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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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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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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 추적(Pursuit) (5-5)

DUMMY

“......”


한강진 국장은 절로 나오는 웃음을 느끼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극도로 불리할 때 웃음이 나오는 건, 생리적인 반응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웃음은 좀 더 상황을 냉정히 보고 다가설 수 있게 만들었다.


마치 지금처럼.


“좋아...”


그는 적들의 시선을 끌려는 듯 절칙을 느리고 크게 한 바퀴 돌렸다. 적들은 그에게 눈을 놓지 않으면서도, 대형이 완성될 때를 기다리는 듯 섣불리 공격하지는 않았다.


한편, 차량 안에서는 민혜림 대리가 통신을 끝내고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몇 바퀴를 구른 것 치고 내부 인원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충돌 직후 그녀가 만든 피지컬 베리어가 내부로 들어온 충격을 대부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법칙으로 만든 해면(海綿) 조직으로 내부를 가득 채웠기에, 마치 솜이불 안에 있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바깥 상황을 살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채휘와 가족들을 빙 둘러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조금 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괜찮아요. 신호가 오면 제가 길을 열 테니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네. 믿어주세요.”


걱정스러운 남태선의 물음에 그녀가 달래듯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걱정이 많았다. 선두에 있던 짐마차 둘이 거의 돌아왔지만, 탁 트인 백사장에서 차량까지 가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결국 타이밍은 나머지 인원들이 전투에 합류하는 시점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강진 국장의 신호를 초조히 기다렸다.


밖에 있던 한강진 국장은 적들을 향한 걸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여섯 명을 향해 한 명이 달려드는 모습은 흡사 자살처럼 보였다. 그러나 놈들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지금 공격을 개시해야만 했다. 적들 역시 그의 의도를 깨닫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그래... 시작해 볼까. 카운트!”


시계의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한강진 국장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로 늘어뜨린 절칙이 칼날을 내뿜으며 백사장에 긴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가 허리 뒤춤 파우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강진 국장은 그것‘들’을 전방으로 던졌다. 동시에 의지도달공간이 펼쳐지며 공중에 뜬 물건들이 그와 나란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걸 본 상대는 당황한 듯 움찔했다.


“?!”


얇으면서 약간 오목한 원형의 금속판 여섯 개였다.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그것들은 정확히 적들 하나하나에 대응하듯 공중에 떠 있었다. 거기에 한강진 국장이 손을 한 번 휘두르자, 각각의 금속판 뒤쪽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


폭발과 함께 금속판 끝이 뾰족하게 변하며 적들을 향해 벽력같이 날아들었다. 금속판이 자가단조되며 만들어진 묵직한 관통자의 파괴력은 12.7mm와 비등했다. 하지만 알고 대응하면 표막을 집중하여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어를 위해 자세를 흩트릴 그때가,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고속 이동한 한강진 국장은 가장 근접해 있던 적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뒤로 바짝 당긴 절칙을 강하게 휘둘렀다. 관통자를 가까스로 피한 적이 칼을 들어 한강진 국장의 절칙을 방어했다. 하지만 칼이 부딪히며 난 파공음과 동시에, 그가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핫!”


칼을 들지 않은 왼손바닥에는 금속제의 원뿔이 붙어 있었다. 그렇게 고깔이 적의 몸에 붙는 순간이었다. 그것을 둘러싼 무형의 원통 안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커다란 폭발음에 충격파까지 일어나면서 백사장은 금세 먼지로 가득 찼다. 자잘한 모래들이 시야를 가렸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모래의 비가 조금 잦아질 즈음, 무언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먼지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먼지의 벽을 뚫고 한강진 국장이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는 차량 지붕 위에서 M82를 휘두르던,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였다.


하늘 위로 치솟았던 세 개의 원판이 폭발하면서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한강진 국장은 그 착탄 시점에 맞춰 원뿔을 하나 앞으로 발사시키며, 그 바로 뒤로 하나의 원뿔을 더 잡고 남자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검은 옷의 남자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먼저 상면에서 날아드는 관통자를 칼로 쳐냈다. 동시에 원뿔이 부딪힐 장소에 세 겹의 표막을 깔았다. 일반적인 볼리셔니스트라면 불가능한 수준의 표막 운영이었다.


“그어어어어!!”


