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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6,501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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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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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엔테가 해야할 일 (3)

DUMMY

크리스의 일은 일단락됐다. 그럼 다음 질문은,


“그런데 지금까지 어디 있던 거야?”


또 다시 따지는 듯한 목소리.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서 그 정도였다. 그를 발견한 그 자리에서 이야기했다면 분명 조금 화가 난 목소리였을 게 분명했다.

그와 상의하려고 했던 문제보다도 우선은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런 엔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드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를? 어디서? 못 봤는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세 사람이 있는 곳은 영주의 방, 다시 말해 레이몬드가 쓰던 방이었다.

성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방이었기 때문에 린드버클에 머무는 동안에는 엔테가 쓸 예정이었다.

그래서 루드는 당연히 그녀가 이곳으로 오리라고 판단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는 장소기는 했다. 상식적으로는 루드가 들어올만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그에게 몰래 숨어드는 것 따위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실제로도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병사들에게 맡겼어도 결국에는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이 개입한 일이었기 때문에 진작 알아챈 것뿐이었다.


“이 녀석에게 줬던 마법도구가 파괴된 걸 감지해서 왔지.”


자신의 마력 정도는 어지간한 거리에서도 쉽게 분간할 수 있으니까.

엔테가 눈썹을 치켜떴다.


“평범하게 홀 밖에서 기다릴 순 없었던 거야?”


질문이라기보다는 책망.

그런 방법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행사를 의미 없이 기다리고 있는 건 질색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 급한 것도 아닌데 그녀만을 위해 움직일 필요가 있겠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뭐라도 하나 더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게 낫지.

가령 영주의 방에는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유가 있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소녀 군주와 기사도 아니면서 총애를 받고 있는 젊은 용병. 네 적들이 좋아할 소재가 될 것 같은데.”


물론 마음먹으면 전혀 들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매번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으니까.

엔테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물론 루드가 이야기한 것을 100% 이해한 깊은 상상은 아니었지만.


“크, 크리스도 같이 있잖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여기사와 같을 수야 없지.”

“어, 어쨌든! ······ 그럼 지금도 문제라는 거 아냐?”

“잘 이해했군.”


찌릿.

또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한 엔테가 루드에게 눈을 흘겼다.


“그, 그럼 빨리 나가라구!”

“네, 네. 그렇게 합죠.”

“······.”


이어지는 엔테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해있었다.

루드는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정도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야 뭐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


하지만 일단 나가긴 해야 했다. 공식적으로 들어왔으니까.

다시 말해 감시자들에게 자신이 공식적으로 나갔다는 것을 확인시켜야만 쓸데없는 소문이 도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금방 돌아오지.”


루드는 엔테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하곤 방문을 열고 나갔다.

엔테는 문이 닫힌 걸 확인한 후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표정, 이상했겠지?’


루드가 나간다고 할 때 분명 자신의 표정은 어린애 같았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엔테는 말도 못하게 부끄러워졌다.

크리스가 침대 위에 누워있지만 않았다면 그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을 것이다.

오기 전까지 표정 관리 좀 하자.

악마다. 저 녀석은 계약 악마일 뿐이다. 서로 목적만 이루면 아쉬울 것 없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엔테는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 잡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히기이이익!?”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엔테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읍!?”


목소리의 주인공은 황급히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쉿’하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 정체는 루드였다.

아무리 악마라지만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공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문 밖의 경비병이 큰소리로 물었다.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아, 아무 것도 아니다! 버, 벌레! 벌레가 날아 들어와서 잠시 놀란 것이다!”


엔테는 황급히 말을 둘러대자 루드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대충 생각해낸 거라지만 대체 누굴 벌레 취급하는 거냐······.

게다가 그런 소리를 하면 당연히······.


“버, 벌레라니! 당장 저희가 붙잡겠습니다!”


덜컥.


“안 돼애애애!!!”


경비병들이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에 엔테가 소리를 질렀다.


“오, 옷! 옷을 갈아입는 중이니라!”

“시, 실례했습니다아아!”


열리려던 문이 다시 황급히 닫혔다.

참 잘도 둘러댄다. 루드는 한심함을 넘어선, 측은함이 담긴 시선으로 엔테를 바라봤다.

