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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님의 서재입니다.

별 볼일 있는 무신환생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현정
작품등록일 :
2023.01.05 15:14
최근연재일 :
2023.04.13 07:00
연재수 :
1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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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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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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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만남

DUMMY

1. 만남


정각(正覺)은 소실봉을 빽빽이 채운 소나무로 눈을 돌렸다. 가지 사이를 붉게 물들여 가는 노을과 가지에 앉은 한 마리 학이 정각의 눈동자에 비쳤다. 학이 하늘로 날아가자 눈에 물 한 방울이 맺혔고 눈을 감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 땡중의 삶은 재미 있었구나.


- 두 갑자에 이르러 72종 절예 동작 하나하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오랜 동안 깜깜했던 새로운 무학의 길이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이승의 끝에 도착했구나.


- 이 또한 번뇌라. 어차피 공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럼에도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 작은 눈, 퍼진 코, 넙대대한 얼굴, 세면대에 비춰봐도 못생긴 얼굴이다. 소림신룡이라는 명성 덕분에 정∙사를 막론하고 수십 명 여협의 은근한 유혹을 받았다.


- 어떻게 알았냐고? 동자승 때 사부 심부름으로 장경각에 갔다가 옆에 꽂혀 있던 책자를 봤거든. 먼지에 뒤덮인 10쪽 짜리 해심공(解心功)을 남몰래 익혔지. 사람들의 속마음이 자연스럽게 읽혔어. (소림 역사상 해심공을 나만큼 익힌 중은 없다고 장담한다. 1년 동안 공력이 개미 똥만큼 모였거든)


- 나도 소림신룡으로 불리던 시절 여협들의 속마음을 읽었기에 꿈속에서 상상 속에서 격렬한 정사를 치르곤 했다.


- 환속해서 여협 한 명 골라 아이들 낳고 오손도손 살아볼까 생각했다.


- 하필이면 사부가 마두나 흉인들 조차 무릎 꿇고 땅에 머리부터 박는 광승이었다. 내가 환속한다고 말했으면 백보신권에 머리가 깨졌을 것이다.


- 그것이 아니면 사부도 찾을 수 없는 심산유곡에 숨어서 지내야 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존경받는 땡중이 낫지.


- 사부가 성불하시고 나서야 감히 나를 때려 죽일 자는 없었다. 그때는 나도 소림신승이라는 허명에 흠뻑 취해 지금까지 땡중으로 살아왔다.


- 패륜아, 탕자, 음적, 산적, 마적, 비적, 흑사회 놈들 등등. 이놈들이 웃긴 게 한참 난동을 부리다가 나를 마주치면 갑자기 무릎 꿇고 한 번만 살려 달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싹싹 빈다.


- "이 호구 새끼야. 제발 한 번만 살려줘.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말자." 속마음이 뻔히 보이니까 천강장으로 때려 죽이고 싶었다. "와, 마두와 흉인도 설복하시는 소림신룡이시네." 라는 사람들 때문에 언제나 조금 패고 설법하고 용서해 줬다.


부처님이 그러길 바랬을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 물론 다시 태어날 리 만무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개방 비렁뱅이가 될지라도 땡중으로 살지 않으리. 눈치 안 보고 어디서든 마음 내키는대로 먹고 자고 연애하는 개방 놈들이 참 부러웠다.


다사다난했던 삶의 과거가 수채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각은 눈이 흐려지고 한 숨이 나왔다. 백삼십 년을 살면서 가장 회한이 남는 일이 떠올랐다. 안타까운 사제와 제자를 마지막으로 그리면서 가부좌인 채로 이승과 작별했다.



*****



객잔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니 멀리서 한 줄기 먼지 덩어리가 가까워 진다.

"야. 저 새끼 잡아."

"이번엔 놓치지 마"


항주의 청하대로.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를 4척이 채 안 되는 소년이 미꾸라지처럼 질주하고 있다. 그 뒤를 3, 4 명의 흑서방 무리가 고함을 지르며 따라간다.


땀방울이 튀고 거친 숨소리가 나면서 점점 두 무리의 간격이 좁혀진다. 장삼은 바로 뒤까지 다가온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느낌과 동시에 옆에 있는 장신구 좌판을 걷어차며 방향을 바꿨다.


"에구머니나. 저 저. 나쁜 새끼"

공중으로 튀어 오른 장신구 세례에 잠깐 멈칫 했던 건달들이 다시 뒤를 쫒는다.