남자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과 여러 번의 폭발이 겹치듯 일어났다. 다시 한 번 일어난 먼지구름 안에서 칼이 충돌하며 나는 파공음이 여러 번 울렸다.


‘무슨...!’


엄청난 방어였다.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생각한 한강진 국장이 급격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목적은 달성했다. 그의 손목시계가 틱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알렸다.


15초가 지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성진, 서창민, 김휘승 대리가 전투현장에 뛰어 들었다. 그들은 번개같이 적들을 향했다. 한적했던 겨울바다 옆 백사장은 이제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이때 우지직 소리와 함께, 찌그러진 짐마차 하나의 측면 문이 강제로 열렸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 민혜림 대리는 차 안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시선은 비켜나 있었다.


민혜림 대리, 채휘와 그녀의 부모님, 운전자였던 행정계원 정두산 대리까지 모두 다섯 명의 사람이 이동을 준비했다. 그들은 일단 쓰러진 승합차를 엄폐삼아 숨어 있었다.


“저쪽 길 위에 승합차 보이시죠? 잘 봐두세요. 제가 연막을 칠 테니, 그 사이 전력질주 하시는 거예요. 채휘는 제가 안고 뛰겠습니다.”


민혜림 대리의 말에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사장 넘어 도로에 주차된 짐마차 둘까지의 거리는 대략 300m. 짧다면 짧은 거리였지만, 민혜림 대리의 눈에는 여태껏 보았던 어떤 길보다 길게 느껴졌다.


“자... 갑니다! 달려요!”


그녀가 오른손에 모은 하얀 구체를 이동 경로와 전투 공역 사이에 던졌다. 펑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피어오른 연막이 큰 벽을 만들었다. 몇 번의 폭발음이 들리고 연막은 백사장 전체를 뒤덮듯 커졌다.


그리고 적들 역시 그 의미를 금방 깨달았다. 적들의 관심이 연막에 쏠리는 것을 본 한강진 국장이 소리쳤다.


“절대 접근 못하게 해-!”


그러나 적의 대응은 기민했다. 연막을 보자마자 검은 옷의 여자가 어떤 법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강진 국장이 그걸 보고 달려들었지만, 빠른 속도로 법칙을 완성한 그녀는 양손을 앞으로 쫙 뻗었다.


“!!”


갑자기 거대한 공기의 압력이 느껴지며 사방을 흔들었다. 여자가 만든 작은 ‘폭풍’은 용오름과 같은 형태로 앞쪽의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연막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그렇게 위치가 고스란히 노출되자 민혜림 대리가 경악했다.


‘저 규모의 법칙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물망 같은 피지컬 베리어가 본인을 중심으로 두껍게 펼쳐졌다.


“크읏!”


달려들던 여자가 무언가에 걸리면서 속도가 크게 느려졌다. 민혜림 대리는 채휘를 안고 달리는 와중에도, 옅은 피지컬 베리어를 여러 장 펼치면서 적의 전진을 방해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때, 검은 옷의 남자에게서 변화가 생겼다. 그는 자신을 상대하던 서창민 대리에게서 급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교묘히 위치를 움직여 민혜림 대리를 향했다.


“?!”


남자가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엄청난 소리로 포효했다. 그러고는 온몸에 이글거리는 오오라를 두른 채 저돌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남자가 민혜림 대리를 향해 돌진하자, 그물망이 마치 종잇장처럼 무너졌다. 물론 남자의 속도도 느려졌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여자는 아무런 주저 없이 남자가 만든 길을 통해 민혜림 대리에게 달려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지며 여자는 방어선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그걸 본 민혜리 대리는 다시 연막을 펼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검은 옷의 여자가 조금 더 빨랐다. 그녀는 날아드는 여자의 칼을 쳐내기 위해 법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채휘를 내려놓고 아슬아슬하게 불을 뿜은 절칙에, 여자의 칼이 부딪혔다.


“민 대리-!”


칼이 엮여 눈앞의 적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강진 국장이 크게 소리쳤다.

필사의 노력에도 발목이 잡혔다. 최악의 사태였다.


* * * *


명왕성 작전으로부터 5일 전, 1988년 1월 9일 토요일 13시 25분.

서울 모(某)처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국장실.


샛별 작전이 끝난 이래로,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 9국으로 망명한 카츠노 미유키 - 현재는 정유미란 가명을 쓰는 - 에 대한 조사는 크게 진전된 것이 없었다.


