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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님의 서재입니다.

리벨리온: 광휘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이종길
작품등록일 :
2023.08.16 16:33
최근연재일 :
2024.04.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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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글자수 :
678,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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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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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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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2화

DUMMY

남부 전선 카르고 지역에 있는 네 성 중 가장 최전방에 위치한 아베든 성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르타곤 제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지금은 렌시아군과 한 몫을 단단히 잡으려는 상인들과 용병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렌시아의 백성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베든 성을 확실히 자국의 영토로 만들려는 렌시아는 세금의 절반을 깎아주면서까지 자국민의 이주를 독려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연일 아베든 성으로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베든 성의 정문.

성문으로부터 길게 이어진 마차의 대열을 보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레이가 투덜거렸다.


“하아암. 정말 지겨워 죽겠네. 도대체 언제 들어가는 거야?”


벌써 두 시간이나 서 있었지만 마차가 움직인 거리는 고작 1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짜증스런 얼굴로 투덜거리던 레이의 옆에 있던 유렌이 두 눈을 부비며 칭얼거렸다.


"오빠, 나 배고파."

"으응. 조금만 기다려. 금방 들어가면 오빠가 맛있는 것 사줄게."

"에헤헤. 진짜지?"


유렌이 혀를 빼물고 살짝 웃었다. 그들의 앞에 앉아 있는 윌터 역시 자신은 먹을 것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도도한 얼굴이었지만 내심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가 하고 싶군.”



그들이 마지막 마을을 지나온 지 벌써 엿새가 흘렀다.

엿새 내내 그들이 먹은 것은 세리엘과 마커스가 준비해온 비상식량인 육포와 건량이었다.

물론 페르단 대륙 전역을 누벼야 하는 아르고스 요원들에게는 필수적인 음식이었지만 평범한 자신들에게는 매 끼니가 고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누구 때문에 배 많이 고팠다. 그치?"

"그 누가 저를 가리키시는 건가요?"


마부칸 쪽의 창문이 드르륵 열리며 세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죽 웃은 레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혀는 이상한데 귀는 좋은가 봐?"

"다, 당신··· 지금 화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아이고, 하녀가 귀족한테 하대를 하시네. 규율에 따라 혼을 내줘야 하나?”

“······.”


레이의 도발에 세리엘이 저절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웃은 하얀 앞치마가 달린 전형적인 메이드복이었다.

그리고 마커스 역시 허름하고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마부복이다.


“하······.”


물론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비밀 업무를 들키지 않게 위장을 하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화려한 정복을 입은 레이나 파란 드레스를 입은 유렌을 보고는 분통이 끓어올랐다.


“노린거죠?”


세리엘이 정곡을 찌르자 레이가 턱을 긁적였다.


"말했잖아. 귀족 신분패가 3개씩밖에 없었다고. 신분패에 맞게 옷을 입어야지. 안 그래?"


그녀의 대꾸에 세리엘은 당장이라도 짐칸에 숨겨놓은 자신의 검을 빼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지금은 분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짜 빼들고 덤비면 지겠지만······.’


세리엘이 약자의 서러움을 느끼고 있는 그때.

마커스가 마차를 멈춰 세웠다.

드디어 성문에 도달한 것이다.


파수병들이 그들을 멈춰세웠다.


"멈추시오."

"예, 병사님. 헤헤헤.“


덜그덕-.

어느새 완벽한 마부가 됐는지 비굴한 웃음을 머금은 마커스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 파수병 앞에 마차를 멈춰 세웠다.


"모두 신분패를 꺼내주시오."


파수병의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의 말에 레이 일행들이 각각 품에서 신분패를 꺼내 파수병에게 건네줬다.

신분패를 유심히 훑어보던 파수병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고.

긴장했던지 괜스레 마커스의 눈가가 씰룩였다.

세리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들키진 않겠지?’


들키면 레이가 해결 하겠지만.

그래도.

아이젠의 추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언젠가는 결전을 펼쳐야겠지만.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때는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다.


그렇게 세리엘이 긴장하고 있는 그때.

파수병이 다가왔다.



"수고하십시오."


전혀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생긋 웃는 파수병이 신분패를 내밀었고.


휴우-!


세리엘과 마커스는 동시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에게서 신분패를 받은 세리엘이 마커스에게 눈짓을 했고.

마커스가 그대로 마차를 출발시키려는 찰나.

기사가 파수병들을 향해 눈짓을 했다.


카앙-!


그러자 파수병들이 창을 교차시키며 마차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행동에 당황한 마커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저, 저희들이 무슨 실수라도······?"

"실수? 했지. 설마 아베든 성에 그냥 들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예? 그게 무슨······?“


기사가 오른손으로 돈 세는 시늉을 하며 마커스를 쳐다봤다.


"성의 표시를 해달라는 건가?“

대답을 한 것은 마커스가 아니라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레이였다.

그의 말에 기사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번졌다.


"그래도 제법 말을 알아들으시는 분이 있군요."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온 레이가 피식거렸다.

용병 생활을 하며 많은 곳을 떠돌아다닌 그는 이런 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나라의 군인이라는 작자들이 품위없고 저열하게도 통행세를 뜯어내는 것이다.


"나 같은 귀족에게도 그런 성의 표시를 바라나?“


레이의 말에 기사가 큭큭거렸다.


"귀족이라고 다 같은 귀족은 아니지요. 안 그렇습니까?"


기사는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레이를 흘겨 보았다.

여태까지 기사는 수많은 귀족들을 만나왔기에 그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전선 지역까지 왔다면 패가망신한 후 재기를 노리는 구 귀족일 터.

