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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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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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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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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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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화 : 추적(Pursuit) (5-2)

DUMMY

* * * *


같은 시각, 1988년 1월 13일 수요일 10시 12분.

강원도 양양군.


두꺼운 퍼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우체국 밖으로 나왔다. 상어는 옷깃을 팽팽하게 당기며, 힐끔 고개를 뒤로 돌려 방금 나온 문을 바라보았다.


“......”


그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적당히 헤어진 겉옷과 차림새는 그를 주변에 녹여내고 있었다. 키가 조금 큰 것만 빼고는 아무런 이질감이 없었다. 그마저도 추위에 굽은 허리 덕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상대의 주전력을 서울에 묶고, 동시에 속초에서 그릇을 확보하겠다는 그의 보고는 예상대로 당의 우려를 샀다. 작전 종료 후 귀환 루트를 속초와 경기도 북부로 나눈 것도 그랬다. 당연히 전력을 집중해서 속초에서 끝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돌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1차로 내려온 볼리셔니스트들의 활동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은 훈련받은 강인한 요원들이었지만, 활동자금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스파이나 간첩으로서의 역량은 떨어지기에 이동도 어려웠다. 결국 대중교통을 피하고 육로로 움직여 온 탓에 피로 누적이 심각했다. 거기에 두 명은 사망, 한 명은 부상이 여전한 상태.


볼리셔니스트 4명이 새로 내려오고 있지만 실전경험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보거나 관리하지 못했던 신참들이었다. 어디까지 통제 가능할지 감이 없었다.


게다가 어제 있었던 북한의 올림픽 불참 선언에 이어 미국이 조만간 북한을 테러 국가로 규정한다는 얘기까지 들려오는 상황.


이렇듯 주변 분위기까지 살기등등해지는 상황에서, 9명을 한 곳에 밀어 넣었다가 민간인 피해라도 발생하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최악이었다. 외교적이든 뭐든 타격 받을 것이 뻔했다.


이런 환경에서 당은 작전의 마무리와 성공적인 후퇴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답답하면 직접 뛰어 보든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차분한 필체로 정리한 작전 계획을 부산-조총련을 통해 당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최근 주 연락책인 김다빈이 불안감을 드러냈다. 누군가가 주변을 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그의 초조함을 더욱 크게 부채질했다.


만약 부산 쪽 연락선이 막히면 본토와 연계한 작전 진행은 불가능 할 것이 분명했다. 어쭙잖은 단파 라디오 따위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선으로 양방향 통신을 시도하는 건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다.


결국 여러 가지 상황과 고민이 맞물리면서, 상대를 강제로 끌어내기로 결심했다. 과감히 안기부에 전화를 넣었다. 물론 당에서 알면 난리날 것이 분명했다. 아마 반역죄로 총살당해도 모자라겠지.


그렇게 최종적으로 승인받은 작전은 간단했다. 1차로 남하한 요원들은 속초에서 그릇을 확보하고, 새로 내려온 신참들은 자신의 지휘 하에 서울에서 상대를 묶어두는 것.


‘지랄...’


우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음.

무언가에 끌려가는 느낌.

초조함...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았다. 이 바닥에 들어온 이래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가까웠다. 물론 상대가 강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상대의 강함과는 관계없이 환경을 통제하고 파악하고 대응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달랐다. 흡사 알 수 없는 곳으로 연결된 기차를 탄 것같이, 앞으로 나가긴 하지만 손에 쥐고 있다는 느낌은 하나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느낌의 절정을 찍었던 며칠 전 그때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지금부터 3일 전인 1월 10일이었다. 안기부 마법사와의 싸움이 있기 몇 시간 전이었다.


그저 초조함만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어는 그날도 의지선을 확인하며 속초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피로한 눈을 비비고 얼어붙은 숨을 내뱉었다. 추운데 계속 돌아다녀서 였을까. 그는 배고픔을 느끼고 시장 근처를 향했다.


이때였다. 그의 눈에 한 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왜 그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정면도 아니었고 후측방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추위 속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녀의 움직임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피곤한 눈.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난 다음에 확인하고자 했던, 의지선을 보는 시선. 그는 다시 그것을 가동했다.


일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유럽에 있을 때 보았던, 뭉크라고 했던가. 그 작가가 그린 그림과도 비슷했다. 세상은 곡선으로 돌고 있었고 무저갱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이 느끼는 감각만은 모녀를 보기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은 변했다.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릇」이 눈앞에 있었다.


저 여자아이가, 작고 작은 여자아이가 그릇이었다.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뭉크의 그림 속에 있던 절규하는 인간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악마가 내뱉는 것과 같은 절규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악마의 절규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컥...”


순간 균형을 잃은 그가 바닥에 양손을 짚고 쓰러졌다. 숨이 가빠지면서 몇 번 기침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불안한 듯 그에게 다가왔다. 상어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다시 일어섰다. 그는 행여나 모녀의 호기심을 잡아끈 건 아닌지,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잠깐 바라보았다.


다행히 모녀는 자연스럽게 시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상어는 마르기 시작한 입안을 가다듬으며 급하게 발걸음을 반대방향으로 옮겼다.


‘왜?!’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소리 질렀다. 비틀거리듯 걷던 그는 도로를 건너 주저앉았다. 상어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충격은 충격이었고 임무는 임무였다.