인파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달리는 중에 두툼한 검은색 다리 하나가 발 앞에 슬며시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당탕 쿵탕!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나자빠진 몸이 가볍게 들려지고 한 바퀴 크게 공중회전을 하더니 바닥과 만나는 순간 사람과 땅바닥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뻑! 쿵!

"어윽"

"요놈 자식. 어디 더 도망쳐봐"

"헉헉, 부당주님"

"야이 밥 버러지들아. 다 큰 놈들이 꼬맹이 배수(掱手: 소매치기) 하나를 못 잡아서 이 난리를 벌이냐?"


입에서 귓바퀴까지 길게 그어진 지렁이를 왼쪽 뺨에 가진 냉막한 얼굴의 흑의장포인이다. 장한들의 빰을 두툼한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자 볼은 금새 찐빵이 된다.


"니들 오늘 자시에 집법당에 모두 집합해. 다리 하나씩 부러질 각오해!"

"부당주님. 죄송합니다. 저놈이 미꾸라지 같아서 그만"


가볍게 장삼을 제압한 부당주가 냉담한 표정으로 비켜섰다. 소방주에 이어 부당주한테까지 욕을 먹은 것도 모라자 두드려 맞을 일까지 생긴 흑서방도들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 오늘 죽어봐라."


뒤룩뒤룩 살찐 왕일이 코끼리 같은 다리를 휘둘러 장삼의 얼굴을 힘껏 차고 짓밟았다. "이 겁 없는 새끼가 감히 소방주님 호주머니를 털어."


말상에 삐쩍 마른 오원이 말리면서 다가왔다.

"그러다 죽이겠다. 일단 방에 끌고 가자. 소방주님께서 처리하실 거야."


쓰러져 있는 장삼의 힘 없는 두 팔을 뒤로 묶고 일으키려는 찰나.


휘이익!

빠각!


검은 바람이 왕일의 머리에 떨어졌다. 머리에서 튄 피가 얼굴과 장포를 빨갛게 물들였다. 왕일이 픽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는데 한 손에 거무튀튀한 곤을 들고 선 5척 가량의 소년이 예리한 비수로 장삼의 팔에 묶인 매듭을 잘라냈다.


"대형"

"넌, 빨리 여기를 벗어나라."

"대형은 어떻게 하고"

"날 믿어라"


오원을 비롯한 흑서방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직배도를 든 손아귀에 힘을 주자 팔뚝이 꿈틀거렸다. 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서서히 발을 끌며 양옆으로 퍼져갔다.


양소운은 장한들을 향해 큰 동작으로 비수를 휘둘렀다.


"우리 식구 일이니 내가 책임진다. 장삼은 보내 줘라"


장삼이 게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뒷걸음 치며 3 장 쯤 물러가다 뛰어서 멀어졌다.


흑서방 집법당 부당주인 황삼충은 조금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본다.


"이 새끼만 잡으면 배수 패거리는 끝이야."


남은 흑서방도 셋이 반질 반질한 직배도를 조금씩 흔들며 품자 형태로 양소운을 에워싼다. 눈짓을 교환하다가 앞에 서 있던 오원의 힘찬 내려 찍기를 시작으로 거친 기합 소리를 내며 곽성은 상체를 조굉은 하체를 동시에 공격했다.


"얍"


양소운은 오원의 공격을 삼재보로 흘리고 오른쪽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밑에 위치한 조굉의 머리를 곤으로 내려 쳣다.


뻑!

사각!


양소운의 움직임을 놓친 조굉이 머리를 드는 순간 검은 몽동이가 눈앞으로 다가와 이마 가운데 그대로 꽂혔다. 움직임을 끝까지 따라가던 곽성의 직배도가 양소운의 종아리를 그었다.


"음"


종아리에서 피가 배어나기 시작하면서 양소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새어나오고 등에는 식은땀이 차기 시작했다.


오원이 잠시 여유를 찾았다.


"이 새끼. 이제 너도 끝이다. 다리를 다쳤으니 도망가기 글렀지"


쉭!


느려졌던 양소운의 동작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며 오원의 허벅지에 비수가 꽂힌 순간 전혀 예상 못한 결과에 곽성은 당황했고 겁이 덜컥 났다.


한 발 뒤로 움찔하는 곽성을 향해 양소운이 다가섰다.

"부당주님. 도와 주십시오."

"이런 밥버러지들이 흑서방도라니 차라리 죽어라"


흑서방도의 한심한 싸움 실력과 비굴함에 짜증이 난 황삼충이 천천히 걸어왔다.


