는 여자의 손이 채휘에게 닿는다고 해도, 여자를 잘라낼 타이밍은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공기와 시간이 느려지고 흩날리는 모래알 하나하나가 허공에서 위치를 드러낼 때.


여자의 손이 채휘의 이마에 닿았다.


* * * *


명왕성 작전 당일, 민혜림 대리가 쓰러진 직후, 1988년 1월 14일 목요일 16시 10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인근.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볼리셔니스트 고유의 「의지도달공간」은 생명이 「의지」를 통해 만들어내는, 지극히 하나의 존재와 그것에서 시작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성역(聖域)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정말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볼리셔니스트들이 이상현상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폭풍처럼 몰아진 엄청난 무기력감이 모두를 감싼 것이었다.


번잡하던 백사장에 움직임이 멈췄다. 마치 버튼을 눌러 정지시켜버린 풍경처럼, 갑자기 육체의 통제권을 잃은 볼리셔니스트들이 비틀거렸다. 뒤이어 모래밭 위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힘이 빠진 볼리셔니스트들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소리였다.


“뭐... 뭐냐...”


한강진 국장은 바닥에 쓰러진 채 어렵게 고개를 돌려 채휘를 향했다. 여자 역시 그 현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채휘의 이마에 손을 얹은 상태였다. 채휘는 동공이 풀린 상태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때 여자가 이를 깨물면서 입을 열었다. 떨렸지만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이 정도였다니...”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는 상황이 나아보였다. 여자는 힘겹게 무릎을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오른 손바닥은 채휘의 이마에 닿은 상태였다.


여자와 채휘의 중심으로 일어난 현상은 적, 아군을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 전체를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한강진 국장은 입에 파고드는 모래를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랬다. 확실했다. 의지도달공간이 ‘사라졌다.’


아니, 완벽히 하나로 합쳐졌다고 말하는 게 더 가까울 것이다. 그 느낌은 의지도달공간이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치 비누를 만난 기름처럼 녹는 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무력감이었다. 누군가가 강제로 주입시킨 탈력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와중에 더욱 이상한 장면이 한강진 국장의 눈에 들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다. 그는 뭔가의 금속제의 원통을 쥐고 있었다. 길쭉한 모양의 원통은 위 아래로 당겨 여는 듯, 안쪽의 무언가를 드러내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뭐지?!’


여자의 바로 앞에 쓰러진 이성진 대리 역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마비가 온 것 같은 손 발 끝은 아무런 명령도 듣지 않았다. 숨쉬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뒤쪽에는 큰 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민혜림 대리가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온 피는 모래밭을 적셔 붉게 만들고 있었다.


나오지 않는 칼날, 움직이지 않는 몸, 상처 입은 동료... 극심한 분노가 온몸을 맴돌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이제 눈앞의 여자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파르르 떨리는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채휘에게서 거뒀다. 그리고 칼자루를 집어넣고, 허리 뒤쪽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 들었다.


“!!”


30cm 정도의 커다란 컴뱃나이프였다. 여자는 칼을 얼음 찍는 형태로 고쳐 쥐었다. 그 행동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숨을 몰아쉬는 여자가 바로 앞의 이성진 대리를 향했다. 그리고 양 손에 꽉 쥔 칼에 몸무게를 실어, 쓰러진 그의 등 위로 찔러 넣었다.


“!!!!!!”


그 장면을 본 한강진 국장은 속으로 절규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거대한 절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야----!’


힘겹게 칼을 뽑은 여자가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이성진 대리 다음으로 가까이 있던 김휘승 대리였다. 잠시 뒤 비슷한 소리가 들리며 칼이 그의 몸에 들어갔다 나왔다.


현실로 인정할 수 없는 장면이 연속되었다. 한강진 국장은 현실을 부정하고픈 생각에, 시야와 사상이 괴리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었다.


잠시 뒤 여자가 서창민 대리에게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여자의 칼이 다시 한 번 머리 위로 높게 올라갔다.


하지만 이때였다. 정적을 알리는 커다란 종소리와도 같이,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며 여자의 몸이 크게 휘어졌다.


“!?”


