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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6,494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29 12:15
조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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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소녀는 악마에게 기대어 선다

DUMMY

“으아아······.”


엔테는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눕히며 힘겨운 소리를 흘렸다. 진작 돌아와있던 루드는 읽던 책을 덮고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피곤해 보이는군.”

“숨막혀죽는 줄 알았어.”


엔테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밝혔다. 지금 그녀가 그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건 루드와 크리스 정도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될 거야. 평범하게 귀찮은 정도겠지.”


물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확실하게 입지를 다져야만 가능해지는 일이다.

진정한 충성을 받아낸 군주는 겨우 표정 하나 실수한 것으로 신하들이 평가를 달리하는 일 따위 없으니까.


“그래도 잘 풀렸나 보군.”

“응. 일단은.”

“뭐 그 정도가 최선의 상황이겠지.”

“그런데 넌 어떻게 통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전에 영주라도 해본 거야?”


그 전에 악마들에게 영주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엔테가 악마들에 잘 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통사람들에 비해서였다. 그녀는 아직 그들의 사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뭐 대충 그런 거라고 해둘까.”

“흐응~”


아 그러셔?

루드가 그렇게 적당히 넘기는 것도 슬슬 적응이 되었기 때문에 엔테는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적응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행동 자체에 대한 것일 뿐, 오히려 신경이 쓰이기는 전보다 더 신경 쓰였다.

순수한 호기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조금 정도는 이야기해줘도 좋을 텐데······.’


물론 억울한 생각도 좀 있었다. 자신은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드러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딱히 내색하지 않는다.

악마에게 사적인 궁금증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자. 그리고 일단은 쉬자.

이렇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도 이제는 별로 없을 테니까.

엔테는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다시 세토라로 돌아가면 더 이상 지금처럼 아무렇게나 누워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딘가 돌아다닐 때 대부분 기사나 행정관이 그녀의 곁을 지킬 테고, 방 안에도 대부분의 시간동안 시녀가 대기 중인 것이다.


‘시녀들도 이젠 믿을 수가 없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동안은 깨닫지 못했을 뿐.

그녀를 시중들고 있는 시녀들은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영지의 영애들이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귀족들에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까지 그녀들 앞에서 얼마나 추한 모습들을 보였던가.

만약 그것 때문에 레이몬드의 반역이 계획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 수준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정치적으로만 행동하고 있진 않겠지만, 누가 어떨지 가려낼 수 없으니 무작정 조심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곳 린드버클은 특수한 상황인 덕분에 시녀가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은 거다. 게다가 일단은 크리스가 그 역할을 수행하기로도 했었으니까. 물론 어쩌다보니 당장에는 반대 상황이 되었지만.

어쨌거나 플리온 공작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더욱 지켜보는 눈이 늘어날 것이다. 평가의 강도도 강해질 것이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 엔테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턱을 괴었다.


“루드, 근데 너 말이야. 변신 같은 건 못해?”


루드를 바라보는 그녀는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장난기 섞인 표정을 보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루드조차도 그녀가 무슨 의도로 말을 꺼낸 건지 아직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걸이 같은 걸로 변신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항상 차고 다니는 거지. 그러면 딱히 들킬 염려도 없이 네가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잖아.”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물론 불가능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잘 때도 씻을 때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인 건가?”


루드가 그렇게 슬쩍 농담 섞어 이야기하자 엔테가 벌떡 일어나 따지듯 이야기했다.


“그, 그런 말은 안했어! 그럴 땐 제대로 벗어둘 거니까!”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루드는 손을 저었다.


“애초에 무리. 그런 변신술이 아무나 가능할 것 같아?”

“그, 그럼, 작은 동물은 어때? 새 같은 거. 내 어깨에 올려줄게.”

“······.”

“뭐, 뭐야 그 표정!”

“진지한 헛소리를 대하는 표정이지.”

“난 심각하다구!”

“그러니까 더 빨리 통치에 대해 배우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나한테 영원히 의지할 수는 없어.”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사실을 전달하는 목소리.


“······ 알고 있어.”


그래도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잘래, 피곤해.”


엔테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툭 내뱉고는 소파에 누워 등을 돌려버렸다.

루드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엔테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그로서도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해답을 모르는 것은 엔테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무엇에 짜증을 내고 있는 걸까.

처음엔 그저 살아남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그 다음은 원래 자신이 가졌어야할 것을 가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 정도뿐이라면 지금도 다 이룬 셈인데, 어째서 아직도 그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걸까.

그가 계약으로만 움직이고 있을 뿐인, 본질은 추악할 게 분명한 악마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엔테의 선언에 의해 강제로 깔린 그것은, 불편할 정도의 깊이를 갖고 있었다.


“루드······.”


엔테가 겨우 수 초만에 다시 루드의 이름을 부른 것은, 분명 그 깊은 침묵을 참기 어려웠던 탓도 있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 아무 것도 아니야.”