- 이자는 절대 내 상대가 아니다. 싸우면 죽는다.

판단을 마친 양소운은 황삼충에게 전력을 다해 비수를 던지고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쉬익!

찹!


금나수로 간단하게 비수를 잡은 황삼충은 도망가는 양소운에게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비수는 그대로 양소운의 허벅지에 꽂혔고 황삼충은 절뚝거리는 양소운을 낚아챘다.


"어린 놈이 제법이네. 재롱 잔치는 잘 봤다. 아무리 천방지축이어도 우리 소방주님을 털어. 차라리 죽는 게 행복할 거야."


양소운이 곧바로 황삼충에게 무릎을 꿇었다.

"장삼이 소방주님인 줄 모르고 큰 실수를 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사정은 흑서방에 가서 소방주님한테나 해라."


"너 이 새끼. 아주 걷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비틀거리며 다가온 오원이 비수를 꺼내 양소운의 근맥을 자르려 하자 황삼충의 발이 오원의 복부에 꽂혔다.


"네놈 복수는 소방주님께서 처리한 이후다. 어서 이놈을 끌고 가."


주변 상인들이 혀를 끌끌 찼다.

"소운이 저놈 오늘 죽겠네."

"흑서방이 어떤 곳이야. 살아도 완전히 병신을 만들어 놓을 거야."


"무슨 구경거리라고 여기 모여있는 거야. 끝났으니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흑서방의 위협에 구경꾼들이 힐끔힐끔 바라보며 각자의 길로 돌아가고 흑서방도들이 양소운을 질질 끌고 간다. 바랑을 맨 회색 승복의 승려가 흑서방도 앞을 막아 섰다.


"아미타불. 시주. 어린 아이가 많이 다쳤는데 치료를 먼저 해야 하오."

곽성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땡중은 뭔데 흑서방 행사에 끼어들어."

"잠깐만 비켜라."

"예. 부방주님. 이 땡중이..."

"너는 물러서라고. 이 바보 새끼야."


계속 욕을 먹은 곽성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황삼충이 떨리는 목소리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포권을 한다.

"저는 흑서방 집법당 부당주 황삼충이라고 합니다. 스님 혹시 어디 소속이신지요?"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에서 나왔습니다."


예상했던 것 중 최악의 경우를 만난 황삼충은 정중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모르시겠지만 이놈은 이곳 항주에서 유명한 배수입니다. 게다가 우리 소방주님 물건을 훔쳤을 뿐아니라 해치려 했습니다. 방에 끌고 가서 죄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중이라면 이를 갈 만큼 싫어하는 양소운이지만 흉칙한 흑서방 부당주가 설설 기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동아줄을 잡았다는 생각에 승려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장삼이 훔치기는 했을지언정 사람을 해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 조그만 것이 흑서방 소방주님을 무슨 재주로 해치겠습니까?"


당황한 황삼충은 이 뜻밖의 반격에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중년 승려가 소림사의 무승이 맞다면 흑서방 전체가 나서도 안될 일인 건 불문가지이다. 그럼에도 양소운을 포기한다면 포악한 소방주의 화가 자신에게 쏟아질 것을 생각하니 부담이 가슴을 짓눌러왔다.


"스님께서 정 이 문제에 개입하고 싶으시다면 저희 흑서방에 직접 가서 방주님께 말씀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꼭, 그래야만 한다면 소승이 같이 가겠습니다."


"스님께서 묵고 계신 객잔을 알려주시면 연통을 넣어드리겠습니다."


황삼충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소방주가 양소운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병신을 만들어도 강호 도리에는 어긋나지 않는다는 명분을 댈 수 있으리라.


"시주 입장이 곤란한 것 같은데 지금 같이 가시지요."


"곽성"


"예. 부당주님"


"지금 빨리 방에 가서 상황을 알리고 귀중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일러라."


"예. 알겠습니다."


"오원. 조굉"


"예. 부당주님"


"너희 둘은 이놈하고 왕일을 끌고 가라"


"시주.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다친 사람이 여럿이라 먼저 간단한 치료부터 합시다."

"......"


중년 승려는 바랑에서 금창약을 꺼내더니 양소운을 비롯해 흑서방도들의 부상 부위에 금창약을 조심스럽게 발라줬다.


"여러분들은 제대로 낫기 전에 함부로 움직이면 안됩니다. 부상이 도질 지도 모르니."


일행은 어두워져서야 항주 서쪽 외곽에 자리 잡은 흑서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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