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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님의 서재입니다.

리벨리온: 광휘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이종길
작품등록일 :
2023.08.16 16:33
최근연재일 :
2024.04.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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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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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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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6화

DUMMY

56화






르타곤의 수도, 에슬란의 남쪽에 펼쳐진 벡턴 평야는 반란군의 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좌장군 베인이 사만의 대군을 이끌고 슈인의 렌시아군에게 맞서기 위해 헉슬란으로 떠난 틈을 타 모반을 일으켰던 데릭의 오만 반란군은 승전을 거듭하며 수도로 진격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진군은 결국 벡턴 평야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13일 만에 헉슬란 성에서 돌아온 좌장군 베인의 군사들이 반란군 진지의 후미를 친 것이었다.

베인의 군사들은 렌시아군과의 전투와 밤낮을 가리지 않는 행군으로 지쳐 있었지만 전투 앞에서는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헉슬란에서 나온 대장군 죠셉 베르트와 킴벌리 그레이어가 각각 이끄는 이만 명의 군사가 불의의 기습에 혼란에 빠진 반란군의 측면을 공격해왔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난 것이었다.

압도적인 병력과 충성심의 차이는 쉽사리 메울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까지인가?"


막사 밖으로 황군에게 도륙당하는 반란군을 보며 사무엘이 혀를 찼다.

애초부터 데릭이라는 자의 능력은 여기까지였다. 자신이 마약에 중독시킨 영주들을 데릭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반란군은 벌써 전멸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완수한 편이었다.

좌장군 베인과 군사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르타곤 제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황제는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다. 다음에는 또 누가 반란을 일으킬지 어찌 알겠는가? 그것으로 이번 임무는 훌륭히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일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 녀석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영주들은 이 전쟁에서 모두 죽었다.

남은 것은 반란군의 수장, 데릭 르타곤뿐이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선 사무엘이 의자에 앉아 약에 취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콧수염의 중년인을 바라봤다.

멍한 얼굴로 콧물과 침을 흘리고 있는 이자가 바로 데릭 르타곤이었다.

황가의 핏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하고 깡마른 사내를 보며 사무엘은 혀를 찼다.

형이 사자라면 적어도 늑대 정도의 기량을 가진 사내였지만.

황좌에 대한 욕망.

그리고 형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약에 손을 댔고.

지금처럼 나약한 ‘인형’이 되었다.


그 나약한 인형이 지금.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야, 약을 다오. 제발······."


자신을 보며 간절하게 애원했다.

아마 패전을 앞두고 공포를 잊기 위해 마약을 먹은 것이리라.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자신의 부관이었던 사무엘에게 사정하고 있는 데릭의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했다.


"약을 달라 하셨습니까?"


사무엘의 입매가 치켜져 올라갔다.

그는 품속에서 클락과 그의 제자들이 만드라고라의 뿌리와 각종 미약을 섞어 만든 마약이 든 봉투를 꺼냈다.

여전히 입으로만 웃고 있던 사무엘이 봉투에 든 금빛 가루들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아, 안 돼! 약. 내 약!"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데릭이 바닥에 떨어진 마약의 가루들을 손으로 끌어 모아 입으로 가져갔다.

그걸로 부족했던 걸까?

손에 든 마약이 떨어지자 급기야 혀로 바닥에 떨어진 마약 가루들을 핥기 시작했다.

떨어진 음식을 먹는 강아지처럼, 추한 그 모습을 보며


스르릉-.


사무엘이 허리춤에서 힐트에 번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다른 검신의 절반 정도 크기인 날렵한 검신에서는 연신 푸른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아이젠에게서 하사받은 번개의 정령 라이오너가 봉인되어 있는 검, 니드온이었다.


그러나 데릭은 그가 검을 빼냈는지도 모르는지 멍한 얼굴로 히죽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사무엘의 입매가 실소를 그렸다.


'부럽군. 꿈속에서 죽을 수 있으니.'


만드라고라의 마약은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환각을 보여준다.


“그래. 짐이, 짐이······르타곤의 황제다!!”

“······.”


지금 희미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데릭은 환각 속에서 르타곤의 황제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다.

절대 이뤄지지 않을 자신의 꿈을.


“그래. 영원히 꿈 속에서 살아가거라.”


진한 조소를 지은 사무엘의 니드온이 스파크를 뿌리며 데릭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



헉슬란 성으로부터 동쪽으로 반나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아든 성은 전쟁의 여파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곳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쳐흘렀고, 물건을 옮기고 있는 상인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곳이다.

멍하니 여관 한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수척한 얼굴의 여인을 빼고는 말이다.


'제길. 이제 저런 식으로 죽겠다는 건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팔짱을 끼고 여인, 세리엘을 쳐다보고 있는 레이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녀가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은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나마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는 나아진 지경이었다. 그때는 소리를 지르며 하루 종일 울고만 있었으니까.


"오빠, 어떡해?"

"내가 명령을 내려 볼까?"


레이의 옆으로 다가온 유렌과 윌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안톤도 꽤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그들을 번갈아 보던 레이가 팔짱을 풀었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한다 이거군.'


세리엘 때문에 벌써 사흘이나 시간을 낭비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세리엘의 앞에 다가선 레이가 대뜸 말했다.

