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연재수 :
257 회
조회수 :
18,482
추천수 :
141
글자수 :
1,454,850

작성
20.05.31 23:02
조회
51
추천
0
글자
11쪽

5화 : 추적(Pursuit) (4-2)

DUMMY

상어와 마법사의 나무가 표면에 떠오른 이후, 사냥꾼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정은정 과장의 예상대로였다. 유럽도 미국도 몸 사리기에 나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에이단의 말처럼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조건만 보자면 최선의 선택. 한참을 고민하던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지. 윗선은 내가 설득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아냐. 내가 더 고맙네.”


조력자의 등장에 분위기가 조금 살아났다. 염하린 대리만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녀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대화가 멈춘 틈을 타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이 건은 조금 이따가 얘기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문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밖으로 나갔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멀어지자, 에이단이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국장님.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관련입니다.”

“포로 송환 후속 결과인가?”

“네. 먼저 얼마 전, 일본 측의 요청으로 저번 일에 대한 보고서 전문을 전달했습니다.”

“... 미사키가 실각했다는 얘기는 들었네.”

“네. 크로스체크를 요구한 이상 피할 수 없긴 했죠. 그리고 조직 분위기는 그때 예상하신 거랑 비슷하긴 하더군요.”

“야마다 파벌 말이로군.”

“네. 야마다의 독주와 비이성적인 그릇의 육성... 그래서 그런지 미사키가 물러나긴 했습니다만, 과정이 생각만큼 과격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직 재편 분위기도 보이더군요.”

“다행으로 봐야 되나. 미사키는 어떻게 됐지?”

“미사키 전 부장은 현재 근신 중입니다.”

“호오.”


의외의 결과였다. 조직의 장이 내부 조직원을 ‘사적인 이유’로 살해했음에도 실각과 근신으로 끝났다는 건, 죽은 자들에 대한 남은 조직원의 시선이 곱지 않았음을 뜻했다.


“근신이라. 질 거라는 결과는 예상 못했지만,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는 뜻인가.”

“네. 현재 미사키 전 부장은 신분상의 변화만 있습니다. 연락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렇군... 좋은 정보 고맙네.”

“그리고 진짜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

“그릇, 미유키의 육성 관련입니다.”


육성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한강진 국장의 호기심이 동했다. 사실 「그릇」 본인인 미유키가 9국에 있긴 했지만, 조직 적응을 이유로 그릇 시절의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직은 심리 안정이 우선이라, 우리도 별 얘기를 듣지는 못했네. 그쪽에서 뭔가 얘기하던가?”

“네. 죽은 걸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몇몇 얘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사키 전 부장의 살해 동기와도 맞닿아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중에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죠.”

“어떤 거?”

“처음 그녀가 그릇인 걸 확인한 건 78년이라 하더군요. 검은 9월단 사건 보고서야 당시에도 유명했으니, 처음에는 거기에 맞춰서 육성을 시도했다고 했어요. 헌데 85년 말, 야마다의 제안으로 방법을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뭐?”


잠깐 생각하던 한강진 국장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럼 85년에 어디선가 그 방법을 배웠다는 얘기가 아닌가.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 전부터 그렇게 했을 테니까.”

“네. 하지만 내각정보조사실도 원인은 모르는 거 같았습니다.”

“......”


생각 외로 큰 정보였다. 정상적이었던 전술기 육성 방법이 180도 바뀌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뻔했다. 조직 내부가 아닌 바깥쪽에서의 개입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쓰레기 같은 방법을 알고 있는 제 3자가 있다는 얘기로군.”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알았어. 고맙네.”


한강진 국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그와 비슷했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악센트가 가득 들어간 ‘쓰레기’라는 단어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이 정도로 거친 표현을 쓰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본인에게 알아봐야겠군. 그런 방법을 알려줄 놈이라면, 보통 미친놈이 아닐 거야.”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갑자기 묘한 걱정이 솟아오르며 가슴 한쪽이 쓰라렸다. 이미 새로운 「그릇」이 존재한다는 건 9국도 알고 북한도 알고 있는 사실. 거기에 상어는 초유의 범죄집단인 「마법사의 나무」, 그것도 지휘관 중 하나였던 「플라타너스」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북한이 이처럼 기를 쓰고 그릇을 확보하려 하는 것도 불안했다. 전력화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뜻처럼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


한강진 국장은 또다시 발치에 그림자가 드리운 느낌을 받았다. 온 힘을 다해 하나하나 쳐내고 있건만, 9국을 향한 위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에이단, 월요일에 연락 주겠네. 혹 결재가 늦어져도 작전은 시작해 줬으면 하네. 염 대리에게도 미리 준비시켜 놓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결의에 가득 찬 얼굴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상대는 강력했고 사방 천지가 적이었다.


“... 지금도 다들 고생이 많은 것, 잘 알고 있네. 연달아 일어난 일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더구나 확실히 우리 한계를 벗어난 상황이지... 도움 받을 구석은 많지 않고 이래저래 어렵네.


그렇지만, 반드시 해내야 해. 우리 9국의 존망이 이 사건의 해결에 달려있네.”