그 시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엔테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지만 일단 상황을 마무리해야했기 때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버, 벌레는 내, 내가 잡았다! 괘, 괜찮으니까 시, 신경 쓰지 말거라!”

“아······,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위기는 넘겼다. 라고 엔테는 생각했다.

하지만 루드에겐 숨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기에 위기라는 생각조차 없었지만.

엔테는 크리스가 누워있는 침대의 한 구석에 엎어져서 얼굴을 묻었다.

부끄러움으로 거의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물론 얼굴을 파묻고 있는 상황 그 자체도 부끄러웠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단은 회복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한때 극악무도한 마왕이었던 루드는 소녀의 섬세함까지 이해하는 것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지?”


시큰둥하게 묻는 질문에 엔테의 상체가 뻣뻣하게 올라왔다.

동공 지진.

그녀는 거짓말이라도 들킨 것처럼 당황했다. 왜? 아무 말도 안했는데? 시선 한 번 노골적으로 보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그,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성문 앞에서 알아챘지. 난 지금 고민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게 내색을 하는데 알아채지 못할 리가 있나.”


다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렇게까지 티가 났단 말인가.


“다, 다들 알아챈 거야?”

“걱정 마라. 인간 놈들은 나에 비하면 한참 더 둔하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그냥 걱정이 있구나 생각한 정도겠지.

엔테는 그 말에 일단 안도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놀림감이 된 느낌이라 살짝 뾰로통해졌다.

하지만 따져봐야 신경도 안 쓰겠지.

심호흡 한 번에 어떻게든 회복한 엔테가 화두를 던졌다.


“어쨌든, 의논을 좀 하고 싶어.”


역시 가장 시급한 건 린드버클 영지에 대한 처우였다.


“일단은 여기, 린드버클 영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헤이우드 후작은 사람들을······, 본보기로 처형하라고 했어······.”

“본보기인가. 확실히 공포는 꽤 좋은 약이지.”


루드는 순수하게 동의했다. 실제로 그도 많이 써본 방식이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정도로.

반면 그의 반응에 엔테는 움찔했다.

루드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가 악마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게 맞는 방법이기 때문인 걸까······.

아마도 후자겠지. 노먼은 신을 섬기는 사람이니까 악마인 것과는 관련이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뛰어나고 노련한 영주고.

하지만 역시 맘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그 정도 선택권은 당연히 너한테 있을 텐데?”


지극히 정론이었다. 그녀는 세토라를 잃지 않았고, 그 후속 조치에서도 특별한 문제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플리온 공작으로서의 지위를 휘두를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녀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쉽게 결정하면 안 되는 문제인 거지?”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녀는 이미 깨달은 것이다.

지금 당장에는 멋대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어떤 정치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묻고 있었다.


“네 생각이 듣고 싶어. 너는 어떤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그런 걸 악마에게 물어도 괜찮겠어?”


루드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에 엔테는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는 파악할 수 없었다.

사실 종종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그가 악마라는 것.

설령 그의 행동과 판단이 그녀를 돕기 위한 최선의 판단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었다.

노먼이 말한 것보다 더 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에게 보통의 인간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따위 있을 리가 없으니.

만약 그가 주민 천 명의 목을 베어야한다고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엔테는 고개를 저었다. 고민은 우선 들어보고 하자.

각오를 다진 엔테가 이야기했다.


“내게 도움이 되는 길을 알려줘.”


작가의말

엔테는 본인이 표정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 레벨에선 의외로 잘 먹힙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과 덧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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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소녀는 악마에게 기대어 선다 +4 19.04.29 94 4 11쪽
30 결국에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2 19.04.26 98 3 11쪽
29 용기를 내는 방법 +2 19.04.25 103 2 10쪽
28 충성의 가치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2 19.04.25 91 3 10쪽
27 인간은 제법 악마와 닮았다 +4 19.04.24 111 2 11쪽
26 욕망의 존재만이 마왕이 될 수 있다 +2 19.04.23 159 3 9쪽
»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7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4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7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5 3 8쪽
20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3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70 3 10쪽
14 욕망의 신하 19.04.16 258 3 9쪽
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9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11 세토라 탈환 (2) 19.04.14 168 3 10쪽
10 세토라 탈환 (1) 19.04.14 196 2 10쪽
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3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3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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