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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이 힘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이람
작품등록일 :
2019.04.10 21:53
최근연재일 :
2019.04.30 12: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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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3
추천수 :
102
글자수 :
134,464

작성
19.04.1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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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DUMMY

해가 떠오른 즉시 엔테와 그 이름을 수호하는 원정군이 진군을 시작했다.

엔테는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졸린 기색이 역력했지만, 각지의 기사들이 모인 곳에서-특히 나란히 말을 몰고 있는 노먼에게-추태를 보일 순 없었기에 최대한 정신을 잡고 있었다.

도시 아인버겐의 외성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명백한 항복의 표현.

엔테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크게 당황했다.


‘뭐, 뭐야,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서, 설마 루드가!?’


바로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계약 악마였다. 간밤에 움직인 건 루드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그는 전날 함정을 치웠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엔테는 이내 그에 대한 의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린드버클은 여섯 개의 핵심 영지 중 공작의 직할령인 세토라와, 국경 수비의 특수 목적을 지닌 헤이우드를 제외하면 가장 큰 영지였다.

영지 내에 속한 모든 곳에서 병사를 긁어모은다면 족히 네 자리 숫자의 병사가 모인다.

루드의 실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는, 예상하고 있는 그의 실력으로는.


“그 레이몬드가 항복이라고?”

“믿을 수 없군.”


린드버클의 항복이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역자가 항복을 한다고 해서 쉽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잖은가.

그렇다면 혹시 도망친 것인가? 그래서 레이몬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설마 계략은 아니겠지?’


레이몬드의 계략을 의심한 노먼은 만일을 대비하여 헤이우드의 기병들을 먼저 성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매복 따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안전이 확보되자 그제야 엔테와 노먼을 선두로 군대가 입성했다.

그러나 엔테는 아직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녀는 전쟁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자신을 지키려는 수많은 군대가 뒤에 늘어서있긴 했지만, 자신을 노리려는 자들 또한 수없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두려울 뿐이었다.

다만 보는 눈들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서 날아가 버렸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노인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어린 아이들까지.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그들은 외성문부터 중앙 광장을 지나 린드버클 성의 근처까지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등에서 두려움, 공포, 좌절감 따위가 느껴졌다.

그녀가 느끼고 있던 불안감 따위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반역자의 도시다.

어떤 처우가 내려질지 알 수가 없었다.

세금이 몇 배로 뛰어오르거나 재산을 빼앗기는 정도라면 다행이었다. 본보기를 위해 수십 명쯤, 심하면 수백 명 단위로 처형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엔테는 아무 말 없이 그들 사이를 지나쳤다.

그들이 죄가 없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도시의 처우는 제가 맡겠습니다.”


나란히 말을 몰던 노먼이 슬쩍 말을 걸었다.


“도시의 대표자를 본보기로 삼아 처형한다면 다시는 불손한 꿈을 꿀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도시의 관리는 제 형제에게 맡기시죠. 세토라에서 법관을 지낸 적도 있는 만큼 엔테님도 만족하실만한 통치를 보여줄 것입니다. 몇 년 지나면 공국을 위한 물자와 군대를 양성해낼 수 있을 겁니다.”


노먼의 단정적인 말투는 당연히 그녀가 따를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럴 만 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 모인 수천의 사람들 중 이 정도 영지를 제대로 통치해본 사람은 노먼이 유일했다. 당연히 그의 판단이 가장 옳은 것이다.

다른 영지에서는 그저 노련한 기사를 내세워 병력을 파견했을 뿐이었다. 물론 노련한 기사들 중에는 자그마한 영지를 다스리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노먼에게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백작위를 가진 다른 영주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문제는 아무도 린드버클이 제압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반역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던 노먼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노먼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엔테의 대답은 그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생각 좀······, 해볼게요······.”


자신 없는 말투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노먼은 크게 놀랐다.

마치 거절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노먼은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랐다.

조금 혼란할 수도 있지.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라는 건 원래 그런 법이니까.

어차피 아버지를 잃고 반역까지 겪은 그녀였다. 기댈 곳은 당연히 자신 밖에 없었다.


‘이미 10년을 기다려왔는데 급하게 굴 것 없지.’


엔테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그가 따져들면 어쩌지 하고 고민 중이었는데 다행히 별말 없이 넘어갔다.

노먼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빨리, 그것도 직접 달려와 준 영주가 아닌가.

게다가 그녀의 판단으로도 그가 제안한 것이 아주 틀린 행위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의 형제에게 통치를 맡기는 것 역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도시의 대표자를 처형하고 싶진 않았지만.

예전의 그녀였다면 당연히 그의 말대로 했을 것이다. 싫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바로 뒤로 늘어선 수백 명의 기병들을 넘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자.