그렇다면 자신들이 전혀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척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쳐다보는 기사를 보며 레이의 입가에 실소가 맺혔다.


"그래?"


보통 때라면 그냥 돈을 주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교황청까지 길고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시간은 물론 돈도 아껴야 한다.

즉.

이런 개자식들에게 낭비할 골드 따윈 없었다. 슬며시 웃던 레이가 살기를 내뿜었다.

"으윽!"


레이를 보며 조소를 흘리던 기사와 파수병들이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살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으으. 으으으.”


절대적인 공포에 압도당했기 때문일까.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뱀 앞의 쥐처럼 벌벌 떨고 있는 기사의 앞으로 다가간 레이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의 표시가 더 필요한가? 필요하면 이제 물리적으로도 해줄 수 있는데.“


레이가 두 주먹을 꽉 쥐었고.


우드득-!


그의 주먹에서 난 소리를 들은 기사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


아베든 성에는 아직까지 전쟁의 폐해가 남아 있었다.

곳곳에 무너진 성벽과 부서진 건물이 보였고, 렌시아군의 시체를 싣고 가는 마차도 있었다.


‘역시 전쟁터긴 하구나.’


마차의 창밖을 바라보던 레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활기찬 성이긴 하지만 시체들을 보니 전쟁터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자신도 전쟁터는 처음이었다.

용병으로 살아가곤 있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한들 아이젠과 슈인이 일으킨 전쟁에 참가해 검을 휘두르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저기 어디인가에 있겠지?'


친우였고.

지금은 원수가 된 슈인의 얼굴을 떠올린 레이가 남쪽 성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봤다. 저곳 어디인가에 그가 있을 것이다.


꾸우욱-!


슈인을 떠올리자 말아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복수심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슈인이 있다면 당장 가서 목을 베고 싶다.

그러나.

레이는 평정심을 가까스로 되찾았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자신이 이 임무에 뛰어든 이상 언젠가는 서로 검을 부딪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꼬맹이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레이가 보호해야하는 꼬맹이도 지금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 하냐?”

“내가 왕이 되려고 하면, 또 전쟁이 벌어지겠지? 그러면 또 사람이 죽을 거고. 그러면 왕이 돼서도 하나도 기쁘지 않겠네. 같은 생각.”

“······.”


슬픔을 머금은 소년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윌터의 다른 일면을 봤기 때문일까?

레이 역시 소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의외로 훌륭한 왕이 될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처우와 욕망이 아니라, 희생당할 백성들을 걱정하고 있다.

군주로서의 이보다 훌륭한 덕목이 어디 있단 말인가.

레이의 머릿속에서 윌터의 평가가 올라가는 그때.


끼이익-!!


어느새 마차가 여관 앞에 멈췄다.


"자, 다들 내리세요."


마부석에서 내린 마커스가 소리치자 짐칸에서 자신의 짐을 챙긴 레이와 유렌, 윌터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의 앞에 있는 여관은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포가든 여관이라고 쓰인 간판을 달고 있었다.


"우후, 이 냄새. 여관이 꽤 괜찮은걸?"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레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여관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제대로 된 음식 냄새에 다들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세리엘 만은 빼고, 말이다. 옷이 든 배낭과 두 자루의 검을 끌어안은 그녀가 부리나케 여관으로 뛰어갔다. 아마 메이드 복을 갈아입으려는 모양이리라.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레이가 소리쳤다.


"아, 그거 버리지 마. 나중에 한 번 더 입어야 하니까."

'크윽!'


고개를 돌린 세리엘이 그를 힐끗 노려보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레이는 세리엘을 데리고 여유 있게 그녀를 뒤따를 뿐이었다.

끼이익-!!!


'얼씨구?‘


여관 안으로 들어간 레이는 순간 움찔거렸다.

1층의 식당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 레이였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자들이 모두 용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미있는 곳을 골랐군. 용병 전용 여관인가?'

용병 전용 여관이란 이런 전투가 빈번한 국경지대에서 용병 길드가 운영하는 여관을 말한다. 한시적으로 무기나 생필품을 팔고 빠지는 상인들은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국경지대에 머물며 여관을 운영할 사람들은 없었기에 용병 길드가 직접 여관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용병이 아닌 일반 손님도 받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누굴 보는 거야?'


가만히 용병들의 시선을 쫓던 레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유렌이었다.

그리고 또 한 무리의 용병들은 후다닥 2층으로 뛰어 올라간 세리엘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거 조용히 못 넘어가겠는데?'


레이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단순하게 눈요기로 끝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여자에 굶주린 이 털북숭이들 중에는 힘을 써서 여자를 빼앗으려는 녀석들도 있었다.

지금 히죽거리면서 일어나는 이 텁석부리처럼 말이다.


등에 클레이모어를 멘 텁석부리가 유렌의 앞을 가로막았다.


"예쁜 아가씨, 그런 애송이들은 놔두고 우리랑 술 한잔해. 오빠들이 전쟁터에서 누볐던 무용담을 이야기해주지. 진짜 남자가 무언지도 가르쳐주고 말이야. 으흐흐."


자신의 사타구니를 턱 움켜쥐고 말하는 텁석부리를 보고 그와 같은 테이블에 있던 용병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 오빠."


그런 그들의 우악스런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렸는지 유렌이 레이의 오른팔을 꼭 붙잡았다.

그러나 레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렌, 먼저 앉아 있어. 마커스, 유렌과 윌터를 부탁해."

"예, 레이 님.“


텁석부리를 노려보며 응전태세를 갖추고 있던 마커스가 유렌과 윌터를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빠아악-!


레이에가 휘두른 전광석화 같은 주먹을 얻어맞은 텁썩부리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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