72년 ‘검은 9월단 사건 이후 최초로 전력화된 전술기’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정서적 불안감과 언어 문제는 빠른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법칙 등 ‘그릇’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닌 것부터 접근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몇몇 법칙에 대한 역공학 자료 등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지금껏 미뤄왔던, 조금 민감한 내용을 알아볼 차례였다. 오전에 에이단이 말했던 것이었다. 바로 ‘전술기’를 양성하는 방법이 특정 시점 - 85년 말 - 에 극적으로 바뀐 이유였다.


물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강진 국장이 급하게 이를 확인하고자 한 것은, 최근 북한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사실 전술기의 전력화는 각국이 그 한계에 막혀 포기했던 것이었다. 전력화를 한다고 해도 유지하는 데에 부정적인 변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이런저런 것을 고려하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최대의 난관을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돌파했다. 학대와 조교, 세뇌를 통한, 사람을 그저 도구로만 보고 접근한 미친 방법이었다. 눈앞의 정유미는 그 희생양이었다.


한강진 국장의 걱정은 여기에 있었다. 지금 북한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그릇을 확보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볼리셔니스트 남파나 연쇄 폭탄테러처럼, 외교 등 여러 발생가능한 후폭풍 따위는 무시한 채였다.


이는 그로 하여금 충분한 의심을 가지게 했다. 북한이 일본과 같은 방법의 전술기 전력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이런 상황에서 85년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왜, 무엇이 방법을 그렇게 바꾼 것일까.


국장실 안에는 한강진 국장과 통역을 위한 염하린, 그리고 본인인 정유미와 정은정 과장이 자리했다. 한강진 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1985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어째서 방법이 바뀐 거지?”

“...!!”


질문을 받은 정유미가 고개를 푹 숙였다.


“괴롭다는 건 알고 있네.”

“......”

“누군가 그 방법을 가져온 자가 있었던 건가?”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그때... 놈들이... 왔습니다.”

“놈들?”


그의 반문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정유미가 말을 이어갔다.


“애쉬Ash... 그레이Grey... 동양계 여자와 서양계 남자로 된, 2인조였습니다. 애쉬가 여자, 그레이가 남자였습니다.”

“애쉬와 그레이?”

“네. 그들은 자신들을 컨설턴트Consultant라고 불렀습니다.”


잠깐 생각하던 그녀가 마지막 말을 보탰다.


“그릇 만드는 것을 돕는다고 했습니다.”


-6-


명왕성 작전 당일, 1988년 1월 14일 목요일 16시 8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인근.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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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6화 : 슬픔(Grief) (2-2) 20.10.09 47 0 14쪽
103 6화 : 슬픔(Grief) (2-1) 20.10.08 47 0 13쪽
102 6화 : 슬픔(Grief) (1-3) 20.09.26 49 0 14쪽
101 6화 : 슬픔(Grief) (1-2) +2 20.09.25 61 1 13쪽
100 6화 : 슬픔(Grief) (1-1) 20.09.24 56 0 13쪽
99 5화 : 추적(Pursuit) (6-3) (1부 끝) 20.09.19 56 0 15쪽
98 5화 : 추적(Pursuit) (6-2) 20.09.18 52 0 12쪽
97 5화 : 추적(Pursuit) (6-1) 20.09.17 49 1 12쪽
» 5화 : 추적(Pursuit) (5-5) 20.09.12 48 0 12쪽
95 5화 : 추적(Pursuit) (5-4) 20.09.11 48 1 13쪽
94 5화 : 추적(Pursuit) (5-3) 20.09.10 50 0 15쪽
93 5화 : 추적(Pursuit) (5-2) 20.09.05 47 1 11쪽
92 5화 : 추적(Pursuit) (5-1) 20.09.04 48 0 22쪽
91 5화 : 추적(Pursuit) (4-5) 20.06.14 52 0 13쪽
90 5화 : 추적(Pursuit) (4-4) 20.06.12 49 0 15쪽
89 5화 : 추적(Pursuit) (4-3) 20.06.01 46 1 10쪽
88 5화 : 추적(Pursuit) (4-2) 20.05.31 51 0 11쪽
87 5화 : 추적(Pursuit) (4-1) 20.05.30 4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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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5화 : 추적(Pursuit) (3-1) 20.05.17 4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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