엔테가 말을 망설이고 있다는 것은 굳이 루드가 아니어도 눈치챌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 루드가 다시 물었다.


“회의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꺼내기엔 아무래도 어색한 이야기였다.


“고민이 있다면 일단은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어떨까.”

“고민은······, 아닌데······.”


그녀의 등이 잠깐 움츠러들었다가 펴졌다.

말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악마도 그런 쪽으로······, 그러니까 인간한테, 이성으로서 관심 같은 걸 가지는······, 거야?”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루드는 잠시의 고민 끝에 그가 앞서 남녀 사이를 의식한 듯한 발언-잘 때도 씻을 때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인 건가-을 했던 걸 기억해냈다. 그 말에서 궁금증을 느낀 것인가.


‘어쩌면 불편하다고 느낀 것일 수도 있겠군.’


이어졌던 그녀의 반응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유추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쉬는데 방해된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걸지도.

그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너무나도 사소한 일이지만, 현재로선 그녀의 경계심을 사는 건 훨씬 귀찮은 일을 만들 게 되니 어쩔 수 없다.

조금 안심시켜주는 편이 좋겠지.


“각자 차이가 있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여기겠지. 그럼 더 경계할 테니 적당히 두루뭉술 대답한 것이었다. 그 자체가 무심하게 보일 테니까.


“응······.”


엔테는 그렇게 힘없이 대답하고는 조용해졌다.

사실 그녀는 루드의 말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빨리 이 주제를 끝내고 싶었으니까.

그의 대답이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가 먼저 나서서 억지로 얼버무렸을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루드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을 꺼냈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편했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발 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내가 루드한테 감정을 갖고 있다고 비춰지는 건 아니겠지?’


엔테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헤이우드 후작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엔테는 누군가와 이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인간도 아니고 악마랑?

물론 어떻게 봐도 인간처럼 보이기는 했다. 게다가 이국적이기는 해도 나름 잘 생긴 편. 물론 그녀가 외모에 반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그랬다면 진작 가레스에게 반했을 테니까-그래도 매력적인 외모를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딱히 말이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 사회에 대해서는 어찌 보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직접 봉인을 풀고 계약을 맺었던 악마다.


‘역시 말도 안 돼······.’


물론 루드는 그녀가 그런 주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루드가 노련한 책략가라고 해도, 이성 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것을 정복과 지배, 계약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그니까. 그에게 소녀의 섬세한 마음 같은 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도 엔테는 어떻게든 고민이 깊어지기 떨쳐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녀였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어쩌다가 이런 것들을 다 떠맡게 되었담?’


차를 마시고, 정원을 돌보고, 크리스나 시녀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깔깔 거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엔테가 여전히 돌아누운 채 다시 이야기했다.


“나 말이야. 몇 년 전까지는 통치 같은 건 고민조차도 안 해봤어. 뭐······, 철이 없어서였던 것도 부정하지는 않을 게. 근데······,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


루드는 흥미롭다는 듯 슬쩍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야 어찌되었건 엔테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위로 오라버니가 한 분 계셨어. 원래는 그 오라버니가 공위를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2년 전에 마물과 마주쳐서 돌아가셨어. 그 뒤로 부랴부랴 내가 후계자로 책봉된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루드는 그녀가 아마도 죽은 오빠와 사이가 나쁘진 않았으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단지 그 뿐은 아닌 듯했다.


“그러니까, 나 같은 게······. 플리온 공작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다구······.”


그녀는 아마도 외롭고 무서운 것이리라.

갑자기 후계자로 책봉된 것만으로도 놀라워 누군가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었을 텐데, 아버지는 얼마 못 가 병사했고, 믿고 있던 신하는 오히려 그 틈을 노려 반역을 저질렀다.

세상에 믿을 존재가 없었고, 누군가에게 미움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음에도 자신을 죽이려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걱정 마. 내가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 응.”


엔테는 이번에도 조금 전처럼 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도망치려던 이전과는 달리, 오히려 결심의 의미가 조금 담겨 있었다.


작가의말

어쩌다보니 주말에 한 편도 못 올렸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연참하느니 잘라서 주말에 올리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긴 하네요. 반성합니다 ㅠ...


초기 기획에는 이쯤에서 주인공의 찐따미가 원래 좀 나왔는데, 처음부터 아주 찐따로 밀고 갔으면 모를까 지금 나오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뜯어고쳤습니다.

찐따도 찐따 나름의 매력이 있을 거라 좀 아쉽긴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모습도 같이 가진 캐릭터를 더 좋아합니다.

음... 눈치 안 보고 써야지했던 글이 자꾸 눈치를 보고 있게 되는 기묘한 현상이 자꾸 일어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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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는 악마에게 기대어 선다 +4 19.04.29 94 4 11쪽
30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2 19.04.26 98 3 11쪽
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103 2 10쪽
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0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0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7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3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70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7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9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8 3 10쪽
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6 2 10쪽
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2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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