그러나 세리엘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을 향해 있었다. 깔끔하게 무시를 당했지만, 오히려 레이는 웃으며 그녀의 앞에 앉았다.


"굶어 죽는다라··· 썩 추천할 방법은 아니야.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고 괴롭거든. 그리고 의외로 사람은 오래 굶어도 잘 안 죽어. 차라리 독약을 먹거나 검으로 손목을 그어. 힘들지도 않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잖아. 안 그래?“


레이의 독설에 고개를 돌린 세리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꺼져요."


그녀의 말을 들은 레이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반응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레이의 독설이 이어졌다.


"누가 보면 둘이 애인인 줄 알겠어. 아니면 그 자식이랑 자기라도 한 거야? 왜 이리 난리를 치는······."


턱 하니 팔짱을 낀 채로 구시렁대던 레이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의자에서 일어선 세리엘이 그의 얼굴을 향해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슈아악-.


두 자루의 검이 레이의 얼굴과 가슴을 노린다.

전혀 멈출 기세가 없는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그러나 레이는 웃으며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렸다.


슈각-.


세리엘의 검에 세 동강이 난 의자의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색하게 의자 다리를 들고 있던 레이가 히죽 웃었다.


"아직 힘은 남아 있나 보네. 내가 원하던 게······."

"죽어."


슈아악-.


세리엘의 검이 다시 레이에게 뻗어왔다.

의자 다리를 집어 던진 레이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사흘이나 굶었는데도 힘이 있군. 제법이야."

"닥쳐!"


이를 악문 세리엘이 소리치며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기력이 없는 그녀의 검이 레이의 몸에 닿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공격을 계속하던 세리엘의 몸이 땀으로 젖어 들었다. 하지만 검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눈물 대신 땀을 흘리려는 것처럼 더욱 격렬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면서.

세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뭘 하는 거지?’


마치 생떼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지 않은가.

너무나 나약하고 실망스런 자신의 모습이 수치스럽다.

그렇게 부끄러움에 떨던 그녀는 결국, 레이를 향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현란하게 다리를 움직이며 공격을 피하던 레이가 갑자기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슈악-.


레이의 목과 왼쪽 가슴 앞에 멈춘 세리엘의 검 끝이 바들거렸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레이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분풀이를(?) 하는 동안에 진짜 해야 할 일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어리광은 여기까지만 부리자.’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마커스에게도 미안했으니까.

살기를 거두는 세리엘을 보며 레이가 손바닥을 부딪쳤다.


"그게 정답이야."


자상함이 느껴지는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세리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울음을 참았다.

살아 있는자는 쉽게 울어선 안 된다.

쉬운 눈물 대신, 안간힘을 대해 죽은 이를 기억해야 한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레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커스는 널 살리기 위해 죽었어. 네가 할 일은 무작정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마커스가 원했던 일을 하는 거야."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짐을 지워놓는다.

산 자는 절대 죽은 자가 지운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래서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네 부하의 죽음에 의미를 만들어줘."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우는 것이 아니라 마커스가 염원하고, 하려 했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참 동안 레이를 바라보던 세리엘이 들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떨어뜨렸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약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죽은 동료가······너무 보고 싶었다.


"으흑. 으흐흑.“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지만, 또다시 눈물이 나온다.

그런 세리엘을 바라보던 레이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오늘까지는 울어.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야."


레이의 가슴 앞섬이 축축하게 젖어온다.

그러나 살짝 미소를 지은 그가 세리엘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행이다. 흐윽. 흐윽."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윌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안톤 역시 큰 표시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감동을 받은 얼굴로 레이와 세리엘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렌은 그런 둘과는 다른 의미의 시선으로 레이의 품에 안겨 있는 세리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녀도 마커스의 죽음이 안타깝고, 세리엘이 안쓰럽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는 자신도 알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질투가 난다.

괜스레 화가 나고 가슴이 떨리는 것이다.


'저 여잔 그냥 오빠한테 위로를 받고 있는 것뿐인데··· 그냥 그뿐인데······.'


세리엘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 유렌은 계속 우두커니 서서 레이의 품에 안겨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반란군을 제압한 르타곤의 수도 에슬란은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비록 헉슬란 성을 비롯한 네 곳의 성을 렌시아군에게 빼앗겼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든 성들을 수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일만 명이 넘는 소드 엑스퍼트 기사를 보유하고 있고, 소드 마스터인 4대 장군들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이 정도의 전략이면 카르고 지역의 성들뿐만 아니라 렌시아를 정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황궁으로서는 렌시아를 견제하는 것보다 더욱 시급한 일이 있었다.

르타곤의 수도, 에슬란의 중심부에 있는 황궁의 대전에는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턱수염을 기른 강한 인상의 사내가 텅 빈 황좌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도 아버님이 원망스러운 적은 처음이구려."


물끄러미 황좌를 바라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다시 쓰게 웃으며 자신의 뒤에 있는 평범해 보이는 새하얀 튜닉과 바지를 입은 하이 엘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못난 자식의 푸념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흉을 보진 마시오, 죠셉 장군."

그의 말에 무려 150년간 르타곤 제국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장군, 하이 엘프 죠셉 베르트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태자님. 저 역시 폐하가 그립습니다."


150년간 인간과 같이 살며 인간의 이름과 성을 얻은 하이엘프를 보던 르타곤의 태자, 알렌 르타곤의 입매가 다시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장군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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