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살자!-29-봉사의 장2
봉사의 장2
상진이 <H아동복지회>로 봉사를 다니자 나머지 독수리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섯 명의 젊은 장정들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자 여성봉사자가 많은 단체의 성격상 대환영을 받았다.
힘으로 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노동의 기쁨을 깨닫고 봉사의 뿌듯함이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 까지 열심히 공부한 기쁨보다 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이국땅에서 헌신한 성자를 보면서 이 땅의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환 동진 정수 수종도 상진을 따라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격의 폭을 넓혀 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몇 주가 흐르자 자연스럽게 회사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기특하게 생각한 김사장과 소연, 주연누나가 합류하고 한별과 미경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평소 회사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모르고 있다가 처음으로 한별의 모습을 본 독수리사형제는 거의 맹목적 추종자가 되어 <한별누나수호대> 라는 거창한 단체 결성식을 지들끼리 하더니 노골적으로 챙기고 나서 소연 주연 미경으로부터 자자한 원성을 듣고 있었다.
5살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한별의 능력인지 모르지만 미경은 언니 언니하며 따르고 있었고 1살 밑인 소연, 4살 밑인 주연과도 빨리 친해져 맏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일요일만 되기를 학수고대 기다려 열성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아들을 보며 몇 번 저러다 말겠지 하던 부모님들도 5월이 되자 일요일에 집에만 있기 뭐하다는 핑계로 대며 하나 둘 참가 하게 되고 그러자 지독히 불편했던 교통편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더욱 효과적인 봉사활동이 되어가고 있었다.
1986년 5월16일, 드디어 현수의 주도면밀한 계획아래 6개월간 진행된 00랜드와의 합작이 성사되어 여의도에 위치한 (주)송뢰 사장실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에 이르렀다.
계약서의 내용은 회사명은 (주)F-LAND로 하고 자본금은 3억, (주)송뢰가 2억을 출자하고 최사장이 1억을 출자하여 50:50의 지분을 가지고 최사장측이 향후 10년간 경영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7월중에 창업을 하기로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최사장까지도 합의 된 내용이 터무니없이 최사장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주)송뢰의 임원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난 후 한동안 대리점 개설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기를 몇 차례, 최사장이 회사를 떠나자 두 임원은 만세를 부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꽉 부등켜 안았다.
“만세, 만세다!”
“사장님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장장 6개월간의 노력 끝에 결국 해내고 말았어!”
“회사를 여의도로 옮기고 채 한 달도 안 되어 대박을 터트린 겁니다. 이제 탄탄대로를 닦아 놓았으니 마음 편하게 다른 일을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대리점개설을 시작할 때 전국 50곳을 우리가 책임지고 오픈한다는 계약조건이 최사장 입장에서는 더 없이 매력적인 제안이었을 게다. 전국 대리점 50곳을 확보한다는 것은 브랜드를 런칭하는 입장에서는 성공의 담보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야 마당 쓸고 돈뭉치 줍기죠. 전국의 유망상권에 미리 점포를 확보할 수 있고 안정된 수익보장과 함께 의류산업의 흐름도 직접 체감해 볼 수 있는 안테나 점포를 설치한 것이니까요.”
“엄청 바쁘게 생겼구나. 7월에 월드컵준비도 해야 하고 내년 3월에 출시될 S/S 시즌에 맞춰 50개 점포도 알아 봐야 할 테니 정신이 하나도 없겠구나. 의류사업을 담당할 사람을 구해야 하겠다.”
“당연히 구해야죠. 이쪽 분야의 전문가를 뽑아야 합니다. 판매자를 교육할 사람도 같이 뽑거나 외부에서 초빙해서 위탁교육을 하는 방안도 동시에 고려하고요.”