그는 일어나 다시 시장을 향했다. 인적 없는 골목 안에서 광학위장 법칙을 가동한 상어는 건물 지붕을 통해 시장 중심으로 움직였다. 아케이드 위쪽에서 모녀의 흔적을 찾던 그는 어렵잖게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딸과 어머니는 서로의 손을 잡고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다시금 충격이 몰려왔지만, 그는 피가 흐르는 아랫입술을 부여잡으며 가까스로 그것을 이겨냈다.


마지막까지 미행하여 집을 알아냈다. 멀찍이 떨어진 건물 위에서 감시하는 동안 땅거미가 바닥에 깔렸다. 오후 6시가 좀 넘자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집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서성였다. 마치 그릇이 회전시키는 의지선과 같이, 그 궤적을 따라가듯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우연은 한 번 더 일어났다. 특징적인 걸음걸이가 그의 시선을 강렬하게 빼앗았다.


격자의 빛이 쭉 늘어선 이 거리의 끝이었다. 또 다른 볼리셔니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 순간 상어는 한 가지를 더 결심했다.


더 먼 곳을 바라보기로.


* * * *


다음날, 1988년 1월 14일 목요일 8시 49분.

강원도 속초시 인근.


작전명 「명왕성Pluto」이 시작되었다.


샛별 작전 때와 비슷했다. 시간은 없었고 현지 상황도 불분명했다.


그래도 한강진 국장은 최대한 신중하게 작전을 준비했다. 다행히 어제 오후 늦게 속초시 등에 요구한 자료들이 들어왔다. 「그릇」과 그 가족의 신원과 관련된 자료였다.


짙은 새벽에 강원도로 이동을 개시했다. 정은정 과장과 함성필, 박찬율 대리를 제외한 현장지원과가 속초를 향했다. 한강진 국장은 차 안에서 작전의 구체안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HQ를 비우고 온 것이 못내 불안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중요 자료들을 제3의 장소로 이관시키고, 잔여 직원들은 모두 그곳으로의 출근을 지시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이었다.


거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화력을 보충할 목적으로 군용 소총 수 자루와 수류탄 등을 동원했다. 사실 볼리셔니스트 상대로 5.56mm 소총은 주의 분산용 혹은 시간벌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볼리셔니스트 수가 모자란 지금, 이 정도의 준비는 필요했다.


작전 자체는 간단했다.


먼저 09:30분, 아버지가 출근하면 집을 방문하여 「그릇」과 어머니에게 접촉한다. 이때 현 상황과 함께 이곳을 떠나야 함을 설득한다. 그리고 오후 특정시간에 특정 장소로 올 것을 약속한다.


그런 다음 오후가 되면, 시장가는 것처럼 그릇과 그녀의 어머니가 밖으로 나간다. 그 사이 집 안에 정리해둔 짐을 회수한다. 시장 내의 번잡함을 이용하여 목표와 합류한 뒤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속초를 빠져나간다. 목적지는 속초 공항.


마지막으로 군용기를 이용하여 서울로 이동한다. 이것이 전체적인 계획이었다. 거기에 시간이 맞으면 오늘 밤 있을 상어와 정은정 과장의 전투에도 지원이 가능할 터.


볼리셔니스트들은 근처에 대기하다가 시장에서 이동을 개시할 때, 거부선을 펼치기로 했다. 이때가 가장 취약하고 적이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경우 오전에 출근한 조합에서 확보할 계획이었다. 출항이냐 행정업무냐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지만, 어제 오후 이성진 대리가 조합과 미리 얘기해 오늘은 행정업무를 하게끔 조치를 취한 상태.


사실 오전에 확보와 탈출을 모두 진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탈출편인 군용기가 오후에나 뜨는 것이 가능했다. 그나마도 한강진 국장이 친분으로 밀어붙인 것이 이 정도였다.


“......”


한강진 국장이 탄 차는 「그릇」이 있는 집과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골목에 정차 중이었다. 시동이 꺼진 평범한 승합차는 주차 중인 다른 자동차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진한 썬팅으로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는 한강진 국장이 출발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여기 오기 전 미리 준비해 둔 검침원 점퍼를 입고 있었다. 지퍼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자 옆에 있던 서창민 대리가 옆으로 메는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네. 주변에 움직임은 없지?”

“네. 현재는 없습니다.”


차 안에는 한강진 국장 외에 9국의 볼리셔니스트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한강진 국장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차문을 열었다.


“좋아. 갔다 오지.”


그릇과 그녀의 어머니에게 현 상황을 설득시키는 건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한강진 국장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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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8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49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2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7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6 0 15쪽
98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2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50 1 12쪽
96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9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1 0 15쪽
»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8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8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4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50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7 1 10쪽
88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2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8 1 10쪽
86 5화 : 추적(Pursuit) (3-4) 20.05.29 50 0 12쪽
85 5화 : 추적(Pursuit) (3-3) 20.05.25 52 1 12쪽
84 5화 : 추적(Pursuit) (3-2) 20.05.18 47 1 13쪽
83 5화 : 추적(Pursuit) (3-1) 20.05.17 48 0 13쪽
82 5화 : 추적(Pursuit) (2-5) 20.05.15 49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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