스스로를 다짐하듯 나온 말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 역시 변해갔다. 한강진 국장은 씁쓸한 웃음과 함께 마지막 말을 얹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거하게 술 한 잔 사겠네.”


* * * *


가진항에서 지수와 상어의 전투 시작 약 1시간 뒤, 1988년 1월 4일 월요일 1시 8분.

강원도 고성군 인근 해안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바닷물에 한껏 젖은 여성 한 명이 한 남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예전에 지수가 야마다를 제재하고 머리뼈를 건네줬던 ‘지애림’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그녀는, 반쯤 시체가 되어버린 김지수의 몸을 잡고 물 밖으로 끌어내는 중이었다.


달은 이미 서산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방에 빛이라곤 없었다. 그저 해안 철책을 따라 드문드문하게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완전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포말은 앞뒤로 오가며 정신없이 그녀의 몸을 때리고 있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닷물은 움직일 때 마다 그녀의 체온을 앗아갔다. 떨리며 뿜어져 나온 숨이 하얀 연기를 만들었다.


“크윽...”


그녀 역시 표막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할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하지만 김지수의 상태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를 데리고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놈들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일부 전투력이 남은 놈이 있었다. 늦게 합류한 북한 측 볼리셔니스트 하나였다. 만에 하나 그가 추격해 온다면 무사히 벗어날 자신은 없었다.


모래사장을 기듯이 나온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피가 배어나온 자신의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오른손으로 지수를 끌어당겼다. 드문드문 붉은 점이 떨어진 거친 궤적이 모래사장 위에 붓질하듯 그려졌다.


“......”


철책 앞에 도착한 그녀가 칼을 꺼냈다. 거친 칼날이 흔들리며 솟아올랐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몸짓으로 정면의 철책 일부를 잘라냈다. 곧 난리가 나겠지만 별 수 없었다.


철조망 일부가 넘어졌다. 탄력을 가진 철조망 조각은 마치 살아있는 듯 바닥에서 흔들거렸다. 다행히 파도소리가 모든 것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잘린 철조망 단면에 주의하며 지수를 철책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목표는 100m 전방에 있는 작은 숲이었다. 칼날을 날리고 칼자루를 홀스터에 고정한 그녀는, 고통을 참아내며 지수를 양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아악...”


옆구리의 통증이 머리로 올라오자 반사적으로 이를 깨물었다. 그녀는 온 정신을 양 발에 집중하며,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잠시 뒤 모래사장에서 나오자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이제부터는 발자국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거친 흙바닥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숲을 향해 갔다.


숲의 그림자가 닿는 곳은 정말로 빛 하나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지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닥을 더듬었다. 바닥의 평탄함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른 솔잎이 흩어진 바닥에는 다행히 큰 굴곡은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지수를 당겨 숲의 그림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눈을 들어 자신이 온 길을 바라보았다. 모래사장에서 벗어난 후로 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병사들이 발견해도 이곳까지 추적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최대한 응급처치를 한 후에, 더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만 했다.


옷을 찢어냈다. 그러자 아까 전투에서 입었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깊게 베인 상처가 오른쪽 가슴과 왼쪽 옆구리에 있었다. 그녀는 한쪽 손에 열기를 가두어 그의 몸 전체를 데우기 시작했다.


얼음 같은 한기 속에서 열기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동시에 다른 한 손은 그의 깊은 상처 위에 올려 의료계열 법칙을 가동했다.


뜨거움이 온몸을 감싸고 상처가 엉겨 붙으면서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고통에 가득찼던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상태는 여전히 위중했다. 응급처치만 끝나면 다시 자리를 떠야했다.


정신없이 응급처치를 하던 그녀는 지금의 상황에서 비현실감을 느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상처 입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신조차 전혀 예지하지 못한 이 결과 앞에서, 그저 이 상황을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30분 전.


그녀가 본 전투의 마지막 부분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고 관심주시는 분들게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Volition : 1988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0 6화 : 슬픔(Grief) (3-4) 20.10.29 40 0 10쪽
109 6화 : 슬픔(Grief) (3-3) 20.10.22 43 0 12쪽
108 6화 : 슬픔(Grief) (3-2) 20.10.17 46 0 10쪽
107 6화 : 슬픔(Grief) (3-1) 20.10.16 41 0 14쪽
106 6화 : 슬픔(Grief) (2-4) 20.10.15 40 0 14쪽
105 6화 : 슬픔(Grief) (2-3) 20.10.10 46 1 12쪽
104 6화 : 슬픔(Grief) (2-2) 20.10.09 48 0 14쪽
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8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49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2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7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6 0 15쪽
98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2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49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9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1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7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8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2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49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7 1 10쪽
»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1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8 1 10쪽
86 5화 : 추적(Pursuit) (3-4) 20.05.29 49 0 12쪽
85 5화 : 추적(Pursuit) (3-3) 20.05.25 52 1 12쪽
84 5화 : 추적(Pursuit) (3-2) 20.05.18 47 1 13쪽
83 5화 : 추적(Pursuit) (3-1) 20.05.17 48 0 13쪽
82 5화 : 추적(Pursuit) (2-5) 20.05.15 48 0 19쪽
81 5화 : 추적(Pursuit) (2-4) 20.05.12 48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