루드.

그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이윽고 원정군은 린드버클 성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엔테와 그를 따르던 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깜짝 놀랐다.

활짝 열린 성문의 앞에 은빛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기사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병사들이 서있었다.

엔테 쪽의 기사들이 뛰쳐나와 선두에 선 은빛 갑옷의 기사를 에워쌌지만, 기사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엔테가 몇 미터 앞에 도착했을 때, 기사는 그제야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뒤의 병사들도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은빛 갑옷의 기사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엔테를 향해 감정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공국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공국을 우롱하고 모독한 대역죄인 레이몬드의 목을 공녀님께 바칩니다.”


그 말대로 기사가 내려놓은 것은 반역의 주동자, 레이몬드의 목이었다.

원정군의 기사들이 그것을 보며 술렁거렸다.


“부하가 배신한 건가······.”

“어제 관측되었다는 빛이랑 관련이 있을지도······.”

“싸움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저거 가레스 아닌가?”

“엥?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그때 노먼이 앞으로 나와 은빛 갑옷 기사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리고는 꾸짖듯 호령했다.


“공녀님 앞에서 언제까지 투구를 쓰고 있을 셈이냐! 당장 벗지 못할까!”


은빛 갑옷의 기사는 잠시 멈칫하는 듯 했지만, 곧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자 수많은 여성들의 연심과 수많은 남성들의 질투심을 한 몸에 받던 조각된 것처럼 아름다운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조금은 창백한 것처럼 보였지만, 틀림없이 공국 최고의 기사인 가레스였다.

가레스가 정체를 밝히자 사람들의 술렁임은 더욱 커졌다.


“가레스!? 정말로 가레스인가!?”

“설마 그 가레스가 레이몬드를 배신할 줄이야······.”


그의 배신에 대해서는 예상한 사람보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마치 아르곤이 배신당할 것이라는 걸 섣불리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 광경을 보며 루드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자신의 계교로 누군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노먼은 그의 정체를 확인하자 큰 소리로 가레스를 향해 소리쳤다.


“더러운 반역자놈! 처음에는 레이몬드의 편을 들더니 상황이 불리해진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는 건가!”

“저는 처음부터 공녀님의 신하였습니다. 단지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듣기 싫다! 이놈과 이놈이 데려온 놈들의 목을 베어라!”

“······.”


노먼의 호령이 있었지만 기사들은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야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상대가 그 가레스라는 점이었다. 번개 같은 검을 지닌 공국 최강의 검사 중 하나다.

그런 그가 알아서 레이몬드의 목을 갖고 항복하러 왔는데, 순순히 죽어줄 리가 있겠는가.

살기 위해서 배신한 거라면, 여기서도 살기 위해서 칼을 뽑을 것이다. 그랬다간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해진다.

하다못해 가레스에 필적한다는 그 기사들을 보내주든가······.


“······.”


하지만 꼼짝도 않는 가레스의 모습에 조금 용기를 얻었는지, 그를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으······.”


엔테는 그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가레스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노먼에게 대들 수 있을까? 아니, 대들어도 되는 걸까?

그녀는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번에도 역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렸다. 그의 도움을 간절히 소망하며.

그리고 마치 그것을 미리 알아채고 있기라도 했었다는 듯, 루드는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작가의말

목이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조회수도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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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엔테가 해야할 일 (3) 19.04.22 126 2 10쪽
24 엔테가 해야할 일 (2) 19.04.22 113 3 8쪽
23 엔테가 해야할 일 (1) 19.04.21 136 2 10쪽
22 헤이우드 후작의 사정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21 148 4 8쪽
21 목 없는 마왕의 기사 (2) 19.04.20 154 3 8쪽
» 목 없는 마왕의 기사 (1) 19.04.19 331 4 10쪽
19 반역자에게 심판을 (4) 19.04.18 192 4 9쪽
18 반역자에게 심판을 (3) 19.04.18 192 3 9쪽
17 반역자에게 심판을 (2) 19.04.17 190 2 11쪽
16 반역자에게 심판을 (1) 19.04.17 170 3 9쪽
15 반역자의 준비 (안 보고 넘어가셔도 되는 편입니다.) 19.04.16 16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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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토라 탈환 (4) 19.04.15 198 3 10쪽
12 세토라 탈환 (3) 19.04.15 172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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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엔테의 결심 (2) 19.04.13 195 3 8쪽
8 엔테의 결심 (1) 19.04.13 192 3 7쪽
7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2) 19.04.12 241 3 9쪽
6 마왕의 축복을 받은 기사 (1) 19.04.12 247 3 7쪽
5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3) +2 19.04.11 272 4 10쪽
4 악마는 소녀를 구한다 (2) 19.04.11 32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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