폭발음은 M16의 발사음이었다. 놀랍게도 총을 든 사람은 채휘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정두산 대리가 놓친 총을 들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쓰러진 여자를 향해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명중한 첫 발의 효과는 엄청났다. 여자는 어깨를 부여잡고 쓰러진 채로 일어서지 못했다. 조금 깊숙이 스친 수준이었지만,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것을 본 채휘의 어머니는 들고 있던 총을 힘겹게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자신의 딸을 향해 걸어갔다.


“도대체... 무슨 짓을...”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양손을 뻗었다.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채휘의 볼을 어루만지던 채휘의 어머니는 딸을 품안에 넣고 흐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무언가가 변했다. 안정되어 있던 주변 공간이 급작스레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여자가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터트리듯이 소리쳤다.


“그레이Grey---!!"

“크오오오오--!!”


찢어지는 외침에 「그레이Grey」가 덩달아 포효했다. 그는 잡고 있던 원통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강진 국장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지금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가 일어났다는 건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뜻이었다.


‘저 원통 때문에?’


분명했다. 저 원통에서 나오는 어떤 빛이 지금의 현상에서 남자를 지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안다고 해도 상황을 타개할 힘이 없었다.


‘젠장... 젠장!!!’


한강진 국장이 재차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사이, 그레이가 쥐어짜는 움직임으로 채휘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모래 차이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겨울바람에 섞인 비릿한 모래먼지가 한강진 국장의 입속에 섞여 들어왔다.


그레이의 급한 걸음걸이가 어느덧 열 번을 향해갈 즈음이었다. 한강진 국장은 순간 몸에 걸린 주박과도 같은 무언가가 옅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떨림조차 멈췄던 손 발 끝에 움직임이 생기고 있었다.


‘?!’


그랬다. 채휘 어머니가 접근하면서 이 현상이 약해지는 것이 분명했다.


“이... 놈들...”


이제 한 가지 일이 남았다. 채휘의 어머니를 보호해야 했다. 더구나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볼리셔니스트들에게서도 뭔가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9국은 민혜림, 이성진, 김휘승 대리가 이미 큰 부상을 입은 상황에, 서창민 대리는 멀리 쓰러져 있었다.


지금 뭔가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그레이는 벌써 채휘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거의 접근한 상태였다. 한강진 국장은 가슴 속으로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순간 아주 얇게, 그야말로 얇은 종이와도 같은 표막이 만들어졌다. 엄청난 저항이 있었지만 법칙들도 작동을 개시했다.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 뛰어나가기 위해 힘을 모았다.


표막과 법칙이 작동한 것은 그레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원통 근처에 있으니 상태는 더 나을 것이리라. 그는 손날을 세워 몸 뒤쪽으로 크게 당겼다. 이 공격은 채휘의 어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레이를 보고 피하려 했지만, 채휘가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얼굴 위를 스쳤다.


“멈춰-!!”


아직 칼날을 전개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강진 국장은 이 상황 하에서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그레이를 향해 달려갔다. 발을 내딛는 곳의 모래가 거칠게 파여 나갔다.


하나의 칼이 된 그레이의 오른팔이 채휘 어머니를 덮칠 때였다. 한강진 국장이 그녀와 손 사이를 파고들었다. 방어에 사용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바로 자신의 몸이었다.


“!!!!”


그레이의 손날이 얇은 표막 따위는 무시하고 그의 몸을 관통했다. 그러나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잠시만이라도 전투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상처는 문제될 것이 못되었다. 그는 양손으로 자신의 몸에 파고든 그레이의 손을 꽉 쥐었다.


“잡았...다!”


고글 너머로 당황한 그레이의 표정이 보였다. 급격히 속도를 잃은 손날이 한강진 국장의 몸을 뚫고 채휘 어머니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손날 끝에는 새어나온 피가 백사장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원통이 발하는 빛의 안으로 들어온 탓일까. 표막과 법칙에의 구속이 더더욱 약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강진 국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양 손 끝에 법칙을 모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그레이도 표정을 구기며 팔에 더욱 큰 힘을 줬다.


한강진 국장의 법칙과, 그레이의 추가 공격이 동시에 부딪혔다. 동시에 큰 폭발이 일어나며 그들의 모습은 모래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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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8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49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2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7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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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50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9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1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7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8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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