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살자!-11-초석의 장2
초석의 장2
상진이 부평을 다녀간 후 한표는 돈을 마련하느라 부리나케 돌아다닌 끝에 약 5억 정도의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상진의 아파트담보 대출과 은행에 있는 돈을 합쳐 5억 8천만원이 모였다.
물론 아직까지 수중에 돈이 다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 몰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벌이고 친구와 지인들을 총동원해 거금을 융통할 수 있었다. 은행지점장이란 신분과 평소 성실한 모습이 도움이 되었다. 지금상진으로서는 구할 수 없는 돈이었다.
돈이 마련된 한표는 법인설립절차를 알아보았는데 은행을 다니면서 법인대표이사를 겸직할 수는 없었고 상진은 고등학생이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도 맞지가 않았다.
상진과 상의 끝에 한표는 과감하게 은행에 사직서를 던졌다. 어차피 회사를 설립하면 일할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부동산매입이나 투자 등의 일이 주가 되기 쉬운 회사의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은행에서 받는 월급을 보장받고 대표이사로 김한표, 주주로 김상진이 법인등기부에 등재되었고 4월28일 충무공탄신일에 (주)송뢰가 상진집 근처 광명의 상가사무실에서 창업식을 가졌다.
‘송뢰(松籟)’란 ‘소나무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한국민(韓國民)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인 소나무 즉, 국민을 쓰다듬는 바람이 되겠다는 상진의 뜻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었다.
15평 정도의 조그마한 사무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로 20만원인 조그만 사무실이 앞으로 어떤 기적을 이룰지는 아직까지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뜯어 말리다 지친 큰엄마와 아무 것도 모르고 참석한 누나들만 모시고 돼지머리에 고사를 지냈다. 큰엄마는 상진과의 관계는 전혀 모르셨고 잘나가는 은행지점장자리를 박차고 허름한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는지 계속 불편한 심기만 내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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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한표는 5억의 돈을 가지고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부동산중개소를 다니며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덩어리가 큰 것을 알아본 끝에 적당한 매물을 구할 수 있었고 매입된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일으켜 또 다른 땅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규모를 키웠다.
나머지 돈 중에서 7천만원으로는 신문을 보고 상진이 찍어주는 주식을 샀다.
1985년의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타기 전의 보합장세가 지속되는 시기였지만 현수의 기억에의하면 이때 증권회사에 취직한 친구 놈들이 2,3년 후 88올림픽개최 영향으로 엄청난 보수와 성과급에 기고만장해 하는 것을 보고 배 아파 했던 기억이 있었다.
현수는 1988년에 제대해 가진 돈이 없어 주식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증권회사에 취직한 친구 놈들이 하룻밤에 일이백만원 넘는 술을 마셔대며 흥청망청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여상을 나와 증권회사에 취직한 20대 초반 여자가 가진 회사주식이 쉽게 억 단위가 넘을 정도였다.
주식을 하지 않았으니 어느 주식이 오르는지는 몰랐지만 증권주는 확실히 오를 것이라 생각해 증권회사주식을 있는 돈 모두 매입했다. 그중에서도 친구가 제일 잘나간다고 자랑했던 대우증권위주로 매입했다.
나머지 7백만원 정도는 만약을 대비해 법인통장에 잘 넣어 뒀다.
회사일로 한표가 정신없이 바쁠 때 상진은 5월 중간고사를 치렀다.
놀랍게도 전교 200등 정도였던 상진은 42등을 하는 기적을 보여줬고 독수리 오형제중에서 성적이 제일 좋았던 정수가 10등권 밖에서 8등을, 나머지도 전원 100등 근처의 성적을 찍었다. 그날 저녁 상진의 집에서 만난 독수리오형제는 기쁨을 만끽하며 서로를 축하 해준다.
“야! 내가 98등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가니 우리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리시더라. 시벌! 진작 좀 열심히 할 건데 후회가 다되더라.“
의기양양한 김기환이 우쭐대는 모습이 다 보인다. 역시 알기 쉬운 놈이다.
“임마! 98등 가지고 어디서 들이대고 있냐? 형님은 89등이다.”
뚱뚱한 김 동진이 입가에 저팔계 같은 웃음을 띠고 시비를 건다.
“전교8등하고 42등도 가만있는데 89등,98등이 어디서 자랑이라고 이래 시끄럽냐?”
“그런 말하는 놈 혼자 115등이라며? 너는 독수리오형제 탈퇴해라. 부끄럽다. 음하하하”
“야 나도 너희들처럼 공부방 있고 조용하면 50등도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수종의 말에 모두들 긍정하는 분위기다.
방2개짜리 월세집에서 동생들 둘과 함께 한방에서 생활하는 수종이 에게는 이번 성적도 상진이 집에서 마음 놓고 공부하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성적이었다.
그래도 100등 이상을 뛰어 넘은 성적이다.
3개월에 육만원 하는 기성회비를 못내 매번 불려가면서도 밝게 사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놈이기도 하다.
현수의 기억으로도 매번 마지막까지 교무실에 불려 다니며 혼났던 기억이 생생해 수종이 더욱 대견하고 장하게 보인다.
이때의 선생들은 왜 하나같이 반전체가 있는 데서 기성회비 안 낸 사람 손을 들게 했을까? 며칠마다 숫자가 줄다가 마지막까지 남아 손을 들던 기억과 교무실에 불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수종아!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된다. 나도 혼자 있어 심심하니 같이 지내면 좋겠다.”
“그래 그러면 좋겠네. 수종아 짐 싸들고 상진이 집에서 지내라.
친구 좋다는 게 뭐고?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말 아니냐.
당장 오늘부터 짐 싸라. 우리가 도와줄게.”
친구들의 적극적인 성원에 수종이 짐을 우리 집으로 옮기게 되었고 부모님들의 적극적 지원을 입어 이날은 통닭과 콜라가 넘치고 기환의 활약으로 야동이 눈을 벌겋게 만들었다.
‘그런데 변태 아저씨, 아저씨 나이에도 이게 재미있어요?’
‘학생이 내 나이 되어 봐. 그럼 여자 밝히는 데는 나이가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돼.’
‘에이 내가 속는 것 아닌가 몰라? 나중에 애인하고 즐길 때도 아저씨가 볼 거 아냐!’
‘내가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거니 나는 죄 없네. 억울하면 눈감아!’
‘으아, 미치겠네!’
아빠가 서재 비슷하게 쓰시던 방 하나를 차지한 수종이 부러워 자기도 짐 싼다는 친구 놈들의 성화를 이겨 낸 것과 가끔 회사에 들러 매입된 땅과 주식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는 평범한 고3의 생활이었다.
땅은 큰아버지가 엄청나게 노력을 했는지 점점 불어가고 있었고 주식은 차입금이자와 사무실경비는 나오는 정도는 수익을 내고도
남았다.
변화라면 향상된 성적에 고무된 독수리오형제의 대분발이 있어 1학기 기말고사에서도 큰 폭으로 등수가 올랐다는 것이다. 수종은 정말 50등 안의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또한 주말과 여름방학에는 상진의 꾐에 빠져 간편한 복장으로 안양천을 따라 한강변을 달리는 독수리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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