“섬유저널에 광고를 내면 구할 수 있겠지”
“사장님 판매사원은 H아동복지회와 연계하여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생계가 어려워 아이를 H아동복지회에 맡기는 미혼모를 선별해 고용했으면 합니다. 고정적으로 수입이 생기면 해외입양을 보내지 않고 엄마의 품속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으니 더없이 좋지 않겠습니까?“
“뜻이야 좋지만 미혼모라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장사에도 지장을 줄게다. 차라리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해서 다른 일자리를 만들거나 아이를 책임지고 돌봐줄 탁아소 같은 시설을 만드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그것도 같이 병행해야죠. 그리고 처음부터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리고 광고할 필요는 없죠. 제 생각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혼모라도 당당하게 자기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은 겁니다. 모든 아이는 부모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H아동복지회에 걸려 있더군요. 버려지는 애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모정이란 위대한 감정을 외면하고 자식을 버리는 어미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아마 평생을 죄의식에서 살아 갈 겁니다.”
“그런 여건을 조성하려면 시간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엄청난 돈이 들어 갈 텐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1년에 최대 1만 명의 아이가 버려진다고 가정했을 때 월10만원 수익만 보장되면 그중 절반은 아이를 버리지 않고 직접 키우려고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5,000명*10만원 이면 월 5억, 연간 60억만 있으면 됩니다. 전쟁 후에 나라가 가난했을 때야 그렇다 치고 이제는 많이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쉬쉬하며 모른 척 하는 현실이 부끄럽습니다.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수익금으로 이것부터 해결하고 싶습니다. 더 많이 벌어 한꺼번에 해결할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도 고통 받는 애들을 보니 여건이 되는 시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먹는 그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부평 은행지점장실에서 말씀드린 멋지게 사는 첫 번째 시작을 이것으로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리점에서 얻는 수익이라 해야 앞으로 저희가 F-LAND에서 벌어들일 수익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적당한 시점에 우리 회사가 오픈한 대리점의 수익금도 전액 H아동복지회에 기부해 장애아들을 돌보고 미혼모가 자식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쓰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앞으로 벌게 될 그 많은 돈을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만 잘 살면 뭐 하겠냐? 좋은 일 하고 살면 없는 복도 생긴다는데. 나도 요즘 봉사활동 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느끼고 있던 참이다. 어디 한 번 크게 놀아보자.“
“고맙습니다. 큰아버지. 그리고 이번에 큰아버지나 저도 출근하기 편하도록 여의도나 목동으로 이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소연 누나도 인천에서 출근하기 힘들잖아요. 앞으로는 브랜드 런칭 준비로 엄청 바빠져 인천에서 출퇴근하기가 힘들게 될 겁니다. 큰엄마의 눈총도 피하시고요.“
“그 전에 은행이자의 2배나 주고 빌린 돈부터 갚아야지. 평생 은행원이었던 나는 솔직히 아직도 그 이자가 아까워 잠이 안 온다.”
“그러시다면 그것부터 먼저 정리를 하시고 이사도 하시면 되지요. 돈이야 충분하니까요”
“그러면 나야 좋지! 네 큰엄마 바가지가 요즘 보통이 아니다. 이제야 큰 소리 땅땅 칠 수 있겠구나.”
“좋은 일 하려다 가족을 불행하게 해서야 멋지게 사는 게 아니죠. 가족부터 행복해야 저도 행복하죠.”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가족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지. 그게 가장이 해야 할 일이지!”
‘지은아! 민호야! 민지야!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다시는 너희를 두고 먼저 떠나지 않을게! 그리고 꼭 행복하게 해주마!’
광명의 15평 사무실에서 1년 만에 여의도에 50평 정도의 넓은 사무실로 옮긴 (주)송뢰는 사장실 임원실 회의실과 상담실 탕비실이 있는 최소한의 투자회사의 면모를 갖추고 한 달이 되지 않아 남들이 보기에는 손해나는 이상한 대박을 터트리고 웅비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이날 저녁 회식이 자연스레 벌어졌고 한별과 미경은 시종일관 껄껄 웃으시는 사장님과 김이사 사이의 들뜬 기분에 동화되어 한계주량을 넘어서는 술을 마셨지만 상진의 이심일체 신공을 넘지 못했고 김사장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게 보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넝쿨째 굴러 들어온 복덩어리 조카가 술까지 잘 마신다며 흡족해 했다.
이날 상진도 맞커피에서 맞술로 진도가 나가서 내심 흡족했다.
‘다음에는 맞.....’
‘에라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어딜 감히!’
‘아 생각만으론 뭔 짓을 못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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